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다른 그녀’, 노화보다 구직난이 무서운 밀레니얼에게
<낮과 밤이 다른 그녀> 초반은 120만 청년 미취업자의 현실을 웃음에 녹여냈다. 주인공 이미진(정은지)은 20대를 공무원 시험 준비에 바쳤다. 하지만 그 사이 나이는 먹었고, 이제 공시를 포기하고 사기업에라도 취직하고 싶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다. 설상가상 취업 사기로 돈까지 날린 미진에게 기적인지 저주인지 모를 일이 벌어진다. 해가 뜨면 나이 든 모습(이정은)으로 변하고 해가 지면 스물아홉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미진은 이 기회에 한 번이라도 합격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며 과거 실종된 이모 임순의 신분을 도용해 시니어 공공 일자리에 지원한다.
밀레니얼 세대 취준생 미진은 면접장에서 다양한 개인기를 선보인다. 사기업 신규 채용에서는 변별력이 없던 각종 자격증과 어학 능력이 장년층과의 경쟁에서는 도드라진다. 난생처음 합격의 기쁨을 맛본 미진은 이후 우연한 계기로 검찰 별정직 실무관이 된다. 검사 계지웅(최진혁)과 직원 주병덕(윤병희)은 나이 든 실무관이 불편해서 불가능한 미션을 자꾸 주는데, 미진은 말도 안 되게 그것을 자꾸 해낸다. 산더미 같은 서류를 타이핑하라는 미션은 댓글 알바를 하면서 쌓은 분당 1,000타 속기 능력으로 해치우고, 산속에 사는 자연인에게 법원 소환장을 전달하라는 미션은 실내 클라이밍장 알바 때 익힌 암벽등반 기술로 완수하고, 비품 정리 업무를 시키면 취업에 도움이 될까 배워둔 코딩 기술로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처리해버린다. 녹초가 되어 퇴근한 미진은 비밀을 아는 친구 도가영(김아영)에게 한탄한다.
“그래도 좋아. 일하니까 너무 좋더라. 너무 좋아서 슬프더라.”
미진이 <직장의 신>(2013) 미스 김(김혜수)처럼 다양한 재주를 부리는 모습은 과장된 묘사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 안에 20~30년 전 취업 세대보다 많은 ‘스펙’을 쌓고도 양질의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MZ세대의 현실이 녹아 있어서 공감도 간다. 미진이 졸지에 중년이 되어 화이트칼라 정규직을 포기하고야 일이 풀리는 상황은 직군 차별, 욕망의 쏠림, 천편일률적인 교육 목표, 학력 인플레이션, 이것들로 인한 일자리 불균형이라는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를 꼬집는다.
물론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최우선 과제는 웃음이다. 주인공의 낙천적인 캐릭터가 그 출발점이다. 미진은 노화를 미모와 연애 가능성의 상실, 사회적 대우의 하락이라는 여성 혐오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뷰티 유튜버인 친구 가영은 “젊어져야 기적이지 늙어지는 건 저주 아니냐”고 하지만 미진은 그 덕분에 “실패만 하던 20대로 돌아가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이 기적인지 저주인지를 되돌리는 일에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아직은 그렇다. 그는 매 순간 주어진 일을 하며 열심히 산다. 주인공의 이런 성격 덕분에 드라마에 느긋하고 낙천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결정적인 웃음은 정은지와 이정은의 연기에서 나온다. <응답하라 1997>(2012)에서 효능이 입증된 바 있는 정은지의 사투리는 이번에도 시청자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데 성공한다. 그의 털털한 말투와 몸짓은 이정은이 연기하는 낮의 미진과 자연스러운 연결점을 만들어낸다. 이정은도 20대 여성의 상대적으로 경쾌한 제스처나 순수한 표정을 재치 있게 표현한다. 그들의 앙상블은 ‘분명히 다른데 묘하게 익숙해’라는 포스터 카피에 부합한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정교하게 아귀가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진이 취업 사기를 당해 정신없는 와중에 계 검사의 중요한 사건 파일을 가져가버리고, 그것을 찾느라 둘이 헌책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 등에서는 인물들의 행동에 일말의 당위성도 없다. 그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계 검사가 수사 중인 여성 연쇄 실종 사건의 새로운 범행이 벌어지는데, 두 신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서 혼란스럽다. 지금까지는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와 스릴러가 제대로 결착되지 않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것이 드라마의 아늑함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4회까지 설정을 다진 드라마는 이제 본격적인 갈등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사고 치고 공익 근무를 하러 온 아이돌 고원(백서후)은 미진에게 관심을 보이고, 계 검사는 미진이 연쇄 실종 사건의 타깃이 될 거라 예측해, 미진의 비밀이 들통날 여지가 곳곳에서 조성되고 있다. 4화 시청률 6%를 기록하며 기분 좋게 출발한 드라마가 ‘시작과 끝이 다른 그녀’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총 16부작으로, 본방은 JTBC 토·일 오후 10시 30분, 스트리밍 플랫폼은 U+모바일tv, 시리즈온, 티빙, 넷플릭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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