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예술을 사랑하는 법
장식 예술과 올로제리의 오랜 관계는 현대미술가, 스트리트 아티스트와 함께 시계 디자인의 미학적 경계를 넓히며 진정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에나멜링 기법의 발전으로 시계 다이얼에 위대한 작품을 그려 넣을 수 있게 된 17세기에는 장식이 시계 제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리베르소(Reverso)’의 케이스백에서 가쓰시카 호쿠사이(Hokusai Katsushika)의 작품 ‘기소지 끝에 있는 아미다 폭포(The Amida Falls in the Far Reaches of the Kisokaido Road)’의 폭포를 재현한 예거 르쿨트르 장인들의 뛰어난 정밀도를 확인할 수 있다.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전문가와 달리, 비주얼 아티스트는 오랫동안 ‘시간’에 매력을 느껴왔음에도 현대에 들어서야 시계를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시계는 아니지만,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해골과 시든 꽃을 그려서 시간의 흐름, 덧없는 삶과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표현했다. 몇 세기가 지나서야 데미안 허스트가 ‘아름다운 해바라기(Beautiful Sunflower)’라는 제목의 스핀 페인팅 캔버스에 버려진 파네라이 시계 다이얼을 뿌리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쳤다. 허스트는 “이 그림을 보고 우리는 오랜 시간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길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예술가의 이름은 1960년경 이름의 철자 12개를 인덱스로 사용한 마이클 Z. 버거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를 통해 처음 시계에 등장했다. 이후 살바도르 달리는 루이 14세의 루이 도르(Louis d’Or) 금화를 본떠 콧수염 난 자신의 옆모습과 서명이 담긴 ‘달리 도르(Dalí d’Or)’ 금화를 주조했고, 이것은 1967년 피아제가 ‘달리 도르’ 시계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었다.
1970년대 쿼츠 파동 이후, 실용적인 시계가 예술적 가치를 거의 제공하지 않던 시기에 스와치의 공동 창립자인 전 회장 니콜라스 하이에크(Nicolas Hayek)는 플라스틱 쿼츠 무브먼트 시계에 예술을 접목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나중에 ‘스와치 & 아트’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1985년에 탄생한 ‘스와치 아트 스페셜’은 유명 아티스트와 한정판 작품을 제작했다. 첫 번째는 140피스만 제작된 ‘키키 피카소 크리스티앙 샤피롱 스와치(Kiki Picasso Christian Chapiron Swatch)’로, 다이얼마다 독특한 색 조합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 다음 스와치는 뉴욕 스트리트 아티스트 키스 해링을 선정해 엉켜 있는 사람들, 십자가, 개 그림을 1986년 출시된 모델로 옮겼다. 그리고 2018년 미키 마우스의 아흔 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키스 해링 재단과 협업한 키스 해링 사후 시리즈와 허스트 콜라보레이션, 총 두 개의 아티스트 워치를 제작했다. 스와치와 미술관의 협업으로 오래전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작품도 세상 밖으로 나왔다. 뉴욕 현대미술관과 협업한 2021년 시리즈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앙리 루소의 ‘꿈’이 포함되었다.
이번에는 모바도가 앤디 워홀과 새로운 아티스트 협업을 시작했다. 1988년에 250피스 한정으로 제작된 아티스트 시리즈 ‘타임스 5’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연결된 다섯 개의 시계에 쿼츠 무브먼트와 다이얼이 탑재되어 있다. ‘반복적 이미지’라는 앤디 워홀의 특징이 떠오르는 디자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술은 예술가와 시계 브랜드를 한데 모아주었다. 일부 브랜드는 문화 활동을 적극 지원하면서도 예술가와의 협업 제품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까르띠에는 미술 재단을 보유했고, 오데마 피게는 후원 프로그램을 보유했다). 위블로 같은 다른 브랜드는 컨템퍼러리 아트와 시계 제작의 완벽한 융합을 실천했다.
위블로는 2012년에 설립된 ‘위블로 러브스 아트(Hublot Loves Art) 이니셔티브’를 통해 웨민쥔(Yue Minjun),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카를로스 크루스 디에스(Carlos Cruz-Diez), 리샤르 올린스키(Richard Orlinski),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 막심 플레시아 뷔히(Maxime Plescia-Buchi)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클래식 퓨전에 예술가적 비전을 불어넣었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타투 아티스트 플레시아 뷔히 같은 일부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파격적이지만 참신했다. 플레시아 뷔히는 “20대의 젊은 세대와 연결되는 시계를 만드는 데는 배짱과 비전이 필요해요”라고 말한다. ‘올 블랙’과 ‘사파이어 레인보우’ 두 가지 클래식 퓨전 모델로 처음 출시된 무라카미 다카시 협업은 좋은 반응을 얻어 여러 모델로 확장되었다.
