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노화를 늦추는 ‘슈퍼 휴먼’은 어떻게 탄생하나?

2024.07.05

by 송가혜

    노화를 늦추는 ‘슈퍼 휴먼’은 어떻게 탄생하나?

    통제, 추적, 혁신! 슈퍼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우리 시대 최신 헬스 키워드는 이 세 가지에서 비롯된다.

    블랙 네트 원피스는 블루마린(Blumarine).

    BODY HACK

    생물학을 뜻하는 ‘바이오(Bio)’와 서버를 뚫고 특정 시스템을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리프로그래밍하는 ‘해킹(Hacking)’. 두 단어가 결합된 현대사회의 개념 ‘바이오해킹’은 우리 몸을 가장 건강한 상태로 바꿔나가는 모든 수단을 뜻한다.

    2018년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공식 등재된 이 포괄적인 정의는 최근 더 진보적 개념으로 해석된다. 스마트 워치와 밴드, 반지 등의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생체 신호를 측정하는 모니터링, 인공지능 기반의 건강관리까지 신체 기능을 향상시키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무한히 확장 중이기 때문이다. “본래 의미와 달리 ‘바이오해킹’은 고가의 장비와 특정 계층만 누릴 수 있는 기능으로 제한됐죠. 하지만 상업화로 접근이 쉬워졌고, 일상에 파고든 스마트 기술로 인해 궁극적으로 건강의 형평성이 이뤄졌습니다.” 취재차 만난 연세대학교 디지털헬스케어학부 박캐서린 교수는 분석한다. 수면 추적 디바이스 오우라 링(Oura Ring)의 마케팅 디렉터 더그 스위니(Doug Sweeny)는 팬데믹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고 덧붙인다. “전무후무한 전염병 사태를 통해 우린 스스로 건강을 추적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의사와 병원에만 의존할 수 없던 과거를 통해 학습한 사실이죠.”

    웰니스를 추구하는 개인의 욕망과 기술이 맞물려 고도화된 오늘날의 바이오해킹. 올해 헬스 IT계의 혁명을 예고한 스마트 링과 수면 디바이스, 수명 연장을 위한 키워드와 손목에 착용하는 스트레스 조절제까지. <보그>가 가장 핵심적인 바이오해킹 툴을 꼽았다.

    스킨 톤의 투명한 톱과 스커트는 디젤(Diesel).

    PEACE PATCH

    막스마라 코트 위로 두른 에르메스 스카프, 하얀 청바지에 샤넬 플랫 슈즈를 매치한 모습으로 파파라치에 포착된 영국의 왕자비 메건 마클. 오른쪽 팔목에는 고야드의 화이트 토트백이, 반대편에는 손목 바로 아래 붙인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파란 스티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티커의 정체는 이름하여 ‘바이오시그널 프로세싱 디스크(Biosignal Processing Discs)’. 신경 과학을 기반으로 한 기술과 디바이스를 제공하는 기업 뉴캄(NuCalm)이 출시한 스트레스 완화 패치다. 작디작은, 그것도 한낱 스티커가 불안 증세를 해소할 수 있을까? 호기심은 결국 직구를 부르게 만들었고, 일주일 넘게 내 왼쪽 손목 안쪽에는 이 일회용 패치가 착 달라붙어 있다.

