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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민터가 보여주는 여성의 몸

2024.04.29

마릴린 민터가 보여주는 여성의 몸

미국의 다학제적 예술가 마릴린 민터.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연 그녀는 여성의 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있는지 묻는다.

뉴욕 작업실에서 만난 마릴린 민터는 내내 유쾌한 기색이었다.

미국의 예술가 마릴린 민터(Marilyn Minter)는 지난 40여 년 동안 대중문화에서 여성성을 표현할 때 활용되는 환상, 열망, 욕망을 질문해왔다. 초기 광고와 패션, 포르노에서 차용한 이미지 작업을 넘어 입술, 속눈썹, 체모, 머리카락 등을 확대한 그림을 최근까지 선보였다. 마릴린 민터는 리만머핀 서울에서 4월 27일까지 열린 개인전 <마릴린 민터>를 통해 한국 관람객과 처음 만났다. 전시와 연계해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아트 바젤 홍콩에도 참여했다. 아트 바젤 홍콩에 참여한 후 서울에 온 작가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평생 아티스트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살아온 만큼 전투적인 여성일 거라 지레짐작했지만, 민터는 매우 부드러운 미소와 우아함을 지녔다. 물론 이 태도는 여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서울 전시에서는 여성의 입과 입술 이미지를 매혹적으로 묘사한 신작 회화 ‘White Lotus’(2023), ‘Gilded Age’(2023)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여성의 얼굴, 입술, 치아, 화려한 네크라인 등을 클로즈업한 그림은 종종 사진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물과 증기를 활용한 사진을 촬영한 후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이미지를 만든다. 그 후엔 붓과 손등을 활용해 에나멜 페인트를 여러 겹으로 칠하는데, 화려함과 에로티시즘에 대한 독특한 개인적인 해석을 보여준 그림은 오랜 수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작가는 1948년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태어나 1970년 플로리다 대학교 게인즈빌 캠퍼스에서 학사 학위를, 1972년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뉴욕으로 이주한 작가는 사진과 회화 분야의 기술을 활용해 누드, 음식, 패션을 소재로 평범한 장면을 포착했다. 1990년대 초부터 예술적 명성을 얻으며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휴스턴 현대미술관에서 브루클린 미술관까지 순회 전시한 <Marilyn Minter: Pretty/Dirty>는 지금도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민터는 여성의 신체에 초점을 맞춘 회화, 사진, 비디오 작품을 통해 미국 문화의 매력을 예술계에 알렸다. 약물중독으로 주로 실내에서 지낸 자신의 어머니를 찍은 사진 시리즈 ‘Coral Ridge Towers’는 플로리다 대학 재학 중인 1969년에 발표한 후 20여 년 넘게 잠재운 작품이었다. ‘푸드 포르노’처럼 민터의 이미지는 언제나 강력하고 긴박감 넘치는 반면, 어머니의 자전적 사진은 벗겨진 매니큐어, 빠진 머리카락 등 가감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 2006년 공공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 첼시 갤러리 지구의 광고판에 실린 ‘Dirty Heel’(2008)은 ‘화려함이 사라진’ 순간 포착된 이미지로 고정된 아름다움에 대한 ‘저항’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웅덩이 사이로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샌들을 신고 물웅덩이를 세차게 차는 영상은 작가의 시그니처라 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더티 리얼리즘’은 이미 16세기 말 카라바조가 천사와 순례자의 발에 진흙과 때를 묻힌 그림 이후로 계속된 방식이지만, 1983년 문학 잡지 <Granta>에서 ‘더티 리얼리즘’이라 표현하면서 좀 더 대중화됐다.

민터가 오랜 전통의 미술사에 팝 아트적 화려함을 얹어놓은 셈이다. 모델이 땀을 흘리는 순간, 화장이 지워지거나 립스틱이 묻어 있는 치아, 주근깨가 있는 피부, 환하게 웃는 입술 사이로 치아 교정기가 그대로 노출된다. 민터는 평소 우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던 결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모호한 액체, 체액, 귀금속, 증기와 스프레이 페인트의 층을 통해 표현된 그림과 사진, 영상 작품은 젖어 있거나 거칠며, 반짝이고, 황홀하며, 때로 역겨울 정도로 노골적이다. 에나멜 페인트로 섬세하게 그린 이 특별한 기술은 미술사에서 민터를 독특한 위치에 서게 만들 것이다.

포토리얼리즘 회화와 성적으로 충만한 사진에서 민터는 피사체를 추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적인 기준’에 대해 질문하도록 이끈다.

