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찬란한, 비토리아!
지금,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얼굴, 몸 그리고 이름. 비토리아 체레티와 <보그 코리아>의 세 번째 만남.
사진가 루이지와 이앙고는 LA 다운타운의 브로드웨이 시어터 디스트릭트에서 비토리아 체레티(Vittoria Ceretti)를 촬영했다. 이 거리는 미국 국가 사적지에 등록된 최대 규모의 첫 극장 밀집 지역으로, 1910년부터 1931년 사이에 개관한 극장을 비롯해 웅장하고 유서 깊은 아르데코풍 건물이 거리 양옆으로 이어진다. 야외 촬영을 위한 베이스캠프는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시어터 건너편 주차장에 마련했다. 스태프들은 오전 7시에 모이기 시작했고, 오전 9시가 되자 체레티가 길고 늘씬한 몸을 구부려 메이크업 트레일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이, 가이즈!” 스태프와 인사를 나눈 그녀는 사진가부터 찾았다. “루이지와 이앙고에게 인사하고 올게요!” 최근에 본 가장 예쁜 얼굴이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번 화보는 2017년과 2019년에 이어 체레티의 세 번째 <보그> 커버가 될 것이다. 단, 촬영을 무사히 마친다면 말이다.
그리고 순탄치 않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매정하도록 화창한 날씨는 무더웠고, 열정적인 사진가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길거리에서 끝도 없이 셔터를 눌러댔으며, 높고 뾰족한 하이힐 외에 다른 신발은 허용하지 않았다. 모델에게 하이힐은 마라톤 선수의 러닝화 같은 거지만, 사이즈가 작다면 얘기가 다르다. 촬영이 반 정도 진행됐을 때 결국 체레티의 아름다운 올리브색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작은 한숨과 함께 목멘 속삭임이 들렸다. “발이 너무 아파요…”
촬영 내내 서로 그르렁대며 스태프를 몰아붙이던 듀오 사진가도 그녀가 납작한 로퍼를 신고 카메라 앞에 서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델이 눈물을 보이는 건 촬영장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마음 아픈 상황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고 나서야 스태프들은 그녀가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일을 겪고 있는지, 촬영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휴식 시간조차 반납한 채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곤 한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포즈를 취하는 틈틈이 분무기와 빗으로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직접 손보느라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무자비한 LA의 햇볕이 촉촉하게 적셔놓은 헤어를 팜스프링스의 사막처럼 금세 말려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신인 때처럼 헤어·메이크업을 직접 고치면서 하는 거 어때?” 루이지의 제안에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오케이, 좋아요!”
문득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녀의 소탈한 캐릭터에 반했다는 가십 기사가 떠올랐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모델라이저’ 디카프리오와 체레티의 로맨틱한 기류에 대한 기사는 지난해 8월 말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체레티와 만나기 직전까지 지지 하디드와 염문을 뿌렸지만, 49세 영화배우의 연애사를 지켜본 지인과 소식통은 이번엔 확실히 다르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온통 비토리아 생각뿐이에요. 아름다울 뿐 아니라 굉장히 현실적이고, 공통점도 많다고 하더군요.” 레오의 영향력은 할리우드 산업을 뛰어넘는 수준이지만 그의 명성 따윈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도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자신과 레오의 관계를 ‘모델과 무비 스타’의 만남이라고 놀릴 정도죠. 레오는 굉장히 신선하다고 여겨요.” 자신보다 두 배는 오래 산 연인과 대화가 통하기는 할까 의심스럽지만, 레오에 따르면 체레티는 ‘애늙은이’여서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애늙은이’ 같다는 표현은 꽤 설득력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도회적이고 세련된 얼굴로 자신이 시골 출신이며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밀라노에서 90분 거리에 위치한 브레시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알프스 고원의 작은 마을인 가르도네 발트롬피아에서 성장한 체레티는 어린 시절 가르다 호수 근처 별장에서 매년 여름을 보내곤 했다. “어릴 땐 스마트폰도 없었으니 산과 들로 다니며 놀 수밖에 없었어요. 매일 아침 7시에 사촌이 깨우러 오면, 우린 정원에서 닭을 키우는 동네 아주머니 일을 함께 돕곤 했답니다. 저물 무렵이면 도와준 대가로 직접 기른 채소를 주셨죠.”