    패치의 원리는 이렇다. 각 디스크에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GABA’, 즉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의 효과를 중화하도록 설계된 특정 주파수의 패턴이 담겨 있다. 이 주파수가 피부를 통해 뇌에 전달되면 뇌파가 꿈을 꾸거나 명상할 때 나타나는 ‘세타(Theta)파’ 영역으로 들어서며 긴장이 가라앉고 스트레스 반응이 하향 조정된다. “오늘날 질병과 고통은 스트레스 과부하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죠. 과도한 스트레스로 수면의 질이 저하되고, 수면 패턴이 망가지는 순간 신체는 독소가 쌓이며 제대로 에너지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의약품, 알코올이 아니라 가볍게 패치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이오해킹’입니다.“ 뉴캄의 창립자 짐 풀은 강조한다. 솔직한 체험 후기는? 사실 패치가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감지했는지, 신호 전달을 통해 얼마나 불안 지수가 낮아졌는지 정확한 수치나 결과를 확인할 방도는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반대쪽 손가락에 차고 있는 울트라휴먼의 애플리케이션만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 리듬 80점이란 점수를 보여줌으로써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거라 짐작은 된다. 해외 출장이 잦은 지인은 최근 유독 난기류가 말썽인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이 패치를 손목에 착용하니 불안감을 느끼던 평소와 달리 여유로운 심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메건 마클에게서 목격된 이후 웰니스 패치는 새롭게 떠오른 영역이 됐죠. 하지만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뷰티와 헬스 월드에서 유행 중인 ‘스티커형’ 보충제에 대한 미국 <보그> 인터뷰에서 의사 제니퍼 와이더(Jennifer Wider)는 말한다. 경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물질의 개수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피부는 강력한 장벽이에요. 니코틴처럼 매우 작은 분자만 패치를 통해 성공적으로 흡수된다는 것이 입증됐죠.” 물론 FDA 승인을 받은 뉴캄의 디스크 패치에 대한 부작용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기술만큼 건강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와 경로가 검증되는 것이 바이오해킹의 화두인 현시점에서 보완은 필요해 보인다. 새로운 웰니스 브랜드의 탄생일까? 아직까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그래픽 아트워크 보디수트는 오토링거×푸마(Ottolinger×Puma at Samplas), 스트라이프 패턴 블랙 펌프스는 아미(AMI), 선글라스는 몽벨(Montbell).

    FUNCTION 8

    필라테스, 근력을 가꾸는 토닝, 요가. 세 가지의 장점을 결합한 신종 운동이 등장했다. 그 이름은 ‘FS8’.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피트니스 그룹 ‘F45’에서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최대한 줄이며 균형 있는 몸매를 가꿀 수 있도록 론칭한 복합 운동이다. 매일 다르게 프로그래밍되는 6,000가지 동작은 요일별로 다르게 세 가지 수업으로 구성되고,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본사의 알고리즘에 따라 12주마다 동작이 업데이트된다. “현대인은 이제 자신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판단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죠. 유산소 운동 위주의 ‘블라스트’, 매트와 덤벨 동작으로 특정 근육을 강화하는 ‘플렉스’, 그리고 세 가지 운동 종목을 믹스해 심박수를 높이는 ‘오리지널’까지, 신체 능력을 골고루 사용할 수 있도록 내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계획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너 새미(Sammy)는 근력과 유연성, 협응력을 기르는 종합 운동으로 육체적·정신적·정서적 연결을 추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평일 아침 10시. 올 초 오픈한 성수 센터를 방문하자 여유 있을 거라는 짐작과 달리 정원인 18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모였다. “코어 근육이 무너져 있군요.”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가기 전 인터뷰에서 트레이너는 거울 속 내 체형을 보고 판단했다. 한쪽으로 치우친 처진 어깨, 움푹 들어갈 만큼 꺾인 허리선이 그 방증이었다. 마침 주 2회 이상 집중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받은 것이 그날의 수업이었던 ‘오리지널’ 프로그램. 리포머 위에 몸을 고정한 채 다양한 포지션으로 팔다리를 움직이며 코어 근육을 다지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일반적인 유산소 운동과 달리 리포머에 누운 상태에서 점프 동작을 하며 척추 근육을 다지는 ‘블라스트’를 주 1회 추가하고, 요일마다 번갈아가며 운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얹었다.

    “꽤 힘드실 거예요.”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내게 트레이너는 각오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수업에 진행되는 동작은 총 15~18가지. 동작당 45~50초 진행하고, 15초간 짧게 휴식한 뒤, 바로 다음 단계로 몰입하며 빠른 호흡으로 진행된다. 정신없지만 50분의 수업은 매우 리드미컬하게 흘러간다. 예를 들어, 하나의 포지션을 유지하고 어깨에서 팔 안쪽, 손목으로 변주하는 동작은 스스로 근육을 사용하는 방법을 저절로 깨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필라테스 동작의 경우 첫 동작은 65초, 두 번째는 55초, 세 번째는 45초, 시간은 점차 짧아지되 강도가 조금씩 세진다.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근육의 상당 부분을, 그것도 최대로 활용하고 있단 사실을 몸소 깨닫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다’는 잡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흘러간다.

