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 존재, ‘거미집’의 송강호,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시공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초현실적 존재들이 까만 밤을 밝힌다. 이곳에서 빛이 시작된다. <거미집>의 송강호,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은 별이 된다.
송강호의 영화 여행
다소 쓸쓸한 걸음으로 공장 밖을 나서는 노동자가 있다. 뤼미에르(Lumière) 형제는 자신들이 직접 발명한 시네마토그라피(카메라 겸 영사기)로 그 모습을 촬영했고, 1895년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세계 최초의 상영회를 열었다. 그로부터 51년 뒤 탄생한 칸영화제는 뤼미에르 극장에서 첫 시사회를 시작하는 것으로 매해 형제가 쏘아 올린 빛(뤼미에르)을 기린다. 한국인 중 이곳에 가장 많이 입성한 이는 송강호다. 지난여름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과 함께 그는 생애 여덟 번째 칸영화제를 누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굉장히 좋았습니다.” ‘함께’를 이룬 주체는 김지운 감독과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 배우. 영화에 대한 애정과 헌사를 담은 작품을 탄생시킨 <거미집> 군단은 판타지를 창조해내는 예술가로서 그 광채를 유감없이 뽐내며 별천지를 이뤘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송강호와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은 순간 이동을 한 듯 칸에서 보여준 클래식하고 우아한 모습 그대로 <보그> 촬영장에 안착했다. 촬영용 조명과 작업등, 촛불이 총총히 밝힌 불빛만이 전부인 어스름한 촬영장 한가운데 송강호가 우뚝 서자 모두가 그의 동작을 좇았다. 송강호의 움직임은 한국 영화사에서 그의 발자취가 그러하듯 빠짐없이 인상적이었다. “편안한 작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가 한 팀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잖아요. <거미집>은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촬영한 작품입니다. 공교롭게도 다들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배우들이기도 해서 새로운 즐거움이 있었죠.”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향수를 자극하는 1.66:1의 화면비 등 매력적인 연출이 곳곳에서 눈에 띄는 영화지만 송강호는 작품의 가장 큰 매력으로 ‘앙상블 연기’를 꼽았다. “각자의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모든 배우가 톱니바퀴처럼 하나로 맞물려요. 이번에는 감독의 입장에서 그 앙상블을 바라보는데 모두를 참 우러러보게 되더라고요. 배우들의 에너지가 아주 강렬해서 신성하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거미집>에서 송강호는 걸작에 대한 열망으로 결말을 뒤엎으면서까지 배우들과 제작진을 몰아붙이는 감독 ‘김열’을 연기한다.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 바람둥이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뜨거운 신인 한유림(정수정)과 한국 최고 영화사 신성필림의 후계자로 재정을 담당하는 신미도(전여빈) 등 모든 역할이 김열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고집스럽게 눌러쓴 채 등장하는 송강호는 그 속에서 “이걸 못 찍으면 평생 고통 속에 살게 될 게 분명하다”며 울부짖는다.
영화란 무엇이며 창작이란 무엇일까. 팬데믹 시기, 영화의 의미와 가치에 골몰한 김지운 감독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친구이자 동료, 송강호에게 다섯 번째 초대장을 보냈다(송강호는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부터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2016)까지 총 네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든든함도 있지만 부담감도 있었습니다. 이젠 또 둘이서 어떤 새로움을 보여줘야 하나, 그런 고민이었죠. 그래도 건강한 부담감에 가깝습니다. 절대 나쁘게 작용하지는 않아요.” 1970년대 영화 촬영장을 고스란히 옮겨온 세트장 분위기는 새로운 활력을 몰고 왔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과 <살인의 추억>(2003)에서 배우들끼리 막 치열하게 연기하고 돌아다닐 때 분위기가 자주 생각났어요. 참 즐겁고 행복하게 영화를 찍던 시절이거든요. 전여빈 씨하고 장영남 씨하고 세트장 한쪽에서 쉬면서 커피 마실 때 그 얘기를 하니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그땐 온통 남자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여자 배우들까지 함께해서 더 풍성한 느낌이 있었어요.” 송강호는 한배를 탄 동료들과 함께 순간을 향유하려는 열정이 남다른 배우다. 영리하고 치밀하고 치열하지만 직감이고 본능일 뿐, 그는 그저 허허실실 웃으며 현장의 기운과 다른 배우들이 뿜어내는 돌발적인 에너지를 능수능란하게 흡수한다. 송강호가 촬영이 없을 때도 현장에 나와 동료 배우의 대사를 받아준다거나 후배의 연기를 바라보며 묵묵한 응원을 건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현장에 있는 걸 좋아해요. 특별한 취미도 없거든요. 집에 가도 딱히 할 일도 없고…”
감독과 배우 사이. 불분명한 신분으로 마주한 송강호에게 거미집의 의미를 물었다. <거미집>은 김열의 작품이기도 하니까. “거미라는 곤충이 지닌 의미심장한 특징이 있죠. 먹이를 잡기 위해 친 거미줄에 정작 자기가 걸려 죽는 거미들이 많다더군요. 스포일러라 자세한 설명은 못 드리지만, 파격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엔딩 시퀀스를 보면서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욕망에 이끌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고려해보게 될 겁니다. 김열에게 영화 ‘거미집’은 예술가로서의 야심이죠.” 27년째 영화를 찍어온 관록의 배우 송강호에게 영화 <거미집>이 갖는 의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저에게도 새로운 거미줄을 치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거미집>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을 부추긴 영화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고 싶은 욕심, 그게 배우로서의 목표라면 목표라 할 수 있거든요.”
