우리의 셀카가 노동이 된다면
가끔 연예인들의 셀카를 보면 세상 모든 일이 쉬워 보인다. 그들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대충 찍은 거울 셀카로도 충분히 예쁘고(제니), 드넓은 배경에 얼굴 한 스푼 섞는 식으로(손석구) 대충 셀카를 찍으며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낭비하곤 한다.
하지만 비연예인이자 평범한 외모를 가진 우리는 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도 아닌 피드에 박제할 만한 셀피를 남기는 데는 어마어마한 고생이 따른다는 것을. 카페나 호텔, 여행지 등 사진 찍을 장소를 선정하고, 장소에 어울리는 옷과 아이템을 선정하며, 비슷한 사진을 여러 각도로 수십 장 찍는 것까지는 육체노동이라고 치자. 그 사진 중에 몇 장을 고르고 그중에서도 한 장의 A컷을 최종 선택한 후에도 올릴까 말까, 너무 뚱뚱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다시 찍어달라고 하면 상대가 화낼까 등등의 내적 갈등을 거쳐 마침내 업로드를 포기하게 되는 것까지는 분명히 감정 노동의 영역이다.
게다가 이것은 혼자만의 노동이 아니다. 두 팔을 쭉 뻗어 혹은 셀카 봉을 이용해 찍은 얼굴만 강조되는 셀카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지금 시대의 유행은 확실히 ‘전신 셀카’다. 전신 셀카는 단순히 예쁘거나 날씬해 보이는 것을 넘어 수평과 구도, 장소와 피사체의 조화, 피드의 전반적인 색감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 아주 많은 종합 예술이다. 이를 위해서는 함께 촬영 장소로 가거나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필연적으로 필요한데, 남자 친구나 친동생처럼 편한 이들에게 부탁하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이들은 곧 화를 낸다. 편한 관계인 만큼 그만 좀 하라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 보면 종종 드는 의문이 있다. 혼자 떠난 듯한 여행지에서, 한강에서 야간 러닝을 하다가, 혼술 혹은 혼독(혼자 하는 독서)을 즐기며 남긴 사진은 아름답고 완벽하다. 그런데 이 사진은 누가 찍어준 걸까?
정답은 협업자였다. 타인이 찍어주는 셀카에 해당하는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서는 친구라고 불리는 협업자, 즉 ‘인간 셀카 봉’이 필요하다. 최근에 읽은 책 <인생샷 뒤의 여자들>에는 궁극의 셀피를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여성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는데, 그중 한 인터뷰이는 이렇게 말했다. “대충 만나자는 날이 있고, 사진 찍는 날이 있어요. 사진 찍는 날은 일단 예쁘게 하고 가야 하고, 인스타그램용 카페에 가야 해요. 친구와 서로 피드 컨셉이 다르니까 둘 다 피드에 올리려면 공통분모인 카페에 가야 하는 거죠. 공통분모인 카페에 가서 서로 사진을 핵 많이 찍어주고 카페도 한 바퀴 돌아요. 먹기 전 상태에서 서로 사진 많이 찍어주고 그다음에 얘기하자고 해요. 그러니까 사진을 거의 1~2시간 찍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상대가 찍어주는 만큼 나도 찍어주겠다는 암묵적인 계약이 있다면 다른 이가 넉넉하게 찍어주는 전신 셀카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촬영을 위한 인공 추억을 기획하고, 인스타 스타의 이미지를 보고 예습하며, 카페와 여행지에서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면서도 절박하고 필사적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의 협업과 연대의 과정이 웃기면서도 슬펐던 이유는 그 과정이 아주 고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또 다른 인터뷰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오게 해야 해요. 오늘 온 게 아까워서라도요. 못 건지면 다른 데를 한 군데 더 가요. 저 같은 경우에는 피드 컨셉이 주로 낮이에요. 그러니 밤이 되기 전에 빨리 돌아다녀야 하는 거예요. 낮에 사진 찍고 밤에 편하게 술 마시면서 놀고. 어쩌다 보니 이런 강박관념이 생겼어요.” 이들처럼 프로 정신을 가지고 셀카를 찍지는 않는다고 해도, 우리 모두의 일상에 각자의 모양으로 이런 강박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여행지에서는 이런 강박이 더 심해진다. 이번에 인생샷을 남기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 세계가 인스타그래머들의 사진 촬영을 조장하고 격려한다. 어딜 가더라도 사진을 찍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 만한 세팅이 준비되어 있다. 올여름 발리에 다녀온 친구의 인스타그램 속에서 풀에 동동 띄워놓고 먹는 플로팅 조식 사진을 보며 감탄한 기억이 난다. 사진 속의 친구는 웃고 있었지만, 추후에 차가운 물속에서 한 아침 식사가 얹혀서 귀국할 때까지 고생했다는 후일담을 전해 들었다. 