    운동 중간중간 회원들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응원의 ‘파이팅’을 힘차게 외치는 것 또한 미묘한 활력을 더해준다. 동작을 따라잡는 동안은 땀샘이 폭발하듯 열리지만 끝난 직후에는 내일 또는 모레 또 다르게 구성될 동작은 어떤 것일지 호기심이 드는 생경한 경험도 해볼 수 있다. “운동은 꾸준히 장기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지속성을 목표로 시간과 동작을 철저하게 계산해 프로그램을 완성하죠.” 트레이너의 말은 그 계산에 따라 움직이고 의지까지 갖게 된 나를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혹시 이 모든 걸 계획한 FS8의 컨트롤 타워가 인공지능은 아닐까?

    종이접기 장식이 달린 화이트 톱과 스커트는 한킴(Hankim).

    MAX OXYGEN

    ‘최대 산소 섭취량(VO2max)’. 우리 몸이 산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체중 1kg당 1분 동안 소비하는 산소량을 밀리리터 단위로 측정한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몸에는 더 많은 산소가 필요하다. 효율적으로 산소를 소비할수록 근육은 에너지를 갖게 되고, 운동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 늘어난다. 즉 이 수치가 높을수록 유산소 활동에 대한 지구력과 심장 강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한다. 운동선수에게나 필요하던 지표가 웰니스 생태계의 화두로 떠오르며 스마트 디바이스 업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최대 산소 섭취량은 곧 심폐 건강의 지표로 해석되며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사망 원인 1위가 심혈관계 질환인 만큼, 수명 연장에 심장 건강이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이자 우리가 가진 최고의 경험적 정보인 것이죠.” 연세대학교 디지털헬스케어학부 황의원 교수는 설명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30세 이후 매년 약 2% 감소하는 최대 산소 섭취량. 이를 측정하고, 나이별 평균과 내 수치를 비교하며 운동량을 늘려갈 수 있다. 명확한 측정을 위해선 스포츠의학 실험실에서 특수 장비를 착용하고, 고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핏비트(Fitbit), 가민(Garmin) 등의 피트니스 추적기를 착용하고 달리거나 사이클링을 하면 비교적 정확한 결괏값은 얻을 수 있다. 스마트 링의 1세대 기업이나 다름없는 오우라는 혈액이 동맥으로 이동하는 속도를 측정해 혈관계 나이와 실제 나이를 비교하고, 사용자의 걷기 평가를 통해 최대 산소 섭취량이 적절한 수준인지 추정하는 기능을 곧 반지에 탑재한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다르지만 30대 여성의 평균 최대 산소 섭취량은 28~36.9ml, 가장 훌륭한 결괏값은 45ml다. “최대 산소 섭취량을 향상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입니다.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을 오가며 신체를 몰아붙이는 것이죠.” 건강 과학 중심의 미국 웨스턴 스테이츠 대학 스포츠의학 프로그램 디렉터 브렌트 마샬(Brent Marshall)은 조언한다. 중간 강도로 오래 달리는 것보다, 빠르되 짧은 간격의 달리기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지속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진정한 웰니스를 꿈꾼다면? 이제 한쪽 손목에 피트니스 밴드 또는 미래의 스마트 링을 차고 힘껏 달릴 차례다.

    블랙 브라 톱은 레호(Lehho), 블루 컬러 레더 스커트는 마르니(Marni).

