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의 이인삼각 달리기_2024 유행 통신
재난과 위기가 계속 발생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시대지만, 일상은 계속된다.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고 나눈다. 건축, 출판, 영화, 연극, 여행, 미술, 사회운동, 스포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업계의 흐름 혹은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삶을 즐기고 더 낫게 바꾸려는 의지가 구현한 판에서 함께 놀고 싶어진다. 이 기사는 유행을 따르자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가볍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취향 혹은 재밋거리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이인삼각 달리기는 두 사람의 다리 하나씩을 묶고 달리는 경기다. 개인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보다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이때 관중은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달리기와 달리 본인이 함께 달리는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요즘 도시와 건축의 관계는 이인삼각 달리기와 유사하다. 건축은 도시의 용도, 규모, 도로 등의 규칙을 따라 구현되며 도시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반대로 건물이 모여야 실제 도시가 만들어지고, 건축을 통해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이 형성된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도시와 건축이 벌이는 이인삼각 달리기의 참여자이자 관중이다.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올해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받았다. 그는 건축과 도시 공동체의 이인삼각 달리기를 평생 수련해왔다. “마을 안에 있는 것이 집이다. 집은 마을 사람과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말에서 그의 소신을 알 수 있다. 판교에도 그가 지은 건축물이 있다. 약 100세대 규모의 저층 집합 주택인 판교하우징은 ‘커먼 데크(Common Deck)’라고 부르는 마당을 중심으로 10여 채가 모였으며,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곧바로 ‘커먼 데크’로 연결된다. 각 주택은 3층 규모로 1층은 거실, 2층은 ‘커다란 현관’, 3층엔 베드룸이 있다. ‘커먼 데크’와 이어진 2층의 ‘커다란 현관’은 통유리로 만들어 단지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의도했다. 판교하우징은 익숙하지 않은 건물로 처음에는 미분양이 났지만 이후 모두 팔렸고, 현재 2층의 ‘커다란 현관’은 취미 공간이나 일하는 공간, 아이들의 놀이 공간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단지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야마모토 리켄에게 도시와 건물을 엮는 끈은 커뮤니티이고 이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풍경을 만든다.
2020년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은 ‘보행을 중심으로 도시를 재편하자’는 취지의 ‘15분 도시’ 운동을 구체화해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이웃과 아이들에게 학교를 개방하고, 학교 옆 차량의 접근을 제한해 공공 공간과 녹지를 확장했다. 어린이들과 주변 주민에게 안전감을 주는 이런 소규모 공원은 현재 파리에 200개 이상이 생겼다. 이는 심리적 효과를 넘어 도보 보행이 늘면서 주변 가게, 서점, 중고 마켓이 활성화되는 부수 효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파리에서 시작해 최근 서울을 포함한 세계 여러 도시에 큰 영감을 주고 있는 ‘15분 도시’의 개념을 만든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는 지난 5월 서울을 찾아 보행·자전거 중심의 도시를 만드는 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도시’라는 단어 ‘Cité’가 고대 로마에서 ‘시민’을 뜻하는 ‘Civitas’에서 파생했으며 두 단어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얘기한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도시) 시민은 단지 영토를 소유하는 존재를 넘어 도시의 생활 방식과 계획까지 참여하는 능동적인 주체임을 밝히고, 도시에서 주체적으로 살 권리, 즉 ‘도시권’을 주창한다. 지금의 도시는 산업과 용도를 중심으로 지역을 인위적으로 나누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놀기 위해 혹은 공부하기 위해 자신의 정주 환경과 멀리 떨어진 곳까지 힘들게 이동하며 살고 있다. 이런 도시 환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늘리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모레노가 제안한 15분 도시는 생활을 중심으로 한 도시와 건축의 이인삼각 달리기로 기후 위기에 지속 가능 도시와 인간다운 삶의 대안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도쿄의 다이칸야마는 츠타야 서점을 비롯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숍과 저층 주택이 결합돼 저밀도의 편안함과 활기를 동시에 가진 일본인이 일본에서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로 꼽힌다. 저층 위주의 개발을 선택하게 된 것은 지역의 대지주인 아사쿠라 가문의 역할과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가 1967년부터 시작해서 1992년까지 6단계에 걸쳐서 설계한 다이칸야마 힐사이드 테라스의 역할이 지대하다. 높이 10m 미만의 결이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재료를 섬세한 디테일로 만든 모던하면서도 다양한 형태의 건물은 동네의 길과 중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군집체를 만들고 있다. 마키 후미히코는 “주택은 도시의 일부분이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간성과 지역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건축을 모아 동네를 만들었다. 힐사이드 테라스 바로 옆에 있는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의 낮은 건물과 중정, 미로 같은 내부 공간 역시 건축가 마키와 아사쿠라 가문의 생각을 이어받아 만든 것이다. 지난해 말 다이칸야마 역 바로 앞에 건축가 구마 겐고가 완성한 포레스트 게이트는 일본에서 가장 비싼 주상복합건물로 손꼽힌다. 이 건축이 특별한 이유는 역 부근과 건물 저층부의 상점이 길처럼 이어져 걷기 좋은 다이칸야마의 맥락을 이어받으면서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 숍이 ‘그린’이라는 공통분모 안에 담겼기 때문이다. 한남더힐의 저층을 활짝 개방해 동네와 어우러지도록 만든다면 어떨까.
도시와 건축이 훌륭하게 각자의 길을 가면서 겪는 많은 문제와 생활의 질의 저하는 고스란히 우리의 고통이 된다. 특히 전 지구적 위기인 기후 문제 앞에서 도시와 건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건축계의 흐름을 지켜보면 도시와 건축 간의 관계를 환경과 생활의 관점에서 실천하는 것들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도시와 건축의 이인삼각 달리기는 트렌드를 넘어선 지구적 과제이자 실천이 되고 있다.(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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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대균(건축가)
- 사진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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