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와 트렌드 북으로 미래를 점치는 시대
불안을 자양분 삼는, 혹은 위로와 확신을 주는 점사와 트렌드 북. 점사는 정해진 미래를 묻는 것이고, 트렌드 북은 바꿔나갈 여지가 있는지 찾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점을 보는 20대가 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20대 사이에서 사주가, 타로 카드가 유행하지 않았던 적이 있나. 확신 넘치는 20대가 어디 흔한가. AI에 밥그릇을 뺏길 운명에 놓인 삶은 또 어떠한가. 이제는 분야별로 트렌드 북이 나온다. 여기 사주를 믿는 사람과 아닌 사람, 트렌드 북을 직접 쓰는 데이터 전문가와 트렌드를 좇는 이까지 4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여기 당신의 미래가 있다.
“큰돈은 바라지 마요. 선비 사주야”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밤 11시 넘어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는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의미다. 전화를 받았다. 25년 전 사주 이야기였다. “오래전에 네 사주 본 종이가 나오더라고. 공부는 형식이래.” 옳은 이야기다. 대학 시절 나는 공부가 싫었다. 공부란 졸업 학점만 채우기 위한 형식에 불과했다. “2년 뒤 행정고시 치면 합격했을 거래.” 나는 행정학과 출신이다. 고시 따위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만약 준비를 했다면 그랬을 거라는 이야기지. 그래도 정치 쪽으로 가면 대성할 거랬는데…” 어머니는 검사 큰아들, 의사 작은아들을 꿈꾸는 낙관적인 분이셨다. 작은아들은 그의 낙관이 됐다. 큰아들(나 말이다)은 비관이 됐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 사주를 그렇게 보셨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인간의 미래는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점이나 사주를 믿지 않는 비관적 인간이다. 점이나 사주보다는 차라리 내 허리가 더 정확하다. 중년의 허리는 통증 정도로 다음 날 비가 올지 아닐지 거의 정확하게 맞힐 수 있다.
비관적 인간 주변은 이상하게도 낙관적 인간으로 넘친다. 낙관적 인간들이 오히려 점이나 사주를 많이 본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작년 처음으로 점을 봤다. 낙관적 친구가 데리고 간 점집은 서초구 법원 근처 오피스텔에 있었다. 법정에서 다투는 사람들도 변호사보다는 점쟁이를 더 많이 찾는 모양이다. 점쟁이가 말했다. “3년 전 고생한 적 있죠?” 나는 거기서 살짝 마음이 풀렸다. 우울증으로 꽤 고생한 것이 정확하게 3년 전이다. 귀가 절로 기울었다. “큰돈은 바라지 마요. 선비 사주야.” 점쟁이는 이걸 조심하라 저걸 조심하라 말했지만 기억나는 건 없다. ‘선비’라는 단어만 남았다. 선비란 어떤 존재인가. 고고하게 사느라 출세도 못하고 툇마루에서 먹이나 갈며 시조나 쓰던 존재다. 점쟁이는 옳았다. 나는 어떻게 생각해도 실용적 인간은 아니다. 40대 후반이 된 지금도 돈 이야기 꺼내는 것이 제일 힘든 인간형이다. 출세는 글러 먹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점쟁이 말은 어머니가 본 사주와 어느 정도 통하는 데가 있었다. 싫은 건 절대 하지 않으며 모든 사회적 성공의 길을 피해 가며 살아온 인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아니다. 나는 지금 사주와 점이 인생을 알려줄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점과 사주를 본 뒤, 자신의 귀에 유독 들어온 단어만 캐내 지나온 인생과 어떻게든 짜 맞추려 노력할 것이다. ‘선비’라는 단어를 듣고 인생과 어떻게든 연관시키려 노력하는 이 비관적 인간의 예를 보시라. 그러니 나는 점을 보러 갈 계획을 세운 당신을 막아설 생각은 없다. 당신은 어차피 점쟁이 말에서 당신이 바라는 것들만 쏙쏙 골라서 기억할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모두 여러분 상상력이 만들어낸 해석일 따름이다. 사실 그런 건 점을 보지 않아도 항상 우리가 두뇌로 행하는 활동이다. 뭐 어떤가. 가끔은 누군가가 뻔한 내 인생을 뻔하게 소리 내 말해주는 것도 듣고 싶은 법이다. 김도훈 작가