    SELF SAUNA

    “빛은 사람의 리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우리의 몸과 유전자는 하루 중 각자 다르게 정해진 시간에 스위치가 꺼지고 켜지면서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죠. 그에 따라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높아졌다가 낮아집니다.” 바이오해킹을 세상에 널리 알린 <슈퍼 휴먼>의 저자 데이브 아스프리는 바쁜 현대에서 생체시계가 무너진 지금, ‘유익한 광원’을 일상에 더하는 것이 몸의 리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적색광과 적외선 파장은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향상시키며 근육의 피로와 손상을 치료하고 에너지를 증가시킨다. 그리고 이런 빛을 쬐는 경험을 내 방에서도 가능하도록 만든 바이오해킹의 대표적 산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적외선 사우나 담요’다.

    2023년 영국 <보그> 표지를 장식한 유명 방송인 마야 자마(Maya Jama)는 이 제품을 일명 ‘사우나 봉투’라 부르며 자신만의 웰빙 방법으로 추천했다. 이 분야에서 일인자로 자리 잡은 웰빙 브랜드 하이어도즈(HigherDose)에 이어 마이하이(MiHigh), 커런트바디(CurrentBody)가 내놓은 적외선 사우나 담요에 대한 인기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방수 소재 담요는 원적외선을 방출해 사우나와 동일한 방식으로 몸을 데웁니다. 주변 온도를 올리지 않고, 신체와 세포가 흡수하는 빛의 파장을 방출해 땀과 함께 체내 노폐물이 배출되죠.” 마이하이의 공동 창업자 에드 호지(Ed Hodge)가 밝힌다.

    고강도 운동 체험으로 근육통에 시름시름 앓던 와중에 커런트바디의 ‘스킨 적외선 사우나 담요’를 집에 들였다. 평소 사우나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답답하게 느끼는 탓에 가장 낮은 온도인 30℃로 시작해 서서히 40℃까지 올리며 30분간 몸을 뉘였다. 10분만 지나도 등에서부터 발끝까지 땀이 나는 것이 느껴지고, 이마 라인에도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30분간 사우나를 마친 후 찬물을 마시고 미온수로 샤워를 마치면 그야말로 극락의 개운함을 경험할 수 있다. 운동 후 다음 날 의례적으로 겪는 근육통도 평소보다 확실히 덜한 느낌. “평균적으로 45분간의 세션 동안 500~600cal가 소모되고 신진대사가 촉진돼요. 적외선 파동은 전통적인 사우나 열보다 피부에 훨씬 깊이 침투하기 때문에 심박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신진대사가 원활해지죠.” 커런트바디 마케팅팀 올리비아 휠러는 기존 고객 대부분은 운동선수였지만 사용자들이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사무실에서 온종일 근무하느라 생긴 하체의 퉁퉁한 부기나 허리 통증이 줄었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권장되는 사용법은 하루 1회, 최대 45분, 일주일에 3회.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심장 관련 합병증이 있다면 의사와 상담 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인 사우나에서 흘린 땀을 분석해보면 95% 이상이 물입니다. 반면 적외선 사우나 담요 안에서는 80~85%만 물이죠. 나머지는 노폐물이라는 겁니다.” 에드 호지의 단언대로 꾸준히 사용하면 제대로 된 디톡스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장벽은 94만원대라는 가격과 존재감이 확실한 사이즈(무게만 8kg에 이른다). 하지만 잦은 운동으로 근육통을 겪거나 밤낮이 바뀐 생활 패턴으로 만성피로에 시달린다면 투자해볼 만한 가치는 차고 넘친다.

    시스루 스트라이프 보디수트는 알라이아(Alaïa). 손가락에 착용한 스마트 링은 울트라휴먼(Ultrahuman).

