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지의 익숙하고 낯선 사랑 노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아픈 만큼 성장한다. 죠지가 새 앨범 <gimbap>에 담긴 사랑 노래 6곡을 부르며 새삼스럽게 곱씹은 감정의 편린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남성 혐오를 지닌 어떤 여자가 당대 최고의 남자 배우를 납치해 감금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트는 옛날 드라마 같은 내용의 책이다. 교보문고에서 별생각 없이 골라 읽었는데 양귀자 작가의 대표작 <모순>보다 스릴러 요소가 가미된 이 책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지난 11월부터 앓은 건선으로 밤잠을 자주 설친 내게 새벽마다 친구가 되어준 책이다.
<gimbap>의 탄생
지난해 첫 정규 앨범 <FRR>을 발매하고 나서 새로운 환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시점에 회사에서 리메이크 앨범을 권유했다. 그 후 총 6개 트랙을 차근차근 모았고, 전부 1990~2000년대 곡이다. 발라드처럼 느린 곡을 소화하는 일이 가장 까다로웠다. 맨 처음 완성한 곡은 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만족스럽게 부른 적 있는 이적의 ‘Rain’. 음원 계약 기간 2년이 끝나서 곡이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간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그 곡을 다시 수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앨범명 ‘김밥’은 어느 정도 곡을 작업하고 나서 큰 고민 없이 붙인 이름이다. 사실 더 자두의 ‘김밥’도 이번 앨범에 넣고 싶었는데 넣지 못했다. 나중에 꼭 도전할 거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독특한 가사가 너무 좋다.
그리운 시절 감성
예전부터 유재하의 명곡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성시경의 ‘두 사람’이나 루시드폴 노래처럼 클래식 기타와 아카펠라로 코러스를 예쁘게 쌓아서 몽글몽글하게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히 상상하던 감성을 실현하는 게 재미있었다. 이번 신곡은 라디오에서 들으면 좋을 것 같다. 요즘도 종종 차에서 듣긴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라디오를 정말 열심히 들었다.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하하의 텐텐클럽> 세대로 남들이 팝을 들을 때 라디오를 켜며 어쩐지 남다르다고 느끼던 시절이었다.
든든한 재결합
이번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커리어의 시작부터 교류해온 박문치와는 ‘오랜만에(디깅클럽서울 Ver.)’와 ‘바라봐줘요’ 등 과거에도 여러 번 성공적인 작업을 했다. 작업하면서 시너지가 아주 좋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웃음) 함께 한 작업을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이젠 우리가 정말 잘 맞나 보다 싶다. 기가 센 사람 옆에 있으면 주눅이 드는 타입이라서 편한 사람이랑 작업하는 것이 좋다. 작업 과정에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못한 곡은 결과물을 들으면 항상 아쉽다.
나만의 리메이크 공식
오히려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내가 부르는 이상 원곡과 똑같을 순 없지 않은가. 작업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리메이크곡도 많이 찾아 듣는다. 이번 앨범에서는 봉태규의 ‘처음 보는 나’ 커버곡을 특히 많이 찾아 들었다. 숨은 어디에서 쉬는지, 포인트를 줘야 하는 구간은 어디인지, 커버 영상을 보면서 그런 것들을 많이 습득하는 편이다.
사랑이란
다시없이 중요한 것. 그런데 진짜 잘 모르겠다. 지금보다 어릴 땐 뭔가를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내가 생각하는 게 꼭 그렇지만은 않지 싶다. 예전에는 어렴풋이 사랑은 희생이라고 여겼고, 그다음에는 불가항력적이고 무조건적인 감정이라고 이해했지만 지금은 정말 모르겠다. 물론 가족의 지지, 팬들의 아가페적인 마음에서 사랑을 느끼긴 한다. 아빠가 내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 매번 엇비슷한 내 공연을 빠짐없이 보러 와주는 신기하고 이상한 팬들의 존재를 잘 알고 있다. 고맙다. 정말로, 진심으로.
음악에 관한 가장 지속적인 고민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것. 사실 끈기가 별로 없다. 노래가 잘 안 만들어질 때는 항상 그만두고 싶다. 포기하는 것 좋아하고 쉽게 잘 놓는 편인데, 다행스럽게도 주변 사람들이 나를 끌어내고 지탱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마치면 따라오는 성취감은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나의 능력치와 한계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러다가도 모든 데드라인이 무사히 지나가면 ‘아직까진 그래도 괜찮구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작업을 하는 식이다. 수많은 의견 조율이 필요한 공연 연습 과정은 피곤하지만 끝내 우리 뜻대로 흘러간 공연은 즐겁다. 그런 삶의 반복이다.
나만의 록 스타
디전(Dijon). 한때 좋아했던 것 같다가도 다시 들으면 또 좋다. 저스틴 비버도 좋아한다. 적어도 자기 삶에 솔직한 사람인 것 같아서. 타인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자기 삶에 꿋꿋이 임하는 사람을 내심 응원한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있지만 갱생이 불가능한 요즘 분위기는 좀 안타까운 듯하다. 적어도 다시 잘 살아볼 마음은 품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하지 않나. 그런 억눌린 분위기 속에서 다시 살아보려고 하는 이들, 자신의 달란트로 묵묵하고 꾸준하게 끝내 뭔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나만의 록 스타다. 큰 열정 없이 살다가도 그런 아티스트의 활약을 보면 다시 음악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번 여름의 기억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크로스핏과 요가에 빠져 지냈다. 나는 몸을 쓰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다. 운동하면서 생각을 비워야 한다. 예전부터 꾸준히 기르던 식물과 반려묘 ‘찡코’도 잘 크고 있다. 어느덧 내 사진첩의 대부분을 차지한 친구다. 사람을 좋아하긴 하지만 자기만의 영역을 중시하기에 어느 정도 거리감이 필요하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고, 표현은 좀 서툴다. 잠깐, 이거 내 얘긴가?(웃음)
내 음악에 비친 내 모습
그리움, 지나간 것에 대한 애착, 내 음악에는 그런 감정이 제일 많이 묻어난다. 대학교 때는 친구랑 힙합 듀오 만들어서 축제 무대에 올랐던 중고등학교 때가 그리웠다. 지금은 돈은 없었지만 아무 걱정 없이 친구들이랑 빈둥대던 20대 초반이 좋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음악을 하면서 내가 과거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그러니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도 그리워질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들 그렇겠지만.
음악 너머의 꿈
음악에 인생을 바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안 해도 될 것 같고, 그렇게 해서 나오는 음악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뭐든 무겁게 여기지 않으려고 한다. 잘 먹고 잘 살면 그걸로 족하다. 그냥 잘 살고 싶다. 건강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은 공동체다. 최근 1~2년 사이 그런 생각을 했다. 가족도 있어야 하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거라고 말이다. 물론 모든 일엔 용기가 필요하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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