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토록 도톰한 입술을 사랑하는가
더 크게, 더 도톰하게! 가슴에 관한 것이 아니다. 선 넘은 입술을 향한 우리의 욕망.
최근 나에게 ‘소소한’ 뷰티 습관이 하나 생겼다. 호화로운 스파에서 받는 마사지도, 침대에 누워서 보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아니다. 책상 위에 일렬로 배열해둔 신상 립글로스를 바르는 행위다. 입술에 미끄러뜨리는 순간 서서히 퍼지는 은은한 청량감은 웬만한 아로마 오일 효과 못지않다. 입술을 뒤덮은 도톰한 유리알 광택은 물론 플럼핑 기능으로 한층 살아난 볼륨까지. 본능적으로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마찰시키며 튕긴 뒤 거울 속 내 입술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윗입술의 볼륨, 지난해보다 미묘하게 흐릿해진 경계선과 살짝 처진 듯한 입꼬리가 눈에 들어온다. 일평생 무심했던 립 라이너에 관심이 쏠린 건 요즘 유행하는 립 메이크업에 스스로 체감하는 피부 노화가 한 스푼 더해진 결과다.
입술은 오늘날 뷰티 월드가 주목하는 스킨케어 영역이다. 강렬한 발색의 립스틱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촉촉하고 생기 넘치는 ‘동안 입술’에 대한 욕망은 로드(Rhode)의 ‘펩타이드 립 틴트’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었다. LG생활건강은 립 케어의 성장률을 고려해 ‘립세린’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SNS에서 인기몰이 중인 누텍스처 ‘바운시 립 트리트먼트’, 라 메르 ‘립 볼류마이저’, 새로운 컬러를 출시한 크리스챤 디올 뷰티의 ‘디올 어딕트 립 맥시마이저’, 바닐라코 ‘볼륨 립 플럼퍼’ 등 이름부터 벌써 통통한 입술을 연상시키는 신제품이 나온다.
소비자 인텔리전스 기업 스페이트(Spate)에 따르면 립 케어 관련 카테고리 검색이 미국에서만 전년 대비 17.5%가 증가했으며, 올해는 더 치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중을 짧게 만드는 것이 어려 보이는 입술의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박문수 문의원 대표 원장의 설명은 입술산을 높게 그리는 ‘오버 립’ 트렌드의 붐을 뒷받침한다. 이토록 지대한 입술 노화에 대한 관심, 글로시하거나 라인이 뚜렷한 립 메이크업 등으로 대표되는 Y2K의 지속적인 유행이 크고 풍부한 입술을 향한 열망을 부풀리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오버 립’을 검색하면 연관 키워드로 딸려오는 단어는 바로 ‘K-팝’ 또는 ‘K-뷰티’. 입술산 사이를 메우고, 높아진 입술 선에 맞춰 외곽선을 크게 그려 전체적으로 입술 모양을 동글동글하게 만든 여자 아이돌의 립 메이크업은 빠르게 대세로 자리 잡았다. 파우더리한 제형으로 입술의 경계가 모호해 보이도록 표현한 것이 유행의 시작이었다면 최근에는 립글로스, 립 트리트먼트의 대란으로 오히려 립 라인은 또렷하되 안쪽은 반짝반짝 빛나게 채우는 것이 트렌드다. “일명 ‘짐 립스(Gym Lips)’라고도 부르죠. 입술 색과 비슷한 컬러의 립 라이너로 입술 바깥으로 라인을 그린 뒤 빈 공간을 메우고, 한층 자연스럽고 싱그러워 보이도록 플럼핑 글로스를 전체적으로 덧바릅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켈리 앤 스웰(Kelli Anne Sewell)은 <보그 비즈니스> 인터뷰에서 그 노하우를 전했다.
메이크업 기법만큼 눈에 띄는 현상은 바로 입술 시술의 대중화다. 놀랍게도 최근 입술 필러를 맞았다고 고백하는 지인이 부쩍 늘었다. “나이 들면 입술이 안쪽으로 말리는 것 같아.” 친한 친구 중 하나는 사진 속 윗입술이 사라진 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다음 날 곧장 피부과로 향했다고 말한다. 뷰티 에디터치고 시술 경험이 부족한 내게 입술 필러란 <베벌리힐스의 진짜 주부들> 속 인물들의 터질 듯 팽팽한 양감의 입술을 연상시키는 것이었지만, 의외로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지인들의 결과물은 그 반감을 누그러뜨렸다.
