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선우정아와 미래의 선우정아가 함께 부르는 노래
불화와 충돌은 없다. 새 정규 앨범 〈너머〉에서 맞닿은 과거의 선우정아와 미래의 선우정아가 더 크고 찬란한 우주를 이루다.
우주에서 마주한 기분이군요. <보그> 촬영을 위해 눈썹에 흩뿌린 펄이 아직도 반짝거려요.
오늘 촬영 아주 즐거웠어요. 허기를 참느라 조금 힘들었지만요. (간헐적 단식 중인 선우정아는 직접 싸온 가벼운 도시락을 먹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5년 만에 발표하는 새 정규 앨범 <너머>를 “어둠에서 밝게 드러나는 먼지, 우주를 떠다니는 별, 희망의 가루를 모은” 작업으로 소개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최대한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긴 해요. 이번 앨범은 왠지 모르지만 약간 우주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사운드에서 느껴지는 사이키델릭한 요소, 더 거대한 세계를 그리는 듯한 가사, 갑자기 ‘팡’ 터지는 흐름··· 뭐가 됐든 우주를 떠올리게 하는 앨범일 거예요.
원래부터 우주에 관심이 있었나요?
정말 좋아하죠. 중학생 때까지 우주와 관련된 책에 심각하게 꽂혀 살았는데 학교 권장 도서와 과학 도서 중에서도 주로 우주와 관련된 걸 읽었어요. 별이 먼지처럼 흩뿌려진 천체 사진도 좋아했죠. 좋아하는 영화 <인터스텔라>(2014)도 알게 모르게 이번 앨범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우주 영화지만 우주 얘기만 하는 게 아니고 그 안에는 가족의 사랑과 인간 내면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이번 제 앨범도 그렇거든요.
<너머>를 구성하는 두 파트 중 먼저 공개한 ‘Black Shimmer’는 빈티지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5곡의 수록곡으로 채워졌어요. 휘트니 휴스턴, 샤카 칸, 프린스, 데이비드 보위 등에게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고요.
이제까지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했지만 이번처럼 확고한 장르와 스타일을 시도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별사탕’에서 느껴지는 댄서블한 소울은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클래식이거든요. 지금까지는 휘트니 휴스턴, 프린스 같은 고전을 은근슬쩍 믹스 앤 매치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이번엔 있는 그대로 소화하고 구현하려 한 것이 엄청난 도전이었죠. 재미있었고, 의미 있었지만, 너무 어렵기도 했어요.
어떤 점이 말인가요?
휘트니 휴스턴과 샤카 칸 같은 디바들이 이런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 잘 알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물리적으로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이제는 나만의 목소리가 확실한 가수의 반열에 들었다고 여겼는데 이번 앨범을 통해 그런 안일한 생각이 다 깨졌어요. 앨범을 공개하기 전 두 달 동안은 노래에만 매달렸죠. 하지만 결과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있어요.
더블 타이틀곡 ‘별사탕’은 정말이지 몸을 들썩거리지 않을 수 없는 노래더군요. 홈 스피커로 크게 들으니 밀린 청소도 거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렇다면 성공이군요!
이번 앨범이 맨 처음 발화한 시점은 언제인가요? 많은 사랑을 받은 정규 3집 <Serenade>(2019)와 연결되는 앨범이라고도 했어요.
<Serenade>를 만들 당시에 이미 다음 앨범을 구상하고 있었고 예상하던 다음 앨범의 결이 있었어요. 제가 원래 그런 식으로 작업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지인들과 마돈나의 ‘Vogue’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Yes, And?’를 들으며 유행은 참 돌고 돈다는 이야기를 하다 문득 ‘별사탕’이 생각났어요. 애초에 내 노래로 발표할 계획이 없었던 곡인데 간만에 들으니까 너무 신나더라고요. “이거 너무 좋은데 왜 네가 안 해?”라는 주변의 말이 기폭제가 됐어요. 그게 올해 1월 얘기예요.
2017년에 만든 후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다는 ‘부른 소리’처럼 어느새 먼지가 뽀얗게 쌓인 곡이 대거 포함됐군요. 묵혀둔 곡이 빛을 보는 경우가 많나요?
많아요. <Serenade> 때도 3분의 1 정도는 정말 어릴 때 만들어서 10년 이상 묵혀둔 곡이었어요.
음악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었는지 기억하나요?