1991년에 입단한 극단 ‘연우’에서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캐스팅되며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겨갔을 때부터 송강호의 삶은 미션의 연속이었다. CG를 전폭적으로 도입한 영화 <괴물>(2006)과 봉준호 감독의 첫 영어 영화로 당시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설국열차>(2013),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촬영하고 연출한 <브로커>(2022) 등 그는 언제나 한국 영화의 지평이 새롭게 확장되는 지점에 우뚝 서 있었다. 게다가 그의 발걸음마다 좋은 기운이 넘실댔다. 주연으로 등장한 송강호는 평균적으로 507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이는 국내 배우 중 가장 높은 수치다). 한국 영화 중 가장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 <기생충>(2019)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획득하며 예술성까지 인정받았다.
<기생충>은 송강호의 영화 여행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그 전까지는 좀 뜨겁고 거친 열기를 갖고 있었다면 <기생충> 이후로는 열기가 정교해진 느낌이 들어요. 세계 영화사에서 한국 영화의 존재감을 느끼면서 성숙한 열기를 갖기 위해 애쓴 부분도 있죠.” 기분 좋은 성과는 송강호에게 한국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2년 전, 한국 남자 배우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 위원으로 활약하며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작품을 면밀히 들여다봤을 때도 그 확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끊임없이 도전하는 역동성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제일인 것 같아요. 한국 영화가 지닌 다양성과 역동성이 다른 나라보다 몇 발자국 앞서서 관객을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는 느낌을 받았죠.”
물론 혼자 일궈낸 성과는 아니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 홍상수,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송강호를 페르소나로 낙점한 위대한 감독들은 그의 가장 든든한 동료들이다. 너른 시야와 탁월한 해석력으로 감독의 사랑을 받는 배우지만, 송강호는 감독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분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배우를 잘해내기에도 벅차고요. 감독님들이 칭찬하는 그런 덕목은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거라고 봐요. 훨씬 자유로운 입장이니 보이는 게 많을 수밖에요. 저는 감독님의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드리고 감독님은 거기에서 힘을 받아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그런 식의 작업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창작자의 열의를 이해하고, 그에 힘을 실어주는 배우. 송강호라면 <거미집>의 김열처럼 실제로 결말을 다시 찍으려 하는 감독을 끝내 포용하지 않을까. “아, 그럼요. 저는 그런 거 개의치 않고, 오히려 좋아해요. 제목은 말씀 못 드리겠지만 여덟 번을 재촬영한 작품도 있는걸요. 흔치 않은 경우였지만 납득할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다시 찍은 게 좋았거든. 훨씬 좋았어요. 이럴 거면 100번도 다시 찍을 수 있다고 그때 그랬죠.”
