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슈퍼모델 이리나 샤크와 <보그>의 운명적인 첫 만남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같이 있어야 합니다. 자, 나가서 좀 걸을까요. 지금 날씨가 무척 좋네요.” ─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

패션 화보

슈퍼모델 이리나 샤크와 <보그>의 운명적인 첫 만남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같이 있어야 합니다. 자, 나가서 좀 걸을까요. 지금 날씨가 무척 좋네요.” ─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

178cm의 늘씬한 키에 완벽한 몸매,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슈퍼모델 이리나 샤크가 <보그 코리아> 8월호의 커버 모델로 나섰다. 특유의 화려함을 걷어내고 미우미우 2024 가을/겨울 컬렉션을 착용한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고요하지만 힘 있게 카메라를 응시한다.

크고 작은 크리스털 장식을 수놓은 스웨이드 재킷을 미니 드레스처럼 연출했다. 안에 입은 셔츠의 한쪽 칼라를 빼내 위트를 더했다.

“이번 컬렉션은 삶에 대한 이야기로, 옷을 통해 경험을 표현합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인생 주기에서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완성했다. 좁고 긴 짙은 밤색 코트와 파자마 스타일의 얇은 셔츠 수트, 그 위로 아무렇게나 두른 진주 목걸이로 마무리한 오프닝 룩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를 떠오르게 한다.

촬영 전 이리나와의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은 ‘완벽하게 드레스업하지 않기’였다. 셔츠 단추는 모두 채우지 않고, 재킷은 바람에 날리는 대로, 부츠 역시 다리에 맞게 버클로 고정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만으로도 룩이 충분히 완성되기 때문이다.

양면적 코드를 혼합하는 자유로움은 소재와 구조에서도 나타난다. 시어링으로 만든 고급스러운 모피 재킷이 그 대표적인 예. 품에는 2009년 아카이브 디자인을 재해석한 ‘아방뛰르 백’을 안고 있다.

“매일 아침 나는 열다섯 살 소녀가 될 것인지, 죽음을 앞둔 여인이 될 것인지 결정합니다.” 미우치아에게 옷은 기억의 도구로서,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다. 의도적으로 축소한 니트 카디건의 비율과 짧은 소매, 신발의 둥근 앞코를 통해 어린 시절을 반영했다면 어른이 된 모습은 테일러드 팬츠나 가죽 장갑 같은 요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컨셉을 완벽히 이해하고, 공간과 하나가 된 듯 자연스럽게 녹아든 이리나. 그 여유로움 그리고 여전히 진중하게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녀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런 건 어때요?” 이리나가 침대에 누워 포즈를 취했다. 그녀는 의자에 앉는 방식, 손을 내려놓는 모양 등 우리가 상상하는 미우미우 레이디의 모습을 세세하게 구현하기 위해 촬영 내내 스태프들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미우치아는 친숙한 아이템을 좀 더 멋지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녀의 손을 거친 투박한 바버 스타일의 왁스드 재킷, 스키용 오버사이즈 파카에는 앤디 워홀풍의 커다란 꽃이 그려진 풍성한 버블 스커트를 매치해 화려함을 더한 것이 핵심.

“이번 컬렉션은 매우 개인적입니다. 패션에 대한 개인의 표현이며, 삶에 대한 개인의 경험입니다. 당신 자신이자 당신 자신만의 것이죠.” 미우치아의 말처럼 이리나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미우미우 컬렉션을 소화해냈다.

옷장 속 옷에 눌려 구겨진 듯한 실크 드레스의 빈티지한 주름은 코튼 저지 시스 소재를 결합해 완성한 디테일이다. 미우치아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의상과 액세서리는 미우미우(Miu Miu).

소비에트(구소련)의 혹독한 겨울에 태어나 지금은 슈퍼모델의 화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이리나 샤크. 가난한 성장 배경부터 모델로서의 성공, 할리우드 배우와 결별, 현재 싱글 맘의 삶까지.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여러 촬영을 함께 해온 동료이자 친구 에드워드 에닌풀에게 털어놓았다.

영국패션협회가 주최하는 ‘2019 패션 어워즈’가 열리는 날 아침, 나는 오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이츠브리지에 자리한 불가리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차가운 12월의 바깥공기는 싸늘했고, 옅은 조명이 밝히는 호텔 복도는 침울해 보였다. 하지만 이리나 샤크가 스위트룸의 문을 열어젖히자 갑자기 봄이 온 것만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그녀가 연극 대사 투의 과장된 말투로 맞이했고, 나는 곧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이 정열적인 1986년생 러시아인은 얼굴에 반짝이는 골드 시트 마스크를 얹은 채 리카르도 티시와 페이스타임 중이었는데, 몹시 아름다우면서도 장난기 많은 투탕카멘처럼 보였다(놀랄 것 없다. 이리나와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친구들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기분이 들곤 하니까). 게다가 마스크를 뒤집어쓰고도 청바지 밑단을 검정 양말 안으로 쑤셔 넣고 심플한 회색 티셔츠에 금색 후프 귀고리를 한 모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졌다.

