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자꾸만 모여드는 강릉

2024.08.16

자꾸만 모여드는 강릉

거울같이 투명한 인공 호수가 숨통을 틔워주는 솔올미술관 전경.

예술가들이 강릉에 모여들고 있다. 그 발원지를 찾아 한여름의 어느 날, 직접 강릉으로 향했다. 올해 예술을 다루는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입방아에 오른 솔올미술관이 첫 행선지. 자연의 빛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흰색 건축으로 유명한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지난 2월 14일 개관과 동시에 뜨거운 주목을 받은 강릉의 새로운 공공 미술관이다. 개관전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이 지나간 자리는 새로운 전시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이 채우고 있었다(전시는 8월 25일까지 만날 수 있다). 아그네스 마틴의 국내 첫 미술관 전시였다. 사진 촬영이 통제된 공간에서 관객들은 자신과 작품의 관계에 몰두해 시간의 제약 없이 아그네스 마틴의 순수한 추상화에 푹 빠져들었다.

“미술관에는 미술관의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솔올미술관의 김석모 관장이 시간이 유난히 고요하게 흐르는 듯한 솔올미술관 사무실에서 직접 내린 따뜻한 커피를 내주며 입을 열었다. “미술관은 관객의 수준을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해야죠. 문화 예술을 ‘즐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요. TV 코미디 쇼나 쇼츠처럼 나는 가만있는데 자극이 쏟아지는 걸 기대해서는 안 돼요. 좋은 미술관은 그런 도파민 중독을 정화하는 기능을 해야 합니다. 솔올미술관은 요즘 미술관에서 보이는 군더더기를 많이 걷어낸 공간이에요. 요즘 미술관 환경이 너무 설명적인 것 같더라고요. 미술관 자체의 내러티브가 감상 방향을 유도하는 건 위험하다고 봅니다.” 솔올미술관은 ‘모든 이를 위한 미술관’이 되는 걸 목표로 하지 않는다. “’커피 맛집’ ‘핫 플레이스’라는 키워드 때문에 오시는 분들을 반기지 않아요. 우리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볼 때 관객과 한국 미술관의 품격도 올라갈 겁니다.” 솔올미술관 전시장에는 아그네스 마틴의 미학적 대화를 이어가는 <In Dialog: 정상화> 프로젝트도 펼쳐지는 중이다. “모든 작품은 예술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을 보고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떠올리고, 추상표현주의 시대 안에서 작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비로소 예술의 진가를 느낄 수 있죠.”

와인을 마시며 야간 관람을 즐길 수 있었던 ‘한 여름밤의 미술관’, 솔올미술관의 이웃 문화 공간 버징가와 연계해서 선보이는 아그네스 마틴 영상 상영 프로그램(8월 25일까지 매주 금·토·일요일 버징가에서 펼쳐진다) 등 솔올미술관의 캘린더가 불더위에도 한층 바쁘게 흘러간다. 덕분에 강릉의 다른 문화 공간에도 활력이 돈다. 최근 지역과 시대의 경계에 미묘하게 걸쳐 있는 개인의 레시피를 발견하고, 재현하고, 음미하는 프로젝트인 황호빈 작가의 <일구지난설: 황호빈의 경계요리> 시리즈를 소개한 버징가가 대표적이다. 재난에 대한 무감각을 이야기하는 <재난지역 033>, 죽음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공유하는 <Don’t Look Up : Road Kill> 등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끊임없이 담론이 피어난다. “이런 대안 공간이 많아요. 근처에 중국인들이 형성한 양양 예술인마을도 있고, 요즘 들어 젊은 작가들이 강릉에 많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척박한 땅인지도 모른 채 멋모르고 오는 것 같지만요.(웃음) 그래도 여유로운 작업실이 많고, 이런저런 지원 사업 경쟁률도 서울보다는 유리한 편이죠.” 김지수 작가와 함께 버징가를 운영하는 배철 작가가 예술가로서 느끼는 강릉살이의 면면을 이야기했다.

강릉시 ‘내일의 작가상’도 올해 2회를 맞이했다. 최은철 작가와 함께 수상자로 선정된 송아리 작가의 개인전 <Adopt-a-Monstrum>을 선보이는 무대는 대추무파인아트. 변이 신체의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는 송아리 작가의 퍼포먼스적 조각이 2층 규모의 전시 공간에 얽히고설켜 관람객을 반긴다(전시는 8월 25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장 한쪽에는 송아리 작가가 변이 신체의 관점에서 서술한 흥미로운 텍스트도 놓여 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송아리 작가는 강릉에 이번 전시를 소개하며 관람객이 자신을 특정한 신체에 고정하지 않고 더 다채로운 신체를 탐할 것을 제안했다.

평소와 다른 장소에서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된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낯선 일상을 만끽하고 싶다면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부는 강릉으로 향하자. 언덕 위에 고요하게 자리 잡은 솔올미술관부터 버징가와 대추무파인아트로 이어지는 기묘한 예술 공간에 이르기까지, 지금 강릉의 예술혼은 더없이 뜨겁다.

피처 에디터
류가영
사진
솔올미술관, 대추무파인아트, 버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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