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미니멀 패션의 아이콘, 캐롤린 베셋 케네디
1996년 맨체스터의 한 주유소에서 캐롤린을 만났다. 맨체스터 지역의 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던 나는 강의가 끝난 후 무언가를 사기 위해 주유소에 들어섰고, 그녀는 존 F. 케네디 주니어 옆에 서서 잡지 표지를 훑어보다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갓 결혼한 새댁이었던 그녀는 ‘새로운 케네디 부인’으로서 첫 주를 맞이한 참이었다. 블랙 브이넥 스웨터에 카멜 컬러의 미디 스커트를 입고 탠 컬러 부츠, 블랙 백 차림이었다. 꾸밈없이 세련된 그 캐롤린이었다.
결혼 전 캘빈 클라인의 뮤즈이자 홍보 담당 임원이었던 캐롤린은 이미 뉴욕 사교계에서 트렌드세터였다. 실크 슬립 드레스로 웨딩드레스의 파격적 재해석을 선보인 결혼식 이후에는 자신만의 패션 스토리를 지닌,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주인공이 됐다. 남편, 언니와 함께 탔던 비행기가 추락해 33세에 숨을 거뒀지만, 24년이 지난 지금도 전설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대통령으로서 얻은 권력과 지성미 등 케네디 가문이 지니는 상징성은 ‘존’과 ‘캐롤린’ 덕분에 1990년대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캐롤린의 놀라운 매력 때문에 그녀 주위에는 늘 카메라가 있었다. 파파라치에게 포착된, 요지 야마모토의 오프숄더 뷔스티에와 오비 새시 스커트 수트 같은 이브닝 의상이나 그녀가 반려견 프라이데이를 산책시킬 때 착용한, 검은색 탱크 톱, 리바이스 517 청바지, 프라다 샌들까지 의상 하나하나가 주목받고 세세히 분석되었다.
그녀는 뻔하고 매력 없는 명품을 피했으며, 시어머니였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보석으로 꾸미는 감상적이고 귀족적인 스타일링을 거부했다. 대신 그녀는 요지 야마모토나 앤 드멀미스터 같은 디자이너들의 아방가르드한 작품을 찾았다. 하얀 턱시도 셔츠, 페플럼 재킷과 비대칭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코트는? 프라다, 프라다, 늘 프라다였다. 모두가 그녀의 스타일링에 빠지고 말았다.
많은 이들에게 ‘첫 번째 패션 스쿨’은 가족이다. 내 경우엔 코번트리(Coventry, 잉글랜드 중부 지역)의 명랑한 가정집에서 시작됐다. 할머니와 엄마는 열정적인 컬러의 옷을 입고, 귀걸이와 목걸이로 포인트 주는 것을 좋아했다. 발리우드에 나올 법한 커다란 눈과 입술, 헤어를 타고난 그들은 쾌활한 스타일 감각을 공유했지만, 나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곧은 몸과 직모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따라 하려고 하면, 값싼 장식용 방울을 달아놓은 앙상한 크리스마스트리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무엇을 입어도 괜찮다”는 영국의 무모한 분위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학생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시기에도 나는 나 자신을 멋스럽게 꾸밀 수 없었다. 그 시기, 캐롤린을 만났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삶에 접목할 수 있는 패션 언어를 구사했다. 그래서 우리 사이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격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룩은 “여성스러움은 살리면서 남성적인 실루엣의 옷을 입은 제 모습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세심하게 고려해 분리한 옷은 엄격한 색조로 심플함의 극치를 이뤘는데, 그것이 그녀의 탁월한 점이었다. 최근 유행 중인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든, 스텔스 웰스(Stealth Wealth)든 그녀는 그것들을 가장 먼저 자신의 소신으로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는 나의 새 책 <CBK: Carolyn Bessette Kennedy, A Life in Fashion>에 실은 글에서 “그녀의 스타일에는 억지스러운 게 없었어요. 그 부분이 그녀를 카리스마 있게 만들었죠. 호화롭지 않지만, 고급스러웠습니다. 그녀에게 옷이 몇 벌뿐이었다는 사실은 캐롤린이 굉장히 모던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죠”라고 적었다.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은 “좋은 교육, 매너, 결점 없는 외모, 우아함의 특별한 조합이죠. 캐롤린의 말과 움직임에서 그녀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청바지에 티셔츠, 샌들 차림일지라도 그녀는 사람들이 얻으려고 애쓰는, 정말 원하는 그 무언가를 갖고 있었습니다”라고 그녀를 표현했다. 아마 우리도 그러지 않을까?
20여 년이 흘렀지만 패션 디자이너들은 무드 보드에 그녀의 사진을 넣으면서 여전히 참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얼마 전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한 강사가 학생들도 그렇다고 말했다. 대중 역시 그녀를 향한 관심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남아 있는 사진은 적고 한정적이지만, 수많은 인스타그램 계정이 그녀 사진에 자신의 공간을 할애하고 있다. 틱톡에 올라온 그녀의 영상은 수천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인플루언서들은 자신의 페르소나를 ‘노력하지 않아도 멋진(그러나 노력이 필요한) 캐롤린’으로 삼고, 그 이미지가 자신의 모습에 투영되기를 기대한다.
주유소에서 그녀를 만나고 12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캐롤린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뉴욕에 있는 한 잡지 보관소(아카이브)에서였다. 그 무렵 나는 패션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고, 그곳은 뉴욕이라는 도시와 커리어적 측면에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 나는 낡은 과월호 더미를 발견했다. 책마다 캐롤린의 자제력 있는 패션, 즉 미니멀리즘이 꽃을 피운 수많은 파파라치 사진이 끝없이 실려 있었다. 사진 속에서 나 또한 캐롤린과 같은 스타일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그녀처럼 셔츠, 원피스, 코트로 구성된 나만의 작은 옷장을 만들고 있었다. 나 또한 단 하나의 옷을 사기 위해 저축하는 법을 배웠고(싸구려 모조품 5점보다는 진품을 사는 것이 낫다), 핏에 관해서만큼은 ‘악마’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캐롤린은 내면의 확신이 모든 솔기 사이로 배어 나오는 사람이었다. 어떤 아이템을 구입하든 패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 모든 룩을 완성하는 마지막 하나, 자신감 말이다. 물론 캐롤린은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이 있었다. 캐롤린도 알고 있었다.
스타일 아이콘으로서 캐롤린 베셋 케네디에게 경의를 표하는 수니타 쿠마 네르(Sunita Kumar Nair)의 책 <CBK: Carolyn Bessette Kennedy, A Life in Fashion>은 11월 7일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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