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티스트의 헤어 스타일리스트, 박내주_보그 미장원 특집
2024년 대한민국에 있는 미용실은 약 11만3,000곳. 1933년 최초의 조선인 미용사 오엽주가 종로 화신미용부에서 신여성에게 내린 미용의 씨앗은 명동 미스코리아의 대모, 청담 여배우의 유행 스타일 메이커, 그리고 마침내 국경을 넘어 글로벌 K-팝 트렌드세터로 이어진다. 화학과 물리, 스승과 제자, 장인 정신과 서비스 정신이 교차하는 이 특별한 공간을 관통하는 〈보그〉의 미용 장인 이야기.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는 곳을 뜻하는 빗앤붓(Bit&Boot). 박내주는 이 직관적인 이름 중 ‘빗’을 담당하는 25년 차 헤어 아티스트다. 방탄소년단, 엑소, 르세라핌, NCT··· 그의 스타일은 K-팝 아티스트를 통해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가 ‘내 동생’이라 부르는 더보이즈의 두 소년 영훈, 주연과 함께다.
2000년대 초반, 셀럽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실장의 작업실에 갈 때마다 복사해서 붙여놓은 듯 성실하게 촬영을 준비하던 어시스턴트가 있었다. 이미 입봉한 헤어 디자이너로 기술적인 부분에 부족함이 없음에도, 촬영 스타일링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 도전하기 위해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K-팝 스타일 시장을 장악한 헤어 아티스트로 성장했고 글로벌 팬들의 성지, 빗앤붓의 원장이 됐다. 박내주에게 미용실은 목표가 아니라 방법이다. 최소 4인, 많게는 10인을 훌쩍 넘기는 아이돌을 동시에 세 팀 이상 소화할 장소, 독립적인 개별 룸과 한 번에 여러 아티스트의 헤어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는 바 형태의 홀을 순환하는 동선, 멤버들이 차례를 기다릴 수 있는 여러 곳의 대기실 등 K-팝 아티스트를 위한 빗앤붓의 독특한 구조는 박내주 원장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신의 첫 K-팝 스타는 누구였나?
동방신기. 고향에서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다 패션쇼의 백스테이지, 화보 촬영 현장 등이 궁금해서 어시스턴트부터 다시 시작했다. 당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던 상태라 고민했지만 1년이라도 해보고 포기하자는 각오였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동방신기의 앨범 작업을 하며 K-팝 아티스트와 인연을 맺었고 엑소의 데뷔를 함께 하게 됐다.
프리랜스 아티스트들은 아이돌 그룹을 전담하는 것에 딜레마를 느낀다. 인원이 너무 많고 워낙 활동도 다양해 여타 작업을 병행하기 어려우니까.
내적 갈등이 있긴 했다. 당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기에 또다시 새로운 카테고리에 도전하는 것이 맞는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인원을 혼자 커버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됐다. 숙고 끝에 찾아낸 방법이 ‘팀’이다. ‘나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8~9명의 유능한 스태프로 팀을 만들고 메이크업 파트너와도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스케줄과 스타일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팀플’이 성공한 것 같다. 오늘만 숍에서 세 팀의 아티스트를 목격했고 동시에 1층엔 일반 고객도 북적인다.
계획한 것은 아니다. 그저 ‘필요’해서였다. 아이돌은 염색이나 헤어 시술이 매우 잦기 때문에 그걸 소화할 별도의 작업실을 갖고 싶었다. 의자 3~4개와 샴푸대 하나, 차례를 기다리는 멤버들을 위한 큰 대기 공간만 있으면 됐다. 그런데 우리가 현장에 있는 동안 작업실은 죽은 공간이 되더라. 그래서 일반 고객도 시술받을 수 있도록 헤어 아티스트를 추가 영입했다. 그것이 빗앤붓의 시작이다. 스태프와 아티스트 모두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동선과 편의를 구현하기 위한 공간이다.
배우와 가수는 스타일링의 결이 다르다. 가장 경이로운 건 무대다. 찰랑임은 살아 있으나 흐트러짐이 없고, 땀에 젖어도 절대 주저앉지 않는다.
음악 방송에 한번 출연하려면 리허설부터 파이널 무대까지 적어도 7~8회 격렬한 안무를 소화해야 한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이전 세대 아이돌의 헤어스타일이 돌처럼 딱딱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굳은 머리는 빗질이 안 되기 때문에 수정이 어려워 한계가 많았다.
어떻게 극복했나?
촬영 프리랜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아티스틱한 화보 촬영에는 정말 갖가지 스킬이 다 동원되는데 그때를 복기하며 노하우를 적용해 테스트했다. 예를 들어, 일단 무대를 마치고 나면 즉시 한 멤버당 3~4명이 붙어 헤어드라이어, 윈드 머신 등으로 머리와 몸을 식혀주고 소프트 타입 제품을 사용해 움직임은 있지만 흐트러짐은 없는 스타일로 재정비한다. 당시 다른 팀은 시도하지 않던 방법이어서, 우리 아이들의 ‘보송보송’한 헤어와 메이크업이 여러 대기실에서 꽤 화제였다.
담당하는 팀이 늘수록 만들어내야 할 스타일의 경우의 수도 많아진다. 고민스러울 것 같다.
이 샘플러를 한번 봐주길 바란다. 빗앤붓 아티스트만의 실시간 공유 시스템이다.
컬러와 스타일 디테일을 모아놓은 샘플러인가!
종이 인형 옷 입히듯 시뮬레이션한다. 데이터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새로운 스타일로 적용된다. 카이의 텍스처 가득한 백발도 그렇게 탄생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도전이었다.
새로움은 반대에 부딪히기 쉽다. 팬덤의 반응도 민감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나?
응원과 질책이 모두 담긴 DM을 많이 받는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현재 매우 고도화·분업화돼 있어 비주얼 디렉터를 필두로 헤어, 메이크업, 의상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선보여야 하지만 그것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걸 소속사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헤어 브랜드 ‘내주’의 글로벌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품목이 무스 타입 ‘돈 워시 트리트먼트’ 단 하나뿐인데도! 방탄소년단 정국의 라이브 소통 중 우연히 노출된 그 제품 말이다.
다들 내가 스타일링 제품을 출시할 거라 여겼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헤어케어 제품이 절실했다. 아이돌은 머릿결이 좋지 않다. 스케줄에 쫓기기 때문에 스스로 관리도 할 수 없다. 쪽잠을 자고 ‘떡진’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오는 게 최선이다. 서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정해진 시간 안에 좋은 모발인 척, 한 올 한 올 볼륨감 있게 스타일링하기 위해 궁리해낸 것이 무스 타입 트리트먼트다.
사용법이 낯설면 그만큼 어필하지 못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세럼이나 크림 타입을 만들지 그랬나?
팔리지 않아도 어차피 내가 다 쓰니까 괜찮다. 백스테이지에서 잔여감을 남기지 않고 빠른 프렙을 해주는 건 무스가 최적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나의 필요에 충실하면 일은 언제나 함께 성장했다. 나를 찾아주는 아티스트와 함께 하루하루 또 다른 ‘필요’에 부응하다 보면 새로운 커리어가 시작될지도 모르니 노심초사하지 않을 거다.
- 포토그래퍼
- 정우영,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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