올해 위블로는 미국인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과 협업 제품을 출시했다. “작업 과정은 종종 지저분하고 무질서하죠. 하지만 가상의 고고학처럼 현대 사물을 미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제 작품은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라고 아샴은 말한다.
오뜨 올로제리는 컨템퍼러리 아트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2014년 그뢰벨 포지(Greubel Forsey)는 영국 아티스트 윌러드 위건(Willard Wigan)의 배 미세 조각품 ‘아트 피스 1’을 내부에 넣었다. 조각품은 크라운에 있는 돋보기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불가리는 첨단 기술과 세계에서 가장 섬세한 예술가의 미학을 결합해 걸작과 실용품 간의 경계를 지우는 클래식 모델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중국 수묵화가 사이몬 마(Simon Ma)와의 협업으로 13피스 한정 제작한 ‘옥토 피니씨모’ 시리즈는 중국의 안목 있는 수집가에게만 판매되었다.
역설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스트리트 아트의 무질서한 재치는 엄격한 올로제리 세계에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2016년에 리차드 밀이 그래피티 아티스트 시릴 콩고(Cyril Kongo)와 협업해 30피스 한정으로 제작한 RM 68-01 시리즈가 이를 증명했다. 시릴 콩고는 미니어처 툴로 제품의 무브먼트에 미세한 그림을 작업했다. 제니스 또한 최근에 아르헨티나 출신 아티스트 펠리페 판토네(Felipe Pantone)와 성공적으로 협업해 ‘데피 21’과 ‘데피 익스트림 펠리페 판토네’ 에디션을 100피스 완판했다.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아트 바젤 페어에서는 코럼(Corum)이 엘리자베터 팬톤(Elisabetta Fantone)과 ‘버블 모나리자’를 선보였고, 알렉 모노폴리(Alec Monopoly)와 함께한 태그호이어의 ‘커넥티드 모듈러 45’가 모노폴리의 스프레이 페인팅 밴드 300개와 함께 출시되었다. 그 후 모노폴리는 ‘포뮬러 1’ 스페셜 에디션과 ‘까레라 호이어 01’을 디자인했다. 지난해에는 제이콥앤코와 팀을 이뤄 자신의 카툰 캐릭터를 미니어처 조각품으로 만들어 다이얼에 올린 ‘아스트로노미아’ 9피스를 디자인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장이 일부 주춤하긴 했지만, 디지털 아트와 NFT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제이콥앤코 CEO 벤자민 아라보브(Benjamin Arabov)는 지난해 세계 최초의 시계 NFT를 판매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계 NFT는 시계 브랜드가 물질적 제약에서 벗어나 창의력의 한계를 뛰어넘게 했습니다.”
많은 브랜드가 이제 컨셉추얼 아트에 도전하며 물리적 시계 모델을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또는 블록체인 기반 예술과 결합해 출시한다. 위블로는 무라카미가 디자인한 NFT와 시계 컬렉션 13피스를 올해 워치스 앤 워더스에 출시했다. 파네라이는 이탈리아 아티스트 스키골페(Skygolpe)와 팀을 이루어 NFT와 ‘라디오미르 에일린 익스피리언스 에디션’을 결합했다. 루이 비통의 ‘커넥티드 땅부르’는 시계 디지털 페이스에 쿠사마 야요이의 폴카 도트가 들어갔다. 하인리히 모저앤씨(H. Moser & Cie)는 ‘세콩드세콩드(Seconde/Seconde/)’로 알려진 로마리크 앙드레(Romaric André)를 선정해 지우개 이모지가 들어간 ‘인데버 센터 세컨즈 컨셉’ 다이얼의 핸즈를 교체했다.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NFT가 시계 시장의 새로운 거래 통화가 될까? “위블로는 독특한 예술 작품을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는 특권을 수집가에게 제공합니다.” 위블로 CEO 리카르도 과달루페(Ricardo Guadalupe)가 말한다. “위블로는 예술을 사랑하니까요!” (VK)
- 글
- Nazanin Lankar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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