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사라진 계기판_2024 유행 통신
재난과 위기가 계속 발생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시대지만, 일상은 계속된다.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고 나눈다. 건축, 출판, 영화, 연극, 여행, 미술, 사회운동, 스포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업계의 흐름 혹은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삶을 즐기고 더 낫게 바꾸려는 의지가 구현한 판에서 함께 놀고 싶어진다. 이 기사는 유행을 따르자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가볍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취향 혹은 재밋거리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계기판이 사라진 운전석에 앉으니,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의 상실감 같은 감정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다른 건 다 익숙한데, 있어야 할 게 없어서 조금 쓸쓸한 기분. 하지만 처음에나 어색하지 금세 적응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운전대 뒤에 있던 계기판만 사라졌고, 센터 디스플레이와 HUD(앞 유리에 여러 정보를 투사하는 기술)에 주행 정보가 표시되기에 크게 불편하지도 않다. 되레 개방감을 선사해주니 잘 없앴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운전대 뒤에 계기판이 없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고, 트렌드라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단 판매 중인 대부분의 차량은 운전대 뒤에 파노라마 디스플레이를 장착했다. 포르쉐 마칸처럼 보조석까지 이어지는,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나 테슬라가 버튼을 대형 디스플레이로 대체하고,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전기 차로 전환되던 그때 그 시절이 보인 변화는 의미심장했다. 팬데믹과 배터리 충전 시간 등으로 인해 차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차 안에서의 즐길 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때마침 차량용 P-OLED 같은 가볍고 유연한 고해상 디스플레이가 등장했고 차에서 영화를 보고, 게임도 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트렌드는 시작되면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데, 운전대 뒤 계기판을 없애는 것도 그중 하나다. 물론 현재 판매 중인 차량 중 운전석 뒤에 계기판이 없는 차량은 신형 미니 컨트리맨과 신형 미니 쿠퍼, 테슬라 모델3까지 겨우 세 대뿐이다. 하지만 과감한 인테리어를 시도한 차량 중 계기판 크기를 줄인 경우는 더러 있다. 폴스타 3에는 스마트폰보다 조금 큰 디지털 계기판이 운전대 뒤에 등장했다. 차량과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는 센터페시아(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컨트롤 패널)에 설치된 세로형 디스플레이가 알려준다. 폭스바겐 ID.4는 운전대에 5.3인치 소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했고, ID.7은 속도 정도만 표시되는 작은 디스플레이를 대시보드와 통합했다. 기존 계기판의 역할인 주행 경로나 속도 등 주행 정보를 표시하는 일은 HUD와 센터 디스플레이가 도맡았다. 소형 계기판을 설치한 세 모델은 신형 전기 차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에 설치해온 계기판은 본디 운전자에게 알려야 할 것이 많다. 남은 연료량, 수온, 기어, RPM, 속도 등 엔진 상태만 넣어도 계기판이 복잡해진다. 그러나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필수 정보이니 숨기거나 뺄 수도 없다. 그러나 전기 차는 수온이나 기어, 엔진 회전수를 표시할 필요가 없으니, 계기판이 담아야 할 필수 정보가 적다. 내연기관 차와 같은 크기의 계기판을 사용하더라도 전기 차는 계기판을 채울 내용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애니메이션 효과나 다양한 볼거리로 넓은 디지털 계기판 화면을 채우기도 한다. 효용이 줄어든 계기판이 실내에서 자리를 크게 차지한다는 것은 제조사에도, 소비자에게도 이롭진 않다. 큰 자리를 차지하던 계기판을 빼고 차량을 만들면 개발비와 제조비가 절감되고, 그만큼 찻값도 싸진다. 결국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 행복한 일이다.
그럼 계기판이 사라진 자리는 무엇으로 메울까? 신형 미니 컨트리맨은 운전자가 차에 탔을 때 허전함을 느끼지 않도록 대시보드에 공을 들였다. 대시보드를 고유의 2D 기술로 직조한 패브릭으로 마감해 감성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대시보드에 다채로운 시각 효과를 투사하는 기능을 적용해 실내 분위기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한다. 대시보드가 캔버스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계기판 대신 센터 디스플레이만 갖춘 대표적인 차량은 테슬라 모델3다. 테슬라 모델3에는 15.4인치 대형 디스플레이가 자리한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센터 디스플레이가 커질수록 인테리어는 간결해진다는 것이다. 거대한 파노라마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최신 모델을 떠올려보자. 차량 설정과 조작은 화면에서 이뤄지고, 직관적인 아날로그 버튼은 더욱더 직관적인 음성 명령으로 대체됐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푸조와 폭스바겐은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를 차량에 적용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고 자연어로 소통하기에 운전자는 자동차와 대화도 나눌 수 있다. 길 안내나 차량 설정은 물론이고, 여름휴가 계획, 업무 아이디어, 시시콜콜한 고민까지 상담해준다. 엔터테인먼트 그 이상의 경험이 가능해진다.
엔터테인먼트와 인공지능 등 디지털 서비스에서 강세를 보이는 자동차일수록 실내는 더 단순하다. 수납공간이나 무선 충전 패드처럼 군더더기 없는 기능만 남는다. 인테리어 구성 요소가 줄어드니 디자인 컨셉도 단순하게 변한다. 최근 출시된 차량의 실내를 살펴보면 대시보드 레이아웃의 수평과 수직 그리드가 뚜렷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직선 위주 레이아웃은 정갈한 인상을 주고, 당연히 효율적이기도 하다.
사실 효율성은 전기 차의 핵심 덕목이다. 전기 차는 태생부터 효율을 강조한다. 우선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외모가 다소 밋밋해졌다. 특히 자동차의 얼굴인 전면부에 그릴이 없으니 더 심심하게 느낄 수 있다. 동력 구조가 단순하고, 부품 수도 내연기관에 비해 월등히 적고, 인테리어도 간단하니 전기 차의 본질 자체가 미니멀리즘이다. 우리는 전동화 시대를 산다. 완성차 업체는 전기 차에 꼭 필요한 기능만 넣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고심하고 있다. 필요 없다면 계기판까지 떼어내면서 더 간결해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사실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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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조진혁(자동차 칼럼니스트)
-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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