송강호는 이제까지의 삶을 ‘영화 여행’이라 표현했다. 매년 적어도 한 편의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며 그는 종착지마다 인상적인 발자취를 남기고 홀연히 떠난다. 그러나 여정 중에 밀려오는 감정이 설렘만은 아니다. “연기하는 게 행복하다는 배우를 보면 좀 부럽습니다. 차를 타고 현장에 갈 때마다 설렘도 물론 있지만 창작에 대한 고통과 부담감도 함께 오거든요. 그런데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더라고요. 그냥 받아들여야지. 차분하게 할 거 하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연기를 놓고 싶은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캐릭터마다 느껴지는 통렬한 현실감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자 몸부림친 결과다. “시대의 풍미를 담으면서도 현실성을 놓치면 안 됩니다. 두 가지가 공존하는 연기, 그것이 저에게 늘 숙제였어요.” 27년째 켜켜이 쌓아온 33편의 장편영화는 성실한 분투의 기록이다.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는 눈에 띄게 영화에 편중되어 있는데 그는 이것이 자신의 성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촬영을 마친 <삼식이 삼촌>은 그의 첫 드라마다. “한 번에 여러 작품을 촬영하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영화 촬영 환경이 좀 더 저랑 맞아요. 영화만 좋아! 이게 아니고요. 박정수 선생님이 최근 한 말이 참 와닿았어요. 계속 드라마 작업만 하시다가 16년 만에 촬영한 영화로 칸까지 가게 됐는데, 그 모든 점에서 <거미집>은 정말 반가운 작업이었다고 하시더군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의 소통, 작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는 작업 환경이 너무 그리우셨던 거죠. 박찬욱 감독님이 칸영화제에서 수상 소감으로 하신 말씀처럼 극장에 갈 수 없었던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우리 모두 영화가 얼마나 소중한 예술인지 깨달았죠. 아마 각자의 고찰이 있을 겁니다. 저 또한 함께한 동료들, 관객들과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어요. 영화 때문에 연기를 하고, 그 연기로 인해 작품이 탄생하고, 그것으로 관객과 소통할 때 얻어지고 파생되는 모든 느낌을 사랑합니다.” 류가영 <보그> 피처 에디터
사랑스러운 진심, 오정세
오정세는 사랑스럽다. 언제부터였을까. <남자사용설명서>(2013)에서 허세 가득한 톱스타지만 내 여자에게는 마음을 탈탈 털어 보이고, 그로 인한 수치심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하는 이승재는 어처구니없이 사랑스러웠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자폐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수성으로 뭉클한 직언을 날리던 문상태는 또 어떤가. 그 연기에 반한 지적장애 팬과 함께 오정세가 드라마 속 모습 그대로 놀이공원 나들이를 즐겼다는 일화는 더욱 사랑스러웠다. 한번 녹아내린 마음은 어떤 모습을 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호감은 꾸준히 불어났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으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가족으로, 사연을 지닌 미스터리한 존재로 변신하며 오정세는 너른 애정을 받는 배우가 됐다. <보그> 화보 촬영일, 그에겐 유독 스태프들의 사진 요청 세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수룩한 표정의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인터뷰에 응한 오정세의 음성은 다정하고 편안했다.
<거미집>에서 오정세는 또 한 번 톱스타로 돌아왔다. 단순하고, 눈치 없고, 그렇지만 여린 마음을 지닌 강호세는 여배우들과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바람둥이다. 맨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오정세는 ‘선’에 대해 고민했다. “사랑이 많은 친구거든요. 지나치게 많아서 혼나야 되는 친구(웃음). 그래서 김열이 만들려는 걸작에 엄청난 방해 요소가 되고요. 이 친구의 진심이 얼마나 나쁘게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들여다보면 애증은 느껴지는데 관객들에게 혼은 좀 났으면 좋겠고…” 김지운 감독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마냥 좋아할 수도, 그렇다고 혐오할 수도 없는 복합적인 인물을 만들어가며 오정세는 끝내 냉혹한 심판대에 오른 강호세를 구원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호세에 대한 관객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대변되는 순간이 있을 텐데 저에게는 의미가 커요. 고민을 녹여 만든 장면이거든요.”
