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럭셔리의 귀환
실용성과 편안함을 내세우기 바쁜 패션계에서 정반대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조금은 성가시지만 이상하게 탐이 나더군요.
외출할 때 한 손은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오버사이즈 클러치가 그 주인공입니다. 조짐은 계속 있었습니다. 우리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2023 S/S 루이 비통의 XXXL 사이즈 클러치부터 손으로 가방을 드는 방법이 이토록 다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2023 F/W 시즌을 지나왔으니까요. 이번 2024 S/S 시즌에는 한층 더 ‘불편한’ 형태로 돌아왔어요.
빅 백 트렌드까지 결합한 듯, 결코 작지 않은 사이즈의 클러치가 런웨이 곳곳에서 천연덕스럽게 모습을 드러냈죠. 엄연히 핸들이 있는 백을 끌어안은 스타일링은 말하기도 입 아플 정도로 자주 등장했고요.
알다시피 클러치는 부와 럭셔리의 상징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클러치의 모습이 태어난 1920~1930년대에는 영화배우를 비롯한 사교계 명사들의 필수 액세서리였죠. 사이즈는 기껏해야 담뱃갑보다 살짝 큰 정도였습니다. 고가의 보석으로 정교하게 뒤덮은 디자인이 많았고요. 수납보다는 장식으로서의 기능이 더 강했다는 걸 알 수 있죠. 무엇보다 클러치는 옷매무새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어깨에 메거나 몸통을 가로지르지 않으니, 의도했던 옷 본연의 실루엣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죠.
전쟁을 비롯한 역사적 순간을 거치며 클러치는 일상적인 패션 아이템 중 하나로 스며들었습니다. 하지만 상징성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어요. 클러치를 손에 들고 나간다는 건, 바삐 손을 움직이며 걷거나 먼저 악수를 건네야 할 일이 없다는 것과 같죠. 여유롭고 권위 있는 태도, 그 자체를 의미해왔습니다.
한껏 몸집을 키워 돌아온 클러치의 귀환이 흥미로운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는 오페라 글러브나 립스틱 정도만 챙기면 되었던 그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클러치 고유의 럭셔리함은 그대로지만 현대 여성의 맞춤형 사이즈로 거듭난 것이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선연히 보이는 디테일을 보니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급급했던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를 장난스럽게 놀리는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드는 것만으로 새로운 경험일 겁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걷는 대신 필요한 것이 모두 담긴 클러치를 손에 꼭 그러쥔 채 고고한 자태로 세상을 걸어보세요. 그 불편함이 또 다른 감각을 열어줄 겁니다. 물론 그 무게는 오롯이 우리의 손이 감당해야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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