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무 집에서의 짧은 밤은 초여름 꿈처럼 달았다

2024.08.09

나무 집에서의 짧은 밤은 초여름 꿈처럼 달았다

양쪽 창틀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영월종택 1동의 포토 스폿인 복도.

“한옥이 소리에 취약하다고들 하죠. 하지만 잘 말린 나무로 집을 지으면 소음이 없어요. 오늘 경험하실 겁니다.” 조정일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 대표의 말에도 의심의 싹을 남겨둔 것이 무색하게 올해 들어 가장 편안하게 잤다. 간간이 창을 때리는 빗소리만 가득할 뿐 인기척조차 나지 않는 나무 집에서의 짧은 밤은 그야말로 초여름 꿈처럼 달았다. 몇 달 내내 어깨를 짓누르던 압박감과 두통이 나무의 숨결과 함께 사라졌다.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의 나무들은 몸살을 크게 앓았다.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대목(大木)을 까다롭게 골라 들여온 뒤 직접 개발한 마이크로웨이브 기계로 건조했다. 그 덕에 목재 내 수분 함유량인 ‘함수율’을 15%까지 낮출 수 있었다. 문화재청은 신축이나 보수용 목재 함수율 기준을 24%로 정하고 있으며, 목재법에 따르면 구조재의 함수율 기준은 19% 이하다. 대목은 함수율을 15%까지 낮추는 것 자체가 어렵다. 대목장들이 이토록 단단한 나무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팽창과 수축을 고려해 나무의 접합을 설계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목장의 기술인데,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나무를 정교하게 깎고 맞추는 방향으로 노선을 틀어야 했어요.”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한옥 타운을 조성할 영월에 2~3년을 두고 나무들이 환경에 적응하는지 지켜봤다. 나무가 나고 자란 땅과 전혀 다른 볕, 온습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두고 대목장은 ‘몸살’이라 표현한다. 큰 병을 치른 뒤 잔병이 없어지는 인간 생사와 비슷하다. 이렇게 단단해진 나무에는 바람 한 점도, 소리 한 숨도 쉽사리 통과하지 못한다.

“한옥이 방음이나 보온, 차음이 안 된다는 건 편견입니다. 건조되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생기는 문제죠. 여름에 팽창하고 겨울에 수축하는 과정에서 변형이나 뒤틀림이 생기고 틈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처음에 잘 지어놓은 집들도 나중에 보면 앉은 자리가 달라져 있어요. 잘 말린 나무를 가지고 제대로 된 한옥을 지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방충망 하나를 고르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창문을 연 투숙객이 혹여 방충망에 풍경 보는 일을 방해받을까 우려해서다. 직접 고른 독일산 투명 방충망은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와도 같다. 총지배인은 조 대표가 수영장 타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다 완성한 뒤에 뜯어냈다며, 남다른 미감에 직원들이 혀를 내두른다고 불만을 빙자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산의 품에 안긴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 전경.
올해 7월 새로이 문을 연 선돌정의 침실. 천장을 높여 시원한 개방감과 모던한 느낌을 주었다.

강물에 휘감긴 영월의 명물, ‘선돌’과 마주 선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대목장 18인이 8년간 작업에 매진한 끝에 지난해 문을 열었다. 현재 영월종택 1·2동, 선돌정을 운영 중인데, 2027년까지 10동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접근하기 조금 더 쉬운 가격대의 한옥 호텔도 곧 선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한옥의 멋과 맛을 즐기기를 바라서다. 사실 경험하기 전까지는 한옥으로 호텔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지 내심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실내외 수영장, 야외 연회장, 다이닝 룸과 거실, 스파, 세미나실을 갖추고, 곳곳에 예술 작품을 배치한 아트 갤러리와 지역 식재료를 활용하는 제철 다이닝까지 호텔과 한옥에 기대하는 모든 서비스가 수준급이다.

‘프라이빗’은 가장 큰 무기다. 대지를 제외하고서도 독채 한옥의 규모만 해도 약 661㎡(200평)가 넘는다. 게다가 언덕 지형에 담을 두른 자연스러운 설계로 각 동 사이 시선을 완전히 막은 덕분에 모든 방에서 황홀한 차경(借景)을 만끽할 수 있다. 낮에는 침대에 누워 산을 보며 선잠에 빠졌다가, 새벽녘 편백나무 욕조에서 처마 밑 빗줄기를 구경한다(나무 굴에 사는 동물의 기분이 이렇게 아늑할까). 공간을 채우는 시원하면서도 묵직한 나무 향은 날숨에도 미처 몸 밖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리끝까지 기운을 전한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니 이곳에선 안 될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보다 더 호사스러울 순 없다.

풍경이 액자처럼 담긴 선돌정 내부.
그윽한 편백나무 욕조에서 차경을 즐길 수 있는 영월종택 1동의 욕실 풍경.
포토
Courtesy of The Hanok Heritag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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