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캣 파워가 말하는 칼 라거펠트와 밥 딜런, 그리고 중독
찬 마셜(Chan Marshall)은 1995년, ‘캣 파워’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후 11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30년 가까이 음악 활동을 하며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했으며, 칼 라거펠트를 위해 샤넬의 쇼 음악을 작곡했다. 그뿐일까? 왕가위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는 주드 로의 상대 역을 맡았고, 틸다 스윈튼과 함께 아티스트 더그 앳킨(Doug Aitken)의 작품 ‘몽유병자(Sleepwalkers)’에 출연하기도 했다.
1년 전,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공연장인 영국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공연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캣 파워가 내건 조건은 단 하나였다. 바로 1966년 밥 딜런의 전설적인 라이브 앨범 <‘로열 앨버트 홀’ 콘서트>의 곡을 전부, 순서대로 커버하겠다는 것. 밥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나와 관객의 야유를 받았던(그리고 어쩌면 대중음악의 판도를 영원히 바꾼) 그 공연이다. 사실 이 공연은 로열 앨버트 홀이 아닌, 맨체스터 프리 트레이드 홀에서 열렸다. 해적판이 한동안 잘못된 제목으로 유통되는 바람에 앨범명이 <‘로열 앨버트 홀’ 콘서트>로 굳은 것.
결국 그녀의 바람대로 캣 파워는 작년 11월 로열 앨버트 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1966년, 밥 딜런이 부른 세트리스트 그대로. 꼬박 1년 뒤인 지난 10일, 캣 파워의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Cat Power Sings Dylan>이 발매됐다. 그녀는 최근 LA에서 공연을 마쳤고, 12월에는 멤피스에서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고 2024년 밸런타인데이에는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갖는다.
지난 10월, 나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캣 파워의 집을 방문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앉은 소파 위에는 박제된 사슴 머리가 있었다. 그녀는 최근 마이애미에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길다고 말하며, 칸나비디올 소다를 권했다. 우리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음악, 인생, 신보 계획, 정신적 문제와 약물 복용,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갓 딜런’에 대해 이야기했다.
보그(V): 커버 곡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Cat Power Sings Dylan>을 포함해 총 4장의 커버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커버 곡을 부를 때 원작자의 메시지를 최대한 살리는 편에 가까운가요?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다’에 가까울까요?
찬 마셜(C): 고생물의 뼈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마음과 같아요. 그들은 오랫동안 묻혀 있던 뼈를 발견하고 기쁨과 가치를 느끼죠. 아티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 즐겨 들었던 노래나 마음에 와닿는 노래에 대해서는 자연스레 ‘나도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내가 부른 커버 곡에 대해 남들이 무어라 생각하든 신경 안 씁니다. 사람들은 뭐든지 평가하길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릴 때 깨달았거든요. 누군가는 제가 ‘발굴’한 곡의 가치를 느낄 테고, 또 누군가는 그러지 못하겠죠.
V: 커버 곡을 부른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이 그 아이코닉한 <‘로열 앨버트 홀’ 콘서트> 앨범을 커버한다고 들었을 때 크게 놀랐습니다.
C: 제가 걱정됐던 건가요?(웃음)
V: 아뇨. ‘감히?’보다는 ‘와우, 정말 용감하군’에 가까웠죠.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앨범을 커버할 아티스트가 당신 말고는 떠오르지 않더군요.
C: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V: 그 공연이 어떻게 성사됐는지도 궁금합니다.
C: BBC 라디오 6 뮤직이 작년에 제 커버 곡들을 자주 틀어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매니저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11월 5일, 런던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가이 포크스의 밤에 공연이라, 훌륭하네’라고 생각하던 도중 매니저가 공연장이 로열 앨버트 홀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즉시 밥 딜런의 커버 곡이 아니면 노래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죠.
스물세 살 때 처음으로 런던에 가봤습니다. 하이드 파크 맞은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호텔에 머물렀죠. 공원을 가로질러, 해러즈 백화점을 지나 로열 앨버트 홀을 처음으로 마주했습니다. 제 앞뒤로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녔지만,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백스테이지 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밥 딜런을 마주치거나, 밥 딜런과 결혼을 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펼쳤죠. 그 이후로 런던을 방문할 때마다 로열 앨버트 홀에 갔습니다.
