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순도 높은 솔직함, 디자이너 장 투이투
1987년에 창립된 브랜드가 2023년에도 초기의 철학을 지킬 수 있을까.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에서조차 10년을 버티기 힘든 요즘, 아페쎄와 장 투이투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이어가고 있다. 장 투이투는 지금도 소란스러운 것을 모두 걷어내고 기본에 충실한 옷을 만들어낸다. 좋은 실과 원단이라는, 단단한 기초 위에 건설된 아페쎄의 모든 행보는 언제나 동시대적일 수밖에 없다. 변하지 않는 본질은 언제나 통용되기 마련이니까. 이 치열한 작업을 36년간 반복해온 장 투이투를 가을밤 서울에서 만났다. 늦은 밤 파티 도중에 만나 지쳤을 법도 한데 그는 음악과 패션, 자신이 사랑하고 싫어하는 것을 시원하게 말해주었다.
이번 여행을 위해 무얼 챙겨 왔는지 궁금하다.
제시카 오그덴과 함께하는 커스터마이징 이벤트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 12현 어쿠스틱 기타를 가져왔다. 곧 도쿄로 이동해 후지와라 히로시, 히데후미 이노와 함께 짧은 영화를 촬영한다.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원 플러스 원(One Plus One)>(1968)에서 영감받은 6곡을 녹음하기 위해 일렉트릭 기타도 2개 챙겼다. 그중 하나는 커스텀 메이드 스트라토캐스터다.
이번 여행 일정은 총 열흘간이다. 긴 기간 해외에 나와 있을 때, 캐리어에 지저분한 옷을 넣고 다니는 게 정말 싫어 매일 빨래를 한다. 재킷 2벌, 바지 7벌, 티셔츠 12장, 그리고 파우치 4개를 가져왔다. 매일 밖에 나가려면 옷이 여러 벌 필요하니까.
여행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어디인가?
요즘은 그렇지 않다. 여행이 상당히 피곤한 일이 됐다. 파리에서 일본까지 가려면 비행기에서만 15시간을 버텨야 한다. 이젠 여행이 조금 지겨워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를 꼽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페쎄는 지금까지 20개가 넘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다. 오늘 파티의 이름 ‘Bam Bam’ 역시 댄스홀 뮤지션 시스터 낸시(Sister Nancy)의 곡에서 따온 것이고.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패션과 음악은 연관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지금도 똑같이 생각한다.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음악은 시, 영감, 그리고 느낌에 관한 것이다. 음악은 혼자 방에서도 만들 수 있지만, 패션에는 언제나 대규모 팀이 필요하다. 물론 나는 패션도 즐기지만, 음악은 전혀 다른 분야의 것이다.
평소 기타 연주를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전 워크숍에서 기타 연주도 했고.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는?
로버트 존슨.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있는데…
그가 악마와 거래했다는 전설 말인가?
(웃음) 난 악마 따위는 믿지 않는다. 내가 죽게 되면 모두에게 ‘악마는 없다’고 문자를 돌릴 생각이다.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아니라, 그가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설명이 더 들어맞겠다. 로버트 존슨처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 지미 헨드릭스도 마찬가지다. 다른 기타리스트와는 다르게, 이 둘의 연주를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페쎄를 제외하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팬츠가 있을까?
지금 입고 있는 팬츠를 좋아한다. 로스앤젤레스 브랜드 RTH 제품이다.
지금까지 아페쎄가 출시한 데님 중 가장 완벽한 피스를 꼽는다면?
우리가 가장 처음에 선보인 오리지널 아페쎄 데님. 컷도 컷이지만 패브릭이 정말 훌륭하다. 히로시마에 오랜 시간 함께한 방직공이 있는데, 아페쎄의 ‘데님 레시피’는 그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프렌치 스타일’이라는 카테고리에 매료된다. 프렌치 스타일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전혀. 하지만 프렌치 컬처는 존재한다. 그 안에 프랑스의 문학과 철학 등이 포함되어 있고. 프렌치 스타일은 허상에 불과하다. 지금 프랑스 사람들은 영국, 일본, 한국 스타일을 모방하기 바쁘다.
요즘 패션 스타일, 혹은 트렌드 중 가장 싫은 것은?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필요한가?(웃음) 사람들은 늘 패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패션계는 ‘핸드백업계’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나는 비싼 백을 경멸한다.
그렇다면 요즘 트렌드 중 흥미로운 것이 있나?
요즘 브랜드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다. 더 로우. 파리 패션 위크 중 내가 유일하게 참석하는 쇼이기도 하다. 더 로우의 수준은 완전히 다르다. 가격대가 비싼 것은 안타깝지만, 스타일과 품질 면에서는 완벽하다.
음악부터 문학, 스케이트 보딩까지, 거의 모든 문화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열네 살 때, 나는 스케이트 보더였다. 이젠 더 이상 보드를 타지 않으니 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말이 맞을지 모르겠다.
40년 가까이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는 역사 선생님이 되려고 했다. 대학교를 마친 후,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날 좋아하도록 노력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후 우연히 겐조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고, 패션계가 어떤 면에서 내게 완벽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과 비즈니스 중간에 위치하니까. 프로덕션을 먼저 배웠고, 나중에 디자인을 배웠다.
역사상 존재했던 한 인물에게 당신의 옷을 입힐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고 싶은가?
천재란 어떤 조언도 필요 없는 사람이다.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그건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이유로 난 스타일리스트, 홈 데커레이터라는 말을 싫어한다. 자기 집을 꾸밀 때 돈을 주고 누군가를 고용해야 하는 수준이라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굳이 꼽자면 마크롱이 생각난다. 핸섬하고 비율도 좋지만, 언론과 기자들 눈치를 보느라 싸구려 수트만 입으니까. 마크롱이 3,000달러짜리 수트를 입고 나타나는 날에는 온갖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질 거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가장 스타일리시한 남자’를 묻는 질문에 언제나 사뮈엘 베케트라고 답한다. 한 명 더 꼽는다면 누구일지 궁금하다.
몇 권의 책을 쓴 작가 입장에서 사뮈엘 베케트를 늘 존경했다. 아일랜드 작가 대부분이 패셔너블하지만, 그중 사뮈엘 베케트가 최고다. 1960년대에 구찌 재키 백을 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인물 중에는 딱히 없다. 내가 존경할 만한 인물도 없고. 조금 가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우러러보는 것은 오직 지성과 문화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언젠가 잊힌다.
브레인데드부터 JW 앤더슨까지,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고인이 된 제인 버킨과 함께 일한 것. 제인은 정말 유쾌하고 박식했다. 카트린 드뇌브도 똑같다. 교양이 넘치고, 자신이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지루함’이 아페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
심플, 그리고 미니멀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지루한 차림을 하는 것이 ‘패션 빅팀’이 되는 것보단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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