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플라스틱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자세
먹고, 바르고, 숨을 쉬어 미세 플라스틱으로 가득해진 나.
“글리터는 막연한 위기를 맞이했어요.” 지난 3월호 미국 <보그>에 실린 뷰티 칼럼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대목이었다. 빛을 받으면 환상적인 분위기가 발산되는, 뷰티 월드에서 관습에 대한 초월과 매혹을 상징하던 글리터의 종말이라도 오는 걸까?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난해 10월, 유럽연합이 미세 플라스틱 글리터의 금지령을 공표했기 때문이다. 2027년 샤워 젤, 클렌저에 글리터를 함유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며 2035년부터는 모든 상품에서 글리터 사용이 금지된다. 태평양 수면으로부터 10km 아래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 에베레스트의 정상처럼 인적이 닿지 않는 곳조차 입자가 발견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마땅한 처사다. 동시에 비극적이기도 하다. 글리터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 영롱함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는 볼 수 없는 밋밋한 미래가 코앞으로 닥쳐오고 있으니까. 또 다른 비극은 플라스틱 지옥으로 변해가는 환경뿐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이 축적되는 우리 몸속마저 암담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근길에 반드시 동반해야 하는 커피는 텀블러에 담아 마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분과 영양제 섭취를 위해 생수병을 휴대하고 일회용 컵도 빈번하게 사용한다. 아이섀도는 생략하지만 최근 유행인 은은한 펄을 함유한 플럼핑 립글로스를 틈틈이 바르고, 버스 창문을 열어 도심의 공기를 듬뿍 들이마시고, 야근 후 귀가해서는 심신을 달랜다는 목적으로 배달 음식을 먹는다. 화장품에서 나오는 마이크로 비즈 파편, 깔고 앉은 폴리머 쿠션의 의자,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합성 마이크로 섬유와 자동차 타이어, 포장재까지. 미세 플라스틱의 배출물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 불현듯 누군가 나의 일상에서 들이켠 그 작은 입자의 총량을 측정한다고 가정하면 과연 그 결과가 듣기 두려울 정도다.
올 초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생수 1리터에 포함된 나노 플라스틱 조각이 평균 약 25만 개. 나노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보다도 더 작은 사이즈로, 이 중 대부분은 다른 플라스틱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환경에서 자연 분해된 부차적인 것들로 DNA만큼 크기가 작다. 페트병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가수 분해된 조직은 물만 담아도 내부 벽면으로부터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오게 만든다. “플라스틱은 혈액과 태반, 신체 조직까지 침범했습니다. 우리 눈에 닿는 모든 곳에 있다고 봐야죠.” 러트거스 뉴저지 주립대학교의 약리학 및 독성학 부교수 피비 스테이플턴(Phoebe Stapleton)은 설명한다.
WHO가 지금까지 분석한 미세 플라스틱의 위험성은 크게 세 가지. 미세 플라스틱이 장기에 붙어 장기적으로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미세 플라스틱에 붙어 다니다가 분해되면서 첨가된 가소제가 나오며 독성 물질이 배출되는 것, 그리고 미생물이 달라붙어 몸속으로 들어오면 감염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지난 3월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피플>에서는 최근 인간 뇌의 내부에서까지 미세 플라스틱을 발견했다고 밝힌 튀르키예 과학자를 비롯해 6개국 과학자들의 연구를 근거로 플라스틱 오염이 주는 잠재적인 건강 위협을 다룬다. 악성 뇌종양 조직의 깊숙한 안쪽에서도 입자가 발견되기도 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염증성 장 질환 환자의 대변에선 일반인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지난해 11월 발표된 하와이 대학교의 소규모 연구에서는 산모의 태반에서조차 미세 플라스틱이 점차 많이 발견되고 있음을 밝혔다.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심혈관계에 미세 플라스틱이 있는 사람들은 심장마비와 뇌졸중으로 인한 합병증의 위험이 더 크다. 혈관 벽에 달라붙은 지방 플라크(Plaque, 동맥 벽에 달라붙는 물질) 사이사이에 미세 플라스틱이 우리도 모르게 촘촘히 박혀 있어, 이 지방 덩어리가 동맥 벽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혈액의 흐름을 막는 것이다.
