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창자·벌레·가래가 예술이 되면
박웅규 작가가 창자, 가래, 흉터, 벌레 등의 징그러운 괴생명체를 그리는 이유. 그는 부정한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붓을 놀린다.
2월 24일까지 송은에서 열리는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 전시장에서 미술가 박웅규를 마주했다. 함께 본선에 오른 작가 20명의 작품 중에서도 그의 그림은 유난히 독특한 정취를 뽐내고 있었다. 전통 양식의 족자로 표구한 그림 네 점이 흉터, 창자, 벌레, 가래의 순서로 걸려 있었다.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벌레를 제외하고 다른 작품은 그 소재와 연원에 대해 직접 듣기 전에는 그 정체를 함부로 유추하기 어려웠다.
“2015년부터 시작한 ‘더미(Dummy)’ 연작을 마무리하는 의미를 가진 작품입니다. 이 네 작품을 포함하면 연작이 총 108점이 되죠. 그간 ‘더미’ 시리즈는 나방, 불화, 내장 등 1년 단위로 주제를 나눠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흉과 가래는 ‘더미’는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같이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네 점의 그림이 소재로 나뉜 것은 아닙니다. 네 작품 모두 사용한 붓과 제작 기법이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죠. 예를 들어서, 흉터 그림은 그러데이션 효과를 가진 바림 채색 기법으로 그렸어요. 붉은색의 경면주사는 과하면 얼룩지는데, 아교랑 잘 섞어서 아예 그런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가톨릭의 영향으로 아토피로 인한 상처에서 성스러운 기운을 발견했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입니다. 가래 그림은 얇은 펜 드로잉이에요. 알갱이 선의 느낌을 살려서 작업했죠.”
네 가지 부정한 모티브가 불교 사천왕의 형상을 덧입고 성스럽게 승화되었다. ‘Dummy’는 모조품, 껍데기라는 의미로 박웅규는 더러운 것들 사이에서 종교적 의미를 찾기 위해 이런 제목을 붙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열심히 성당에 다녔던 그는 강압적 느낌에 지배되었고, 급기야 종교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때의 기억과 부정한 것이 엄숙해 보이는 환상이 교차된다고 여겨 작품으로 표현하게 됐다. 2019년 연작부터 작업에 질서를 부여하게 되었는데, 불교 도상과 가톨릭 성화의 조형적 질서를 그림 그리는 규칙으로 삼게 된 것이었다.
“최근 축약한 제 작업의 정의는 ‘더러운 질감에 단단한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그림을 그리는 명제이자 근거가 됩니다. 연작마다 규칙과 방식이 다르고, 소재도 달라집니다. 부정하게 생각하는 것을 극복한다기보다는, 작업을 통해 싫은 이유를 되새기다 보면 감정은 떠나고 어떤 단단한 형태가 나타납니다. 이미지가 아니라 태도와 구성 방식이 달라지죠. 종교화의 형식을 대입하는 것은 부정한 것들을 통제하고 정리하는 강박적 방식의 발현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내장으로 만든 음식은 먹지 않으며, 벌레를 싫어합니다.”
박웅규의 작품은 종교화의 구도를 고스란히 따른다. 불화와 성화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광배와 고유의 숫자 사용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의 게임에서도 종교화의 아우라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악마를 표현할 때 엄숙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아침 기도, 저녁 기도, 새벽 미사를 드리며 일상을 통제하는 가톨릭 문화가 억압으로 느껴져 거부했고, 여전히 그 영향은 남아 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 통제였는데, 그때는 참기 어려웠다고 박웅규는 고백했다.
2019년부터 작업에 규칙을 부여하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 역시 종교화의 영향이었다. 그 전에는 수집한 이미지를 조합해서 그렸지만, 이때부터는 각각의 질서를 가진 그림을 그렸다. 그 시발점은 불교의 구상도(九相圖)였다. 구상도는 시신이 썩어가는 9단계를 묘사한 불화다. 시신이 썩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방식이 조형적이라 그리기의 규칙으로 삼기에 적합하고 신선하기까지 했다.
“한국적 감성을 가진 작품을 선보인다는 호평을 받고 있어요. 재료와 참조 방식이 한국적이다 보니 그런 평가를 받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몇 해 전부터 표구 방식을 사용하는데, 그림 테두리에 천을 붙이는 장황이 아주 재미있어요. 옛 박물관에 걸린 작품의 느낌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한 형식인데 젊은 관람객은 오히려 새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전공으로 한국화를 택하는 데는 큰 고민이 없었지만 막상 대학에 입학하자 방황의 시기가 찾아왔다. 동양화 문법이 지금 통용되는 시각언어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장지와 한지에 먹이 쌓이는 듯한 동양화 같지 않은 작품을 선보였고, 밀도와 질감을 드러낼 수 있는 재료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더미’ 연작에서는 유화와 달리 먹이 종이와 마찰을 일으키고, 종이 뒤로 먹을 밀어 넣으면서 상처를 내는 듯한 방식이 부정의 메시지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매력으로 느껴졌다. 작업을 지속하며 주변에서 왜 먹과 한지를 고집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으며 묘한 감정이 들 때도 있었다. “서양화 전공자에겐 왜 유화물감을 사용하는지 묻지 않으니까요.”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10대에는 한국적인 것은 꼭 버려야 할 관습으로 교육받았다는 점이다. 서구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의식이 지배하던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2022년 일민미술관에서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전시가 열리는 등 최근 한국화의 재조명이 시도되고 있다. 이것이 미술 시장적 측면인지, 문화적인 것인지, 한국화에 한정된 흐름인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박웅규는 한국화의 재료와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 주제에 맞는 방식을 선택할 뿐이다.
“부정한 것들을 그리면서 치유를 도모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이번 송은 전시 작품 중에는 광배와 더불어 동그라미가 많습니다. 한 작품당 동그라미 27개를 넣어 그렸고, ‘더미’ 연작과 같은 숫자인 총 108개 동그라미가 네 작품에 들어가 있죠. 이렇게 강박적으로 숫자를 세서 일부러 불편하게 그리는 것은 일종의 수행입니다. 싫다고 느끼는 것을 통제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지요. 벌레가 아니라 벌레를 통해 느끼는 태도와 감정이 중요하며, 그 부정적 감정을 조형화합니다.”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의례를 위한 창자> 전시를 열었던 지난해는 작가로서 최초로 작품을 판매한 의미 깊은 해이기도 했다. 박웅규는 드디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가 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례를 위한 창자>는 그가 기피하는 동물의 내장 음식을 소재로 삼았다. 내장 음식의 부정성을 절대적인 모습으로 제시하고, 저급한 것과 성스러움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종교는 부정한 것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항상 실제로 보이는 존재에서 작업을 시작했고, 관련 자료를 공부하면서 발전시키는 방식을 택해왔다. 요즘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고미술·종교화 컬렉션을 즐겨 보고 있는데, 재미있는 이미지를 찾으면 작품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정말로 원하는 작업을 할 거예요. 단단한 형태에 더러운 질감을 부여하며,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넘나드는 새로운 조형 언어를 추구하는 그런 작업 말입니다. 앞으로 내 작품이 새 조형 언어를 대변하기를 희망합니다.”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그는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원하는 작업이 흐릿하게 보이고 있으니 그는 그것을 붙잡아 꾸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현실적인 이유로 화가의 꿈을 포기할지 고민하던 1987년생 작가가 목표를 향해 꿈틀거린다. (VK)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이소영
- 사진
-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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