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라는 장르_2024 유행 통신
재난과 위기가 계속 발생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시대지만, 일상은 계속된다.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고 나눈다. 건축, 출판, 영화, 연극, 여행, 미술, 사회운동, 스포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업계의 흐름 혹은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삶을 즐기고 더 낫게 바꾸려는 의지가 구현한 판에서 함께 놀고 싶어진다. 이 기사는 유행을 따르자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가볍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취향 혹은 재밋거리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요즘 영화와 드라마 제작 상황이 좋지 않다. 코로나 시절보다 제작 편수가 줄었다는 말도 나온다. 줄곧 히트작을 내던 감독들도 주춤했다. 김지운의 <거미집>(2023)과 최동훈의 <외계+인 2부>(2024)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한재림은 폭망한 <비상선언>(2022)에 이어,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더 에이트 쇼>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수지와 박보검, 정유미와 탕웨이가 나오는 김태용의 <원더랜드>는 100만도 넘지 못했다. 열악한 국내 상황에 비하면,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여전히 해외에서 인기 있다. 봉준호는 할리우드에서 SF 영화 <미키 7>을 만들었고, 박찬욱은 HBO 드라마 <동조자>를 연출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지금 한국에서 잘나가는 감독은 누구일까? 지난해 <밀수>로 성공을 거둔 류승완은 <베테랑 2>로 돌아오지만, 과거의 영광에 기댄 느낌이다. 천만 관객을 넘은 <파묘>의 장재현은 다음 작품이 <검은 사제들>의 544만 명만 넘어도 탄탄대로일 것이다. 하반기에 공개할 <오징어 게임> 시즌 2·3가 성공한다면, 황동혁도 최정상이다.
연상호는 어떨까? 언뜻 보기에는 <부산행> 이후 히트작이 없다. <부산행>(2016)의 속편 <반도>(2020)의 관객 381만 명은 아쉬웠고, 액션만 볼만하다는 혹평이 많았다. 강수연의 유작으로,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정이>(2023)도 구태의연했다. 작품성으로 봐도, 흥행으로 봐도 최근 연상호의 영화는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연상호가 제작, 기획, 각본 등으로 참여한 작품으로 넓히면 평가는 달라진다.
애니메이션 <사이비>(2013)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구해줘 2>의 자문으로 참여한 후, 연상호의 드라마 활동은 점차 속도를 냈다. tvN에서 오컬트 드라마 <방법>(2020)의 각본을 썼고, 최규석 작가와 함께 작업한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021)은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티빙의 <괴이>(2022) 각본을 썼고, 넷플릭스의 <선산>(2024)은 기획과 각본을 맡았다. 올해는 이와아키 히토시 원작의 만화 <기생수>의 스핀오프 <기생수: 더 그레이>의 각본과 연출을 맡으며 성공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작품은 모두 연상호가 크리에이터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연상호의 다음 스테이지는 모두 해외와 연계되어 있다. 넷플릭스의 <가스인간>은 지금 일본 톱 메이저 영화사인 토호와 공동으로 제작한다. 1960년 개봉한 특촬물 영화 <가스인간 제1호> 리메이크인데, 토호가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연상호는 쇼러너와 각본을 맡았고, 영화 <실종>과 디즈니+의 범죄 드라마 <간니발>로 높은 평가를 받은 가타야마 신조가 연출을 맡았다. 배우는 아오이 유우와 오구리 슌. <지옥>의 최규석과 함께 만든 웹툰 원작으로, 역시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질 <계시록>은 <그래비티>와 <로마>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출연 배우는 류준열과 신현빈이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세운 영화사 ‘아피안 웨이’와 함께 현지 프로젝트로 영화 <35번가>(가제)를 개발 중이라는 뉴스도 있다. 차기작 목록만 봐도 연상호는 일본과 미국에서 제작 파트너이자 주목받는 크리에이터로 인정받고 있다.
근래 한국에서는 넷플릭스에 작품을 론칭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유명한 감독과 PD들도 넷플릭스와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상호는 넷플릭스에서 편애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차기작이 늘어서 있다. 연상호는 많은 작품을 동시에 개발하며 빠르게 완성시켜 공개한다. 연상호는 봉준호와 박찬욱처럼 예술적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는 감독은 아니다. 연상호는 대중적인 장르물을 잘 연출하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잘 끌어내는 프로듀서로 인정받고 있다.
연상호는 시작부터 장르 친화적 감독이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 그리고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부산행>보다 먼저 기획되고 제작에 들어간 <서울역> 등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은 사회 문제를 치열하게 파고들면서도 장르적 관습과 표현을 능숙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액션과 스릴러, 호러 등 장르적 관심이 다양하고, 폭넓게 수용하는 연상호의 기획과 연출력은 강렬하고 처절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해외의 취향과도 일치한다. <지옥> <정이> <기생수: 더 그레이> 모두 넷플릭스 공개 직후 월드와이드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작품 특유의 폭발하는 에너지와 넘치는 감정이 연상호의 작품에는 담겨 있다. 지나친 신파와 고리타분한 인물 등이 비판을 받지만, 장르적 아이디어가 심플하고 액션 구성이 좋다.
넷플릭스는 대중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플랫폼이다. 예술성 높은 작품보다는 다양하게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객층이 견고한 작품을 지향한다. 넷플릭스는 일찌감치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많은 작품을 제작하며 인종과 국가, 나이를 아울러 성공할 수 있는 글로벌한 프로그램을 찾아왔다. 벨기에의 <어둠 속으로>, 독일의 <다크> 그리고 한국의 <킹덤>과 <오징어 게임> 등이 대표적이다. 연상호는 한국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의 보편적인 대중이 선호하는 장르적인 작품을 잘 기획하고 만들어왔다. K-컬처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연상호는 서양과 일본에서 함께 작품을 만들고 싶은 유력한 파트너로 부상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다 보니, 경제건 문화건 해외로 나가 확장해야 하는 운명이다. 영상 산업의 중심은 극장에서 OTT로 옮겨갔고, 글로벌 플랫폼 경쟁에서 넷플릭스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며 거의 종결되었다. 한국에서도 넷플릭스는 더욱 중요해졌고, 지금 넷플릭스의 ‘최애의 아이’는 연상호다. 연상호는 연출력뿐 아니라 기획력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작품 연출뿐 아니라 연출을 포함한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시나리오를 쓰고 <윈드 리버>를 연출했던 테일러 셰리던은 드라마 <옐로우스톤> <털사 킹> <메이어 오브 킹스타운> <라이어니스: 특수 작전팀> 등 작품마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며 당대 최고의 크리에이터로 평가받고 있다. 연상호가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기발한 장르적 아이디어를 앞세운 왕성한 작품 생산력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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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봉석(영화 평론가)
- 사진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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