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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토 데 사르노 “옷은 만지고, 입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

2024.09.21

사바토 데 사르노 “옷은 만지고, 입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

패션계의 환영 인사를 한 몸에 받고 데뷔한 사바토 데 사르노. 5번의 컬렉션을 마친 그를 〈보그〉가 만났다.

패션계의 5월은 꽤 분주하다. 해마다 특별한 크루즈 쇼를 보여주고 싶은 모든 패션 하우스가 낯설고도 아름다운 장소를 잇따라 찾아내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엉뚱한 곳으로 초대하는 법은 없다. 올해 샤넬이 컬렉션의 영감이 된 도시 마르세유를, 스페인의 문화유산과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을 구현한 루이 비통이 바르셀로나를, 1955년 스코틀랜드 퍼드셔(Perthshire)에서 패션쇼를 선보인 무슈 디올의 발자취를 따른 디올이 에든버러(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를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구찌의 사바토 데 사르노(Sabato De Sarno)는 런던으로 향했다. 사보이 호텔에서 포터로 일하던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회사를 설립할 아이디어를 얻은 바로 그 도시다.

지난 5월 13일 오후에 발행된 런던 지역 신문 <이브닝 스탠더드>는 버버리를 제외한 주요 영국 패션 하우스가 더 이상 런던에서 쇼를 선보이지 않는다고 애석해했다. 런던 패션 위크가 40주년을 맞았지만 비비안 웨스트우드, 맥퀸, 스텔라 맥카트니, 빅토리아 베컴 등은 세련된 이미지를 위해 파리로 떠났다. 같은 날 밤 구찌는 템스강 변에 위치한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엄청난 규모의 크루즈 쇼를 선보이며 그 공백을 채웠다. 미술관 주위를 에워싼 군중이 스트레이 키즈 리노의 이름을 부르짖는 동안, 케이트 모스와 알렉사 청이 노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테이트 모던의 지하 1층 공간 더 탱크스(The Tanks)로 입장했다. 관객이 자리에 앉자 꿈에 그리던 프루스트풍 런웨이 위로 브렉시트 이전의 런던 패션 신이 지녔던 목가적 이상향이 펼쳐졌다.

구찌의 마지막 런던 쇼는 2016년, 운명적인 국민투표로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하기 21일 전이다. 사바토 데 사르노는 런던의 관용과 가능성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 이끌려 이곳을 쇼 장소로 택했다. “나는 이 도시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런던은 나를 환영했고, 내게 귀 기울여주었습니다.” 데 사르노는 하우스 역사가 시작된 제2의 고향으로 돌아와 ‘이분법(Dichotomies)’이라는 상징적인 대조를 통해 한층 확장된 세계관을 선보였다. 과연 런던은 이번에도 그를 반겨주었을까?

자수, 테일러링, 가죽 세공을 바탕으로 한 의상은 영국적인 것에 담긴 이탤리언 정신을 잘 보여줬다. 오프닝 룩에 등장한 스웨이드 재킷의 마틴게일 벨트 장식과 화려하게 재해석한 타탄 체크 룩, 영국 가드닝 문화에서 힌트를 얻은 따뜻하고 다채로운 색상이 대표적인 예. 특히 글라스 비콘과 비즈를 손으로 꿰어 만든 체크무늬는 아우터와 드레스에 적용되며, 장인 정신과 패션은 문화를 초월해 하나로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같은 정교한 장식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비즈를 길게 엮어 프린지처럼 연출하거나 시퀸과 조합해 완성한 카모마일꽃 모티브로 청바지를 뒤덮는 식. 이 꽃송이는 다시 3D 프린팅으로 제작돼 흰색 레이스 위에 얹혔고, 후반부에는 전체적인 패턴으로 변형되었다.

런웨이를 따라 걸어 내려오는 모델 대부분이 납작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여기에는 홀스빗 발레리나 슈즈, 격자무늬 고무 밑창의 플랫 슈즈, 남성 쇼에서 첫선을 보인 크리퍼의 플랫폼 버전이 포함되어 있다. 신발에 장식된 홀스빗을 비롯해 액세서리에서는 상징적인 코드를 반영한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데 사르노는 1970년대 초에 탄생한 ‘블론디(Blondie)’ 백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켜 다양한 소재와 사이즈로 구성했다. ‘비(B)’ 백 역시 1950년대 중반 한 장인의 드로잉에서 발견한 실루엣을 응용한 것. 하우스 아카이브 중 하나인 랍스터-클래스프(Lobster-Clasp)를 우아한 진주 목걸이로 재해석한 발상도 돋보였다.