    ULTIMATE RING

    새로운 시대의 ‘절대 반지’를 소개한다! 2024년 7월, 파리에서 첫 공개를 앞둔 삼성 ‘갤럭시 링’과 아직까지 출시 루머만 무성하지만 외신이 고대하는 ‘애플 링’까지. 우리의 건강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기술은 이제 손가락 위에 안착한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호라이즌 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연평균 25.4%씩 고속 성장 중인 스마트 링 시장은 2032년쯤이면 약 2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손가락은 측정할 수 있는 건강 인자가 다양합니다. 동맥혈에서 측정되는 산소 포화도, PPG 센서를 통한 심박수를 재거나 심방세동과 같은 부정맥, 혈압 변화도 감지할 수 있죠.” 대전대학교 디지털헬스케어학과 홍원기 교수는 스마트 링의 급부상이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고 얘기한다. 큰 호불호 없이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 역시 그 약진에 힘을 보탠다. 오우라 링은 몇 년 전 구찌와의 협업으로 스마트 링을 출시해 패션 액세서리의 가능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내친김에 최근 미국에 진출한 울트라휴먼(Ultrahuman)의 최신작 ‘링 에어’를 공수했다. 절제미가 돋보이는 40만원대의 이 반지는 바이오센서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체온과 수면 상태, 심박 변이도(HRV) 등을 측정한다. 그리고 그 결괏값을 점수로 매긴다. 특히 여러 결과를 통합해 추린 수면의 질은 어느 날은 80점, 또 어느 날은 65점, 그다음 날은 76점. 학창 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겪어보는 숫자 평가에 묘한 승부욕이 발동되며 “어떻게 하면 ‘더 잘’ 잘 수 있을까?”라는 근원적 고민이 생겨나기도 한다. 최근 소프트웨어에 추가된 흥미로운 기능은 스트레스 리듬 점수. 기초가 되는 데이터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기상 직후의 아침이다. 이때 24시간 심박수와 심박 변이도, 안정 시 심박수를 토대로 나의 코르티솔 패턴을 분석한다. 이 역시 한눈에 보기 쉽도록 그래프와 100점 만점의 점수로 보여주며, 스트레스 조절이 안 될수록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낮은 점수가 기록된다.

    몇 주간 사용해본 후기는 일상의 작은 변화를 좀 더 ‘쉽게’ 만들어준다는 것. 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데이터나 그래프가 아니라 스트레스와 수면 등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점수, 그리고 카페인을 섭취해도 좋은 시간대, 잠시 전자 기기의 빛으로부터 눈에 휴식을 주거나 깊은 호흡을 들이마셔야 하는 시점 등을 수시로 알려주는 푸시 메시지 등 당장 실행 가능한 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하여 나의 소소한 생활 방식 하나하나가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궁극적으로 이해하게 돕는다.

    화이트 드레스는 스포트막스(Sportmax), 화이트 펌프스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DESK RUNNER

    인간은 오랫동안 직립보행을 해왔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내딛는 태초의 관행은 공간을 횡단하고, 사람 간의 연결 고리를 만들며, 인지 기능을 확장하는 신비로운 능력을 지녔다. 그런데 걷기의 수많은 장점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최근 아파트 반경 네 블록 안에서만 활동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재택근무 중인 요즘 책상과 소파, 부엌 식탁 정도만 오가다 보니 휴대폰에 기록된 1,000보도 채 되지 않는 걸음 수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심각성은 체감됐다. 그리하여 깊은 반성 후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바로 책상 밑에 두고 사용할 수 있는 패드 형태 러닝 머신 위에서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조차 내 발은 패드 위에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속도로 움직이는 중이다.

    틱톡에서 목격한 이 기구는 처음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우선 화상회의를 하는 동시에 러닝 패드를 사용하는 직원의 머리가 위아래로 산만하게 흔들리는 것이 거슬렸다. 접어서 보관하면 간편하지만 그럼에도 투박한 모양새는 내 작디작은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았고, 야외 산책 대신 구태여 짐을 늘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한 동기부여 없이 뉴욕 한복판을 몇 바퀴 걷는 것보단 종일 집에서 근무하는 나에게 약간의 기쁨을 불어넣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됐다.