매니저가 “생각해볼 시간을 줄까?”라고 묻더군요. 그냥 하자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계획을 수정할 생각은 없었거든요. 밥 딜런은 아직 여기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 있을 때 경의를 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V: 캣 파워의 목소리로 밥 딜런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되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C: ‘갓’ 딜런을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되나요? 제 노래를 듣는 이들의 알고리즘에 밥 딜런의 노래가 노출됐으면 좋겠군요. 밥 딜런에게 영감을 준 우디 거스리 같은 아티스트의 노래는 물론이고요. 밥 딜런의 유산은 꼭 다음 세대의 어린 아티스트들에게 전달돼야 합니다. 그가 남긴 곡들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조차 할 수 없거든요. 제 라이브 앨범을 듣는 모두가 밥 딜런을 들었으면 합니다. 그가 어떻게 목소리를 바꿔가며 노래하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는지 느끼면서 말이죠.
V: 가장 좋아하는 가사나 구절이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Visions of Johanna’에서 ‘모나리자도 힘든가 봐. 그녀의 미소만 봐도 알 수 있잖아(But Mona Lisa musta had the highway blues. You can tell by the way she smiles)’라는 가사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C: 밥 딜런은 정말 엄청나죠. ‘Subterranean Homesick Blues(잭 케루악의 소설 <지하 생활자들>에서 영감받은 곡으로 1960년대에 힘든 삶을 살던 이들을 묘사했다)’의 도입부 가사인 ‘조니는 지하실에서 진통제를 제조하고 있어(Johnny’s in the basement, mixing up the medicine)’를 처음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같은 곡에 ‘조심해, 꼬마야’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꼭 저에게 하는 말 같았죠. 어릴 때 잠시 펑크 밴드와 같이 살기도 했고, 때로 집안에서 마약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저 밖에 없기도 했거든요. 저는 어렸지만,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그 곡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숙한 아이였어요. 세 살 때, 잠들기 전 성경을 읽는 할머니를 보며 읽는 법을 배웠죠. 그 이후로 정말 많은 책과 글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밥 딜런의 가사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아요. 때로는 그가 벌거벗은 임금에게 진실을 말하는 광대처럼 느껴지고, 또 어떨 때는 벅스 버니 같죠. 밥 딜런이 어떤 말을 하건, 그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친구가 없었습니다. 뉴욕 사람들은 모두 밥 딜런을 알더군요. 그제야 제대로 된 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V: 이제 또 다른 전설적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뉴욕은 당신이 칼 라거펠트를 만난 곳이기도 하죠. 소호에 있는 머서 호텔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들었어요.
C: 루 리드의 ‘I Found a Reason’의 커버 곡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삽입되며 1만1,000달러를 벌었죠. 돈을 받자마자,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듯 루이 비통 매장으로 갔습니다. 마크 제이콥스가 디자인하던 때였죠. 태슬 디테일이 달린 슬리브리스 미니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빌어먹을 드레스와 여행용 가방 2개, 그리고 메이크업용 가방을 사니 한 푼도 남지 않더군요. 이후 주로 크로스비 스트리트 호텔과 소호 그랜드 호텔 쪽을 산책했습니다. 머서 호텔도 가끔 지나쳤죠. 매번 ‘언젠가는 저기에서 커피를 마시리라’고 다짐하면서요.
그러던 중 제 앨범 <더 그레이티스트(The Greatest)>가 발매됐죠. 비평가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저널리스트들 역시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음반사 마타도어 레코즈(Matador Records)는 제가 각종 매체와 더 활발히 소통하길 원하더군요. 같은 마타도어 소속이던 페이브먼트나 인터폴 같은 인디 슈퍼스타들은 바하마로 ‘공짜 여행’을 가곤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일주일 동안 머서 호텔에 머물게 해주세요”라는 요구를 했죠.
