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달콤한 제안, 밀라노 패션 위크 2024 S/S
요즘 패션 디자이너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디자이너와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7,000여 명의 인파에 폭우가 쏟아지는 야외에서 레이브 파티를 연 디젤의 글렌 마르탱은 훌륭한 콘텐츠를 선보인 셈입니다. 반면 칼 라거펠트의 흔적을 찾아 여성의 현실적인 고민에 답한 펜디의 킴 존스는 잘 만든 옷과 가방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습니다. 이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6일간 밀라노에서 내년 봄여름을 위한 컬렉션을 선보인 디자이너 가운데 좀 더 눈길이 간 건 누구였을까요?
조용한 럭셔리의 법칙을 따른 페라가모와 토즈, 질 샌더의 컬렉션은 당장 입고 싶을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복고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막스마라와 톰 포드, 돌체앤가바나는 브랜드가 지닌 정체성에 몰두했습니다. 구찌의 새로운 주인공 사바토 데 사르노는 소란스러운 모든 것을 걷어내려는 듯 매끈한 옷을 완성했습니다. 반면에 디자이너 없이 40주년 파티를 벌인 모스키노와 밀라노 어느 골목에서 쇼를 펼친 아티코는 인스타그램 릴스의 완벽한 배경이 되어주었습니다. 블루마린의 천사 날개는 틱톡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했고요.
물론 훌륭한 옷으로 마음을 빼앗는 콘텐츠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인 미사여구 대신 옷으로만 이야기했다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의 프라다가 바로 그 증거죠. 일상적인 옷 위에 은빛 프린지를 더하고, 섬세한 실크 드레스 위에 농장에서 입을 법한 캔버스 재킷을 덧입히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뛰어난 옷이자 콘텐츠입니다. 핑크빛 쇼장에 쏟아지는 슬라임보다 우리를 더 매혹한 것은 그 위를 걷는 라임과 오렌지 컬러의 키튼 힐이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만듦새의 옷과 세상을 유영하는 환상을 동시에 선보인 마티유 블라지의 보테가 베네타도 옷이 곧 콘텐츠임을 증명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 2024년 봄여름을 위한 밀라노 컬렉션은 우리에게 훌륭한 볼거리를 선사했습니다. 보테가 베네타 쇼가 끝날 무렵 들려온 노래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Let’s go somewhere.” 멋진 옷을 입고 어딘가로 떠날 우리를 위한 밀라노의 제안은 더없이 달콤합니다.
2024 S/S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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