우리는 몇 해 전 머트 알라스와 마르커스 피고트(Mert Alas & Marcus Piggott)가 촬영하는 화보 촬영장에서 스타일리스트와 모델로 처음 만났다. 그녀는 미국 스포츠 매거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모델로 대박이 난 덕에 이미 소셜 미디어 스타였다. 나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했고, LA 촬영장에서 우리는 이미 서로 평생 알고 지낸 친구 같았다. 그녀의 유머 감각과 다정함, 아름다움 그리고 무엇보다 특유의 맹렬함이 마음에 들었다(혹독한 구소련의 겨울에 태어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패션계 역시 그녀와 사랑에 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방시와 미우미우 쇼에 선 그녀는 유명 사진가들과 작업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들리 쿠퍼도 이리나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이 커플은 4년 동안 관계를 지속했고, 2017년 3월 딸 레아 드 센 샤크 쿠퍼(Lea de Seine Shayk Cooper)를 낳았다. 둘은 현재 헤어졌지만 공동 육아를 하고 있으며, 이리나는 엄마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고 있다.

리카르도와 영상통화를 마친 그녀는 마스크를 떼어내고 나를 침실로 데려갔다. 이미 식어버린 룸서비스 음식과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하이힐 등 슈퍼모델의 화려한 삶의 흔적이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었다. “오늘 밤에 입을 게 없어요.” 몇 시간 뒤 레드 카펫에 설 예정이지만 아직 의상을 선택하지 못한 이리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지금까지 받은 옷이 그녀의 글래머러스한 몸매에는 전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도 잘 알다시피.”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걸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엄마들은 먹는 걸 좋아하잖아요?” 우리는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야기해봅시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죠. 그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요?

러시아의 예만젤린스크(Yemanzhelinsk)라는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아빠는 광부였고 엄마는 피아니스트였는데, 엄마는 일할 곳이 없어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위해 연주하셨답니다. 평범한 삶이었어요. 영화관도, 레스토랑도 하나 없는 동네였죠. 아빠를 잃은 건 열네 살 때였어요. 정말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기침을 조금씩 하시더니 44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돌아가셨어요. 나와 엄마, 언니 이렇게 여자 셋만 남게 됐죠.

어떻게 생계를 이어갔나요?

우리는 아빠가 살아계실 때부터 이미 살아남는 법을 배운 상태였어요. 러시아에서는 그래야만 하거든요. 여름에 채소를 길러서 묻어뒀다가 겨우내 감자나 당근을 먹고 사는 거죠. 처음 뉴욕에 갔을 때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감자를 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말도 안 돼!’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니까요.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엄청난 슬픔이었습니다.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 정말 커다란 존재였으니까요. 부모님은 7년 교제 후 결혼하셨어요. 엄마는 결혼한 지 14년 만에 아빠를 잃고 완전히 겁에 질리셨고요. 하지만 러시아 여자들은 꼭 필요한 시기에 더 열심히 일하는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답니다.

학교 다닐 땐 인기가 많았나요?

아뇨! 첫 남자 친구도 열여덟 살 때 사귀었는걸요. 남자애들은 날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죠?

너무 마른 데다 피부 톤까지 어두워서, 남자애들이나 여자애들 전부 나를 놀렸거든요. 난 내가 모델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어요. 두꺼운 입술 때문에 러시아 만화에 등장하는 흑인 캐릭터 충가 챙가(Chunga-Changa)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요.

세상에!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면 좋겠다’고 늘 바랐어요. 그러면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요. 어릴 땐 정말 부끄러움을 많이 탔어요. 사진 찍히는 것도 정말 싫어했죠.(웃음)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답니다!

그렇군요, 지금 우리가 아는 당신과는 거리가 멀군요.

우선, 나는 항상 잘못 태어났다고 느꼈어요. 원래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말이죠.

흥미로운데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아빠가 늘 남자아이를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요.

몇 살 때 그런 감정을 느꼈나요?

열네 살 때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내가 남자라면 가족을 돌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스스로 결혼을 못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여자로서의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죠. 하지만 당시 그 느낌은 아직까지 기억해요.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순간이 있다면?

큰 전환점이라면 여덟 살 때 일어난 사건이에요. 아빠는 결혼 전부터 20년 동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차를 한 대 사셨어요. 당시 그 동네에서 차를 가진다는 건 왕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아빠는 그 차를 팔아서 새집과 학비, 또 다른 차를 마련할 계획을 세웠답니다. 하지만 집에 강도가 들어 그 돈을 도둑맞았어요. 내가 문을 열었는데 복면을 쓴 남자 셋이 내 머리에 총을 겨눴어요(그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울 생각은 없었는데···

오, 이런, 이리나!