그렇게 갑자기 머서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묵게 됐습니다. 그런 근사한 호텔은 처음이라 정말 떨리고 긴장되더군요. 호텔의 벨 카트에 걸터앉아 사과를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통화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칼 라거펠트가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새끼 거위들을 데리고 다니는 어미 거위 같았죠. 칼은 갑자기 몸을 돌렸고, 새끼 거위들은 어리둥절한 채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가 저를 손으로 살짝 치면서 말하더군요. “담배 피우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건 여성뿐이죠.” 프랑스 억양이 가득했습니다. 제가 웃자, 그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칼이 호텔 안으로 들어가니 새끼 거위들도 쪼르르 따라 들어갔고요.
체크아웃하는 그날까지, 저는 누구보다 일찍 로비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긴 연회 테이블에 앉아 저널리스트를 기다리곤 했죠. 저는 내내 거기에 앉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칼 역시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테이블에는 저와 칼, 그리고 보디가드 세바스티앙 존도(Sébastien Jondeau)뿐이었죠. 나중에 저희는 연인이자 친구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V: 네?
C: 사실이에요. 세바스티앙은 정말 멋진 사람이죠. 어쨌든 매일 아침 사람들이 찾아와 칼과 회의를 하더군요. 사람들을 인도하고 배웅하는 것은 세바스티앙의 역할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앉아 있거나, 저널리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요. 칼과 저는 종종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저택에 사는 두 사람이 커다란 테이블 양쪽 끝에 앉아 식사하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죠. 칼과 저는 매일 서로를 놀리며 장난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느 순간 그가 저를 제트기와 헬리콥터에 태우더군요. 꾸뛰르 쇼에 데려가는 건 물론이고요. 어느 날은 저를 샤넬 매장으로 데려가 “원하는 건 뭐든지 고르세요.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피우고요”라고 하기도 했죠.
크루즈 컬렉션 때문에 모나코의 카지노에 갔을 때도 기억납니다. 당시 저는 투어 중이었지만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을 놓칠 순 없었죠. 칼을 만났더니 그가 말하더군요. (프랑스어식 영어를 따라 하며) “모나코 공작부인과 만나게 해줄까요?” 톰보이처럼 무릎을 팔로 감싸고 앉아 있는 스테파니 공녀가 보이더군요. 좋다고 대답하자, 칼이 그녀에게 저를 소개해줬습니다. “스테파니, 이쪽은 마드모아젤 찬 마셜이에요. Cat Power!!!”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제가 스테파니 공녀와 어색하게 악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너무 당황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그녀가 떠나자, 칼에게 제가 촌뜨기처럼 보이지는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걱정 마요. 당신은 원래 격식이 있잖아요. 딱 노동자 수준의 격식 말이죠!”라고 말했어요. 그는 늘 저를 그런 식으로 놀렸습니다. 우리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곤 했죠.
V: 칼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나요?
C: 그럼요. 2018년 12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Met)에서 열린 그의 마지막 샤넬 쇼에서 만났죠. 그는 굉장히 쇠약해진 상태였지만, 걸을 수 있기는 했어요. 저는 원래 애프터 파티에 참석하지 않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날이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갑자기 칼이 저를 발견하더니 흥분하더군요. 그와 얘기를 나누기 위해 달려가자, 칼은 “세상에!”라고 말하면서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저에게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더니, 제 핸드폰을 쥐고 “네 아들, 네 아들”이라 말했습니다. 칼은 제 몸을 꽉 잡고 있었고, 저는 그에게 아들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그것이 칼과 저의 마지막이에요. 그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죠.
V: 칼 덕분에 많은 문이 열렸군요.
C: 사실 마이애미에서 지낼 곳을 구한 것도 칼 덕분이에요. 오래전 그가 수표를 끊어주었거든요. 그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첫 할부금을 냈죠. 칼 덕분에 수많은 패션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아페쎄의 장 투이투, 스타일리스트 카미유 비도 와딩턴, 캐서린 바바, 패션 포토그래퍼로 유명한 소렌티 가문과 마크 보스윅, 그리고 프랑스 출신의 에디터 올리비에 잠 등이죠. 1990년대에 저희는 모두 각자 방식대로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였습니다. 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사진을 찍고, 누구는 사진을 배치하고, 또 누구는 콘텐츠를 만들어냈죠. 이젠 모두 어른이 됐습니다.
