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패션 브랜드가 꾸민 방_2 #보그 2024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4.05.24

by 김나랑

    패션 브랜드가 꾸민 방_2 #보그 2024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4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많은 패션 브랜드가 리빙 컬렉션을 선보이며 또 다른 꿈을 내비쳤다. 오래 지켜온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클래식한 디자인부터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함께 선입견을 깬 도전까지 면면이 흥미롭다.

    FERRAGAMO

    페라가모는 벨기에 출신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빈센트 반 두이센(Vincent Van Duysen)과 함께 밀라노 여성 부티크를 새롭게 장식했다. 본질적인 우아함에 집중한다는 빈센트의 감성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의 비전이 상통한 것. 외부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푸른 바다색의 세라믹 수족관은 부티크 입구 쪽 테이블을 디자인한 안드레아 만쿠소(Andrea Mancuso)의 작품이다. 옆 공간에는 안드레아 아나스타시오(Andrea Anastasio)가 디자인한 테이블 코랄리움(Corallium)이 자리한다. 이 테이블은 유색 스톤을 스티치 디테일로 엮은 것이 특징이다.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작업해온 조안 탠(Joann Tan)은 남은 가죽 조각으로 진열대를 감싸는 등 업사이클링 작품을 시도했다.

    ISSEY MIYAKE

    이세이 미야케는 2017년 밀라노에 문을 연 이래 여러 디자이너, 아티스트와 협업해왔다. 올해는 네덜란드의 예술 집단 ‘위 메이크 카펫(We Make Carpets)’과 함께 ‘접고 주름 잡고(Fold and Crease)’라는 이름의 카펫을 설치 작품처럼 전시했다. 위 메이크 카펫은 생필품(화장지 심, 테이프, 노끈, 빨래집게 등)을 하나하나 손으로 작업하는 노동 집약적 작품을 선보여왔다. 지난하게 만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퍼포먼스라는 개념이다. 이번에 선보인 꼬치 카펫(Skewer Carpet)은 대나무 6만 개를 일일이 염색해 하나하나 심었으며, 핀 카펫(Pin Carpet)의 재료는 옷을 만들 때 쓰는 핀이다. 이세이 미야케의 수공예적 작업 방식에 대한 헌사다.

    THOM BROWNE

    톰 브라운은 침구 브랜드 프레떼(Frette)와 밀라노 디자인 위크 데뷔작 ‘…Time to Sleep…’ 영상을 상영했다. 내용은 초현실적이면서도 귀여운 동화 같다. 프레떼의 리넨이 정갈하게 덮인 침대 사이로 톰 브라운 잠옷을 입은 모델이 한 명씩 등장한다. 모두가 잠들 시간. 하지만 그들은 회색 정장을 챙겨 입고 꿈을 항해할 준비를 한다. 이 영상은 19세기에 지은 나폴레옹의 아레나 홀 팔라치나 아피아니(Palazzina Appiani)에서 계속 상영됐으며, 브라운관 앞에는 영상에 나온 침대가 설치됐다. 보고 있으면 눕고 싶어지는 부드러운 감촉의 프레떼 침구다. ‘…Time to Sleep…’은 2009년 피렌체 피티 우오모 영상에서 선보인 톰 브라운의 예술 퍼포먼스에서 기인했다. 40개의 동일한 책상에서 타이핑을 하는 40명의 직원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동작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앞으로도 톰 브라운은 가정용 가구를 계속 선보인다. 160년 동안 이어 내려오는 이탈리아 가구 제작 브랜드와 협업한 침구, 목욕용 리넨, 로브 등을 홈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다.

    ZEGNA

    제냐는 두오모 광장에 화단을 설치하며 공헌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이곳에 밀라노 시청과 함께 향후 3년간 지속 가능한 녹지 공간을 조성하기로 한 것. 화단에 설치한 QR 코드 기기를 통해 그간 제냐의 친환경 활동을 볼 수 있었다. 약 100년 전에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울 공장 부근의 숲을 가꿔 두 산을 연결했다. 이후 약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으며 오아시 제냐(Oasi Zegna)라는 국립공원도 운영 중이다. 제냐는 밀라노의 자생식물과 조화를 이룰 법한 오아시 제냐의 식물을 들여오기 위해 식물학자, 조경가와 협력했다. 완성될 화단은 녹나무, 상록수, 오아시 제냐에서 주를 이루는 진달래와 고광나무 등도 포함한다. 어느 꽃이 지면 다른 새싹이 트는 자연스러운 순환 생태계를 구현하고자 한다.