그들은 “너희 아버지 어디 있어? 집에 돈 있는 거 다 알아”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난 아빠가 샤워 중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결국엔 화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큰 싸움이 일어났죠.

당신은 고작 여덟 살이었고요?

네. 한 명이 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아빠와 싸웠어요. 집이 1층이다 보니 아빠가 창밖으로 몸을 던져 도움을 구하러 뛰어나가자, 강도들은 겁을 먹고 도망갔죠. 정말 무서웠어요.

트라우마로 남았겠군요.

그래서 여전히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일은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배신한 거였어요. 아빠가 차를 팔 거라는 사실을 아는 건 그 사람밖에 없었거든요. 지금까지도 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지 않아요, 믿지 못하면서 살고 싶진 않지만요.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당신에게는 말하고 싶었어요.

믿어줘서 고마워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모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군요?

전혀.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외출하면 사람들이 딸이 정말 예쁘다고 하지 않았나요?

가족에게는 언제나 사랑받았지만, 집 밖에서는 아니었어요. 다르게 생겼다는 게 이유였죠. 고향을 떠나 더 큰 도시로 옮기고서 언니는 대학에서, 나는 전문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습니다. 오후에는 미용 학원에 다녔는데, 그 옆에 모델 학원이 있었죠. 내 매니저였으며 지금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구이아 지키즈(Guia Jikidze)가 미용 학원으로 스카우터를 보냈고, 그가 내 사진을 찍어 구이아에게 보여줬어요. 그가 내게 물었죠. “모델이 되고 싶니? 파리에 가고 싶어?”

열아홉 살에 처음 파리에 갔을 때 어땠나요?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르죠. 차량 서비스도 없고, 공항에서 맞아주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화장실 2개 딸린 아파트에서 모델 8명이 함께 살았어요. 집세는 한 주에 50유로, 일주일 지하철 티켓값이 25유로였죠. 주말에는 먹을 게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난 영어도 못해서 “내 이름은 이리나입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밖에 할 줄 몰랐고요.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답니다.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러시아 밖으로 나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요.

결정적 계기가 된 건 무엇이죠?

“다른 곳으로 보내주세요, 나는 돈을 벌어야 해요.” 에이전시에 가서 이렇게 말했더니, 스페인으로 가서 라코스테 카탈로그를 찍고 카리브해에서 화보도 찍게 됐죠. 확실하진 않지만 4,000유로 정도 벌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그 돈을 받고 며칠 동안 우셨죠. 미국에서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계기가 됐고요.

러시아에서 자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모델 출신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인간관계와 인생 경험을 통해 내 생각과 의견을 갖는 법을 배웠습니다. 상업 모델로 패션계에 발을 들였으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죠. 나는 어릴 적부터 늘 가슴이 크고 몸매도 굴곡진 상태였거든요. 물론 파리에 있을 땐 좀 말랐으면 좋겠다고 바랄 때도 있었죠. 옷이 맞지 않아서 돈을 벌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여자들은 강하고,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패션계에서 젊은 여성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열아홉, 스무 살이 되어서야 모델 일을 시작한 덕분에, 어린 시절을 간직하고 있어요. 나는 항상 자신을 믿었어요. 열네 살 때는 잘못 태어났다고 여기긴 했지만, 결국에는 여자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였죠. 나는 살을 빼거나 머리카락을 염색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느끼지 않았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나는 패션계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옛날에는 지도를 들고 다녀야 했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도 없었잖아요. “소셜 미디어 팔로워가 많고 페이스북에서 인기가 많으니 그녀를 부킹하자”고 말하는 클라이언트도 없었죠. 그저 사진과 소개하는 말이 전부였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요!

러시아 내 LGBTQIA+ 인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요?

알다시피, 나는 조국을 사랑해요. 모스크바에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언더그라운드 게이 클럽이 있고, 전 세계 사람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죠. 주위에 젠더 플루이드 성향의 친구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러시아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 만큼, 아직 진행 중이라고 느껴요.

엄마가 된 후,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나요?

싱글 맘과 워킹 우먼, 부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세상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전부 망친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더라고요. 일주일 이상 딸과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하지만,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아요.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여자들이 부양하는 가정에서 자랐으니까요. 딸이 내가 일하는 엄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강한 여자로 크길 바라거든요. 생계를 책임지는 일을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룻밤 사이에 우선순위가 바뀐 건가요?

아니요, 임신 7개월 반까지 일했는걸요. 출산 후 깨어나니 아이를 안겨주더군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뭘 해야 하지?’ 2시간 반마다 딸에게 수유를 해야 했죠. 그 후부턴 배움의 연속이었어요.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나와 엄마의 관계에 변화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물어보려고 했어요.

