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닌의 새로운 기준, 피비 파일로의 첫 컬렉션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 바로 어제, 피비 파일로의 웹사이트가 정식 오픈한 것. 그녀가 셀린느를 떠난 지 5년 만이자 지난 7월 27일, 피비 파일로 웹사이트가 고객 등록을 받은 지 3개월 만이다. 피비의 복귀를 둘러싼 기대감은 패션계에서도 전례 없는 수준이었다. 최근 많은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사임하며, 그 기대감은 부풀어만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비는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실루엣과 이미지가 강렬한 것은 물론, 특유의 요상함과 에로티시즘, 유머가 웨어러블한 방식으로 녹아 있다. 대부분의 모델이 밑을 내려다보는 캠페인 이미지에서 엿볼 수 있듯, 피비는 자신감에 찬 여성들을 그려냈다.
브랜드 본사를 방문하자, 패션을 바라보는 그녀의 ‘여성적 시선’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런던의 한 건물 뒤에 위치한 쇼룸에서는 피비 파일로라는 럭셔리 브랜드가 새로이 탄생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베테랑 디자이너인 피비는 이미 인-하우스 아틀리에를 구축해 파리에서도 최고로 손꼽힐 만한 품질의 옷을 만들어내고 있다. 제품군 역시 다양하다. 테일러드 재킷, 레더 재킷, 코트, 캐주얼한 아이템은 물론 슈즈와 백, 선글라스, 주얼리까지.
피비는 늘 독창적인 실루엣을 선보였고, 옷 입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많은 이들이 피비를 그리워한 것도 그녀만의 스타일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컬렉션(정식 명칭은 컬렉션이 아니다. 그 이유는 차차 설명하겠다)을 통해 피비가 제안하는 스타일은? 동그란 숄더 라인과 팬츠, 그리고 어떤 룩과도 잘 어울릴 하이힐.
그녀가 추천하는 하이힐의 스타일은 매우 구체적이다. 발등을 대부분 가리고, 굽은 높고 와이드하며 실루엣은 클래식하다. 요약하자면, 섹시한 스틸레토 펌프스다.
과장된 실루엣의 숄더 라인은 둥근 곡선이 가장 큰 특징이다. 1980년대의 조르지오 아르마니, 클로드 몬타나를 연상시킨다고 해야 할까? 페플럼 장식의 다크 브라운 레더 재킷과 와이드 팬츠를 입고 비스듬히 서 있는 모델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수많은 파일로-파일(Philo-phile, 피비 파일로의 열렬한 팬층을 일컫는다)이 알고 있듯, 피비 파일로가 가장 ‘잘 만드는’ 아이템은 팬츠다. 이번 컬렉션은 팬츠 뷔페나 다름없다. 앞에서 볼 때는 평범한 듯하지만 지퍼가 뒷면에 달린 색다른 팬츠, 예티를 연상시키는 컬러와 질감, 해체적인 카고 팬츠 같은 ‘특별식’과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을 데님, 레깅스까지 준비되어 있다. 피비는 시크한 룩을 완성할 수 있는, 간편하면서도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재킷에 달린 탈착 가능한 스카프가 완벽한 예시다. 넉넉한 길이 덕에 드레이프는 물론, 뷔스티에처럼 연출할 수도 있다.
물론 이번 ‘컬렉션’은 정식 컬렉션이 아니다. 피비 파일로는 어제 출시된 제품군에 A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A1의 판매는 12월까지 이어지며, A2 판매는 2024년 봄에 시작된다. 브랜드가 컬렉션 대신 채택한 단어는 바로 ‘Edits’. 트렌드를 거부하고, 시즌에 구애받지 않는 옷을 선보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앞으로 모든 ‘Edits’ 역시 A1처럼 공식 웹사이트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 피비다운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수년간 빈티지 시장에서 올드 셀린느를 찾아 헤매던 파일로-파일들이 슬퍼할 소식이 하나 있다. A1을 출시하며 피비 파일로는 과잉 생산을 최대한 지양하겠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야 피비 파일로의 공식 웹사이트에 접속했다면, 대부분의 아이템이 ‘솔드 아웃’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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