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 후 디사이즈 워
젊은 디자이너들이 짓는 미래, ‘2024 LVMH’ 디자이너 5인과의 인터뷰
이들이 꿈꾸고 만드는 것이 곧 패션의 미래가 된다. 2024 LVMH 프라이즈 세미 파이널에 선정된 5개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브랜드를 만들고 키우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말하는 패션과 미래.
메시지와 아름다움, 개성을 한 번에, 그것도 조화롭게 섞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부이자 파트너 에버라드 베스트(Everard Best)와 텔라 다모어(Tella D’Amore)가 이끄는 후 디사이즈 워(Who Decides War, 이하 WDW)는 이를 가장 능숙하게 해내는 브랜드다. 에버라드는 고등학생이던 2011년에 자신의 브랜드, 리즈 온 라이프 소사이어티(Lease on Life Society)를 론칭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에브 브라바도(Ev Bravado)로 브랜드를 개편한다. 이후 2019년 텔라와 함께 WDW 컬렉션을 선보이며, 디자이너로서의 2막을 본격적으로 연다. 기나긴 여정은 WDW만의 색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데님, 리사이클링, 자수와 염색을 비롯한 DIY 미학을 유지하며 스트리트 웨어가 도발적인 그래픽이나 슬로건 프린트 없이도 멋질 수 있다는 걸 매 시즌 증명한다. 동시에 뉴욕, 종교, 커뮤니티 등 여러 메시지가 곳곳에 짙게 배어 있는데, 모두 미국의 유색인종이라는 그들의 정체성에 뿌리를 둔 키워드다. 특유의 해방감과 강박에 가까운 디테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데님, 종교, 뉴욕 등 WDW는 참 많은 키워드를 지니고 있다. WDW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브랜드의 정체성을 설명한다면?
유색인종의 시선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아메리카나(전형적인 미국 문화), 그것이 WDW의 정체성이다. 빈티지 데님을 재탄생시키고, 소재를 해체하고 이어 붙이는 것, 겹겹이 쌓인 텍스타일 연출과 스테인드글라스 이미지 등 WDW가 소재를 선택하고 활용하는 과정을 보면 종교라는 테마도 빛을 발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브랜드를 둘이서 함께 이끌고 있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을 텐데.
에버라드 초반에는 내가 디자인의 대부분을 담당했고, 텔라는 모든 인프라를 구축하며 비즈니스를 키웠다. 파트너로서 끊임없이 서로의 결정에 관여했지만, 각자의 역할을 존중했다. 브랜드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브랜드 내 모든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회사 업무를 거의 다 경험해봤다는 이야기다. 어떤 업무도 사소하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원단은 단연 데님일 거다. 데님을 선택한 이유, 데님에 이토록 섬세한 장식과 디테일을 더하게 된 연유도 궁금하다.
우리에게 데님은 빈 도화지와 같다. 작업이 끝나기 직전까지 결과물을 예상할 수 없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탄생한 미국의 원단이다. 이제는 전 세계 사람 모두가 그 멋과 가치를 잘 알고 있고. 그런 모든 부분에서 강한 매력을 느꼈다. 그러니 모든 피스를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예술 매체를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말한 스테인드글라스 모티브도 인상 깊다. 확실히 종교적 색채가 강한데, 동시에 총알처럼 생겼다는 생각도 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자기 성찰의 순간을 의미한다. 마냥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이기보다는 무언가 영적인 것에 가깝달까? (영혼의) 창문이자 거울인 셈이다. 총알과 닮았다는 점에서 이중적 의미를 지니는데, 그 이중성을 담아내고 싶었다.
데님에 사용하던 기법을 스웨터, 셔츠 등 조금씩 다른 소재에도 적용하던데, 최근 주목하는 아이템이나 원단이 있나?
코튼과 프렌치 테리 같은 저지 소재를 연구 중이다. 저지는 데님 다음으로 우리가 정복해야 할 카테고리라고 생각한다. 저지 소재는 보기엔 아주 평범하다. 그런 소재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최대치로 끌어올릴지 끊임없이 대화하며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의 데님처럼 말이다.
2020년 가을 시즌에는 여성복을 론칭했다. 남성복과 다르게 접근한 부분이 있나?
텔라 근본적으로 메시지는 같다. 해방감이 느껴지는 옷, 고급스러운 표현, 디테일을 향한 고집, 브랜드의 디자인 코드까지 모두. 늘 그렇듯 옷에 대한 WDW의 젠더적 메시지, ‘마음에 들면 입는다’는 남성복이라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어떤 미래를 꿈꾸었나?
에버라드 1980년대 후반 바베이도스에서 이민 온 아버지의 꿈이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당시 사회적 제약으로 꿈을 이루진 못하셨다. 나는 매일 아버지의 꿈과 여정을 실현 중이다. 이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겨주시길 바랄 뿐이고. 개인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텔라 처음에는 세상에 없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유명세를 얻기 위해 대형 브랜드의 영향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작품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깔끔한 재단, 셀비지와 생지 스타일, 온갖 요란한 원색 데님 같은 트렌드가 지겹기도 했다. 데님을 표현의 핵심적인 매체로 확장하고 싶었다. 텍스타일을 끊임없이 실험하며 헤리티지를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패션의 중심축으로 가져오는 미래를 꿈꿨던 거 같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을 텐데,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며 드는 생각은?
