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고독한 직장인 T에게 권하는 드라마
7월 초 <졸업> 후속으로 방송을 시작한 <감사합니다>는 건설 회사 감사팀이 배경이다. 시쳇말로 ‘극 T’인 감사팀장 신차일(신하균)과 ‘극 F’ 성향의 평사원 구한수(이정하)가 주인공이다. 첫 2회는 이 두 사람의 대비를 강조함으로써 시청자들이 기업 감사 직무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신차일은 조직을 갉아먹는 ‘쥐새끼’들을 소탕하기 위해 부패한 회사만 골라서 입사했다가 정화 작업이 끝나면 다음 회사로 옮겨가는, 기업 감사계의 떠돌이 칼잡이 같은 존재다. 어차피 제 발로 떠날 사람이니 오너 일가나 위세 좋은 임원의 해고 협박 따위는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아랫사람들에게 정을 주지도 않는다. 반면 구한수는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을 법한 서글서글한 청년이다. 연장자들에게 싹싹하고, 의리 있고, 주변에서 감정적으로 불편한 상황이 생길라치면 재빨리 끼어들어 중재하고, 동료에게 뾰족한 말을 들어도 둥글게 대응한다.
구한수가 다니는 JU건설은 오너 일가의 경영권 경쟁이 한창이다. 차기 경영자 후보 중 하나인 사장 황세웅(정문성)이 신차일을 감사팀장으로 고용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신차일의 첫 임무는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붕괴한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다. 그가 현장소장을 의심하자 구한수가 펄쩍 뛴다. 소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은 소장을 믿는다고 한다. 신차일은 피감사인들의 위선과 거짓말을 볼 만큼 보고, 부실 감사의 폐해도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인 듯하다. 그가 구한수에게 냉정하게 선언한다. “구한수 씨는 감사 업무가 안 맞습니다. 부서 이동하세요. 일주일 드립니다. 정리하세요.” 이 대사가 통쾌한 첫째 이유는 이게 아파트 건설사 얘기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워낙 리베이트니 접대니 하는 낡은 문화로 악명이 높았다. 오죽하면 한국 드라마에서 정치권에 뇌물 먹이고 못된 짓 하는 기업가 십중팔구가 건설 계통이다. 최근 몇 년간은 브랜드 아파트가 연달아 부실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민들의 불신이 가중되었다. 국민 다수가 아파트 하나 장만하는 게 일생의 목표인 나라에서 온갖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수십 년짜리 담보대출을 받아서 사는 아파트가 부실이라니, 분노가 치미는 건 당연하다. 이런 맥락 때문에 신념 있는 감사팀장이 아파트 건설사의 내부 비리와 썩은 관행을 도려내는 이야기가 통쾌해진다.
구한수는 서글서글한 성격 때문에 본인도 모르는 새 비리 카르텔의 말단과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다. 작품 초반, 전임 감사팀장 회식 자리에 현장소장이 나타나 술값을 계산하고 한수에게 신발을 선물한다. 동료 윤서진(조아람)은 감사팀 직원이 선물을 받으면 안 된다고 지적하지만 한수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긴다. 실제 한국 회사에서는 윤서진 같은 존재가 ‘모난 사람’이라 욕먹고, 한수 같은 타입이 승승장구할 확률이 높다. 이 지점에서 구한수는 공적 영역에서도 ‘우리가 남이가’, ‘좋은 게 좋은 거지’, ‘형님 아우’가 통하는 한국 사회의 오류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장을 옹호할 ‘근거’를 내놓으라는 신차일에게 자기 인상만 갖고 대드는 구한수가 답답하고, “당신은 감사 업무가 맞지 않는다”는 신차일의 반응이 후련하다.
신차일과 일하면서 구한수는 자기 믿음이 깨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궁지에 몰린 소장은 구한수에게 인정을 호소하고, 소장 역시 인간적 유대감 때문에 임원들과의 뒷거래에 끌려 들어갔음이 밝혀진다. 아마 신차일을 만나지 못했다면 구한수의 미래도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수는 “짜증 나게 팀장님 말이 계속 맞다”고 인정할 정도 이성은 있는 인물이라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
구한수의 성장 드라마만큼 기대되는 또 다른 요소는 오피스 드라마로서 <감사합니다>가 그리는 건설업계의 디테일이다. 방영 첫 주, 신차일과 구한수는 임원들이 부실 부품을 조립한 ‘유령 타워크레인’을 도입하면서 이중장부를 만들어 비자금을 챙겼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시청자 전반이 관심 있으면서 내부 사정은 잘 모르는 건설업계를 누아르의 곁가지가 아니라 오피스 드라마의 주 배경으로 설정하면서 흥미로운 디테일이 만들어졌다. 그 덕분에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 피해자 바꿔치기, 증거물을 차지하기 위한 물리적 싸움, 특별 감사장에서의 공방으로 이어지는 수사물 구조에도 활력이 생겼다. 1·2회에서 주인공들만큼 눈길을 사로잡은 또 다른 인물은 부사장 황대웅 역의 진구다. 회사에 탄탄한 세력을 구성하고 비리 임원들 위에 폭군처럼 군림하는 캐릭터다. 진구는 초면의 신차일을 향해 “저거 눈XX가 왜 저래”라고 막말을 던지거나 특별 감사장에서 궁지에 몰리자 침을 뱉듯 사과하는 황대웅을 비릿한 야생성을 섞어 연기한다. 그가 화면에 등장하면 즉각 긴장이 감돈다. 시청자들은 신차일이 그를 철저하게 밟아주기를 응원하는 동시에 진구의 연기 자체에서도 쾌감을 느낄 것이다.
오피스 수사물이자 성장 드라마이자 한국 직장인 T들의 울분을 삭여줄 이성적 영웅담 <감사합니다>는 tvN에서 토·일 오후 9시 20분 방송된다. 스트리밍은 티빙, 시리즈온, U+모바일tv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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