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우리는 이미 그것을 OOO으로 부르고 있어요
손석구를 사랑하는 지인은 그날 휴가를 냈다. 영화 <댓글부대> 개봉날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손석구를 영접하고 싶었던 그는 행복했다고 말했다. 손석구 팬에게 <댓글부대>는 즐거운 영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손석구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무색할 만큼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손익 분기점은 195만 명. 그런데 개봉한 지 일주일이 지난 4월 3일 현재 누적 관객 수는 약 61만 명이다. 공개 후 평단과 관객의 고른 호평을 받았고, 배우 손석구가 ‘장도연의 살롱드립’과 ‘유브이 방’ 등의 유튜브 채널까지 나가며 홍보에 힘쓴 작품이라 더더욱 의외의 결과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개인적으로는 ‘댓글부대’라는 제목, 동명의 원작이 관객에게 기대하게 만든 것과 영화가 보여준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원작과 다르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게 오프닝 시퀀스다. 지난 2016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이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요구 집회의 한 장면이 보인다. 손석구가 연기한 주인공 임상진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건, 한국의 역사에서 첫 촛불 집회는 언제 이루어졌으며, 그 집회를 제안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에 따르면 과거 ‘앙마’라는 닉네임의 16세 PC 통신 이용자가 있었고, 그가 PC 통신 유료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제안한 게 첫 촛불 집회였는데 그가 어른이 되어 2016년 그 집회도 제안했다. 그러고는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실화’라는 영화 속 자막이 뜬다. 어딘가 도시 전설처럼 들리는 흥미로운 ‘썰’이다. 그런데 실제 최초의 촛불 집회는 2008년에 열린 효순-미선이 추모 집회였고, 이 집회를 제안한 주인공의 닉네임이 ‘앙마’였다(영화를 보고 나온 후 검색해봤다). 즉 영화가 오프닝에서 보여준 이 썰에는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것이다. 원작에서도 ‘거짓과 진실이 섞여 있을 때 진짜 거짓보다 더 강력한 거짓이 된다’는 경구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였다. 나는 이 오프닝이 ‘영화는 영화만의 거짓과 진실을 섞은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내세우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이 영화가 영화만의 상상력으로 보여준 건 무엇이었을까.
‘댓글부대’란 용어는 그 자체로 정치적 논란을 담고 있다. 이 말이 생겨난 이유가 된 사건이 대부분 정치적이었기 때문이다. 2006년의 한나라당 매크로 여론 조작 의혹 사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가정보원과 사이버 사령부가 직접 댓글부대를 운영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불거진 여론 조작 사건, 그리고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까지. 장강명 작가의 원작은 ‘댓글부대’란 용어의 성격을 피해 가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에 따라 나누어진 각 진영의 가장 취약한 지점은 무엇인지, 또 그에 따라 각 진영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사실적으로 상상했다. 그러면서 이런 여론 조작을 이끈 실체에 대해서는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기이하게 상상했다. 덕분에 독자 입장에서는 상상의 여지가 많았고, 그래서 누구나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상상까지 가능했다. 그런데 영화 <댓글부대>는 ‘댓글부대’란 용어의 성격을 축소했다. 이 영화에서 댓글부대의 공작을 이끄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대기업이다. 기업이 이익을 위해 댓글 공작을 펼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댓글부대’라는 용어와 원작이 담고 있는 ‘정치적 공작’의 틀은 아예 거론되지 않는다.
이러한 각색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먼저 이 영화가 정치적 공방에 휘말리는 일을 피할 수 있다. 특정 진영 사람들에게 비호감이 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댓글부대가 거론된 실제 사건이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일들이니, ‘뒷북’ 우려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을 읽지 않았어도, 댓글부대의 역사를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다소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 역사를 모르는 관객들에게도 ‘대기업이 여론을 조작하려 한다’는 건 뻔한 일로 여겨진다. 당장 인스타그램 돋보기창만 열어봐도 희한한 제목으로 낚시질을 하는 바이럴 콘텐츠가 수두룩하다. 이런 활동을 대기업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를 대신 해주는 외주 대행사도 많다. 물론 영화가 보여주는 건, 그러한 마케팅 활동으로 볼 수 없는 ‘여론 조작’의 형태지만, 그 주체를 대기업으로 못 박는 순간 충격의 정도가 현저히 낮아지는 것이다. 과장하자면 이렇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마케팅’으로 부르고 있어요.”
영화 <댓글부대>가 영화만의 상상력으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려 했다면 용기를 냈어야 했을 것이다. 원작은 언제 어디서든 여론을 조작하려는 세력이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끝났다. 바로 그 가능성에 기반해 영화 또한 정치적인 분란의 가능성을 애써 피하지 말고, 어느 정도는 품고 견딜 각오로 상상했으면 어땠을지. 영화의 작고 좁은 상상력은 이 영화의 ‘열린 결말’이 제시하는 해석의 가능성도 좁혀놓았다.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로 모든 게 거짓말로 규정되는 데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주인공이 쓴 글의 실체도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불필요한 논란을 피해 가려 애쓰다가 결말에서도 에둘러 가려고 한 듯 보인다고 할까? 호기로운 오프닝에 비하면 영화 <댓글부대>는 용기도, 매력도 부족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포토
- 영화 '댓글부대'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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