최근 샤넬의 메티에 다르 컬렉션에서 퍼렐과 버지니 비아르를 마주쳤습니다. 마이애미에 살 때 퍼렐의 부인과 함께 집에서 브런치를 자주 먹었죠. 퍼렐의 그룹 넵튠스가 뜨기도 전 이야기입니다. 한동안 그를 보지 못했지만, 그가 버질의 뒤를 이어 루이 비통에서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죠. 같은 남부 출신으로서 그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V: 종종 퍼렐이 버지니아 비치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해요.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죠. 퍼렐은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C: 20년쯤 전, 퍼렐의 ‘아이스 크림스(Ice Creams)’ 슈즈 론칭 행사에 참여했던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로린 힐이 공연을 취소했다고, 45분 안에 행사장에 도착해 공연을 해줄 수 있냐고 묻더군요. 루이 비통 드레스에 아디다스의 크림색 하이톱 스니커즈를 신고, 1950년대에 만든 실버 톤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나갔습니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기타의 액션이 너무 높게 세팅되어 있더군요. 실험적인 사운드를 내기는커녕 제대로 연주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리버브나 이펙트를 걸 수도 없으니, 행크 윌리엄스를 연주할 수밖에 없었죠. ‘힙합스럽게’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1940년대 컨트리 곡을 연주한 겁니다. 결국 7곡만 부르고 쫓겨났죠. 도망치려고 하는데, 친구가 저를 퍼렐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퍼렐은 그때도 쿨했습니다. 저에게 다가와 “목소리가 좋네요”라고 말하더군요. 고맙다고 말하자, 그가 다시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정말 훌륭한 목소리를 갖고 있어요”라고 했죠.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됐습니다.
V: 패션과 옷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C: 패션은 정말 재밌죠. 예술과 관련 없는 제 친구들은 패션에 관한 것이라면 질색을 합니다. 비록 찢어지도록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저는 입고 싶은 옷을 골라 입으며 비로소 나 자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요. 싸구려 터틀넥이든 열두 살 때 구세군에서 받은 검정 스커트든, 제가 낙서를 한 뮬이든. 학교 친구들은 제 옷차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늘 놀림받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죠. 패션을 즐기며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거든요.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할머니는 저에게 옷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녀를 통해 무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V: 정신 건강과 알코올의존증으로 겪는 고충을 솔직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술을 끊고 며칠이 지났는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도 하고요. 반년 정도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C: 그렇습니다. 금주 시도는 네 번째죠. 저는 쉰한 살입니다. 그리고 제 건강 상태, 싱글 맘이라는 신분, 그리고 처참한 재정 상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알코올의존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죠. 중독자로 가득한 집안에서 자라며 저는 술을 입에 대지 않으리라 다짐하곤 했습니다.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정신 질환, 자살 등으로 많은 친구를 잃으며 중독이 정신 건강은 물론 신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도 지켜봤죠. 저 역시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데’라는 생각만 계속했습니다.
한동안은 스카치를 진탕 마시지 않으면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콘서트장이나 공항 등 장소에 상관없이요. 그러던 어느 날 제 뇌가 갑자기 “이제 끝이야”라고 말하더군요. 결국 정신병원에 가게 됐고, 제 이름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 3명이 병문안을 왔을 때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화장실로 뛰어가 한동안 피했던 거울을 똑바로 쳐다봤죠. 샤워를 하고 얼굴을 문지르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샬린 마리 마셜입니다. 1972년 1월 21일생이에요. 너무 오랫동안 술을 마셔, 이제는 제 이름도 까먹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움이 필요해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죠.
다음 날 저는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술을 끊었어요. 일주일에 세 번씩 치료받으러 다니면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죠. 여섯 살 이후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에요.
