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취향이 연애에 미치는 영향
같이 식당에 못 가는 두 사람은 어떻게 연애를 할까?
나와 애인은 식성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쌀이 주식이고 그는 밀이 주식이다. 나는 느끼한 걸 먹으면 김치가 생각난다. 그는 치즈를 삼시 세끼 먹을 수 있고 고춧가루를 먹으면 딸꾹질을 한다. 나는 채식을 지향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동물을 먹는 플렉시테리언이다. 그는 19년째 락토오보다. 더 결정적 차이는 이거다. 나는 음식을 가리면 지탄받는 한국에서 자랐고 그는 열 사람이 모이면 열 사람 모두 다른 메뉴를 주문하면서 각각의 메뉴에 뭘 넣고 뺄지 커스텀하는 유럽에서 자랐다. 이 차이는 같이 생활하는 데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처음 그를 만나고 반년간은 그의 입맛에 맞춰 생활했다. 당연하다. 나는 한국인이다. ‘통일’과 ‘빨리빨리’의 나라다. 게다가 나는 잡식성이니까 메뉴 선택 폭이 좁은 그에게 맞추는 게 함께 끼니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활이 지속되자 세상 가장 무던한 줄 알았던 나의 식성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나는 살이 쑥쑥 찌고 항상 속이 더부룩했다. 어느 순간 피자만 보면 눈물이 날 것 같고 목구멍이 좁아졌다. 그 감정의 이름은 서러움이었다. 그와 처음 다툰 것도 피자집에서였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계곡이나 바다의 얕은 물에 발목이 감겼는데 의외로 물살이 세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을 겪어본 적 있는가? 나는 그와 비슷한 호르몬의 파도에 휩쓸린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피자가 앞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반년을 보낸 후 깨달았다. 식성이란 사랑의 힘으로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는 더 일찍 깨달았다. 그는 프랑스에서 자랐고 오래 채식을 했다. 음식에 대한 집착, 자부심, 해박함, 잔소리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프랑스인이 쏘시송도 안 먹는 자를 가만 둘 리 없다. 음식 갖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상식이 통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걸 안 먹는다고? 몰래 넣어봐야지. 죽나 안 죽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채식주의 선언을 한 열아홉 살 이후로 그의 식탁에서는 영양 과학, 동물권, 식품 산업에 대한 길고 긴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한국의 채식주의자가 겪는 상황은 다르다. 한국에서 채식주의는 과학, 환경, 산업이 아니라 전체주의 관점에서 지양된다. 논쟁이 아니라 탄압의 대상이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 한국에서 채식을 시도했다가 메뉴 정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불평, 혼자 정의로운 척한다는 비난, 유난 떤다는 눈총에 시달린 끝에 플렉시테리언이라는 어정쩡한 수정주의 노선을 택했다. 그 경험 덕에 애인이 “동아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액젓이 들어가면 채식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며 한식을 거부할 때 서운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육식을 찬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관계는 더 피곤해졌을 것이다. 그는 오랜 투쟁으로 지켜낸 자신의 식습관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 나는 그걸 존중한다.
그를 나의 식성에 적응시키는 건 더 어려운 문제였다. 그는 아시아 식당에 나를 따라와서 감자 샐러드를 먹거나 양식당에 함께 가면 내게 스테이크를 권하는 식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건 그에게 행복한 식사가 아닐 게 뻔했다. 어느 무덥고 지친 날에는 내가 당장 마늘이 잔뜩 들어간 얼큰한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를 매연과 소음으로 가득한 대로변에 세워놓고 혼자 노점상으로 달려가 5분 만에 국수 한 그릇을 해치웠다. 나는 평생 그렇게 긴급하고 흉포한 식욕을 느껴본 적 없다. 추잡하고 게걸스러운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자 정신이 돌아와서 그를 길에 세워둔 것을 사과하고 그가 좋아하는 빵집에 함께 갔다. 그가 치즈 잔뜩 든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어치우는 동안 나는 과일 주스를 마셨다.
결국 우리는 식성을 완전히 맞추는 데 실패했다. 인도, 중동, 멕시코 음식은 둘 다 좋아하지만 둘 모두에게 주식은 아니다. 한국 사찰식도 가능은 한데 흔치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외출할 때 1, 2차로 나눠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식을 먹는 동안 그가 음료를 마시며 구경하고, 그가 양식을 먹는 동안 내가 음료를 마시며 구경한다. 또 다른 방법은 외부 음식 반입을 허용하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가는 동네에 한식집과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마주 보는 곳이 있다. 한식집 주인께 애인이 다른 음식을 사 와서 함께 먹어도 되냐고 조심스레 여쭈었더니 허락해주셨다. 그 식당에 가서 나는 김치찌개를, 애인은 피자를 먹는 게 곧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인정하는 건 긍정적 관계의 출발점이다. 음식은 일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먹을 때만큼 사적인 관계에 몰입하기 좋은 시간도 없다. 당연히 연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음식은 연인 사이에 본의 아닌 강요와 희생이 벌어지기 쉬운 영역이다. 처음엔 권유와 양보로 포장되겠지만 그게 쌓이면 부정적 의미가 강화될 수 있다. 단단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이 부분에서도 다름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좋다. 반드시 같은 곳에서 메인 메뉴를 먹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우리의 생활은 한결 평화로워졌다. 집에서도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직접 요리해 먹는다. 함께 요리해서 나눠 먹을 때도 있지만 그게 규칙은 아니다. 상대가 입에 맞는 것을 먹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몸에 맞는 것을 먹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결국 그게 사랑이 아닐까. 메뉴는 그것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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