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을 불러온 뉴발란스의 미출시 로퍼
힐리스가 부활하기 딱 좋은 때입니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바퀴 달린 운동화 말이에요. 허풍 떠는 건 아닙니다. 지금 패션계는 어떤 신발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거든요. 이런 흐름은 최근 이자벨 마랑의 아이코닉 슈즈이자 어글리 슈즈의 원조 격인 베케트(Bekett)가 다시 급부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뉴발란스가 내놓은 한 ‘로퍼’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로퍼와 스니커즈를 합친 생김새, 뉴발란스 1906L입니다. 로퍼의 스마트함과 운동화의 캐주얼함을 겸비한 신발이죠. 처음 등장한 것은 준야 와나타베의 2024 F/W 남성복 컬렉션에서였는데요. 지난 2월 생동감 넘치는 그린 컬러에 이어 최근 등장한 그레이/실버 버전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팟캐스트 진행자 크리스 블랙(Chris Black)은 트위터에 1906L 사진과 함께 ‘이건 멈춰야만 해요(This has to stop)’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죠. 애초에 온라인상에서 이런 논쟁을 일으키기 위해 제작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사실 1906L은 그간 패션계가 내놓은 기상천외한 신발들에 비하면 무난한 축에 속합니다. 소재나 텍스처가 어떻든 적어도 우리에게 익숙한 실루엣이니까요.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브로그나 시몬 로샤의 거대한 발레리나 플랫폼에 비하면 양반인 수준이라는 거죠.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일과 삶, 복장의 경계가 모호해진 사회의 부작용 중 하나라고 다소 심각하게 해석하기도 합니다(하지만 이제 운동화를 신고 출근한 뒤 화장실에서 구두로 갈아신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신발이 등장할 때도 됐죠).
하지만 저는 다른 의견을 내놓고 싶군요. 우리가 흔히 ‘어글리해서 쿨하다’고 일컫는 종류의 멋은 패션계의 오랜 관습 중 하나라고요. 1990년대에도 푸마, 프라다 리네아 로사 같은 브랜드가 각각 네오프렌 발레리나 스니커즈나 곡선형 밑창이 달린 니하이 부츠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으니까요(벨라 하디드가 파리 패션 위크에서 론즈데일의 집업이나 푸치의 팬츠에 신었을 법한 신발들이죠).
쉽게 이야기하면 지금 이런 현상은 밈 문화와 스트리트 웨어가 합쳐지면서 더 큰 힘을 발휘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서 두 가지 마음을 품게 되죠. 외면하고 싶다가도 나도 모르게 끌리는 겁니다. 제 동료인 알렉스 케슬러(Alex Kessler)가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헤븐 슈즈를 신고 나타났을 때 몇몇 에디터가 모호한 표정을 지었던 것처럼요.
1906L의 정확한 출시일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2024년 하반기쯤이 될 거라고 추측할 뿐이죠.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요? 걱정 말고 스크롤을 내려보세요. 수많은 ‘하이브리드’ 신발들이 지루함을 달래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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