게다가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풀장에 머물다 애인과 크게 싸웠다는 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개인 사진가를 고용하기도 한다. 웨딩 촬영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기념하고 싶은 날을 위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가를 섭외하는 일이 예전보다 흔해졌다. 실제로 나의 지인은 혼자 떠난 파리 여행 중 현지 거주 한국인 사진가를 섭외해 사진 찍는 날을 하루 정해두기도 했다. 우리 곁에 가장 보편적으로 정착된 ‘개인 사진가 문화’는 물론 보디 프로필 사진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개인이 주인공이 된 화보 촬영 현장으로, 많은 이들이 이날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땀을 흘리며 몸을 만든다. 하두리 카메라로 찍은 ‘뽀샤시’한 얼굴 셀카(이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에서부터 정교하게 조각된 보디 프로필 사진까지 이어지는 셀카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우리가 어디까지 온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인기를 얻은 ‘인생네컷’도 빼놓을 수 없다. 인생네컷은 과거에 우리가 열광하던 스티커 사진의 명맥을 잇고 있다.
사실 이 과정의 중간중간에 ‘현타’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앞서 언급한 발리를 여행한 친구 역시 평소에는 아침을 먹지 않는 편인데, 사람이 오기 전에 조식 사진 촬영을 마치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메이크업하면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는 왜 이런 중노동을 하는 걸까? 꼭 셀카가 아니더라도 인스타그램을 위한 사진 촬영 업무는 365일 내내 진행되며, 휴일에도, 점심시간에도 이 업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긴 힘들다. 휴일과 점심시간이야말로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전시된 사진을 가짜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다. 실제로 우리는 인스타그램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드나들며 피드와 새 팔로워를 확인하고 하트를 주고받는데, 이 모든 것이 가짜라면 진짜 삶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셀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들을 ‘관심 종자’로 치부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납작한 주장이다. 여성들이 특히 ‘보이는 나’에 몰두하게 되는 이유를 따지자면 전 생애에 걸쳐 우리가 놓인 환경이 우선적으로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인생샷 뒤의 여자들>의 한 구절처럼, “온라인은 더 행복해질 기회와 더 불행해질 위험이, 그리고 더 사랑받을 기회와 더 외로워질 가능성이 공존하는 공간”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가까워진 만큼 스스로를 미워할 가능성과도 가까워졌다”. 따라서 자신감과 자기혐오 사이를 격렬하게 진동하는 동안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과 돈, 에너지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엑셀 파일로 정리하듯 일목요연하게 따져보면 분명히 우리는 초과 근로 수당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실 다른 이의 피드를 꾸준히 보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인스타그램을 도구로 나라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도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어떤 결핍과 욕망을 가진 사람인지, 그 결핍과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채워질 수 있는지 말이다. 물론 객관화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 다행인 것은 언젠가는 보이는 나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는 나이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시절부터 인스타그램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착실히 거친 나는 이제 셀카를 거의 포기하게 되었다. 흑역사는 아직 폐쇄하지 못한 미니홈피 사진첩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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