그럴 것도 없이 정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내 멋대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어요. 지금 돌아보면 감사한 축복이죠. 피아노를 치면서 그런 욕구를 자연스럽게 느꼈어요. 어떤 노래도 내 기분을 정확하게 대변해주지 못하는 것에 짜증이 나기도 했죠. 그러다 초등학생 때 교과서에 나온 동요를 약간 표절하는 느낌으로 작사·작곡을 시작했어요. 산새에는 관심이 없으니 ‘산새들도’라는 가사에 라일락꽃을 집어넣어 부르는 식이었죠. 그 후 중학생 때 그나마 ‘썼다’고 할 수 있는 곡을 만들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앨범에 실을 만한 곡이 나왔어요. 그때 쓴 곡이 실제로 1집에 수록되었고요.
데뷔 앨범 <Masstige>(2006)는 이제 포용하게 됐나요?
한때 끔찍이 싫어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제 인생의 일부라 간주해서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앨범마다 참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그게 꽤 재미있게 느껴져요.
일찍부터 시작된 가수의 꿈을 가족들은 한결같이 지지해줬나요?
부모님이 예체능을 좋아하셨어요. 다만 엄마는 학교 성적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시긴 했죠. 고등학교 때 실용음악과 진학에는 내신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서 슬금슬금 놓기 시작했지만요.
새 앨범에도 귀를 사로잡는 가사가 많아요. 당신의 가사를 필사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아나요? 애매모호한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균형 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운드가 강한 음악에 가사까지 강해야 하는 곡이 있는가 하면 가사에서 힘을 빼야 하는 곡도 있는데, 그 사이에서 판단을 잘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주제를 잘 정하고, 그 주제와 모든 요소가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신경을 써야 하죠.
주제라면 이번 앨범의 키워드인 ‘우주’ 같은 것 말인가요?
내용적인 주제보다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음악과 콘텐츠의 개성과 뉘앙스를 관통하는 더 커다란 주제를 말해요. 맨 처음 설정한 방향성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계속 상기하면서 가사와 멜로디를 끊임없이 다듬죠. 그런 면에서 제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두루뭉술한 상태에서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뚜렷하고 날카로운 무언가로부터 시작해 사람들이 손을 댔을 때 베이지 않을 정도로 다듬는 것에 가까워요.
비로소 이번 앨범을 통해 싱어송라이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고백한 것을 보고 놀랐어요. 우리에게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니까요.
제가 또 한 번 확실히 성장했음을 느꼈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었어요. <너머>를 작업하면서 프로듀싱이 무엇인지, 훌륭한 연출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거든요. 이전까지는 솔직히 긴가민가하면서 작업했어요. 이젠 또 다른 단계에 진입한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 제가 만들 앨범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예요.
고등학교 때 걸스 힙합을 추고, 라디오를 진행하고, 누군가의 뜨거운 팬이 되기도 하며(선우정아는 H.O.T., 트와이스, 에스파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졌다), 배우로 영화에 출연한 일 등 모든 것이 당신의 음악에 영향을 미칠까요?
그렇죠. 그럴 뿐 아니라 누군가와 나눈 이야기, 개인적인 문화 소비 활동까지 다 작용하죠.
진지한 대화를 즐기나요?
당연하죠! 특히 저보다 나이가 많거나 경험 많은 어른들과 얘기하면 중요한 것을 공짜로 주워 먹는 느낌이 들어요. 그분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기만 해도 세계가 확장하는 게 느껴지죠. <더 시즌즈> 강승원 음악 감독님과 이번 앨범에도 도움을 주신 엔지니어 곽은정 언니가 제겐 그런 파동을 던지는 존재들이에요.
파트 1 마지막 곡이 ‘JAZZ BOX (Beyond ver.)’예요. 재즈 무대와 팬들의 사연, 신청곡 라이브를 아우르는 동명의 유튜브 콘텐츠도 꾸준히 이어왔죠. 재즈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음악에 말이 안 되는 노트(음)는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쁘지 않은 노트가 없고, 모든 음은 다 말이 되죠. 이 깨달음이 ‘재즈박스’를 시작하기 전 제가 닿고 싶었던 ‘너머’였던 것 같아요. 당시 제 음악적 포부가 ‘모든 노트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기’였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번 앨범 이름은 왜 ‘너머’인가요?
