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삶이고, 삶은 곧 예술이 된다
“나는 예술을 믿지 않는다. 예술가를 믿는다.” 마르셀 뒤샹의 말은 현실이 되었고, 예술가의 존재는 현대인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저 역시 김윤신 작가를 알게 된 후 예술가라는 이들을 더욱 존중하게 되었는데요. 1935년생인 김윤신은 지난 40년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삶과 작업 세계를 꾸려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전기톱과 붓을 들고 작업에 매진하고 있죠. 올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이 특별히 회자된 이유는 아흔을 바라보는 이 미지의 예술가를 현대미술계에 완전히 각인했기 때문일 겁니다. 더불어 우리가 막연히 동경해온 가장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가, 그의 삶의 흔적은 정말이지 감동이었지요. 반갑게도, 김윤신의 생생한 작업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겼습니다. 오는 9월 22일까지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윤신-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전은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대면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번 이응노미술관 특별 기획전은 고암 이응로와 김윤신의 인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64년에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로 유학을 떠난 김윤신은 현지에서 이응로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이응로는 주류 미술계에서 이미 자리매김한 작가였고, 김윤신은 막 활동을 시작한 젊은 예술가였죠. 하지만 두 예술가는 동등한 작가로서 서로를 존중했습니다. 특히 이응로는 김윤신에게 나뭇조각을 다루는 법을 알려달라 청했고, 김윤신은 이응로의 집을 자주 방문하며 4년 동안 교류를 이어갔다지요. 짧은 만남은 이응로가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면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유한 예술적 영감은 작가의 이후 작업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여, 이번 전시는 김윤신의 파리 유학 시절 초기 작품과 아르헨티나에서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며 그 흐름을 보여줍니다. 50여 점의 작품 중 상당수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미공개작이라는 것도 대전으로 발걸음 할 만한 반가운 소식이죠.
특히 김윤신 작업의 주요 개념이자 조형 언어인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은 이번 전시에서도 만개합니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합이)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며(합일),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분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분일). 이는 작가의 오랜 철학입니다. 즉 “자연과 내가 하나로 융합되고, 예술가가 자연을 완전히 수용하는 과정에서 하나가 되어 다시 독자적인 예술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김윤신의 예술은 이응로 예술의 근원을 이루는 ‘자연적 추상성’과도 맞닿아 있다”는 거죠. 또한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작업했다는 것도 두 예술가의 크나큰 공통점입니다. 이는 곧 각각의 매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이런 과정에서 또 다른 획기적인 작업이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전시는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부터 아르헨티나 이주 시기의 작품, 그리고 2010년대 이후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근작까지, 연대기별로 조화롭게 펼쳐 보입니다. 진화의 과정을 품고 있는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이 모든 시기를 관통하는 가치, 즉 익숙한 방식에 머물지 않는 작가의 실험적 예술성을 발견하게 되죠. 각각의 작업은 김윤신이라는 작가가 한 번도 자신의 자리에 안주한 적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삶의 변수에 유연하고 의연하게 대처해온 김윤신은 매 순간 난관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켰고, 이런 열정과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시 제목인 ‘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는 이응로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시작해 작가가 평생 일궈오며 증명한 진리로 맺습니다. 예술은 곧 삶이고, 삶은 곧 예술이라는 것. 김윤신이야말로 이 문장에 완벽히 어울리는 귀한 예술가임을 다시 한번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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