왜 사주를 보느냐고 물으신다면
“나 사주 좀 봐줘.”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쯤 누구 하나가 운을 뗀다. 그러면 나는 휴대폰 홈 화면에 깔아놓은 앱을 열고, 상대의 생년월일시를 입력해 4개의 기둥, 여덟 글자인 ‘사주팔자(四柱八字)’를 확인한다. 나이 지긋한 역술가를 찾았다면 손때 묻은 만세력을 팔락거리며 사주팔자 뽑는 장면을 볼 수 있겠지만 요즘은 ‘강헌의 좌파명리학’, ‘점신’, ‘원광만세력’ 같은 앱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알록달록한 8개의 네모 칸 중앙에 고딕체 한자가 하나씩 콩콩 박힌 사주팔자를 보며 내가 ‘입을 털기’ 시작하면 이내 격한 공감이 터지고 한탄이 새어 나온다. 한쪽에선 전화를 걸기도 한다. “엄마, 나 몇 시에 태어났다 그랬지?” 그렇게 내 휴대폰 화면에 떠올랐다 사라진 누군가의 운명이 꽤 된다. 내가 미천한 지식에도 친구들의 사주를 봐주는 건 저마다의 사주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과 딜레마를 ‘내 언어’로 표현하며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과 보람 때문이다. 나에게 ‘운명의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라는 뜻에서 명리학(命理學)이라 일컫는 사주팔자는 구시대적 운명론도 불경한 미신도 아닌 특별한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
동양의 명리학과 서양의 점성학은 한 아이가 어머니 배에서 나와 탯줄을 자르며 독립된 개체로서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된 바로 그 시각 천체에 떠 있는 수많은 별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빅데이터로 정리한 친환경적 학문이다. 이 지구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은 무엇보다 밤낮, 그리고 사계절의 순환에 따른 영향을 받는다. 길흉화복을 점치고자 시작된 ‘술’이 ‘학’이 되는 이유는 인간은 순환하는 자연 속에서 그때그때의 행과 불행, 상승과 하강을 누릴 뿐 계속 좋고 계속 나쁨도 없다는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명리학은 숙명론이 아니다. 주체를 둘러싼 우주 기운의 변화,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주체의 기운 변화가 유기적으로 맞물리고 어긋나고 하면서 흘러가는 메커니즘이다. 사주에 내 미래가 보인다고 해서 그저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맞닥뜨릴 이 파도는 피해 갈 방법이 없으니 서핑하듯 올라타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대비하는 거다. 또 다음 파도를 예측하고 그것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나의 운과 명을 두고 전략을 짜보는 거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는 시점이라면 한 번쯤 사주를 보러 가시라. 안동선 미술 전문 작가 · 기자
빅데이터로 본 한국인에게 ‘미래’란?
‘미래’는 블로그에서 2023년 2분기에만 100만 건 이상 언급됐다. 미래란 무엇인가? 지금 한국인에게 미래의 의미는? 두 가지 모두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동시대인의 다양한 주관을 모아주는 ‘데이터’는 이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힌트를 줄 수 있다. 데이터로 보면, 사람들은 과거보다는 미래, 그리고 미래보다는 ‘현재’를 압도적으로 많이 말한다. 현재의 추세선을 보면 미래와 과거에 비해 불규칙하고 삐죽삐죽한 모양이다. ‘현재 가장 인기 많은’, ‘현재 상황에 가장 필요한’ 등 광고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정보와 함께 언급되어 종종 화제의 담론에서 큰 피크를 만들어내는 속성 때문이다. 과거는 미래와 비슷한 언급량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2023년 이후에는 ‘미래’가 ‘과거’를 역전했다. ‘미래’를 보는 인식이 달라진 걸까? 지금 우리 사회, 동시대인이 가진 미래에 관한 궁금증은 어떤 마음에서 나올까? 불안일까 혹은 희망일까.