진짜와 진심을 향한 오정세의 열망은 집요하다. 생명력과 설득력을 손에 쥐기 위한 오정세의 열심은 김열(송강호)의 ‘거미집’에서 연기하는 강호세의 입장에 놓일 때도 똑같이 발휘됐다. “1970년대 연기는 많이 달라요. 호흡도 다르고, ‘어이쿠’처럼 지금은 안 쓰는 표현도 나오죠. 대사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통에 배우들이 자기 대사만 내뱉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것도 전부 진짜 내 얘기처럼 하고 싶은 욕심이 컸어요.” 자연스럽게 질문이 늘고, 고민은 깊어졌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은 낯선 인물들이 어느새 마음 깊숙이 들어앉았다. “단역이든 조연이든 그 안에서 저는 한결같이 치열해요. 부족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죠. 아직도 카메라 앞에서, 관객을 마주할 때 ‘헉’ 하고 숨이 막히지만 그런 긴장감이 제겐 원동력이에요.” 인터뷰를 하며 과거의 필모그래피를 들췄을 때 오정세는 한창 몰두 중인 작품과 역할에 대해 소개하듯 줄줄 말을 이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문상태를 연기하면서는 항상 어려워하던 감정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희열을 느꼈고, <동백꽃 필 무렵>의 노규태가 보여주는 비뚤어진 사랑의 근거는 ‘외로움’에서 찾았다고. 촬영하며 느낀 모든 의문과 고민, 깨달음이 남긴 흔적이 여전히 역력했다.
사실 오정세는 낯가림이 심하다. 한때 극심한 무대 울렁증을 앓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덜컥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후 그는 오디션 현장에 끊임없이 몸을 던지며 스스로를 연단해왔다. 연극, 단역, 조연, 성우 이력을 포함해 이제껏 출연한 작품이 100편이 넘지만 여전히 그는 설렘보다는 긴장을 안고 촬영에 임한다. 결말을 다시 찍으려 하는 <거미집>의 김열처럼 과거를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거의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다시 기회를 줘도 나아지지 않을 거란 걸 안다”고 말하며 가냘프게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은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초심을 정말로 잃고 싶지 않아요. 작품마다 처음인 것처럼. 처음 오디션 봤을 때, 처음 연극 무대에 섰을 때, 영화 <아버지>(1997)에 처음으로 내 모습이 나왔을 때 느낀 걸 잊지 않으려 하죠. 그때 무슨 생각을 했냐고요? ‘다음엔 손님 2가 아니라 손님 1이 돼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강호세에게 ‘거미집’은 그저 또 하나의 필모그래피지만 오정세에게는 아니다. “작은 것 하나하나 전부 의미가 있죠. 그런 것들로 인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니까요.”
오정세는 연기할 때 음악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즐겨 꺼낸다. 좋은 음악 발견하기, 콘서트 보기가 유일한 취미인 그는 최근에는 싱어송라이터 버둥의 공연을 보러 갔다. “좋은 아티스트를 발견하면 언제 공연하는지 체크해둔 다음 그 자리에서 티켓까지 예매해요. 일이 생겨 결국 가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요. 음악은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김일두라는 아티스트의 거칠고 비정형적인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죠. ‘좋은 연기’에도 호흡, 발음, 발성, 동선에 대한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진심과 매력은 때로 그 모든 걸 허물 수 있다고. 무대 위를 통통통 자기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뮤지션을 보면서 ‘저런 발걸음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기도 했어요.”
각자의 세계관에 몰입한 배우들과 호흡할 때 시너지는 증폭된다. “정수정 배우는 실제로도, 극 중에서도 거침이 없어요. 작품과 현실을 대하는 태도가 유림이 같더라고요. 베테랑 배우이자 아내로 나오는 임수정 배우와는 환상의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촬영한 신이 있어요. 각자는 심각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되게 웃기죠.” 처음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난생처음 방문한 칸영화제에서도 든든하게 의지한 선배 송강호와의 만남은 의미가 깊다. “선배님과 함께 대사를 주고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우아한 세계>(2007)에 특별 출연했어요. 촬영 후 선배님이 ‘저 친구 어디서 데려왔어?’라고 물어보셨다는 걸 스태프를 통해서 알게 됐죠. 인상적인 역할도 아니었고 출연료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 심지어 출연 장면은 통편집이 되었지만 그 말이 저에게 엄청난 자산이 됐어요. 그걸로 모든 걸 보상받았죠.” <거미집>을 발성 좋은 플레이어들이 멋있게 활개 치는 ‘앙상블 코미디’라고 설명한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 선배의 말처럼 오정세 역시 새로운 앙상블에 대한 희열이 크다. “진한 색깔의 여러 인물이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한 공간에 모였잖아요. 잘 섞이지 않을 것 같은데 잘 섞이는 묘한 광경이 펼쳐지죠.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인 사람들이 모였을 때 자신의 욕망을 어디까지 타협해야 하는지가 항상 문제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갈등도 발생하고요. 신나게 연기했기 때문에 관객들도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삶에 대한 그런 질문을 하게끔 만드는 영화예요. 재미있게 봤는데 다 끝났을 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 저는 그런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보거든요. 감정이든 인물이든 음악이든 무언가 남는 영화요.”
