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플래그십 스토어가 아니라 ‘의상실’, 한국 맞춤복의 발원지를 찾아서
수진 의상실, 진영 패션, 물망초 수예, 예쁘다 의상실, 퀸 의상실, 고운 재단실, 윤 의상실, 스마트 의상실··· 대한민국 팔도강산 곳곳에 조용히 자리한 또 다른 패션 공간의 이름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상점의 주인이야말로 한국 맞춤복과 기성복의 증인이자 양장의 장인이다. 〈보그〉가 한국 맞춤복의 발원지를 찾아 떠났다!
수진 의상실
딸 열하나, 아들 하나 12남매 중 일곱째 딸로 태어났어요. 처녀 적엔 퇴계로에 있던 국제복장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결혼하고 집에 우환이 생기면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강사 일을 그만두고 여기에 살림집 겸 의상실을 차리게 됐죠. 아침이면 바로 옆 원당초등학교에 아이 둘을 등교시킨 다음 의상실에서 하루 종일 옷을 만들었어요. 꽤 잘되기도 했고, 주말이면 주부들이 와서 양재를 배우기도 했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죠. 당시엔 불행하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행복해요. 자식들도 다 잘되고. 그래서 이 가게를 더 버리지 못하겠어요. 아이들은 힘드니까 이제 바느질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것도 재능이고 기술이잖아요. 끼니만 해결할 수 있으면 되지, 욕심은 안 부려요.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면 내가 실패를 하든 가난해지든 마음에 불만이 없죠. 난 손해 보는 게 덕을 보는 거라고 믿어요.
진영 패션
요즘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와요, 자기만의 옷을 입고 싶어 하는 사람. 서울에서도 오고, 부산에서도 오고, 전국에서 다 오죠. 우리 사장님은 정장, 무대복, 단체복 못하는 게 없으니까. 저 드레스는 클래식 연주자분이 주문한 거예요. 유명한 분인데, 늘 우리한테 주문해요. 계명대, 가톨릭대, 대구대 학생들은 선배가 후배한테 소개하면서 연줄이 닿아 매년 오고.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계명대 학생이 가죽으로 만든 ‘오토바이복’을 제작해간 적이 있는데, 그 옷으로 입상했다며 감사하다고 연락 온 게 기억에 남네요. 그럴 땐 뿌듯하죠, 우리도 기쁘고. 이젠 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도 없고 기성복이 많이 나와서, 여기도 가게가 다 비었어요. 저 앞에 있는 집도 이달 말이면 나가고. 그래도 우리는 괜찮은 편이죠. 단골이 많기도 하고, 기술직이라 잘하는 집은 살아남으니까요.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겁니다.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죠.
물망초 수예
내가 동네 언니들한테 배워서 예닐곱 살 때부터 뜨개질을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내가 뜬 옷을 입고 입학했어. 1960~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뜨개질 안 했다. 근데 나는 일본으로 수출을 했다고. 나도 여러분 못지않게 국가 발전에 기여한 사람이야. 30년 동안 부산에서 컨테이너로 수출했어. 그러니 내가 잘 뜰 수밖에 없제. 엄청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지. 일본 사람들이 내한테 세계에서 뜨개질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그랬다. 1970년대에 육영수 여사배 전국 새마을 여성 경진대회 뜨개질 분야에서 수상도 하고, 뜨개질 대회 하면 심사도 하고, TV에서 왕종근 아나운서하고 같이 뜨개 교실도 진행했다. 그러니 뜨개질하는 사람이 나를 모르면 뜨개질하는 사람이 아니야. 부산에서 쭉 살다가 1992년에 서울 올라온 다음부터는 우리 아들 앞세워서 뜨개질하는 남자라고, 20년 전에 또 한창 TV 프로그램 많이 찍었지.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이런 옷은 요즘 사람은 못 뜬다. 그냥 짜는 것도 잘 못하는데 치수 내서 짜야 하는 이런 옷은 어찌 할기고. 그래 내가 좀 잘난 체해도 안 되겠나?
예쁘다 의상실
재봉사로 일하다가 1979년 스무 살 때 인수해서 시작했어요. 저 위에 춘천여고 있는 자리에서 20~30년 정도 하다가 여기로 온 지 한 17년 정도 됐나 보다. 그땐 기성복이 흔치 않던 시대라 춘천 시내에 양장점이 100군데도 넘었지. 양장 협회라는 것도 있어서 봄가을로 다 같이 관광도 가고. 가게 근처에 도청, 시청이 있어서 공무원 아가씨들이랑 여성 단체 회장님들이 옷 맞추러 많이 왔어요. 옛날엔 경찰복도 원단과 단추를 주고 직접 맞춰 입게 해서 경찰복도 했죠. 언제부턴가 차츰차츰 안 하더라고. 그래도 양장점이 많이 없어져서 그런지, 일감은 꾸준해요. 도립 예술단은 공연 있을 때마다 무대의상도 제작해가고. 안무가가 공연 컨셉이나 스토리에 맞게 어떤 식으로 해달라고 하면 내 의견도 내고 서로 의논하면서 하는 거지. 워낙 오래 하기도 했고 춘천은 좁아서 ‘예쁘다 의상실’ 하면 다 알아요. 쇼윈도 옷 보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어요, 다 소문 듣고 오는 거지. 손님 없어서 일 못하고 그런 건 없지만 그렇다고 많이 하지도 못해, 혼자 하니까. 그래도 옷은 꼼꼼하게 나오지. 하자가 날 수가 없어요. 하루도 쉬어본 적 없어, 쳇바퀴처럼 사는 거지 뭐. 그냥 특별한 거 없어요. 그래서 촬영할 것도 없다고 했잖아요.