    일하면서 일정한 속도로 두 발을 놀리다 보면 사적인 공간에서조차 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실내에서도 칼로리를 지속적으로 소모하고 있다는 보상 심리는 덤이다. 재택근무를 오래 하다 보면 편안함에 익숙해져 건강과 날씬한 몸매를 놓치기 마련이니까. 흥미로운 사실은 이 낮은 강도의 운동이 두뇌를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험 삼아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한 달간 매일 러닝 패드를 사용했다. 거리와 속도에 크게 개의치 않고, 그때그때 리듬에 맞춰 조절해가며 일을 하다 보니 업무 실행 속도나 능률이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읽지 않은 편지로 가득한 메일함을 드디어 정돈하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프로젝트 툴을 정리하고, 틈틈이 X에서 잡담을 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작업을 처리하게 됐다. 어느 날 오후에는 둘째 잔의 커피를 마시는 대신 패드 위에 발을 얹었고, 그렇게 30분이 지나자 카페인 없이도 활력이 느껴졌다. 개인마다 편차가 있으나 주의력이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선 적당한 자극과 각성이 필요하다는 이론을 심리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을 미루어보면 뇌 기능이 일부 향상된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꾸준히 사용해본 결과 몇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책상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을 때 겪는 엉덩이와 허리 통증이 완화되고 군살 잡힌 복부가 납작해진다. 둘째, 활동량이 늘어나면서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부담스럽던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다. “운동을 쉽게 여기는 현명한 방법은 일상의 활동 수준을 높이는 것이죠.” 미시간 대학의 행동 지속 가능성 연구원 미셸 세가(Michelle Segar)가 덧붙인다. 주의 사항은 있다. 러닝 패드 위에 올랐을 때, 키보드는 팔꿈치가 90도보다 약간 아래로 구부러지는 높이에 있고, 모니터는 상단의 1/3 지점이 눈높이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야 자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또한 러닝 머신과 달리 실시간 운동 강도나 심박수를 보여주는 계기판이 없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보니 저속으로 시작해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자신만의 편안한 속도를 찾아나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모한 칼로리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을 것, 그리고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 습관처럼 편안하게 움직일 것. Erika Veurink 미국 <보그> 컨트리뷰팅 에디터

    SLEEP LUX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를 단골 고객으로 둔 에이트 슬립(Eight Sleep)은 수면 최적화 온도로 자동 설정되는 침구를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5월 이 브랜드가 공개한 4세대 스마트 매트리스의 가격은 약 740만원. ‘포드 4(Pod 4)’라 불리는 이 신문물은 기존 수면 온도 조절 장치에 임상 등급의 심박수와 호흡수, 수면 단계를 추적하는 기술을 탑재했다. 그뿐 아니라 코골이를 감지하는 즉시 머리 쪽 매트리스를 높이 들어 올리며 증상을 완화하기까지, 잠든 내내 나를 지켜보며 편의를 해결해주는 인공의 ‘수면 집사’를 곁에 두고 있는 셈이다. 호화로운 매트리스가 있는가 하면 블루투스 스피커가 장착돼 평화로운 백색소음을 들으며 잠에 빠져들 수 있는 만타(Manta)의 20만원대 암막 수면 마스크, 소음을 원천 차단하는 루프(Loop)의 7만원대 이어플러그 등 비교적 가격 장벽이 높은 수면 도구의 인기가 고공 행진 중이다. 그리고 이 흐름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은 의외로 수면 문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Z세대다.