이제껏 수많은 무대에 오른 오정세가 느끼는 영화만의 매력은 ‘낭만’이다. “환경은 많이 달라졌지만 사람 냄새가 좀 난달까요. 영화관까지 가는 것도 결코 쉬운 발걸음은 아니잖아요. 마음먹고 집을 나서야 하고, 돈도 내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깊은 인상을 남기거나 혹은 혹독한 채찍질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김지운 감독은 오정세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따뜻함이 느껴지고, 사람이 느껴지게 만드는 배우.” 하지만 오정세는 이제까지 함께 작업한 감독과 스태프에게서 그런 온기를 얻었다. “최근에 친한 감독님이 가장 힘들게 작업한 배우 얘기를 꺼내셨어요. 욕이라도 하시려는 건가 싶었는데 좋은 시나리오로 다시 만나서 그때의 관계를 매듭짓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다음을 가늠하는 그 마음이 어쩐지 뭉클했어요. 다시 만날 거란 걸 믿는 사람들이 한국 영화를 지금껏 지탱해온 것 같아요.”
지난여름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처음으로 <거미집>을 봤을 때 그의 마음속은 온갖 감정으로 요동쳤다. 과거에 대한 향수, 이제까지 만난 스태프에 대한 고마움, 새로운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온통 한국 배우만 나와서 1970년대 한국 이야기를 하는데도 어떤 부분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어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구나, 하는 믿음이 커졌죠.” 연기 인생을 1부터 10까지라고 한다면 오정세는 지금 자신이 3 정도의 지점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5에서 그만둘 수도 있죠(웃음). 잘 가다가 타의에 의해서 6에서 그만둘 수도 있고요. ‘벌써 100편이나 했네?’라는 생각보다는 항상 처음인 것 같아요. 아직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요.” 여전히 순수하고 순박한 얼굴에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설렘이 잔뜩 서려 있다. 언제나 산뜻한 오정세의 향취가 서서히 그러나 선명한 잔상으로 남는다. 류가영 <보그> 피처 에디터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전여빈
저마다 분주하던 화보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촬영 준비를 마친 배우의 등장과 함께 숨을 고른다. 컷이 전환되고 새로운 시퀀스로 들어가듯 현장의 공기가 변한다. 각기 달리 향하던 시선이 한곳으로 수렴되는 가운데, 고요하게 호흡하는 전여빈이 거기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낯설 때가 있지만 세트와 조명을 통해 전해지는 무드가 있고, 어느 정도 환경이 갖춰진 화보 현장에서 스틸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낯설지 않아요.” 방금 막 전여빈이 마치고 올라온 화보 촬영은 레트로 필름 룩 컨셉이라고 했다. 전여빈은 <거미집>에서 영화사 신성필림의 후계자 신미도를 연기했다. <거미집>은 ‘거미집’이라는 영화 속 영화를 찍는 상황 자체가 주요한 줄기를 이루는 영화다. 한 편의 영화 안에 또 다른 영화가 있는, 액자 구성의 영화는 영화를 사랑하는 배우들의 마음을 쉽게 들뜨게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구성원이 되고 싶어서 배우가 되길 마음먹은 거니까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런 열망이 느껴지는 작품 속에 자리한 캐릭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꿈꿔본 적도 있어요. <그들이 사는 세상> 같은 드라마나 영화 <시네마 천국>, 올해 개봉한 <파벨만스>처럼요. <거미집>이 저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한 거죠.” <거미집>은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걸작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 감독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다. 그러나 김지운 감독이 단순히 웃기고 싶어서 이런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거미집>이 현대 영화에서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1.66:1의 비율을 선택했다는 건 모종의 힌트처럼 보인다. 흑백과 컬러가 교차 편집된다는 사실 역시 1970년대라는 시대성 자체를 두 갈래의 영화적 체험으로 제시하려는 의도를 예감하게 만든다. 오직 영화를 사랑하는 이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 그런 감독의 의도가 배우들에게도 과연 고스란히 전해졌을까.
