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늙지 않는 자들의 외침,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
‘젊은 작가’라는 호칭을 자주 듣고, 보고, 씁니다. 그렇다면 젊다는 것, 특히 미술계에서 ‘젊다’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물리적인 나이일까요, 생각의 차이일까요, 아니면 참신한 기법의 유무일까요? 참으로 애매모호한 기준이지만, 이 규정할 수 없는 ‘젊음’을 나만의 방식으로 느껴볼 수는 있겠지요. 그래서 주말 오전 시간을 내 송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송은미술대상전>(오는 2월 24일까지)에 가보았습니다. 지난해 23주년을 맞은 송은미술대상은 역량 있는 동시대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이미 잔뼈가 굵은 미술상입니다. 이번에는 512명에 이르는 지원자 중 본선에 오른 작가 20인의 작품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자는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된 주제가 없어서 다소 산만하게 느껴진다고 평했지만, 저는 오히려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채로움과 통일되지 않는 뒤섞임이 이 전시만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남진우, 문이삭, 박웅규, 박형진, 백경호, 백종관, 신미정, 신제현, 유화수, 이세준, 이우성, 이은영, 임노식, 장파, 전장연, 정서희, 정진, 허연화, 황문정, 황선정. 이들의 작품은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운드 등 여러 매체를 아우르며 생생하고도 생경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큐레이터가 제시하는 특정 주제가 아니라 본인들의 작업 세계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데 충실한 작품은 각자의 자리에서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작가의 몸짓과 목소리로 점철된 특유의 에너지를, 혹자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또 누군가는 현재 미술계에 팽배한 정서와 방식을 바꾸고자 하는 도전 의식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이들의 작업이 곳곳에서 길을 만드는 새로운 지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들의 작업은 현재 미술계에서 활약하는 작가들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인지부터 현재를 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까지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특히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와 공존,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 생태의 문제, 문화적 정체성과 혼종성·고유성에 대한 고민 같은 주제가 눈에 띄더군요. 공통적으로 이들은 기존의 상식, 생각, 신념 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것이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대왕오징어’로, 훠궈 앞에 모인 다국적 사람들의 모습으로, 희미한 광고판 이미지로, 불교 사천왕의 형상을 한 내장 그림으로, 자개 장롱 조각을 활용해 만든 배로 보이는 거죠. 끝도 없이 펼쳐지는 작가들의 상상력은 우리가 일상에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나 현상을 한 번쯤 고민해보도록 유도합니다.
며칠 전 그중 유화수 작가가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 기술의 환경, 기계, 인간 등의 관계가 만드는 사회적 현상에 집중해온 그는 ‘재배의 몸짓’이라는 작업을 소개합니다.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거된 주거 단지의 나무를 수거해 멋진 조각으로 선보이더군요. 기술과 정보가 발달할수록 자연과 환경에 대한 감각은 단조로워진다는 현상에 주목한 작가는 이로써 오늘날의 우리에게 누구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첨단 기술인 스마트팜을 활용해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비식용 버섯을 돌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단순히 문제 제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작가가 생각하는 일종의 대안을 함께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어떤 시대든 예술가는 반 발 앞서 생각하고, 그래서 이들은 늙지 않습니다. 시절이 흉흉할수록 이들의 ‘아트 싱킹(Art Thinking)’은 더욱 빛을 발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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