에버라드 처음에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했던 것 같다. 파티도 수없이 다녔고, 의미 없이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안 되겠다는 생각에 주변 방해 요소를 모두 차단하고 오직 디자인에만 몰두했다. 그랬더니 그제야 내가 걷는 길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텔라 에버라드를 ‘한곳에 묶어두고’ 논의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하하. 나는 에버라드를 ‘아이디어의 소용돌이를 유영하는 리본 달린 풍선’ 같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내 역할은 그 리본을 꽉 붙잡고 있는 거다. 우리가 걷는 길은 늘 구불구불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 신념을 고수하면서 최선을 다해 실천하는 거다.
고(故) 버질 아블로와 가까운 사이였다. 2년 전 한 인터뷰에서, 그에게 배운 가장 큰 교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아하게 움직이는 법’이라고 답했다. 그 교훈이 여전히 유효한가? 그를 추억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운 점이 있나?
에버라드 ‘우아하게 움직여라.’ 이것이 그에게서 배운 모토이자 삶의 만트라 중 하나다. 지금도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 ‘버질 아블로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는 누구에게도 결코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재능이었고, 나 역시 긍정적인 그의 모습을 닮으려 노력하고 있다. 버질이 그립다. 실은 업계 모두가 그를 그리워하고 있을 거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옷을 디자인하는 것과 직접 입는 것, 누군가가 당신의 옷을 입는 것 중에서 어떤 게 가장 행복한가? 디자이너로서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지.
당연히 누군가 입은 모습을 보는 거다. 낯선 사람이 WDW의 옷을 입고 지나가는 걸 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우리가 누구인지 모를 때가 베스트고. 디자이너가 아니라 제품 자체에 반해서 샀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우리가 만든 샘플을 입어보는 것도 큰 기쁨 중 하나다. 옷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 옷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특별한 에너지를 줄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기쁘다.
1989년 마르지엘라 쇼처럼 민주적인 패션쇼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두 사람에게 ‘이상적인 패션쇼’는 어떤 모습인가?
텔라 관객들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고 그저 경험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쇼 말이다. 사람들이 우리 쇼를 좋아하는 이유도 어딘가 인간적이고 서로가 연결된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패션계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우리 쇼를 꾸준히 찾는 이유도 부디 이 때문이길 바란다. 하하. 카메라를 거의 켜지 않는 걸 보면,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는 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아, 그래서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쇼는, 매년 입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을 거뜬히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쇼다!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현재 패션업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버라드 보이는 그대로다.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여느 업계처럼 진국인 사람도 있고, 최악인 사람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신만의 도덕적 원칙을 즐기면서 스스로의 등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텔라 패션업계는, 음, 흥미롭다. 최근 내게 신선한 자극을 준 사람과 순간도 분명 있었지만, 사실 난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에버라드가 말했듯 나만의 원칙을 지키며 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심을 잃지 않으면 된다.
오늘날 디자이너로서의 가장 큰 의무는 무엇인가?
에버라드 내 커뮤니티에 봉사하는 거다. 지금 우리가 지닌 힘 또한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지도 않는다. 대신 흑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 디자이너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아티스트가 조금 더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의 작업과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수행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텔라 세상의 의미와 감정을 타인과 나누면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주 좁은 틈새를 뚫고 날아오르고 있다.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게 전부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먼 미래에 WDW는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내면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가?
에버라드 항상 그렇다. 어떻게 하면 매일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을 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텔라 매일이 나 자신과의 전쟁이다.
마지막으로, 20명의 준결승 진출자 중 가장 강력한 최종 후보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본인을 제외하고 말이다.
“저는 모든 흑인을 응원합니다.” – 이사 레이(Issa Raye)
#THEFUTURE
관련기사
-
패션 뉴스
“해외에서 통한다는 걸 내가 먼저 증명하겠다” – 지용킴의 김지용
2024.07.12by 안건호, 허단비
-
패션 뉴스
“패션업계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 호다코바의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
2024.07.12by 이소미, 허단비
-
패션 뉴스
“난 정말 열심히 일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 듀란 랜팅크의 듀란 랜팅크
2024.07.12by 황혜원, 허단비
-
패션 뉴스
“트렌드에는 고급스러움이 없다” – 보트레이트의 요나단 카멜
2024.07.12by 황혜원, 허단비
-
패션 뉴스
런웨이에서 부활한 SF 영화 속 패션
2024.07.12by 이소미, 한다혜
-
패션 트렌드
한국 패션계를 움직이는 리테일러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
2024.07.12by 안건호, 허단비
-
패션 뉴스
‘보그 코리아’ 10인이 미래에도 고집할 패션 원칙
2024.07.12by 이소미, 안건호, 황혜원, 허단비
-
뷰 포인트
사주와 트렌드 북으로 미래를 점치는 시대
2024.07.12by 황혜원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