데이터로 미래를 살펴보면, 연관어로 ‘삶’, ‘환경’, ‘변화’, ‘인생’, ‘정보’, ‘성장’, ‘가치’, ‘가능성’, 도전’ 그리고 ‘나이’ 등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감성어(키워드가 언급된 문서 내에서 함께 등장하는 긍정·부정·중립어)와 서술어는 어떻게 나타날까? 1위부터 나열하면 ‘새로운’, ‘중요한’, ‘긍정적’, ‘지속적’, ‘희망’, ‘고민’, 사랑’, ‘행복’, ‘성공’ 순이었다. 미래에 대한 가지치기는 ‘새로운’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한다. 결국 ‘미래’란 희망과 새로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사랑, 행복 그리고 성공에 대한 상상이 곁들여진. 반면 ‘불안’은 20위권 밖에 존재한다. 데이터로 본 한국인의 ‘미래’는 긍정에 가까운 중립이다. 오히려 변동과 불규칙은 현재라는 키워드의 패턴이다. 미래는 늘 멀지만, 현재보다 안정성 있는 콘텐츠라고도 볼 수 있다. 여전히 희망이 있는.
장래 희망을 적듯,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명리와 같은 전통적 방식, 트렌드 보고서 혹은 데이터라는 현대적 접근으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방법론적 차이는 있지만, 공통 속성은 있다. 불규칙한 현재보다는 미래에 기대를 갖는다는 것. 더 넓고 새로운 상상에 대한 희망에 가까운 기대를 우리가 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정석환 생활변화관측소 데이터 연구원
나는 눈이 글렀구나
“저는 이제 부자예요.” 10년 전 만났던 에너지공학과 교수(이름은 말할 수 없다)의 말에 ‘사기꾼’ 비상벨이 울렸다. 첫마디에 자신은 이제 부자가 됐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니, 자신감 넘쳤던 그날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신으로 가득 찼다. 결말부터 알고 싶다면 그는 진짜 부자가 됐다. 자동차 기업과의 협업 발표가 났고, 그가 개발한 기술로 대한민국 뉴스가 도배됐다. 주식은 급상승했다. 왜 알아채지 못했는가. 휴대폰을 두드리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모습과 제자만 10명이 넘는 유난히 넓고 깨끗했던 연구실, 나라에서 운영하는 확실한 증명서까지 있었는데 왜, 그가 말한 주식을 사지 않았을까. 그해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과학자들은 모두 유명해졌다. 4차 산업혁명의 시기였고, 난 완벽한 트렌드세터였다.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는 트렌드 북 제작도 했다. 지금도 먹거리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선견지명이 대단했다. 나도 TF팀으로 끌려 들어가 트렌드 북 제작에 참여했다. 매주 세상에 펼쳐진 아주 작고 사소한 (트렌드가 될 만한) 아이템을 찾아내는 정말 하기 싫어했던 작업이다. 누군가 ASMR을 트렌드 아이템으로 가져왔을 때, 변태라고 웅성거렸다. 잠을 잘 오게 도와주도록 소곤거리는 소리라니. 그리고 온 세상이 변태 천지가 되었을 때는 조금 느꼈던 거 같다. 나는 눈이 글렀구나.
트렌드 북 아무리 읽어봐야 나처럼 눈이 그른 자들은 전망이 없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경험의 축적은 무섭다. 배움도 무섭다. 그때 배운 트렌드 발굴법, 데이터 분석법, 세상을 보는 법 등을 지금 웹 기사에 쓸 줄 누가 알았나. 올가을 유행할 청바지라든지, 사람들이 많이 들 가방이라든지, 온 세상을 도배할 아이템(<보그 코리아>에는 언제나 당신에게 유용한 패션이 가득합니다)을 찾는 데 유용하게 활용 중이다. 아쉽게도 개안한 건 아니다. 그저 무조건 답은 ‘사람’에게 있다는 뻔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거다. 트렌드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미래도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변태는 말해줬다. 감사한 사람. 그 덕분에 난 더 이상 트렌드 북을 보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마이크로 트렌드 시대니까. 나도 사람이니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게 길이 되고 미래가 되는 거다. 그래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자꾸만 그런다. 부자는 못 될 거 같아. 황혜원 <보그 코리아> 웹 에디터
#THE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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