캐나다 기후 연구소 릭 스미스(Rick Smith) 소장은 “인체에 미세 플라스틱이 가득하다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밝혀진 것으로, 앞으로 인류의 중차대한 건강 이슈가 될 겁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암세포 성장을 촉진하고, 항암제 내성을 일으키며 혈관을 틀어막는다는 초현실적인 가설과 미세한 폐기물이 뇌 장벽을 통과한다는 상상에 대한 구체적 근거와 경로가 속속 나타나자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재앙처럼 느껴진다. 지구에 끼친 해악만큼 우리 몸으로 되돌려받는 건 아닌지 종말론적인 회의감에 젖는다. 피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걸까?
희망적인 사실 중 하나는 적어도 글리터의 멸종은 아직 오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비건 뷰티 브랜드 하프 매직(Half Magic)의 창립자이자 <유포리아> 시리즈 여자 주인공들의 메이크업을 창조한 아티스트 도니 데이비(Donni Davy)는 글리터에 대한 유럽연합의 규정을 오히려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규제는 혁신을 촉진할 거예요. 반드시 필요하고 궁극적으로 좋은 일이죠.” 1998년 설립된 샹테카이는 단 한 번도 미세 플라스틱 글리터를 사용한 적 없다. 화학 분야를 연구한 수석 제조사 제임스 뉴하우스(James Newhouse)는 붕규산 진주색소로부터 립스틱의 반짝임을, 천연 광물인 운모로부터 아이섀도의 펄을 만들어냈다. 지속 가능하게 채굴되며, 섬세하게 세공된 입자로 눈꺼풀이나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들어와도 배출된다. 자연에서 100% 분해되는 것은 물론이다. 목재 펄프에서 셀룰로오스를 추출해 작게 분쇄한 생분해성 글리터 역시 점점 더 많은 뷰티 브랜드가 도입 중인 대안이다.
체내에 쌓이는 플라스틱으로 생겨나는 건강에 대한 위협은 뻔하지만 지금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기다리기보단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는 방도가 최선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식수에 대한 방안부터 예를 들어보자. 전문가들은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수보다 여과된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비영리 미디어 단체 워터루프(Waterloop)의 설립자 트래비스 루프(Travis Loop)는 “간혹 수돗물 오염 사례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수돗물이 병에 담긴 생수보다 더 잘 관리됩니다. 상수도 설비는 수십 가지 오염원에 대해 지속적으로 검사를 받으며 엄격한 기준을 따르죠”라고 주장한다. 피비 스테이플턴 부교수 역시 수돗물 속 미세 플라스틱의 수치가 생수보다 적기에 나노 플라스틱도 더 적을 것이라 예상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는 방법은 1미크론 이하의 기공 크기를 지닌 필터를 활용하는 것. 물론 필터 자체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면 소용은 없다. 인증된 세라믹 또는 탄소 필터를 사용하고, 휴대해야 한다면 유리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물병을 추천한다. 누구나 24K 순금 병에 들어 있는 8,000만원짜리 생수인 ‘아쿠아 디 크리스탈로 트리부토 아 모딜리아니(Acqua di Cristallo Tributo a Modigliani)’를 마실 순 없으니까.
‘호모 플라스티쿠스(Homo Plasticus)’.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끊임없이 플라스틱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을 일컫는 신조어다. 플라스틱의 핵심은 사실상 불멸의 물질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성질은 자연에서도 체내 시스템에서도 예외는 없다. 그 입자가 부작용을 일으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이 축적되어야 하는지, 우리의 예상보다도 그 양에 가까워졌다면 시간이 촉박할 수 있다. <치명적인 독, 미세 플라스틱>의 저자 매트 사이먼(Matt Simon)은 인류의 미래는 이제 ‘플라스틱을 쓸 것인가, 버릴 것인가’와 같이 이분법적 접근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일회용 포장을 규제하고, 무너진 재활용의 경제성을 살려내고, 세탁기에 필터를 부착하는 등 일상에서 피부에 닿는 플라스틱의 종류를 최소화하는 것이 당장 체감되지 않더라도 위협을 유예하는 대책이 될 것이다.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어도 줄일 순 있다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희망일지 모른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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