    BALENCIAGA

    발렌시아가는 미국 아티스트 앤드류 J. 그린(Andrew J. Greene)과 협업해 ‘아트 인 스토어(Art in Stores)’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1988년생 앤드류는 버내큘러 디자인(특정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토속 문화)을 기반으로 한다. 사물에 입힌 지역적 취향, 의미, 이데올로기를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 밀라노의 발렌시아가 몬테 나폴레오네 스토어에서 앤드류 J. 그린의 대표적인 시리즈 가운데 오리지널 아트워크 8점이 전시됐다. 작품은 스테인리스 스틸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다. 발렌시아가 트롱프뢰유 제품의 일부인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비롯해 빨간 장미, 지구본, 감자칩 등이 친숙한 듯 낯설다. 전시는 전 세계 발렌시아가 스토어를 순회한다.

    DIESEL

    디젤의 상징인 레드와 실버를 대담하게 적용한 컨셉 쇼룸이 밀라노 브레라에 등장했다. 디젤 리빙의 ‘레드 테이크오버’와 ‘실버 돔’이다. 컬렉션 라인 모로소(Moroso), 로데스(Lodes), 아이리스(Iris)와 스카볼리니(Scavolini)는 디젤답게 미래적이면서도 본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옻칠한 멜트(Melt) 세라믹 타일과 진홍색 카펫으로 덮인 공간은 관능의 호르몬이 넘쳐흐르는 듯하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실버로 가득한 침실. 포일로 뒤덮인 벽에 캠프 베드(Camp Bed)와 스프링 램프, 미스피츠(Misfits) 욕실 콘솔이 자리했다.

    MONCLER

    밀라노 중앙역이 공공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몽클레르가 제퍼슨 핵(Jefferson Hack)이 큐레이션하고, 잭 데이비슨(Jack Davison)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으로 역사를 장식한 것.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이 꿈을 꾸듯 황홀해 보이는데, 전시명 역시 ‘꿈을 향한 초대(An Invitation to Dream)’다. 아쉽게도 전시는 4월 21일 끝났지만, 꿈을 향한 초대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확대한다.

    LORO PIANA

    로로 피아나 인테리어는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1979년 황금컴퍼스상을 수상한 치니 보에리(Cini Boeri)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컬렉션을 선보였다. 밀라노 본사가 자리한 코르틸레 델라 세타(Cortile della Seta)에서 열린 전시명도 ‘치니 보에리에게 바치는 헌사(A Tribute to Cini Boeri)’다. 치니 보에리 기록 보관소(Archivio Cini Boeri)와 공동 디자인했고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 알플렉스(Arflex)가 제작했다. 치니 보에리가 건축가로서 고수한 원칙이 있다. 독립된 출구가 딸린 별도의 방과 구성원들이 선택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용 공간이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것. 또한 가구는 사용자와 교감하고 필요에 따라 진화해야 한다는 것. 관람객은 마음껏 눕고 앉으며 컬렉션을 체험하며 치니 보에리의 철학을 느꼈다. 전시는 페코렐레(Pecorelle) 소파 및 암체어, 보보(Bobo) 및 보보릴랙스(Boborelax) 암체어, 보톨로(Botolo) 하이 체어 및 로우 체어 등으로 구성됐다. 모든 작품엔 로로 피아나의 최고급 패브릭을 사용했다. 로로 피아나는 2026년 트리엔날레(Triennale)에서 치니 보에리의 생애를 다룬 첫 번째 회고전도 후원한다.

    FENDI

    펜디 까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역시 다양한 디자이너와 함께했다. 가장 달라진 점은 FF 로고, 페퀸 패턴 같은 아이코닉한 모티브를 변주했다는 것. 뉴욕과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콘트로벤토(Controvento)는 FF 로고를 3D 렌더링해 펜디 F-어페어(FENDI F-Affair) 모듈러 소파를 완성했다. 미국의 가구 디자이너 피터 마베오(Peter Mabeo)의 이포(Efo) 테이블은 2021 디자인 마이애미(Design Miami)에서 선보인 후 컬렉션에 합류했으며, 부드러운 사선형의 F 디자인이 특징이다. 벨기에의 젊은 디자이너 조나스 밴 풋(Jonas Van Put)의 작품도 있다. 그는 닿을 듯 말 듯한 2개의 곡선형 메탈 시트 위에 대리석과 인레이 우드 상판을 두고, 페퀸 모티브를 덧입힌 FF 키스(FF Kiss) 커피 테이블 등을 선보였다.

