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 포인트

부모님의 신혼여행

2023.12.25

부모님의 신혼여행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얼굴은 어느새 해사하게 풀어졌습니다. 고운 한복 차림으로 서울이며 부산 구경을 떠났던 시절부터 투피스에 구두까지 갖춰 신고 자갈밭이며 산길까지 오르던 때와 자유로이 해외로 여행을 떠났던 1990년대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행복한 두 사람이 그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신혼여행이 결혼의 수순이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비 피해를 입어 사진이 상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거하게 싸움을 하고 난 뒤 갑자기 모든 사진이 사라졌다는 진지한 증언도 있었죠. 시간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족으로 바꾸어놓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은 그 시절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향했다는 사실입니다. 먼지 쌓인 앨범을 뒤져 사랑의 얼굴들을 찾아왔습니다.

“나한테 시집와줘서 고맙다”

1967년 12월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아내 집에서 하루 잔 다음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떠났다. 당시 개발이 덜 되었던 부산에는 우리가 묵을 극동 호텔, 그리고 바다뿐이었다. 낮에는 함께 바닷가를 걷고, 밤에는 호텔 지하 바에서 술을 마신 게 전부였다. 연애할 때 우리는 매일 만났다. 못 보는 날이면 밤늦게 아내의 집 앞에 찾아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눈인사라도 하고 오곤 했다. 이제 그러지 않아도 매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참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부형, 이순규)

“에이, 할 말 없어”

1981년 11월 부산 제주도 신혼여행을 계획했으나 날씨가 궂어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당시에는 그런 일이 빈번했다. 김포공항 근처에 딱 하나밖에 없었던 에어 포트 호텔에 묵고 날씨가 개기를 기다렸으나 다음 날도 결항. 공항에서 지금 갈 수 있는 곳이 ‘부산’이라 하여 급선회해 떠났다. 우리 부부의 첫 비행이었다. 1시간 간격으로 같은 식장에서 결혼한 친구 부부와 마음이 맞아 함께 떠난 여행이기도 했다. 당시에 예약이랄 게 뭐 있나.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넷이서 해운대, 오륙도, 송도 등을 돌아다녔다. 우리 사진은 친구 부부가 찍어준 것이다. (황인환, 이형숙)

“너네 아빠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낫지”

1983년 3월 20일 제주도에서 논현동 ‘그랜드 예식장’에서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길, 마냥 좋았다.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에 신나고, 결혼했다는 것 자체에 들뜨고, 좋은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것도 설렜다. 기억나는 건 그런 기분과 온도, 그리고 제주도가 생각보다 따뜻해서 준비해온 점퍼를 벗어 들고 다녔던 추억 정도다. 사진도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다 어디 있는지, 겨우 찾은 사진 한 장을 봐도 드는 생각은 ‘젊었네?’뿐. 막상 진짜 결혼 생활이 시작된 후 한동안 치열하게 싸웠던 기억만은 여전히 강렬하다. 신혼이고 여행이고, 지금이 낫다니까. (권명안, 오덕희)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에요^^“

1984년 5월 제주도 신혼여행 때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사진은 식을 올리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하루 동안 관광지를 돌면서 찍은 사진이다. 그날 저녁 집에 안부 전화를 했다가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가 놀랄까 봐 위독하시다고 얘기한 뒤, 다음 날 아침 급히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아내는 집에 도착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딸의 결혼식을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기다려주신 거라고들 얘기했다. 우리에게 행복한 순간이지만, 잊지 못할 날이기도 했다. (오영관, 이민영)

“그래서 우리 하와이는 언제 갈까?”

1990년 10월 제주도에서 원래 목적지는 하와이였다. 하지만 결혼 직전 남편이 다녀오게 되는 바람에 하와이는 언젠가 찾아올 결혼기념일 여행으로 미루었다. 당시 제주도 신혼여행은 신부가 한복을 입는 것이 암묵적인 공식이었다. 하지만 한복까지는 도저히 입을 수 없어, 나름의 시밀러 룩을 맞춰 입는 것으로 타협했다. 결혼한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하와이는 감감무소식이다. 나는 34년째 하와이를 입에 달고 사는 중, 남편은 34년째 고통받는 중. (윤의연, 노유미)

“두 분, 조금만 더 붙어보실게요”

1993년 4월 제주도에서 그 시절 제주도 신혼여행은 하나의 ‘트렌드’였다. 그렇게 우리도 자연스럽게 제주도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은 여행 내내 우리의 전속 포토그래퍼 역할을 자처했다. 신혼여행에서 찍은 모든 사진은 기사님의 작품인 셈이다. 포즈까지 섬세하게 ‘디렉팅’해주신 기사님 덕분에 이렇게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유채꽃 밭에서 한 컷, 돌하르방 앞에서 한 컷, 귤나무 앞에서 한 컷. (유택근, 양태향)

“이렇게 예쁜 애가 30년 동안 내 옆에 있어주다니”

1994년 4월 하와이에서 큰 물고기가 다리 사이로 오가는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너무 좋아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피부가 햇빛에 화상을 입어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놀란 남편이 현지인에게 급히 물어 알로에를 사 왔다. 피부 진정에 알로에가 좋다는 걸 신혼여행에서 처음 알았다. 사진은 화상을 입기 전,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해하던 우리다. 여행 내내 옆에 꼭 붙어서 날 살피는 남편을 보며 그가 좋은 가족을 이룰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재혁, 정혜경)

“행복하게 평생 사랑하면서 잘 살아보자”

1994년 12월 태국 3박 4일간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둘 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었고, 출국 당일 시간이 촉박해 친구가 급히 광주 비행장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현지 관광 가이드가 데려간 코브라 쇼장에서 맛없는 코브라 쓸개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박인숙, 한안수)

“웃어봐, 쫌!!”

1995년 4월 괌에서 결혼식 후 오사카에 며칠 머무른 다음 괌으로 떠났다. 우리의 본격적인 신혼여행지였다. 돌고 돌아 도착한 괌이건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처럼 신혼여행을 온 한국 커플이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가 괌이 맞긴 한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래도 기왕 온 거, 남들 한다는 건 다 해봤다. 아, 사진 속 남편의 환한 웃음은 다 내 덕분이다. 카메라 앞에서 하도 쑥스러워하길래 옆에서 간지럼을 좀 태워줬다. (안재우, 황현진)

#THELOVE

섬네일 디자인
허단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