“감독님께서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이런 비율을 왜 선택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제가 ‘얼빠’예요(웃음).” 배우의 얼굴을 무척 사랑해서 그 비율을 선택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배우를 정말 많이 아끼신다고 느꼈어요. 특별히 말씀을 많이 하시는 편도 아니지만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그냥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전여빈이 연기한 신미도는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수 있다는 김열 감독의 뜻을 지지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여빈은 ‘거미집’의 김열 감독과 <거미집>의 김지운 감독을 동시에 지지하고 신뢰하는 존재인 것이다. “미도를 연기하는 장면마다 생경한 기분이 들었어요. 미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한 자극을 주는 동시에 그 자극을 죄다 흡수해서 스스로를 다시 방어하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그 에너지가 어떻게 폭발할지 도통 계산이 안 되는 친구였어요. 머물러 있거나 안전해 보이면 안 되는 인물이라 신마다 계속 부딪쳐야 했죠. 최대한 틀을 없애려 노력했고, 그만큼 큰 도전이었어요. 생명력이 매 순간 생생하게 터져 나가는 사람이랄까요? 쉽게 형용하기 힘든 추상적인 인상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을 해치지 않고 싶었어요.”
지난 몇 년간 전여빈은 드라마와 영화에 거듭 출연하며 인상적인 보폭을 넓혀왔다. 언제든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활화산을 삼킨 것처럼 과묵한 열연을 펼친 <죄 많은 소녀>(2018)는 전여빈의 잠재력을 알렸고,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는 두 발을 땅에 디딘 듯한 현실적인 당참과 섬세함을 표현한 한편 <빈센조>에서는 만화 캐릭터 같은 과장된 연기 톤으로 에너지바 같은 효과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나나와 함께 기묘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준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에서는 생동감 있는 연기력으로 기이한 미스터리를 현실적으로 위장하는 주요한 역할을 해낸다.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게 만드는 기질이 돋보이지만 끝내 작품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기여도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전여빈은 매번 여지없이 탁월했다.
“단 한 번도 연기가 쉬운 적은 없었어요. 현장에서 애쓰고 노력하는 건 저에게 늘 당연한 일이에요. 이런 말이 좀 웃기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연기할 때 포기를 잘 못해요. 언젠가 경력이 좀 더 쌓이면 다 내려놓고 연기해보고 싶긴 하지만요.”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겸손과 겸양이 몸에 밴 자의 입버릇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말끝에 걸린 어떤 간절함이 나를 붙잡았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향한 기도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쩌면 전여빈이 꿈과 삶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불안한 시간을 지나온 절실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정적으로 이입한 탓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약속을 해야 했어요. 그렇게 부유한 환경에서 사는 것도 아니었고, 서른이 되도록 밥벌이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아하는 연기라도 결국 그만둬야 한다고 마음먹었죠. 그때는 잘할 수 있는 것과 꿈꾸는 것이 다르다는 걸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다짐이었어요. 한편으로는 그만큼 절실했던 거예요. 10년 동안 배우를 꿈꿔왔는데 솔직히 포기할 엄두가 도저히 안 났거든요. 도저히 포기가 안 된다면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죠.” 서른이 되기 전까지 배우로서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하면 그만두겠다는 다짐을 했던 전여빈의 과거는 다행히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그 시절을 버티며 전여빈을 계속 꿈꾸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말하면 제 의지가 소용없었던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운이 좋다고 여겨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비롯한 어떤 운이 저에게 분명한 도움을 줘서 지금까지 저를 지켜줬다고 느끼죠. 그 도움을 배반하지 않도록 자신을 놓지 않고 스스로 꼭 붙들어왔고요.” 그렇다면 배우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해소된 지금, 전여빈에게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배우가 되기 전, 전여빈은 연극 무대 스태프로 활동한 적 있다. 나름 조연출 B라는 그럴듯한 직책을 달고 있었지만 온갖 잡일을 도맡는 역할이었다. 음향이나 조명, 무대 소품은 물론 매표까지 담당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배움의 기회라 믿으며 자진해서 스태프 경험을 해봤어요. 배우로만 연기를 바라보지 않고 무대에서 벗어나 무대 밖에 있는 동료들의 시선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 이전에 전여빈은 어떤 배우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자유롭고 싶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연기를 했기 때문에 남의 평가에 얽매이고 싶진 않아요. 물론 남들을 무시하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누군가 저를 평가할 수도 있고, 정의할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존중해야겠지만 제 기준에 따라 자유롭게 흘러가고 싶어요.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장하고 표현하며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어서 배우가 된 거니까요.” 직업인으로서 배우의 길을 선택했고, 이를 통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바람은 당연한 것이지만 비단 그것이 배우 전여빈이 헤아리는 삶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꿈을 이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꿈. 전여빈은 아직도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 배우다. 결국 그 길에서 만나고 싶은 삶에 다다를 것이다.