‘Lady Gaga’(2021-2023), Enamel on metal, 182.9×121.9cm

사진, 회화, 영상, 설치 작업을 통해 ‘여성’에 대해 질문해온 작가다. 특히 ‘신체’를 주요 주제로 작업해왔다. 서울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회화 역시 여성의 입과 입술, 치아 이미지를 화려하게 드러낸 작업들이다. 리만머핀 서울의 전시 공간이 그리 넓지 않다. 이런 작업을 집약적으로 선보인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갤러리에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리만머핀의 큐레이터가 제시한 비전을 전적으로 믿으며 전시를 맡겼고, 역시 그들은 멋지게 해냈다. (피사체 중 한 명은 릭 오웬스의 부인이자 세계적인 패션 아티스트 미셸 라미(Michèle Lamy)다. “미셸이 젊어 보이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마릴린 민터는 미셸과의 대담에서 그녀를 찍고 싶었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사진과 회화를 모두 전공했으며, 인물을 포착한 일련의 사진을 더 큰 규모의 회화로 옮겨내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확립했다. 당신의 회화는 사진을 토대로 한다. 시그니처가 된 여성의 신체 일부를 극단적으로 확대해 잘라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언제부터 이런 작업을 했나?

1990년대 이후 포토샵이 등장했다. 나는 사진 촬영 후 포토샵을 통해 사진 이미지를 완성한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내가 사진을 촬영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그림에 사용된 사진은 다양한 사진의 일부를 자르는 방식을 선택했다.

특히 화면을 가득 채울 만큼 과감한 클로즈업을 택했다. 본능적이고 생생하다. 어떤 이는 충격을 받고, 어떤 이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여성의 신체, 특히 입, 입술, 치아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탐구하고, 문화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에 반응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여성의 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있나?

‘Lucent’ 작업을 보면 아름다움의 기준을 고려하게 된다. 최근 달라지긴 했지만, 사회는 주근깨가 있는 여성을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삼아오지 않았다. 왜 주근깨에 주목하나? 아울러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흘러내리는 땀, 체액, 다양한 빛깔의 체모 등도 마찬가지다.

나는 주근깨로 뒤덮인 채 자랐다. 하지만 상업광고 이미지에서 주근깨를 본 적은 없다. 예상치 못한,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현실 요소를 강조하는 것이 좋다. 우리 모두는 ‘결점’을 갖고 있으며, 이는 축하받을 일이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텍사스주 휴스턴 현대미술관에서 시작해, 콜로라도주 덴버 현대미술관, 뉴욕주 브루클린 미술관으로 순회한 회고전 <Marilyn Minter: Pretty/Dirty>로 학계의 인정과 호평을 받았다. 이 제목이 민터의 세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추함은 무엇인가? 둘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가?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와 <추의 역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핵심은 복잡성을 용인하고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종종 같은 이미지에 두 가지 상반된 아이디어를 도입한다. 그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진은 회화 작업의 밑바탕이 된다. 그렇기에 ‘파운드 픽처스(Found Pictures)’라고 부르기도 한다. 촬영 방식이 궁금하다.

나는 ‘증기와 서리의 신’과 함께한다. 작업을 진행할 때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 반응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델을 촬영할 때 나와 모델 사이의 유리는 물과 같은 불확실한 물리적 요소를 도입하는 장소로 사용한다. 그리고 논다! 이미지를 충분히 촬영하고 결과물이 만족스러우면 편집 과정에 돌입한다. 보정이 필요 없는 이미지는 사진 에디션으로 만들고, 나머지 이미지는 내 그림에 넣을 조각이나 요소를 찾기 위해 채굴한다.

말한 것처럼 촬영 방식 중 유리판을 활용하는 것이 눈에 띈다. 김이나 서리, 물방울 등을 활용하는 방식은 어떻게 착안했나? 유리판은 일종의 물리적 장막이기도 하다. 유리판을 활용함으로써 ‘내러티브’를 약화시킨다고 말한 적 있다. 어떤 의미인가?

내가 사는 뉴욕은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거리 등 도시 곳곳에 오래된 광고가 부착되어 있다. 때때로 이런 이미지가 젖거나 금이 가거나 낙서로 훼손된 것을 보고 삶의 층위를 작품에 활용하고 싶었다. 이런 균열은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왜곡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손때와 완벽한 아름다움이 하나의 이미지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 촬영 후에는 에나멜을 활용해 덧바르는 방식으로 조각처럼 레이어를 쌓는다. 브러시 외에도 손바닥이나 손가락으로 메이크업하듯이 문지르는 방식도 있다.

작품을 그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작은 작품은 6~9개월, 큰 작품은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말한 대로 붓으로 에나멜 페인트를 바른 다음 손가락이나 손바닥으로 페인트를 두드리고 조작해 색을 혼합하고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만든다. 색상의 투명도는 내 그림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원하는 수준의 깊이, 풍부함, 생동감을 얻기 위해 여러 겹의 페인트를 칠한다. 오일이나 아크릴로는 그런 풍부함을 얻을 수 없다.

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비디오 작업 ‘Green Pink Caviar’는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여성 예술가들이 성적 이미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현대사회, 특히 ‘예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나?

계속 탐구해야 할 영역이다. 더 많은 여성이 욕망과 섹슈얼리티를 주체적으로 탐구하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적 없지만, 많은 여성이 성적 주체성을 가지려고 할 때 새롭거나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고 본다.