“최근에는 입꼬리를 올리기보다 입술 부피를 키워달라고 찾아오는 고객이 많습니다. 그만큼 입술 볼륨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죠.” 박문수 문의원 대표 원장은 이렇게 설명하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는 입술의 아이콘은 걸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이라고 덧붙였다(지난 3월호 표지와 화보를 떠올려보길). 일반적으로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비율이 1:1.5를 이뤘을 때 미적으로 가장 조화로운 데 비해 입술이 매우 길고 큰 편이나, 입술산이 유독 뚜렷하고 한가운데 볼륨이 가득 차올라 있어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반짝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그 이유다. 윗입술이 얇다고 그 부위에만 필러를 주사하지는 않는다. 얼굴 전체의 조화를 고려해 위와 아래, 전체적으로 필러를 섬세하게 주입해 볼륨을 개선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술에 자연스럽게 배치된 히알루론산 기반의 성분은 입술을 감싸는 주름을 흐릿하게 만드는 동시에 가장자리를 뚜렷하게 만든다. 특히 만성적으로 입술이 건조하고 갈라질수록 드라마틱한 효과를 경험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필러의 성분과 공식, 전문가의 손 기술이다. 특히 얇고 예민한 조직의 입술은 사람마다 해부학적 모양이 매우 다양하고, 원하는 목표도 다르기에 일률적인 시술은 자칫 부자연스러운 외관과 질감의 입술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거뭇하거나 흐린 입술 색, 비대칭이거나 흐릿한 입술 라인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립 타투’ 시술 역시 인기를 끄는 중이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시술은 먼저 충분한 상담 후 원하는 모양대로 점선으로 그린 다음 최대한 자연스러운 컬러로 조색된 잉크를 한 땀 한 땀 주입한다. 시술 직후에는 일명 ‘탈각’이라 부르는 입술 각질 탈락 현상이 일주일 정도 진행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소가 입술에 안착하며 한두 달 후에는 본래 내 입술처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효과는 반영구적으로 지속된다. 이상적인 모양을 만들어주는 데다가 수술이나 포진으로 남은 흉터를 개선하기도 한다.
입술 비대칭을 교정하는 방법으로는 필러 대신 보톡스도 많이 활용된다. 뉴욕의 성형외과 의사 다라 리오타(Dara Liotta) 박사는 “어떤 사람들은 웃을 때 입술이 뒤집히면서 윗입술의 볼륨이 서서히 사라지죠. 입술 주위 원형 근육의 바깥층이 이완되는 보톡스를 주사하면 입술 형태가 훨씬 자연스러워집니다”라고 설명한다. 주로 6개월에서 1년 유지되는 필러나 보톡스 외에도 성형수술에 해당되는 ‘입술 리프트’라는 옵션도 있다. 윗입술이 얇거나 인중이 길거나 입꼬리가 처진 유형에 적합한 일종의 거상술로 코끝과 윗입술 사이의 간격을 줄여, 윗입술의 붉은 안쪽을 바깥으로 좀 더 끄집어내는 원리다.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만 코밑 피부를 잘라내고 진피층과 표피층을 봉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작지만 흉터가 남을 수 있다는 것이 단점. 노화의 진행에는 정지 버튼이 없으니 영구적이거나 확실한 ‘한 방’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
이쯤에서 다양한 입술 시술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공통 의견을 하나 전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굴 전체의 밸런스라는 점. 크고 두툼한 ‘오버 립’이 유행이라고 해서 윗입술과 아랫입술만 시술 부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코끝부터 인중, 턱까지 입술을 포함한 하나의 부분으로 관찰하고 조화를 따지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시술 부위가 예민할수록 보수적인 접근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영구적인 효과를 지니지 않더라도 잦은 시술은 입술 변형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행이란 돌고 도는 것이며, ‘뷰티’란 결국 나를 알아가는 험난하고도 흥미로운 과정이니까. (VK)
- 일러스트레이터
- ASTRID V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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