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루 의상의 온전한 힘
최근 들어 상상을 초월한 패션이 등장하고 있다. 정숙함(혹은 노출)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시스루 드레스의 트렌드를 피해 갈 수는 없다. 가슴과 배꼽, 끈 팬티를 거의 그대로 노출하는 이 스타일이 그래미 시상식에서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모든 레드 카펫을 수놓고 있기 때문이다. 프라다의 1997년 S/S 컬렉션을 소환한 헌터 샤퍼와 <아이디 매거진>에서 케이트 모스를 오마주한 릴리 로즈 뎁 등 1990년대생 라이벌들이 최근 들어 이 트렌드의 소생을 부추기고 있지만, 사실 시스루 의상은 수 세기 동안 놀라움을 자아냈다.
작가 미상의 신비스러운 18세기 회화 작품 ‘흰옷 입은 젊은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Woman in White)’은 오테사 모시페그(Ottessa Moshfegh)의 <내 휴식과 이완의 해(My Year of Rest and Relaxation)> 표지로 사용되면서 문화적 관심을 끌어모았다. 여인의 가슴이 얇은 천을 통해 비쳐 그대로 보이는 모습을 묘사한 이 그림은 19세기에 접어들 때쯤 프랑스 창녀들이 즐겨 찾는 복식의 상징이 되었다. 작가 루이 세바스티앙 메르시에(Louis-Sébastien Mercier)는 이를 ‘저질 스타일’이라 부르며, 보는 사람이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지만, 비밀스러운 매력을 인지하게 해주었다고 썼다.
시스루 의상은 프랑스혁명 이후 계속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13년 아주 얇은, 이른바 엑스레이 스커트와 드레스가 어찌나 격분을 샀는지, 오리건주 포틀랜드 시장이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을 향해 체포 명령을 내릴 정도였고, <오리건 일간지(The Oregon Daily Journal)>는 ‘엑스레이 스커트가 대부호의 본고장을 망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른 살의 버사 한스컴(Bertha Hanscom)은 패션 문제에서 비롯된 자신의 이혼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제 남편은 고리타분한 사람입니다. 엑스레이 스커트는 딱 제 스타일이고요. 저는 그 옷들을 입을 거예요. 남편은 싫어하겠지만, 신경 쓰지 않을 거고요. 이혼할 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 사람이 놀라 자빠지게 될 테니까요.” 그녀의 남편인 60세의 제임스는 당시 일간지 인터뷰에서 아연실색해서는 “버사는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스커트뿐 아니라 살이 다 보일 정도로 트인 치마도 입었습니다“라 답하기도 했다.
무성영화 시대 배우로 활약한 클래라 보(Clara Bow)는 1925년 작품 <변덕스러운 여인(My Lady of Whims)>에서 전신을 노출하는 충격적인 드레스 덕분에 섹스 심벌의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보가 맡은 프루던스 세번(Prudence Severn)이라는 인물은 ‘적게 입고, 편하도록 만든 옷‘이 드레스 코드였던 가장무도회에 초대받은 후, 그 메시지를 말 그대로 이해하고 거의 입지 않은 듯한 드레스를 착용함으로써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연예 산업이 헤이스 코드(Hays Code)라는 자율 검열 가이드라인을 채택하기 전, 대형 스크린에 진출한 그 드레스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봐도 충격적이었다.
1962년 마릴린 먼로의 ‘대통령님, 생일 축하합니다(Happy Birthday, Mr. President)’ 드레스는 시스루 의상에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게 만들었고, 제인 버킨과 셰어 같은 스타들은 1960~1980년대까지 논쟁적인 이 룩에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렇지만 진정한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였다. 그런지 정신과 잘 어울리는 시스루는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사랑받았다. 알라이아, 존 갈리아노, 장 폴 고티에, 프라다, 그리고 아틀리에 베르사체가 런웨이에서 이 트렌드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을 선보였다. 1990년대에 시스루가 일반화되었음에도 이 대담한 룩은 향후 10년에 걸쳐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것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1998년 로즈 맥고언(Rose McGowan)은 MTV VMA에 레오파드 무늬 끈 팬티 위에 비즈 장식이 달린 작은 쇠사슬 같은 드레스를 착용해 주목받는다. 수십 년 후 그녀는 이날이 1997년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처음으로 레드 카펫을 밟은 날이었다고 밝혔다. 2018년 <닥터 오즈 쇼>에 출연한 그녀가 “성폭행당한 후 처음으로 나서는 공개 석상이었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녀는 “(하비 와인스타인을 향해) ‘당신이 원하는 게 이런 거야?’라는 뜻을 밝힌 거죠. 정치적 발언이 담겨 있는 의상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둘러싼 관심은 문화를 바꿀 수도 있다. 2000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제니퍼 로페즈가 입은 살이 엷게 비치는 상징적인 녹색 베르사체 드레스는 엄청난 인터넷 검색을 야기했다. 이는 구글 이미지 검색창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
크리스챤 디올과 끌로에 같은 브랜드들 덕분에 시스루는 2008년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4년 리한나가 올해의 CFDA에 등장했을 때 충격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녀는 누드 끈 팬티 위에 속이 훤히 비치는 애덤 셀만(Adam Selman)의 드레스를 입고 스톨로 중요 부위만 가린 채 나타나 패션 아이콘상을 수상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리한나는 비판을 무시하고 임파워먼트를 독려하며, 시스루 트렌드의 완벽한 홍보 대사가 되었다. 곧 다른 유명인들도 이에 합세했다. 비욘세가 보석으로 장식한 지방시 앙상블을 입고 2015년 멧 갈라에 참석하며 노출 드레스 트렌드를 인정했고, 켄달 제너와 벨라 하디드는 2017년 멧 갈라에서 자신들만의 해석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시스루 트렌드는 2022년 전력을 다해 귀환했다. 그 인기는 시들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컬렉션에서 샤넬, 넨시 도자카, 프라다, 페라가모, 디온 리, 로다테, 에밀리아 윅스테드, 헤론 프레스톤, 릭 오웬스, 라콴 스미스, 와이/프로젝트를 비롯한 많은 브랜드들이 시스루를 컬렉션에 포함시켰다.