퀸 의상실
결혼하고 5~6년 쉬다가 다시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 벌써 50년이 다 됐네. 옛날엔 교복을 많이 했어요. 당시엔 교복 브랜드가 없었으니 잘됐지. 교복 자율화가 폐지된 직후에 남원여고 교복 디자인을 내가 했어요. 서울 다니면서 세화여고 교복을 봤는데 참 멋있더라고. 회색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가 예뻐서 남원에도 저런 교복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돼서 응용한 디자인이 선정된 거예요. 그 교복을 맞출 수 있는 곳이 우리 집 말고 두 군데 더 있었는데, 5분의 4는 우리 집에 와서 맞췄어요. 그땐 직원 10명을 두고 일했는데도 너무 바빠서 잠을 못 잘 정도였지. 더 이상 그때 같진 않지만 요즘엔 강의 나가는 게 보람이에요. 남원시 여성문화센터에서 10년, 순창군청에서 20년 넘게 양재 수업을 하고 있고 표창패도 받았어. 일반인 대상이라 수강생이 대부분 가정주부들인데 아주 열정적이고 깜짝 놀랄 정도로 잘해요. 배워서 수선집 개업한 회원들도 있다니까. 종강할 때 작품 전시회를 하면 얼마나 근사하다고. 피곤할 때도 있지만 나를 기다리는 수강생들 떠올리면 좋고, 행복해. 재미있어.
고운 재단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다. 이거 한 지가 50년이 넘었으니 상상을 해봐라. 고등학교 중퇴하고 기술 배워서 시작한 거 이때까지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프로 아이가, 프로. 아마추어 아니고. 학교 댕길 때 공부하면 계산하고 뭣이 복잡하잖아, 근데 우리는 하다 보니 컴퓨터보다 빨라, 계산이. 딱 보면 계산이 다 나와. 사진 가져와서 이대로 떠달라고 하면 그대로 떠주거든. 그 정도 기술은 있어야 되잖아, 그제? 내한테 오는 사람은 내가 그만둘까 싶어서 제일 걱정한다. 코로나 전에는 외국에서도 왔다. 저기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에서도 왔어. 프랑스에서는 한 3년을 해갔는데 패턴만 떠갔거든. 디자인을 해가 와. 그럼 그 모양 그대로 떠준다고. 그 사람들 디자인해주고 나면 우리나라에서는 한 3~4년 뒤에 TV에서 연예인들이 입고 나오데. 우리가 이 기술을 일본에서 배워왔는데 일본에는 요즘 하는 사람이 없다. 지난주에는 되게 바빠서 나중에는 몸살이 다 나더라. 부산, 울산, 진주, 창원, 마산 온 천지에서 다 와. 이상하게 소문이 나가지고 다른 데는 일이 없는데 나는 바빠. 환장할 노릇 아이가.
윤 의상실
고향이 충청도 시골인데 집안 언니가 재단을 배워서 근방에서 양장점을 하고 있었어. 우리 어머니가 그게 보기 좋으셨나 봐. 너도 배우고 싶으면 서울로 보내줄까, 그러시더라고. 서울로 보내준다니까 한다고 했지. 우리가 3남매였는데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오빠 둘은 군대에 갔을 때였어요. 어머니 생각에 배우면 잘하겠다는 믿음이 가셨겠지, 학교 다닐 때 공부도 곧잘 했으니까. 후암동에 서라벌양재학원 기숙사에 있으면서 남들 잠잘 때 난 계속 혼자 연습했어. 학원이라 낮에는 수업을 하지만 밤에는 재봉틀 하나를 차지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만들다 보면 새벽종이 울리고. 옛날에는 교회에서 새벽종이 울렸거든요. 열심히 하니 선생님들이 나한테는 원단도 거저 주고, 내가 만든 걸 학생들에게 샘플로 보여주곤 했지. 어머니가 나중에 한번 그러시더라고. 오빠들도 다 군대 가고 단둘이 사는데 널 서울 보내는 게 쉬웠겠냐고, 그래도 참고 보내신 거라고. 그렇게 시작해서 이대 앞, 명동에서 하다가 용산에 처음 의상실을 차렸어요. 지금 이 자리는 사서 들어온 내 가게죠. 처음엔 집이나 장만하면 그만둘 거라 마음먹었는데 하다 보니 일이 점점 재미있어져서. 나이 들어서는 더 놓질 못하겠네요.
스마트 의상실
스물두 살인가, 서울에 가서 명동, 종로에서 재봉사로 일했어요. 여름에는 한가한데 가을, 겨울에는 일이 많아. 연예인들 코트 주문이 몇 백 벌씩 들어와서. 그러다가 스물여섯 살에 다시 내려왔어요. 그때는 스물두세 살 먹으면 결혼해야 했으니 친정어머니가 빨리 내려와서 시집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지. 원래는 서울에서 하다가 미국 가서 더 배우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반대해서. 내려와서도 양장점 하다가 스물아홉에 결혼했지. 5남매 연년생으로 기르면서 바느질하느라 정말 힘들었어. 밤새워가면서 일하고. 그래도 그렇게 벌어서 애들 유학도 보내고 다 했지. 고두심 씨, 김영철 씨 나오는 TV 프로그램에 나간 다음부터는 서울에서도 옷 하러 많이 와요. 가수들도 많이 해가고. 상복을 뜯어서 옷을 지어달라는 까다로운 주문도 다 해주니까 한번 오면 그다음에도 꾸준히 오지. 나 몇 살처럼 보여요? 지금 내가 여든여섯 살이야. 지금 체조도 하고 요가도 하고 강사님이 60~70대보다 더 잘한다고 해. (VK)
- 포토그래퍼
- 장기평
-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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