    GIORGIO ARMANI

    조르지오 아르마니 본사가 자리한 팔라초 오르시니(Palazzo Orsini)에서 ‘전 세계의 메아리(Echoes from the World)’라는 주제로 2024 아르마니/까사 컬렉션이 공개됐다. 컬렉션은 한마디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추억 여행이다. 그는 “그동안 내게 영감과 새로운 문화적 인상을 남긴 나라를 떠올리며 전시를 구상했다. 여러 나라의 미학을 아르마니/까사만의 가구와 패션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팔라초 오르시니에는 유럽, 일본, 중국, 아라비아, 모로코 등이 연상되는 방이 있는데, 아르마니/까사 오브제에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리베(Giorgio Armani Privé) 컬렉션의 상징적인 피스가 함께 배치됐다. 특수 아크릴 수지로 다리를 만들고 백금으로 도금한 물결무늬 테이블 트로카데로(Trocadero)는 수천 개의 아플리케로 장식한 드레스와 함께 전시됐고, 내부가 다다미처럼 보이는 비르투(Virtù) 캐비닛은 사무라이 갑옷에서 영감을 얻은 드레스 옆에 놓였다.

    VERSACE

    베르사체 홈 및 디자인 아틀리에, 팔라초 베르사체(Palazzo Versace)에 들어서니 밀라노의 독립 라디오 채널 라디오 라힘(Radio Raheem)이 만든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익숙한 메두사 패턴이 펼쳐졌다. 베르사체의 상징인 메두사, 바로코, 그레카 패턴을 입은 소파, 테이블, 조명이 공간을 메웠다. 특히 침대처럼 널찍한 것으로, 바로코 문양 리클라이닝 천 쿠션으로 채운 메두사 ’95(Medusa ’95) 소파는 컬렉션의 대표작이다. 실내와 실외 두 버전으로 제작됐다.

    ETRO

    에트로 홈 인테리어는 밀라노 가구 박람회의 파빌리온 15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 분위기를 지향하는 가구 컬렉션을 선보였다. 디자인 라인은 단순하고 깔끔했지만 컬러와 패브릭은 이와 대비되는 빈티지한 매력을 발산했다. 그중 ‘퀼타나(Quiltana)’ 컬렉션은 소파, 암체어, 침대로 구성되며, 카피토네(프랑스어로 속을 넣고 누빈다는 뜻) 스타일의 퀼팅으로 제작해 아늑하다. ‘파이핑(Piping)’ 컬렉션의 튜브 형태 암체어도 사랑스럽다. 가구 박람회 전시 후에도 몬테 나폴레오네 5번가의 부티크와 폰타치오 거리의 에트로 홈 스토어에 전용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전시를 이어간다.

    STONE ISLAND

    그간 스톤 아일랜드는 의류의 한계를 뛰어넘는 패브릭을 연구하고 실험해 ‘프로토타입 리서치 시리즈’를 발표해왔다. 덕분에 자동차, 보트 및 스포츠 산업에서 사용되는 소재가 제품의 일부가 됐다.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전시 ‘프로토타입 리서치 시리즈’는 두 챕터로 나뉘었다. 프로젝트 개발 여정을 시간순으로 살펴보는 ‘지식의 공간’, 소재 제작 과정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영상과 웨어러블 작품이 준비된 ‘체험의 공간’이 그것이다. 가장 욕심난 아이템은 100개 한정판인 프린트 아트워크. 1982년 출시된 스톤 아일랜드의 첫 번째 컬렉션을 프레스코화로 재구성했다.

    ANTONIO MARRAS

    패션 디자이너 안토니오 마라스는 아웃도어 가구 및 텍스타일 컬렉션을 전문으로 하는 가구 브랜드 노도 이탈리아(Nodo Italia)와 함께 캡슐 컬렉션 ‘Marras+Nodo Italia’를 선보였다. 공개 장소는 마라스가 만든 컨셉 스토어 노노스탄테 마라스(Nonostante Marras). 노도 이탈리아는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며 카펫, 니트웨어 등의 섬유 제품 생산에 주력하는 신생 브랜드다. 컬렉션은 소파, 의자, 테이블, 러그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첨단 인조 원사인 올리나(Olina)를 사용해 다양한 질감과 색상을 구현한 러그와 의자는 마라스의 디렉팅 아래 공예 작품처럼 완성됐다.

    MCM

    MCM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처음 참가해 ‘웨어러블 카사(Wearable Casa)’ 컬렉션을 공개했다. 세계적인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비아제티(Atelier Biagetti)와 함께 선보인 7가지 제품은 노마드 라이프에 집중한다. 의자와 테이블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모듈형 가구, 입을 수 있고 공간에 놓을 수도 있는 획기적인 오브제까지 면면이 흥미롭다. 전시장은 17세기 건물 팔라초 쿠사니(Palazzo Cusani)였다. 역사적인 공간과 미래지향적인 오브제가 상충하면서 매력을 더했다. 무엇보다 컬렉션은 현실과 가상의 두 세계로 이뤄진 것이 핵심이다. 전시는 끝났지만 메타버스 공간을 통해 컬렉션을 경험할 수 있다. (VK)

      사진
      COURTESY PHOTO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