게다가 대담한 선택이 런웨이에서만 인기 절정인 것은 아니다. 시아라, 자넬 모네,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애슐리 그레이엄, 줄리아 가너, 데이지 에드거 존스, 엠마 체임벌린,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베니티 페어 오스카 파티를 위해 속이 비치는 드레스를 선택했다. 심지어 남성들도 이 트렌드에 동참했다. 오스틴 버틀러와 숀 멘데스 모두 다채로운 시스루 스타일을 선보였던 것이다. 켄달 제너, 카일리 제너, 헤일리 비버 등은 타이츠를 바지처럼 착용함으로써 룩에 더 많은 시선을 끌어모았다.
이처럼 시스루는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선정성 때문에 독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플로렌스 퓨가 투명 핫 핑크 드레스를 입고 발렌티노 2022 F/W 오뜨 꾸뛰르에 참석했을 때, 그녀를 향해 거센 공격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플로렌스 퓨는 시스루 드레스에 깃든 두려움 없는 정신으로 반격에 나섰다. ‘사람들이 내 몸이 핫하거나 성적으로 매력적인 것에 관한 평가로 달라지기를 기대할 때마다 ‘닥쳐! 꺼져!’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패션계에서 늘 해야 했던 일이다’라는 글을 게재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시스루 의상의 지평이 넓어지는 듯하다. 브랜드들은 오랫동안 가슴을 노출시킨 모델들을 런웨이에 세웠다. 그런데 요즘은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까지 노출을 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아마도 그것은 일부 정부가 지향하는 여성 신체에 대한 청교도적 제한에 대한 문화적 반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체 노출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시스루는 어떻게 착용하든 섹시하고, 파괴적이며, 강력하다. <보그>가 호기심 있는 독자들이 영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가장 멋진 시스루 패션을 모아보았다.
‘흰옷 입은 젊은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Woman in White)’, 1798년
1798년 추정, 미상의 화가가 그린 ‘흰옷 입은 젊은 여인의 초상’은 얇은 천 아래 가슴이 훤히 보이는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
클래라 보, 1925년
클래라 보가 출연한 1925년 작품 <변덕스러운 여인(My Lady of Whims)>에서 그녀의 연기는 충격을 자아낸 드레스만큼이나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릴린 먼로, 1962년
‘진 루이스(Jean Louis)’ 드레스를 입은 마릴린 먼로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위해 기억에 남을 만한 ‘해피 버스데이’ 축가를 불렀다.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1969년
제인 버킨이 착용한 대담한 드레스가 1969년 작품 <슬로건(Slogan)> 시사회에서 그녀와 함께 공연한 배우이자 파트너 세르주 갱스부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셰어와 밥 맥키, 1974년
1974년 멧 갈라에서 밥 맥키 드레스를 입은 셰어가 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녀는 영화 <문스트럭(Moonstruck)>으로 여우 주연상을 받은 198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또 다른 시스루 맥키 드레스를 입었다.
케이트 모스, 1993년
케이트 모스는 1993년 올해의 엘리트 룩 콘테스트(Elite Look of the Year Contest)에서 1990년대 시스루 열광에 불을 지폈다. 그녀는 2022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다.
제니퍼 로페즈, 2000년
제니퍼 로페즈가 2000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입은 목선이 깊이 파인 정글 프린트 베르사체 드레스가 구글 이미지 검색 기능 탄생에 영감을 주었다.
리한나, 2014년
리한나는 2014년 CFDA에서 패션 아이콘 어워드 수상에 제격인 의상을 착용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드레스에 잘 어울리는 화려한 끈 팬티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다.
플로렌스 퓨, 2022년
플로렌스 퓨의 투명 드레스가 발렌티노 꾸뛰르 패션쇼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왜 여러분은 가슴을 그렇게 두려워하죠?’라는 글을 게재했다.
팔로마 엘세서, 2022년
팔로마 엘세서가 2022년 BFC 패션 어워즈에서 올해의 모델상 후보에 오른 것을 자신의 스타일을 통해 축하했다.
리타 오라, 2022년
리타 오라는 넨시 도자카의 2023년 S/S 컬렉션부터 이 브랜드가 선보이는 수많은 시스루 의상의 모델로 서고 있다.
조 샐다나, 2023년
조 샐다나는 2023년 베니티 페어 오스카 파티에서 까르띠에의 트레사주 케이프(Tressage Cape)를 처음 선보였다. 이 놀라운 작품은 금 가닥 6,700개와 다이아몬드 150개를 가지고 수작업으로 완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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