‘Gilded Age’(2023), Enamel on metal, 71.1×91.4cm, LM36419

‘Gilded Age’(2023)에는 살짝 벌어진 검붉은 입술 사이로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금색 교정기의 치아가 드러난다. 흥미롭게도 작품의 모델 미셸 라미는 1979년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자신의 이름을 딴 의류 브랜드 라미(Lamy)를 설립한 이다. 하필이면 미셸 라미를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치아 등으로 표현했다. 미셸 라미는 성공한 인물로 완벽한 미모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는 이들에게 굳이 노년임을 드러내는 치아를 클로즈업한 이유는 무엇인가?

거의 10년 전에 이 사진을 찍은 이유는 그녀가 선구자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대담하고 아름다운 노년의 여성을 기록하는 데 관심이 많았는데, 그녀는 목록의 맨 위에 있었다. 제작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은 작품을 지금 관람객에게 보여줄 수 있어 정말 기쁘다. 미셸 라미가 누군지 몰라도 작품의 가치를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여기지만, 추가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페미니즘 미술 토론회 ‘미술과 저항, 브루클린 미술관에서(Art and Protest at the Brooklyn Museum)’에는 마돈나와 함께 출연했다. 여자 패널 네 명과 나눈 대화를 통해 ‘연대’를 떠올렸다. 여전히 뉴욕 여성 커뮤니티에서 이 연대감은 공고한가?

오랫동안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젊은 배드 보이 아티스트들이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운데 서로를 죽이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같이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봐왔다. 드디어 여성들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모습을 봐서 영광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여성 연대는 이제 기대할 만하고 환상적인 일이다.

당신을 예술가의 길로 이끈 이들은 누구인가? 혹시 어머니가 그 출발점인가? 마약을 했던 어머니의 초상 ‘Coral Ridge Towers’ 연작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속 어머니의 눈빛을 보면서 예술적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당신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예술가가 되고 싶고, 될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다른 것은 잘하지 못했다. 위대한 예술은 고통에서 나온다고 볼 때 내가 예술가가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 짐작하건대 포르노그래픽 작업으로 인해 소속 갤러리에서 쫓겨나고 여러 미술 잡지에서 혹평을 받기 시작한 때일 것 같다. 힘들 때 자신을 어떻게 일으켰나?

정해진 공식은 없었지만 내가 가진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계속 일했다. 그렇다고 크게 어렵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예술 작품을 만들어놓고도 공개하지 않거나 오해를 받는다는 것은 끔찍하다. 나 역시 몹시 어려웠고, 어떻게, 왜 계속했는지 명확한 답은 모르지만 다른 일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해왔다. 10대 때부터 활동가의 면모를 보였고, 1976년 플로리다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후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했다. 이때는 베트남 반전운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였다. 스스로를 사회 활동가로 인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당신이 꿈꾸던 세상은 어느 정도 실현됐나?

분리된 미국 남부에서 자란 것이 나를 운동가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런 불평등한 세상에 살고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끔찍했다. 세상은 점차 나아지는 것 같다. 매우 느리지만 진전이 보인다. 항상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관능적인 회화, 사진, 비디오는 미국 대중문화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패션 산업에서 발생하는 섹스와 여성 신체의 상업화에 대한 비디오 작업은 지금도 회자된다. 특히 ‘Still from Smash’에서 화려한 하이힐에 인조 발톱이 눈에 띄는 발로 유리를 산산이 부수는 장면은 늘 봐도 통쾌하다. 무엇을 부수고 싶었나?

가부장제 타파의 상징 같은 그런 말을 할 줄 알지만, 사실 이 슬로모션의 액션을 보는 행위 자체가 흥미로웠다. 은빛 액체 위를 하이힐을 신고 미끄러지는 모델의 기대와 불확실성이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또한 움직임의 디테일을 포착하기 위해 하이엔드 특수 카메라를 사용했고, 결국 모든 것을 느리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세히 보는 감각적인 경험에 중점을 뒀다. 또한 영화 <오펜하이머>로 두 번째 오스카상을 수상한 루드비히 고란손(Ludwig Göransson)이라는 놀라운 음악가와 함께 작업했다! 당시에는 그가 얼마나 성공할지 몰랐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영상을 더 멋지게 만들었다.

유리, 그래피티, 상업광고, 의류와 뷰티 제품을 홍보하는 작업도 종종 해왔다. 개인 작업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지만, ‘아! 마릴린 민터의 것이구나’라고 느껴진다. 일종의 ‘마릴린 민터의 세계’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제 막 마릴린의 세계에 들어온 한국의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와,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다만 사람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러티브에 알레르기가 있는 편이고, 새로운 시청자가 작품에 접근하게 되어 기쁘고, 앞으로 이어질 대화가 기대된다.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천수림(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이현우
COURTESY OF
LEHMANN MAUP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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