아침마다 어린 그녀를 깨운 이름 모를 사촌은 커리어의 시작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2년 열네 살의 체레티는 사촌과 함께 장난삼아 이탈리아의 모델 콘테스트인 ‘엘리트 모델 룩’에 지원서를 보냈고, 최종 후보까지 오르는 바람에 엉겁결에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었어요, 정말 장난삼아 보낸 거였다고요.” 평생 직업으로 진지하게 고려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촬영장에 가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매일 수십 군데 캐스팅을 보러 다녔다. 뉴욕 그리니치빌리지 뱅크 스트리트의 사진 스튜디오 앞에서 또래 모델들과 함께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던 시절, 그녀의 포트폴리오 북에 있는 사진이라곤 정면 얼굴을 찍은 헤드샷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혹은 상반신을 찍은 보디 샷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렇다 할 포트폴리오가 없던 2014년부터 시작된 돌체앤가바나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2015년 모델스닷컴 톱 50 리스트에 들면서 모델 커리어는 본격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가 그녀의 클래식하고 전형적인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낸 건 아니다. 자신이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그녀를 발탁하는 캐스팅 디렉터 피에르조르조 델 모로(Piergiorgio Del Moro)에 의하면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는 그녀를 지지하는 만큼 동일한 빈도로 그녀를 거절하기도 했다. “비토리아의 사진을 보여주면 너무 전통적인 미인상이라고 난색을 표했죠. 나는 그게 그녀의 장점이라고 보지만요. 그녀는 이탈리아 영화에서 볼 법한 아름다움의 전형입니다. 리처드 아베돈이 촬영한 모니카 벨루치 같기도 하고 비르나 리지 혹은 모니카 비티가 떠오르죠. 프랑스의 상징인 마리안느처럼 이탤리언 뷰티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한 2016년 7월호 <보그> 이탈리아 커버가 공개되자 모든 것이 훨씬 순조로워졌다. 2017년 S/S 시즌 알렉산더 맥퀸, 펜디 광고 캠페인에 등장했고 그해 일본 <보그>와 미국 <보그>, 프랑스 <보그>, 그리고 <보그 코리아> 커버를 찍고 2018년 영국 <보그>까지 섭렵하며 ‘보그 빅 4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떨떨해요. 부킹 소식을 듣고도 믿을 수 없었거든요. 고작 열여덟 살인 내가 커버에 등장한다고?” 2024년 현재 체레티는 전 세계 <보그> 커버에 스물세 차례 등장했으며 <보그 코리아> 4월호는 그녀의 스물네 번째 <보그> 커버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패션쇼에 선 횟수도 400회가 넘는다. 페라가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시밀리언 데이비스는 단 하나의 수식어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현세대의 슈퍼모델.” 구찌의 사바토 데 사르노는 그녀를 볼 때마다 감탄한다. “우아하고 동시대적이죠. 놀라워요. 아이코닉한 패션 이미지와 엔터테이너라는 공인의 위치 사이에서 시대를 정의하는 이탈리아인입니다.” 델 모로는 은근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묻어나는 투로 말했다. “처음엔 지나치게 완벽한 아름다움 때문에 거절하던 하우스도 이제 그녀와 일하려고 줄을 선답니다.” 그러나 처음 샤넬 뷰티 캠페인 모델이 됐을 때 사실상 논란은 종결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이 사건을 커리어의 정점으로 꼽는다. “에이전트에게 전화로 소식을 듣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떻게 내가 여기 오게 됐지?’라는 생각에 한동안 어리둥절했어요.” 2018년 1월에 공개된 첫 캠페인을 시작으로 그 계약은 지금까지 7년째 이어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세안하는 것을 소박한 뷰티 철칙으로 내세우는 그녀는 머지않아 샤넬 뷰티에서 1990년대 캘빈클라인의 크리스티 털링턴이나 2000년대 에스티 로더의 캐롤린 머피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내적 우아함이 겉으로 스며 나오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쨌든 잘 관리하는 것도 확실히 도움이 되니까요.”