“최근에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내가 삶에서 기대하는 것이 있듯 삶 또한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 어떤 책에 나온 문장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훅 마음에 남더라고요. 어쩌면 이런 삶 자체가 나라는 유기체에게 바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제발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꿈꾸고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그런 소망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살아갈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이 바라는 길을 가리키며 살아온 사람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전여빈은 그걸 잘 알고 있다. 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
내향과 운명 너머로, 정수정
“저는 아이 같아요. 완전.” 어린아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란 바로 MBTI에서 내향성을 의미하는 알파벳 ‘I’를 지칭한 것이다. 이 말의 주인은 크리스탈 그리고 정수정, 그러니까 무대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K-팝 아티스트 출신 배우가 자신이 내향적인 성향이라 고백했다는 말이다. ‘언블리버블.’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타고난 운명이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런 운명을 부추기고 내버려두지 않는 세상의 권유와 관심이 그들을 조명받는 삶으로 밀어 올린다. 정수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의 지금은 스스로 쫓아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따라가며 다다른 결과다.
“어릴 때는 엄마가 하라고 해서 아동 모델 일도 해보고, 언니가 연습생이 돼서 연습실에 몇 번 따라갔다가 회사 권유로 연습생이 됐고, 그렇게 물 흐르듯 데뷔하게 됐죠. 그렇게 데뷔하고 나니까 작은 목표가 하나씩 생겼어요. 연기도 회사에서 시트콤(<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한번 해보자고 권해서 시작한 거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은 반짝이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렇게 예정된 자리로 향하는 법이다.
“원래 가수나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고, 제 선택으로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도 않아요.” 아이돌 가수가 돼서 무대에 올랐고, 배우가 돼서 연기를 한다. 주목을 받고, 눈길을 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삶을 의지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다 보니 재미도 느끼고, 욕심도 따라오면서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깨닫게 됐어요.” 그렇게 정수정은 내향적인 성향과 외향적인 운명이 맞물린 삶을 따라갔다. 마냥 끌려온 건 아니었다.
정수정이 <거미집>에서 연기한 한유림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야말로 설상가상의 존재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병행하는 바쁜 스케줄에 감독의 갑작스러운 재촬영 요구가 당혹스럽기만 하다. “겉으로만 보면 뭔가 제멋대로 굴고 너무 징징거린다고 느낄 수 있는 캐릭터지만 자기 일에 책임감이 상당해요. 할 말 다 하면서 끝내 다 해내는 타입이죠. 밉지만은 않은 인물이라 생각해요.” 정수정이 연기한 한유림은 당대의 새로운 별이다. 말 그대로 라이징 스타. 정수정은 <거미집>을 촬영하면서 한유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라이징 스타의 기분에 공감할 수 있는 스타이기 때문에? 아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수정은 <거미집>을 촬영하는 동안 드라마 <크레이지 러브>에 출연하고 있었다. 한유림처럼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병행하는 입장이었기에 현장에서 ‘드라마 찍으러 갈게요’라는 말을 실제로 해야 했고, 그때마다 한유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물론 김지운 감독이 이끄는 <거미집> 촬영 현장은 영화 속 ‘거미집’ 촬영 현장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너무 긴장했어요. 저처럼 내향적인 사람 입장에서는 김지운 감독님 작품에, 대선배님들과 함께하는 현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긴장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과 함께 오래 작업해온 스태프들이 알아서 착착 움직이는 분위기라 그런지 현장이 너무 편안해서 긴장감을 느끼지 않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선배님들도 장난기가 많으시고, 맨날 모니터 뒤에서 간식 먹으면서 수다 떨고, 그렇게 처음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한 팀이 된 느낌? 정말 신기했어요.”