넓어지고 싶었어요. 조금 더 흔들리고 불안하더라도 안주하기보다는 넘어가보려는 마음이 더 크거든요. <Serenade>부터 이번 앨범까지 이어진 감성적인 따뜻한 소리에 대한 취향도 앞으로는 바뀔지 몰라요. 넘어간다는 것은 활동 반경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고, 혹은 지금까지는 싱어송라이터로 활약했다면 앞으로는 순수예술이나 다른 차원의 뭔가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번 앨범엔 음악뿐 아니라 삶 전반에 대한 저의 포부가 담겨 있어요.
아직 미지의 세계가 넓다고 느끼는 모양이군요.
네, 아직 젊죠! 인생은 40부터!
음악부터 디자인, 패션, 무대 기획과 홍보까지 음악을 만들 때 항상 큰 그림을 그리는 듯한 인상을 받아요. 곡을 만드는 것만큼 들려주고 소개하는 방식에도 골몰하는 편인가요?
얼굴 없는 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포장지도 중요해요. 음악은 너무 세련됐는데 보이는 이미지와 영상이 지나치게 고풍스럽거나 무거우면 음악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잖아요. 아까 말한 밸런스라는 게 여기에도 적용돼요. 모든 것이 일맥상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별사탕’ 뮤직비디오에서는 화려한 스팽글 의상을 입고 자유롭게 뛰놉니다.
이번 음반에 영감을 준 1980년대 디바를 떠올렸을 때 일단 ‘반짝이’는 무조건 입어야 했고요.(웃음) 그리고 아무래도 댄서블한 음악이니 움직임이 자유로운 의상이 좋겠다는 생각에 1970년대 히피 스타일도 참고했어요.
재미있는 이벤트도 자주 벌여요. 싱글 ‘포옹’ 발매 기념으로 크리스마스에 포토 부스를 열고, 소띠 해를 기념하는 싱글 ‘Buffalo’를 녹음하며 소띠인 팬들에게 피처링을 맡긴 것처럼요. 이런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즉흥적으로 떠오르나요?
회사 지분이 커요. 세련되고 젊은 아이디어다 싶으면, 거의 회사에서 낸 의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웃음) 저는 프로모션이 가벼웠으면 좋겠다, 진지했으면 좋겠다 혹은 이번에는 다른 것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의견만 전달하는 편이에요.
지금 시대에 모든 것은 협업이죠. 이를 매끄럽게 이끌기 위한 당신만의 소통법이 있다면?
항상 최고의 소통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문서화가 핵심인데 이를 위해 트렐로, 노션 등 여러 가지 생산성 툴을 실험했죠. 파트 2 앨범과 콘서트 준비로 요즘도 밀려드는 대화창 속에서 살고 있는데 여유가 생기면 회사 차원에서 워크숍을 한번 추진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각자가 일하면서 느낀 최적의 소통 방식과 플랫폼, 툴에 관련된 모든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어보는 거죠.
여전히 많은 사람이 당신의 음악에서 공감과 위로를 느낍니다. 이제까지 만든 음악으로부터 당신은 어떤 것을 느끼나요?
저 또한 용기를 얻어요. 20대와 30대 내내 이어진 고군분투의 기록이 제게 이렇게 말해주는 느낌도 들어요. “남은 인생, 꿈,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더라도 네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쿠션은 우리가 깔아놨어!” 그런 자신감은 있어요. 다행히 주변에서 저를 건강하게 지탱해주는 사람도 많고요.
위대한 명곡 ‘도망가자’가 탄생하는 과정에 영감을 준 남편을 포함해서 말이죠.
팔불출처럼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제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분이에요. 어제도 작업 때문에 잠을 못 자서 피곤한 데다가 <보그> 화보까지 앞두고 잔뜩 예민해져 있었는데 남편이 툭 던진 이야기에 깔깔 웃다 보니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꼭 필요할 때 리셋 버튼을 눌러줘요.
‘별사탕’은 지루한 세상을 알록달록 물들이는 개성 있는 존재들을 찬미하는 곡입니다. 당신이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개성은?
귀여운 고집? 이제까지 순수한 시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꼭 멋있어 보이지 않아도 재미있고 새로우면 도전했죠. ‘도망가자’로 큰 사랑을 받고, ‘Buffalo’를 내놓았을 때 누가 그랬어요. “잘하시던 분이 왜 이러세요?” 그런데 원래 가고자 한 길이 있는데 환경이 잠깐 바뀐다고 해서 내 방향성을 거기에 맞출 순 없죠. 창작자라면 더더욱. 그런 정체성을 앞으로도 지켜내고 싶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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