이제 그녀의 모델 경력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런웨이의 체레티는 더없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과연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직업인지에 대해 한동안 확신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자 이 일에 맹렬히 빠져들었고, 지금까지 이룬 성공 덕에 이제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됐다. 누구든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고 와서 11시간 동안 촬영을 하라고 해도 거절할 수 있다. “‘뭐라고요? 나도 내 삶이 있어요. 반려견도 있고 가족도, 친구도 있고 내 계획이 있다고요’라고 말할 거예요. 이제 숨 좀 돌려가면서 하려고요.” 하지만 패션 위크 기간에 워라밸을 따졌다가는 잊힐 게 뻔하기에, 패션 위크 직전에는 한 달 동안 충분한 휴식기를 가진다. “그래도 전 패션 위크가 좋아요. 싫어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모델들도 종종 보지만, 음악과 사람들에 둘러싸이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그 순간, 즉각적인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의외의 포인트는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파티 걸 타입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에 비하면 어딘가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좀 더 자주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포트폴리오에 가깝다. “가끔 사람들은 내가 영어를 못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소셜 미디어도 잘 안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냥 내가 그런 걸 즐기지 않는 것뿐이에요.” 무료 숙박을 제공할 테니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해달라는 호텔의 제안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 전 ‘그냥 돈 낼게요’라고 말해요. 사람들한테 내가 어디 가는지 떠벌리고 싶지 않아요. 전 사생활을 지키는 게 중요한 타입이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사람들 대부분이 쉽게 지워버리는 과거를 그대로 둔다는 점이다. 2020년 팬데믹으로 패션계가 강제 휴식기에 들어갔을 때 체레티는 디제이 겸 컬트 일렉트릭 뮤직 듀오 ‘테일 오브 어스’ 멤버 마테오 밀레리와 결혼식을 올렸다. TMI를 덧붙이자면, 체레티보다 열 살 연상인 밀레리는 세계적인 아이웨어 제조사 에실로룩소티카 그룹 CEO 프란체스코 밀레리의 아들이다. 이비자섬 남서쪽의 작은 마을 에스 쿠베스에서 프라이빗하게 결혼식을 치른 그녀는 2020년 6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늘부터 영원까지”라는 문구와 함께 결혼 사진을 올렸지만 둘은 3년 만에 조용히 이혼했다. 포스팅이 많지 않기에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면 이혼 전 둘이 함께 있는 사진, 1주년 기념사진과 웨딩 포스팅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시 브로드웨이 거리로 돌아와서,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체레티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체레티는 며칠 뒤 일요일에 열리는 오스카 시상식 애프터 파티 참석을 앞뒀고 샤토 마몽에 머물고 있었다. 아직 공식적인 자리에 함께한 적이 없기에 레드 카펫에 ‘그 남자’와 같이 등장할지 모두가 궁금해했지만, 결국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체레티는 다른 모델들처럼 애프터 파티에 친구 모델들과 함께 참석했다. 복슬복슬한 프린지 슬리브 덕에 메종 알라이아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양처럼 순수하고 얌전해 보였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녀 곁에 누가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본인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니까. (VK)
- 포토그래퍼
- 루이지 & 이앙고(Luigi & Iango)
- 패션 디렉터
- 손은영
- 패션 에디터
- 허보연
- 글
- 송보라
- 모델
- 비토리아 체레티(Vittoria Ceretti@The Society using Chanel Beauty)
- 헤어
- 곤 기노시타(Gonn Kinoshita@The Wall Group)
- 메이크업
- 실 브루인스마(Sil Bruinsma@The Wall Group)
- 네일
- 마리사 카마이클(Marisa Carmichael@Forward Artists)
- 캐스팅
- 버트 마티로시안(Bert Martirosyan)
- 프로덕션
- 박인영(Inyoung Park@Visual Park)
- SPONSORED BY
-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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