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세로 14cm, 무게 약 1.4g의 은박 7만 장으로 채운 74m의 긴 활주로 위로 펼쳐진 드리스 반 노튼의 마지막 피날레 행렬.
모델 폴 오니언의 스미나가시 프린트 코트를 점검 중인 드리스 반 노튼.
드리스 반 노튼의 마지막 쇼를 사흘 앞둔 르 마레 쇼룸의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투명한 소재의 밀리터리 재킷을 입은 모델이 워킹을 하고 있다.
마지막 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드리스 반 노튼 팀은 백스테이지에 모두 모여 서로에게 박수를 건넸다.
오랜 친구의 기념비적인 패션쇼에 기꺼이 참여한 모델 카렌 엘슨과 말고시아 벨라.
마지막 쇼를 사흘 앞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은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모든 것이 의심스럽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답니다. 대부분 그래왔어요. 런웨이로 나가기 직전 옷을 입은 모델들이 모두 함께 서 있으면 그제야 비로소 컬렉션 전체를 보고 ‘아, 느낌이 좋다’고 말하죠.” 반 노튼은 르 마레에 있는 쇼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6월 22일 쇼는 개인적으로 그의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부담이 컸다. 지난 3월 반 노튼은 편지를 통해 3개월 뒤 30년 전 자신이 만든 브랜드에서 물러나겠다고 알렸다. 2018년 스페인 뷰티·패션 그룹 푸이그(Puig)에 지분 대부분을 매각했지만, 그는 여전히 주요 소수 주주이자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이며 이사회 의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 “컬렉션 디자인은 그만두겠지만, 여전히 브랜드의 일원이에요. 뷰티와 매장 디자인에 참여하고, 컬렉션에 대한 조언도 계속할 겁니다. 완전히 작별 인사를 하고 문을 닫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꿈꿔온 일들을 해볼까 해요.”
‘꿈꿔온 일’은 무엇일까? “아직 말할 수 없어요. 내게 매우 소중한 모든 것과 관련이 있긴 합니다. 앞으로도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좋겠어요. 우리 팀은 정말 젊은 팀이거든요. 덕분에 제가 젊음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받은 것 같고요. 계속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들이 매료되거나 두려워하거나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어요. 공예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어요. 제가 세상을 보는 방법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과 관련 있을 거예요.”
지난 2022년 시작한 향수 사업 부문에 남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향수는 우리 브랜드의 본질과 같다고 느껴요. 병 하나에 모든 DNA가 담겨 있죠.” (인터뷰 당일 그는 그린 만다린과 세이지 향이 나는 ‘미스틱 모스(Mystic Moss)’를 뿌리고 왔다.)
반 노튼은 자신의 마지막 컬렉션이 지금까지의 커리어 중 ‘최고’이길 바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밀어붙일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소재를 꽤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중엔 제가 다루기 까다로운 것도 있어서 약간 긴장했죠.” 컬렉션에는 투명한 소재로 만든 바지가 포함되어 있고, 일본 염색 기법인 스미나가시(すみながし, 일본어로 ‘떠다니는 잉크’라는 뜻)를 처음 적용하기도 했다. 이는 잉크 마블링을 통한 일본의 고대 기술로, 각 무늬를 다른 형태로 만들어 모든 제품에 고유한 개성을 부여한다. 게다가 코트 충전재로는 새롭게 개발한 재활용 캐시미어 울을 사용했다.
이 컬렉션은 벨기에 현대미술가 에디트 드킨트(Edith Dekyndt)에게 영감을 받았다. “그녀는 투명함을 표현하는 작업을 주로 선보입니다. 추억을 담아내는 소재와 낡은 원단을 많이 사용하죠.” 반 노튼은 느슨하지만 좀 더 빳빳한 원단을 사용했다고 설명하며, 이번 컬렉션을 ‘무심한 우아함(Casual Elegant)’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총 70개였던 룩을 65개로 줄였다.