나는 1986년 구소련에서 태어났어요. 세탁기도, 건조기도, 기저귀도 없었단 뜻이죠. 엄마는 우유 한 병을 얻으려면 나보다 한 살 반 위인 언니와 2~3시간 줄을 서야 했어요. 내 딸이 한 살 반이 됐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가 그 시절에 아이를 둘이나 키웠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그랬더니 엄마는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둘째가 너였잖아! 널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진심으로 엄마를 존경해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하신 모든 일에 대해서도요(이리나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도 뵌 적이 있죠. 정말 멋진 분이에요!

미안해요, 5분만 울게요!

언제든 괜찮아요. 주제를 바꿔봅시다. 일과 가정, 그럼 데이트할 시간은 어떻게 마련하죠? 아직 준비가 안 됐나요?

글쎄, 아직 적응 중이죠. 이제 막 인생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기도 했고, 나는 운명을 믿거든요. 우주가 내게 맞는 사람을 보내준다면, 그때 고려해보려고요.

사람들이 당신에게 다가가는 걸 부끄러워한다고 여겨요?

아무한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줄게요. 나는 한때 “이리나가 무섭다”고 말했던 여러 남자들과 사귀었어요.

왜 그렇게 말하는 거죠?

글쎄요, 아무래도 러시아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 아닐까요? 다이아몬드와 보드카를 좋아하는 것 같은? 내 말은, 나도 그런 걸 좋아한다는 거죠.(웃음)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요?

그러게요! 다이아몬드와 보드카를 마다할 사람이 있냐고요. 난 강한 사람이에요. 성격도 강하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죠. 어떤 남자들은 나를 무서워할 수도 있어요. 누군가와 관계를 끊어야 할 때는 정말로 완벽하게 끊어내죠. 그런 냉정함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 내면에는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이도 많지 않겠죠.

브래들리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브래들리와 헤어진 후의 삶은 좀 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모든 연인은 서로 최선과 최악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저 인간의 본성이죠. 멋진 두 사람이 만나 꼭 행복한 커플로 남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함께 나눈 경험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해요. 그가 없는 삶은 새로운 개척지 같아요.

그 후로는요?

잘 지내요. 새로운 사랑인 딸 레아가 있으니까요.

결별 후 공동 육아는 잘되고 있나요?

난 항상 “공동 육아가 대체 뭔가요?”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공동 육아 하는 사람들은 “아, 그건 반반씩 하는 거예요”라고 답해요. 하지만 난 반쪽짜리 엄마가 아니라 100% 엄마인걸요. 그 역시 100% 아빠고요. 그래서 공동 육아라고 표현하지 않아요. 가끔 ‘와, 나 싱글 맘이네’라는 생각이 들면, 조금 두렵긴 하지만 할 만해요. 여자들은 동시에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답니다. 살면서 나를 돌보는 남자는 본 적이 없어요. 단 한 명도!

혼자만의 시간은 있나요?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요. 아마 많은 싱글 맘이 공감할 거예요. 하지만 난 스파를 정말 좋아한답니다!(웃음)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 꼽히죠. 언제 자신이 가장 섹시하다고 느끼나요?

섹시함은 푸시업 브라로 끌어 올린 가슴이나 붉게 칠한 입술, 아찔한 하이힐, 커다랗게 부풀린 헤어스타일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남성용 오버사이즈 수트를 입거나 운동복을 입어도 섹시하다고 느낄 수 있죠. 난 섹시하지 않은 여자를 본 적이 없어요. 모든 여자는 섹시해요.

10년 후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저 현재를 즐기려 노력할 뿐이랍니다. 삶은 너무 빨리 흐르고, 우리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단지 10년 후에도 나와 레아가 건강하고, 가족 모두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내가 아는 가장 재미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군요.

(웃음) 고마워요. 너무 진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좋아해요. 친구가 그렇게 많진 않지만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편인 데다 내 공간을 지키는 걸 중요하게 여기지만, 유머 감각만은 절대 잃지 않는답니다. (VK)

    포토그래퍼
    필립 다니엘 듀카스(Philip-Daniel Ducasse)
    패션 디렉터
    손은영
    패션 에디터
    김다혜
    에드워드 에닌풀(Edward Enninful)
    스타일리스트
    맷 홈즈(Matt Holmes)
    모델
    이리나 샤크(Irina Shayk@The Society)
    헤어
    아키(Akki@Art Partner)
    메이크업
    호마 사파(Homa Safar@Day One)
    네일
    허니(Honey@Exposure NY)
    세트
    로맹 구디누(Romain Goudinoux@Bryant Artists)
    캐스팅
    버트 마티로시안(Bert Martirosyan)
    프로덕션
    박인영(Inyoung Park@Visual Park)
    SPONSORED BY
    MIU M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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