정수정에게 <거미집>은 저예산 독립영화로 분류된 전작 <애비규환>(2020)에 이은 또 하나의 장편영화이자 상업영화다. 몇 편의 드라마를 통해 배우로서 자질을 증명한 그녀에게 <애비규환>은 작품 한 편을 온전히 끌고 갈 수 있다는 구력을 인정받게 만들어준 성과였다. 주요 영화 시상식 여우신인상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거미집>은 더 많은 관객을 만날 너른 기회이자 매력과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들과 앙상블을 이룰 새로운 무대였다.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등의 이름들은 처음 방문한 칸영화제에서 완성된 <거미집>을 처음으로 감상하며 되새긴 첫 번째 의미였다. “막상 영화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보는 게 부끄러워서 숨고 싶기도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 영화의 한 부분이 됐다는 것 자체가 진짜 좋았어요. 내가 이런 배우들과 함께 한 작품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 그게 제일 큰 의미로 남을 거예요.”
영화 <거미집>에서 펼쳐지는 상황과 마찬가지로 감독이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어야 한다고 할 때 정수정의 반응은 당연히 ‘오케이’다. “사실 유림이를 연기하면서 ‘얘는 뭘 이렇게까지 싫어할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거든요. 물론 자기를 속이고 촬영을 재개하니까 뒤통수 맞은 기분도 들고, 배신감도 느낄 수 있겠죠. 그런데 실제로 저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럼 해야죠. 걸작을 만든다는데.” 이는 영화 속 감독이 아닌 현실의 감독, 바로 김지운 감독에 대한 신뢰가 반영된 답변일 것이다. “오케이면 오케이. 다시 해야 되면 다시, 그게 그저 좋았어요. 원하시는 것도, 저에게서 끌어내고 싶은 것도 정확하고 확실하셔서 항상 감독님을 믿고 연기했죠.”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이겨내야 하는 ‘멘붕’의 순간도 있었다. “처음 감독님과 대본 리딩을 할 때 1970년대 말투로 연기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옛날 성우들이 말하는 것처럼 호흡이 좀 더 과하게 섞여야 하고, 옛날 서울 사투리 같은 말투라고 하더라고요. 완전 ‘멘붕’이었죠. 대사 한 줄이라도 좋으니 하고 싶다고 했지만 제대로 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말투를 구사할 줄 아는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받고, 호흡법도 전수받았어요.”
‘배우는 배우는 직업’이라는 말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배우가 자신과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그 시대의 공기를 관객에게 전하는 매개로서 온전히 살아내야 하는 사명감을 갖게 만든다. 직접 접해본 적 없는 1970년대 말투는 예상치 못한 직분을 깨닫게 만드는 과제였다. 하지만 그게 허들이 된 것만은 아니었다. 197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은 정수정을 사로잡은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몇 페이지만 읽었는데 ‘이 작품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후루룩 읽었어요. 심지어 제 역할이 정해지지도 않은 시점에서요. 영화 속 영화라는 설정도 특이한데 1970년대 시대 배경부터 모든 것이 다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편인데 그 시절에 관한 레퍼런스를 찾아보면서 카트린 드뇌브나 트위기 같은 당대의 대배우나 모델로부터 시각적 영감도 얻었고요. 그런 모든 과정이 다 재미있었어요. 언제 제가 1970년대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해보고, 그 시대의 말투를 구사하는 연기를 해보겠어요.”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하고 싶다는 마음 그 자체일 것이다. 정수정은 결국 그 마음 덕분에 가수와 배우로 살아왔다. “김지운 감독님을 비롯해 이제껏 저에게 역할을 맡겨준 모든 분에게도 제가 해낼 거라는 믿음이 어느 정도는 있었을 거예요.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만큼 그런 믿음으로 작업을 제안하시는 분들을 믿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정수정은 지금 배우로 살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인생은 일대일로 대응하는 함수가 아니다. 장담할 수 없는 미지수다. “나중에 제가 또 뭘 하게 될지,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 늘 새롭게 받아들여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이게 내 길이라고 확신하거나 장담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면 너무 힘들 거 같아요.” 내향적인 정수정이 운명을 딛고 배우로 우뚝 선다. 이끌려 닿은 무대지만 늘 새롭게, 끝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 (VK)
- 포토그래퍼
- 김신애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 김미진
- 스타일리스트
- 김나현(송강호, 오정세), 윤지빈(정수정), 박세준(전여빈)
- 헤어
- 이에녹(송강호, 오정세), 손혜진(전여빈), 김선희(정수정)
- 메이크업
- 이지영(송강호, 오정세), 이숙경(전여빈), 최시노(정수정)
- 세트
- 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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