    “오늘날 수면 부족은 흡연과 동일시됩니다.” 에이트 슬립의 공동 창립자 마테오 프란체스케티(Matteo Franceschetti)는 <보그 비즈니스> 인터뷰에서 과거 비즈니스 리더나 유명 인사들이 성공 비결로 잠을 아끼거나, 불면증을 꼽던 패러다임은 오늘날 180도 뒤집혔다고 짚는다. 이제 하루에 겨우 서너 시간 잠을 자는 것은 결국 자신을 돌보지 않는 행위라는 인식이 박히기 시작한 것이다. 할리우드 여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하루에 단 2시간만 자도 버틸 수 있다고 말한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는 온라인상에서 전문가와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최적의 수면 주기를 주제로 열띤 논쟁거리가 됐다. SNS에서는 ‘#Sleepcycle’, ‘#Sleeptok’ 등 자신의 수면을 기록하거나 단돈 몇천 원에 구매할 수 있는 안대와 최신형 수면 기기를 비교하는 콘텐츠가 급증했다. 수면이 이토록 웰니스의 중대한 이슈로 떠오르며 과거에는 바이오해커의 틈새시장이었던 수면 디바이스 분야는 급부상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수면에 높은 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여유, 스스로에게 숙면을 위한 완벽한 시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럭셔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해 LG전자가 선보인 마인드 웰니스 솔루션 ‘브리즈’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무선 이어셋은 뇌파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스마트폰과 연동된 프로그램을 통해 상황에 맞는 적절한 뇌파를 유도하는 ‘뇌파 동조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깊은 수면 상태에 해당하는 2Hz대의 뇌파를 유도하기 위해 왼쪽과 오른쪽 귀, 즉 좌뇌와 우뇌에 2Hz 주파수가 차이 나는, 우리 귀에는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가격은 44만9,000원. 마침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 교대 근무로 생긴 불면증에 최근 이 제품을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가의 화장품을 대가로 지불한 뒤 일주일간 직접 체험해본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안을 달랠 때마다 트는 유튜브의 ASMR 영상 대신 이 이어셋을 꽂게 된다는 사실이다.

    “유튜브의 백색소음 콘텐츠는 엄밀히 말해서 감성을 자극하는 ‘일방적’ 스트레스 완화 도구입니다. 실질적으로 그 자극이 내게 딱 맞다고 판단하기 어렵고, 긴장과 불안을 달랜다고 볼 수 없죠.” 이어셋을 개발한 LG전자의 사내독립기업, 슬립웨이브컴퍼니 노승표 대표는 <보그>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이어셋을 꽂는 동안 지속적으로 뇌파를 측정하는 브리즈의 경우 쉽게 설명해 ‘A에서 B’, ‘B에서 C’ 등 현재 뇌파에 최적화된 자극을 계속 바꿔 제공하는 가변적 기술을 지닌다. 얕은 수면 중 뇌가 각성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깊은 수면으로 유도하는 주파수를 귀에 불어넣는다. 이어셋을 착용한 뒤 ‘brid.zzz’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규칙성과 관련된 개인 정보를 입력하면 ‘멘탈 루틴’ ‘집중 루틴’ ‘슬립트래커’ 세 가지 카테고리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돼 있다. 잠들기 전까지 수면의 질을 높여주는 음원을 선택 재생할 수 있는데, 나는 유튜브로도 가끔 듣는 풀벌레 우는 소리를 틀었다. 첫날은 수면의 효율보다는 귀에 무언가를 착용하고 있다는 이물감과 함께 천장을 보고 누운 자세를 무의식적으로 유지하니 과연 이상적인 수면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던 게 사실. “일반적으로 침대에 누운 뒤 빠른 시간에 잠들고, 중간에 깨지 않고 깊이 자는 것을 질 높은 수면의 척도로 삼죠. 브리즈의 경우 임상 시험 결과 사람들이 잠드는 시간을 50% 가까이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승표 대표의 말처럼 며칠간 착용감에 적응하다 보면 평소보다 잠드는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다는 것이 체감된다.

    “과거 수면 장애를 겪는 사람은 전문적인 센터에 가서 머리에 전선 여러 개를 매달고 수면을 측정해야 했습니다. 이제 디바이스를 통한 모니터링으로 단순히 값을 읽어내는 것을 넘어 어떤 증세에 대한 해석, 그리고 그를 개선하는 테라피를 실행하게 됐죠.” 노승표 대표는 현재의 바이오해킹 흐름을 읽으며 기술이 발전한 만큼 이제는 기존 바이럴 마케팅보다는 명확한 데이터값이 수면 도구의 핵심이 될 것이라 강조한다. 산소, 빛, 공기 질, 소음까지 잠을 둘러싼 모든 요소가 기계로 학습되고, 인공지능을 통해 최적화될 미래는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다. (VK)

    포토그래퍼
    최나랑
    모델
    우성아, 채지우
    헤어
    홍현승
    메이크업
    김신영
    스타일리스트
    김선영
    네일
    임미성
    세트
    최서윤(Da;rak)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