피팅이 진행되는 동안 쇼 전날에 다시 와달라고 초대받았다. 반 노튼은 모델 폴 오니언(Paul Ohunyon)의 프린트 재킷을 보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파트너이자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패트릭 반겔루위(Patrick Vangheluwe)와 20년 동안 함께 일해온 이미지 책임자 얀 반후프(Jan Vanhoof)도 한자리에 있다. 그들은 재활용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만든 오간자 팬츠와 밀리터리 포켓이 달린 투명 재킷을 입은 모델 핀 콜린스(Finn Collins)의 의상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모델 라인업에는 알랭 고수인(Alain Gossuin), 스테파노 타르티니(Stefano Tartini), 커스틴 오웬(Kirsten Owen), 안로르 너츠(Hannelore Knuts)처럼 수년간 그의 쇼에 섰던 모델과 새로운 얼굴들이 섞여 있다. “이들 모두 여기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 꼭 가족 같은 분위기군요.” 디자이너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쇼를 선보이는 라 쿠르뇌브 역시 일종의 추억을 되짚어보는 장소다. 반 노튼이 2004년 10월 50번째 쇼를 열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50번째 쇼는 머리 위로 커다란 샹들리에가 달린 연회 테이블 위에서 진행됐죠. 정말 기억에 남는 쇼였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올림픽 기간에는 파리 도심에서 큰 공간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요.”
젊은 디자이너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너무 빨리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인터넷은 단시간에 뭔가를 이뤄내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도구로서 환상적이죠. 하지만 너무 빨리 소진되고, 한번 소진되면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일부 젊은이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내가 1981년에 패션 스쿨을 졸업하고 첫 패션쇼를 선보인 건 1991년이었어요. 첫 쇼를 할 수 있는 가능성, 지식, 예산을 갖추기까지 10년이 걸린 거죠. 하지만 그 시간은 도움이 되었어요. 덕분에 혼자가 아니라 주변에 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자기 컬렉션을 시작할 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오히려 꽤 괜찮아요. 정작 어려운 것은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컬렉션입니다.”
그는 더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렸다. “1990년대 초반에는 여느 신생 브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어려움이 많았어요. 성장통 같은 것들이죠. 게다가 1차 걸프전까지 터졌어요. 나쁜 기억은 잊으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먼저 그 기억에서 배울 점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쁜 기억으로 남는 것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엇을 배웠을까? “예를 들어, 브랜드 초반 우리의 첫 번째 주 고객은 뉴욕의 바니스, 암스테르담의 포, 런던의 휘슬이었습니다. 바니스는 정말 중요한 고객이었어요. 그래서 처음 몇 해 동안은 미국에 많은 제품을 판매했죠. 어느 순간 사업의 약 70%가 미국에서 이뤄졌는데, 1차 걸프전 발발과 동시에 세관에서 모든 상품이 차단되면서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어요. 아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껴서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 다. 우리는 한곳에서만 너무 많이 판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리스크는 전 세계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렇다면 행복한 순간은? “테이블 위에서 했던 50번째 쇼, 파리 시청(Hôtel de Ville) 에서 치른 데뷔 쇼 등 성공적인 패션쇼라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팀원들과 함께 일하며 컬렉션에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나날도 행복했습니다. 어느 순간 두 가지 요소가 하나로 합쳐지면 ‘그래, 바로 그거야’라고 말하게 되죠. 그런 순간들이 매번 내게 계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줍니다.” 2025 봄/여름 여성복 컬렉션은 스튜디오 팀에서 디자인한다. 반 노튼이 승인할까? “승인이라는 표현은 권위적인 느낌이군요. 그것은 패트릭, 푸이그와 함께 내린 결정의 일부입니다. 이런 순간이 올 줄 알고 있었는데, 여전히 마지막 발언권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할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대신 그 쇼에 참석할 거라고 답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디자이너의 역할이 어떻게 진화해왔다고 여기는지도 궁금했다. “디자이너의 일은 컬렉션의 큰 그림만 그리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매우 실무적이죠. 마케팅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옷과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을 갖고, 옷감과 그 모든 것을 다루는 분주함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 바로 디자이너죠.” 무려 120회 이상의 패션쇼를 선보인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은 이번 쇼가 여전히 처음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VK)
- 에디터
- 김다혜
- 글
- Laure Guilbault
- 사진
- Jeremy Young, Acielle@Style Du Monde /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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