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세상의 모든 모성으로 가득 찬 핑크빛 세계

2024.09.06

세상의 모든 모성으로 가득 찬 핑크빛 세계

플라미니아 베로네시가 개인전 〈Social Motherhood Greatmothermom〉에 수놓은 핑크빛 세계가 욕망의 근원을 겨냥한다. 커다란 두 가슴 조각에서부터 펼쳐지기 시작한 모성에 대한 그의 비전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포용한다.

토리노 시몬디 갤러리에서 지난 3월 열린 개인전 <Social Motherhood Greatmothermom>에서 만난 플라미니아 베로네시. 배경을 이루는 설치 작품 ‘MaDrescenza‘는 집안일에 매몰되어 살다가 비로소 탈출해 새 삶을 찾은 어머니의 존재를 상상하며 만들었다.
욕망의 근원에 관한 전시 <Social Motherhood Greatmothermom>. Courtesy of Beppe Giardino
전시장 안으로 깊숙이 진입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두 젖가슴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Courtesy of Beppe Giardino

1966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She-A Cathedral>을 기억하는가? 여성을 대성당에 빗댄 이 전시를 찾은 이들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거대한 임산부 동상이었다. 바로 니키 드 생팔의 작품 ‘Hon’이다. 전시장 안으로 더 깊숙이 침투하기 위해서는 임산부의 질을 통과해야 하는 설정 또한 니키 드 생팔이 의도한 것이었다. 최근 미국 TV 시리즈 <석세션>에서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등장했다. 주인공 켄달이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 파티를 열고 게스트들에게 어머니의 질을 형상화한 거대한 팽창식 통로를 지나가도록 한 대목에서다. 두 사례에선 모두 여성의 출산 과정이 떠오른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른 방식으로, 최근 토리노의 시몬디 갤러리에서 열린 플라미니아 베로네시(Flaminia Veronesi)의 개인전 <Social Motherhood Greatmothermom>에서는 관객이 어느 임산부의 거대한 젖가슴 사이를 통과해야 전시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안드레아 레르다(Andrea Lerda)가 큐레이팅한 전시는 지난봄 내내 토리노를 뜨겁게 달구며 결코 잊을 수 없는 ‘포토존’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Cascina Rinascita, Watercolor, 29×21cm, 2024.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베로네시가 기획한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전시를 통해 베로네시는 출산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관객이 마리아 몬테소리가 규정한 ‘사회적 모성’에 대해 통찰해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그의 작업실을 찾은 내게 베로네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모든 판타지와 놀이는 엄마의 가슴에서 비롯됩니다.” 그 작업실은 베로네시가 모성을 자신의 판타지적 포에틱스(문학 규범)와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허브로 삼은 곳이다. “엄마의 가슴과 분리되는 순간 우리 안에 욕망이 자라기 시작하죠.”

Madre Terra, Ceramic and oil paint, 47×23×16cm, 2023.
Donna Pioniera, Ceramic plastic cold enamel, 21×20×17.5cm, 2023.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베로네시는 거대한 젖가슴을 솜으로 채우거나, 괴물과 돌연변이 생물체가 그려져 있고 젖가슴이 산맥처럼 솟아오른 수채화와 세라믹 작품 등을 내게 보여주었다. “제 판타지 속에서 모든 사람은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는 존재로 등장해요. 그들에게 가슴을 다 달아준 이유죠. 모성은 단순히 출산의 경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새 생명을 향한 염려라고 이해합니다.”

베로네시가 직접 디자인한 개인전 포스터는 하나의 선언문처럼 보인다.

동화 속 오두막을 연상케 하는 구조물에 튤 소재로 미묘하게 다른 핑크빛을 뿜어내는 가슴과 유두 조각이 달린 작품에도 모성에 관한 베로네시의 신선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작품을 집안일에 매몰되어 가정에서 내내 억눌려 살다가 비로소 탈출해 자유로운 새 삶을 찾는 어머니의 존재를 상상하며 완성했다. “여성을 선구자로 표현하는 몬테소리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거예요. 즉 개인의 미덕으로 여기는 보살핌과 희생정신을 온 사회에 퍼뜨리고자 한 거죠. 그럴 때 세상은 더 여성스러워지고, 여자들은 자신의 모성을 사회 전체와 공유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평등에 관한 정말 유의미한 대화가 가능해질 테고요.” 집을 닮은 설치 작품 내부에는 베로네시가 쓰고 낭독한 텍스트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데 이는 그의 첫 번째 사운드 설치 작품이기도 하다. ‘엄마가 되는 과정(MaDrescenza)’이라고 명명한 이 설치물은 예술가이자 여성으로서 그가 선언하는 하나의 매니페스토와 다름없다. 여전히 여성의 몸은 전쟁터와 같다. 이것이 바로 아직도 수많은 아티스트가 상상으로 구축된 예술계에서 끊임없이 여성을 그리고 창조하는 이유다. 니키 드 생팔이 여성을 위풍당당한 대성당에 빗댄 작품을 선보였던 것처럼. (VK)

FRANCESCA FACCANI
사진
MARIO ZAN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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