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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서태지와 듀스는 2024년에도 힘이 세다

2024.08.19

‘빅토리’, 서태지와 듀스는 2024년에도 힘이 세다

영화 ‘빅토리’ 스틸 컷

히트곡은 힘이 세다. 지난 6월 27일, 뉴진스의 하니가 도쿄 돔에서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러 난리가 났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태풍 클럽>을 봤다. 영화의 첫 장면, 수영장에 모인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 하나를 붙잡고 수영복을 벗긴 후 로프로 묶어 끌고 다닌다. 이때도 영화 속 아이들은 ‘푸른 산호초’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무대에서나 영화에서나 히트곡은 무조건 반사를 일으킨다.

최근 이혜리와 박세완이 주연을 맡은 영화 <빅토리>를 보면서도 히트곡의 힘을 실감했다. <빅토리>는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1984년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주도로 결성된 ‘새빛들’이란 치어리딩 팀이 주인공이다. 이 팀이 지역 내에서 인기를 얻자 1986년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당시 <경향신문>에 따르면 “보수적인 학부모들은 무릎이 드러나는 옷차림으로 관중 앞에서 춤을 춘다는 사실을 ‘외설’로 파악, 완강하게 반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소녀들의 기운을 가로막은 걸림돌은 그런 ‘세간의 인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빅토리>는 거제도의 10대 소녀들이 치어리딩 팀을 결성한다는 설정만 가져온다. 시대를 1999년 세기말로 옮기고, 보수적인 시대와의 갈등 대신 제각각 다른 꿈을 가진 소녀들이 뜻을 모으기까지의 분투를 그린다. 마음껏 춤을 추고 싶은 소녀들이 학교 내에 연습실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러 치어리딩 팀을 조직했다가 치어리딩에 진짜 빠지게 된다는 스토리다. 그리고 이 영화는 1990년대 히트곡을 많이 넣었다.

영화 ‘빅토리’ 스틸 컷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을 반응하게 만드는 노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다. 주인공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가 DDR 펌프 위에서 ‘하여가’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이혜리가 ‘걸스데이’의 혜리였던 시절에도 보여준 적이 없는 모습이라 더 강렬하다. 이어 중요한 대목마다 당대 히트곡이 흐른다. 치어리딩 팀원을 모집하기 위해 기획한 일종의 쇼케이스에서는 듀스의 ‘나를 돌아봐’, 디바의 ‘왜 불러’에 맞춰 춤을 추고 본격적인 치어리딩이 시작되면 ‘쇼'(김원준), ‘트위스트 킹'(터보), ‘(이런 XX) 뭐야 이건'(지니), ‘할 수 있어'(NRG) 등의 노래가 연이어 터져 나온다. 이야기의 맥락과 연출력을 떠나 자신도 모르게 흥겹게 보게 되는 장면이다. 이쯤 되면 음악에 너무 기대는 영화가 아닌가 싶을 수 있다. 의심할 필요 없이 <빅토리>는 히트곡의 힘에 크게 기대고 있는 영화다.

영화 ‘빅토리’ 스틸 컷
영화 ‘빅토리’ 스틸 컷

히트곡의 힘에 기대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귀에 익은 노래로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채우는 영화, 드라마는 이미 많이 있었다. <응답하라 1997>로 시작된 <응답하라> 시리즈, 그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과 작가가 이후에 만든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히트곡으로 가득했다. 최근 예술 영화 관객이 주목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평소 올드 팝을 즐겨 듣는다는 설정 하나로 수많은 추억의 노래를 들려준다. 그에 비하면 핵심적인 소재가 ‘춤’인 <빅토리>는 영화 속으로 히트곡을 끌어오는 게 당연한 작품이다. 1990년대 댄서를 꿈꾸는 소녀들이 듀스를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고, 치어리딩을 할 때 모든 관중이 다 알고 있는 노래를 활용하는 것도 당연하니 말이다.

사실 <빅토리>는 조금씩 엉성한 작품이다. 이야기와 캐릭터, 유머와 감동 코드 모두 조금씩 엉성하다. 그런데 <빅토리>는 그런 지적이 크게 필요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빅토리>에 완벽하게 세공된 영화가 아니라 ‘기분 좋은’ 순간을 기대했을 것이다. 춤을 추고 싶은 10대 아이들의 모험을 그린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예고편만 봐도 발랄함, 활발함, 활기참, 생동감, 즐거움, 신남, 밝음, 웃음, 명랑함 등등 각종 긍정적인 감정의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또 실제 영화가 그렇다. 춤을 추고 싶어 하는 10대 소녀들이 치어리딩을 하는 이야기는 발랄하지 않을 수 없고, 부정적일 수도 없다. <빅토리>에 만족한 관객은 밝은 에너지에 반응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에너지의 8할은 히트곡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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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토리'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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