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이 파리에서 맨체스터로 떠난 이유
파리와 맨체스터 사이에서 길을 찾다.
런던에서 약 258km, 영국 북부에 위치한 탈산업화 거점 도시 맨체스터의 길거리로 우리를 데려다놓은 샤넬 컬렉션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왜냐고? 버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가 날카로움을 자부심으로 삼는 다층적 영국 노동자 계층 문화를 지지하기로 한 개인적인 뒷얘기를 공개했다. 거기에는 맨체스터의 수준 높은 축구 실력, ‘매드체스터(Madchester)’ 음악 장르와 1980~1990년대에 이름을 날린 클럽 분위기, 19세기 방직 산업의 심장이나 다름없던 역사적 지위까지, 그야말로 맨체스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작은 도시가 좋아요.” 비아르가 말을 이었다. “런던 같은 대도시 말고요. 런던도 너무 파리 같아요. 제 할아버지와 종조부님은 리옹에서 축구 팀을 이끄셨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그곳에서 직물 제조업에 종사하셨고요.”
그렇게 그녀는 맨체스터에서 자신의 뿌리와 프랑스 럭셔리 하우스 사이 예상 밖의 접점을 찾아냈을 뿐 아니라(버지니의 고향인 리옹은 전부터 오뜨 꾸뛰르에 사용되는 직물을 가공하고 납품해온 곳이다), 맨체스터 외곽에 위치한 이튼 홀 카운티 부지에서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영국산 트위드에 푹 빠져버린 코코 샤넬과의 접점도 찾아냈다. 물론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으로 대변되는 거칠고 대담한 음악 장르, 그리고 늘 런던과 라이벌 관계였던 이 북부 도시의 예술적 에너지에 대한 비아르 세대의 애정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영국 북부 문화에 대한 애정은 샤넬 패션쇼 전날, 남부와 북부의 검투사 대결과 같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첼시의 축구 경기에서부터 드러났다. 홈팀을 응원하기 위해 게스트에게 샤넬의 넘버 파이브처럼 등 번호 5번을 새긴 맞춤 제작한 빨간색 맨유 유니폼이 지급됐다. 경기 결과는 2 대 1, 맨유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비는 맨체스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데(궂은 날씨 때문에 몸을 웅크린 채 터덜터덜 공장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을 그린 L.S. 라우리(L.S. Lowry)의 그림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 공방(Métiers d’Art) 컬렉션이 열리는 쇼장 위로 비가 쏟아진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게스트들이 우산을 쓰고 하나둘씩 도착해 토머스 거리(Thomas Street)를 따라 배치된 펍 스타일의 야외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 밤 패션쇼를 위해 바와 레코드 숍, 타투 숍, 여러 가게가 들어선 전형적인 붉은 벽돌 건물 사이에 천장이 설치되었다.
영국 북부 여성의 느낌이 가득하던 ‘노던 걸’ 시리즈에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아우르는 노동자 계층의 대중문화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방으로 찰랑이는 프린지 장식과 모델들의 맨다리가 눈에 띄었다(맨체스터 사람들은 추위에 강하기로 영국에서 유명하다고). 샤넬에 현실 감각과 젊은 느낌을 불어넣은 것으로 정평이 난 비아르는 트위드 수트의 다양한 변주를 선보이며 무릎 길이 스커트와 A 라인 미니스커트, 코트에 매치한 사이클 쇼츠, 이른바 빵모자라 불리는 비틀 캡, 체인 벨트 등을 자유자재로 룩에 활용했다. 뒤이어 뉴 웨이브 클럽 걸 룩이 런웨이에 등장했다. 내리는 비와 아주 잘 어울렸던 블랙 페이턴트 레더 의상, 안전핀이 겹쳐진 C자 모양으로 장식된 보디스나 레코드판 모양의 자수가 새겨진 보디스로 시선을 사로잡은 베이비 돌 드레스 등이 거리를 활보했다.
칼 라거펠트는 꾸뛰르 쇼에 납품하는 샤넬 소유 하우스의 뛰어난 공예 실력을 선보이기 위해 공방 컬렉션 쇼를 시작했다. 르사주(Lesage)는 섬세한 자수를, 구센(Goossens)은 주얼리를, 르마리에(Lemarié)는 깃털 공예를, 배리(Barrie)는 스코틀랜드산 캐시미어 니트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공방이다. 비아르는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할 법한 슬로건이 적힌 스웨터, 비니, 축구 경기장 관람석과 클럽 전단 그래픽에서 영감을 받은 스카프 등을 컬렉션에 선보였다.
물론 쇼는 전반적으로 다분히 샤넬다웠고, 다분히 파리지앵다웠다. 비아르는 하우스의 클래식으로부터 절대로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컬렉션에는 맨체스터 여성의 삶의 지혜에 대한 찬사가 담겨 있었다. 공장 노동자 임금으로 생활하느라 아무리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도 언제나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외출했던 이곳 여성의 모습을 떠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요컨대 이번 공방 컬렉션은 이 도시를 자랑스럽게 하고도 남는 쇼였다. (VK)
- 글
- Sarah Mower
- 사진
- Jamie Stoker
- SPONSORED BY
-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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