때때로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며 왜 자신이 이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깨닫곤 합니다. 삶이란 곧 배움의 과정이죠. 지금 저는 ‘순간에 충실하기’를 배우는 중이에요. 저는 행복하게 잠에서 깨고 매일 괜찮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이렇게 강하고, 좋은 친구들이 주위에 있고, 저 자신이 좋은 엄마가 된 것에 감사해요. 지금은 제가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V: 밥 딜런을 커버하는 이번 프로젝트를 마친 후, 무엇을 하면서 지낼 예정인가요?
C: 곧 노래 한 곡을 발표할 거예요. 마리안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이 런던 외곽의 생활 지원 시설에 머무르도록 돕기 위한 프로젝트죠. 셜리 맨슨(Shirley Manson), 피치스, 루신다 윌리엄스(Lucinda Williams) 등을 비롯해 많은 아티스트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와 이기 팝은 존 레논의 곡 ‘Working Class Hero’를 마리안 페이스풀 식으로 편곡해 부를 예정이고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마이애미의 스튜디오로 돌아가 다음 앨범을 준비할 겁니다. 굉장히 감동적인 앨범이 될 테니, 듣기 전에 티슈 챙기는 걸 잊지 말고요.
V: 정말요?
C: 그럼요. 그렇지만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는 정말 재밌죠.
V: 이제 마지막 질문이네요. 너무 뻔한 질문은 싫지만, 활동명이 왜 캣 파워인지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활동명의 유래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나요?
C: 대부분은 ‘캣 파워’가 말 그대로 ‘고양이의 힘’이라고 생각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제 활동명은 밴드를 하고 싶어 했던, 애틀랜타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지은 것입니다. 저는 밴드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제가 피자 가게에서 일하던 도중 지금은 세상을 떠난, 마크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가 밴드에 들어오면 데이먼도 밴드에 들어온대!”라고 하더군요. 데이먼 역시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때 저는 데이먼에게 푹 빠져 있었어요. ‘데이먼이 왜? 나는 뮤지션도 아니고, 데이먼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라고 생각하던 중, 마크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데이먼이 밴드에 들어오면 글렌도 들어온대. 플레처 리게로(Fletcher Liegerot)도!” 플레처는 지금은 배우가 됐지만, 그때는 앰프로 소음이나 내는 친구였죠. “우리가 밴드를 왜 해야 하는데?”라고 묻자, 마크는 대답하지 않더군요. 대신 목요일에 첫 공연을 할 거고, 리드 싱어는 저라고 말했습니다. 저더러 밴드 이름을 지어달라길래 “내가 왜 리드 싱어가 되어야 하는데?”라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네가 여자니까”였죠. 그때 80대 정도 되는 단골손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철로 관련 일을 하는 것 같았어요. 맥주와 함께 공짜 피자 한 조각을 주곤 했죠. 그 할아버지는 늘 ‘CAT/Diesel Power’라고 적힌 낡은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네가 여자니까”라는 말에 화가 난 저는 “캣 파워”라고 한 다음 전화를 끊어버렸죠.
어쨌든 나중에 저는 폭스바겐 버스를 사서 포틀랜드로 이사하고 앨범을 녹음했어요. 활동명은 ‘캣 파워’였고요. 친구이자 전설적인 록 음악 비평가 리처드 멜처(Richard Meltzer)는 “비트 시인, 재즈 캣츠만큼 멋진 이름이야. 찬 마셜은 정말 멋진 캣이지”라고 말했죠. 원래 아무 의미가 없는 이름이에요. 그냥 저항 정신에 지은 이름일 뿐이었습니다. 어쨌든 그 모자를 썼던 할아버지, 너무 좋았어요.
V: 그 로고 알아요. 윗줄에 크게 ‘CAT’, 밑줄에 ‘Diesel Power’라 적혀 있죠.
C: 맞아요. CAT은 디젤엔진을 만드는 대기업 캐터필러(Caterpillar)를 뜻하는 말이었죠. 나중에 그들은 사명을 바꿨고, 지금은 그냥 ‘캣 파워’라 불리더군요. 그 이름이 길가에 널려 있어요.
V: 그 이름에 대한 상표권 침해 소송을 할 수는 없나요?
C: 그들도 저를 고소하지 못할 거예요.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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