피날레에서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탈리아 음악계를 대표하던 가수 미나(Mina)의 대표곡 ‘Ancora’ 속 바이올린 소리가 데비 해리(Debbie Harry)의 ‘Heart of Glass’에서 흘러나오는 “Ooh, oh, ooh, oh”에 맞춰 조화를 이루었다. 이는 구찌에서 사바토 데 사르노의 세계가 확장됨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사바토 데 사르노의 첫 번째 크루즈 컬렉션이 끝난 후 <보그 코리아>는 그와 오붓하게 소통할 기회를 얻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 중 하나를 이끄는 디자이너로서, 한 사람의 파트너로서, 그리고 한국에 자주 방문한 여행자로서의 소회를 친절하게 전해주었다.

직접 만나지 못해 안타깝다. 여전히 바쁜가?

나 역시 아쉽다. 하지만 방금까지도 디자인 오피스와 9월에 선보일 2025 봄/여름 컬렉션에 대한 미팅을 했다. 지금은 잠시 책상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늘 검은색 옷차림이다.

대부분 그렇다. 컬렉션에서는 다양한 색상을 선보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검정을 가장 먼저 찾는 듯하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보호 행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엔 어떤 옷을 입었나?

다른 사람처럼 나 역시 많은 스타일을 거쳐왔다. 앞서 말했듯이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의 행위이고, 이는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이기도 하다.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하고 시도해보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구찌에 합류한 지 1년 반이 넘었다. 첫 출근 날을 기억하나?

시간은 참 빨리 흐르지만, 하루하루는 똑같이 강렬하다. 구찌에서의 첫날은 다른 여느 날과 같았다. 수많은 프레젠테이션, 악수, 눈길, 미소가 이어졌다. 그들은 오늘날 내 집과 같은 존재다. 구찌처럼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 간의 좋은 감정은 내게 매우 중요한 요소다.

2025 봄/여름 남성 쇼까지 총 5번의 컬렉션을 선보이며, 구찌에서 온전히 1년을 경험했다. 지금의 구찌가 지닌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인가?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전개하는 구찌는 일상을 이야기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 크리에이티브 작업에 진정한 영감이 되어주는 건 실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옷은 진열장에 보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만지고, 입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구찌를 대표하는 색, ‘로소 앙코라(Rosso Ancora)’를 탄생시켰다.

구찌에 온 첫날부터 계획한 프로젝트였다. 색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항상 나의 일부였다.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브랜드 모두를 대표하는 색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컬렉션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단순히 쇼를 기준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행위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내 모든 경험이 런웨이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대화, 그림, 공연 등 어떤 것이든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기고, 메모하고, 그린다. 전부 무작위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일관적이기도 하다.

2025 크루즈 컬렉션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언젠가 ‘We’ll Always Have London’이라고 쓰인 간판을 건 영화관 사진을 업로드한 적이 있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명대사(London 대신 Paris가 쓰였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문장 말이다. 이는 구찌의 역사와 나 자신에 관련된 여러 가지를 연결하는 알람 같았다. 런던은 항상 우리의 일부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첫 번째 크루즈 쇼로 ‘시작’하는 것이 너무나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당신이 표현하는 구찌 여성은 모두 다른 느낌이다. 모던하거나 섹시하던 이전에 비해 이번 컬렉션에서는 훨씬 로맨틱하다.

첫 3개의 여성 컬렉션은 내가 어떤 디자이너인지에 대한 소개다. 2024 봄/여름 데뷔 컬렉션은 옷장에서 기본이 되는 의상을 선보이는 컨셉이었고, 두 번째 2024 가을/겨울 컬렉션은 내가 생각하는 관능미를 표현한 것이다. 이번 2025 크루즈 컬렉션에는 낭만적인 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담고자 노력했다.

데뷔 쇼에서 플랫폼 슈즈가 인상적이었다면, 이번엔 거의 모든 룩에 납작한 신발을 매치했다.

여자들은 모두 플랫 슈즈도, 하이힐도, 플랫폼 슈즈도 신는다. 실제 일상을 위한 옷과 신발을 선보이는 메종이라면, 당연히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여야 하지 않을까?

많은 가방이 등장하기도 했다.

다양한 버전과 소재, 사이즈로 선보이는 두 가지 가방이 있다. 하나는 엑스트라 라지 버전의 ‘비’ 백이다. 남성 쇼에 선보인 디자인을 한층 여성스럽게 변형했다. 두 번째는 더 새롭고 현대적인 형태로 재해석한 ‘블론디’ 백. 구찌는 가방 디자인에서 놀라운 헤리티지를 보유한 브랜드다. 아카이브를 탐구해 이런 상징적인 유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영광이자 큰 기쁨이다.

당신의 일상은 어떤가?

많은 것을 한다! 남편 다니엘레 칼리스티(Daniele Calisti)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가능한 한 여행을 많이 다니려 한다. 영화나 공연, 전시와 콘서트도 보러 다니고 루체(Luce)와 피나(Pina)라는 이름의 닥스훈트 두 마리와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기도 한다. 이 모든 요소가 중요하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독창적이고 강렬하고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한국의 열정에 흠뻑 빠졌다. 이탈리아인과 한국인은 자신이 믿는 것에 모든 열정을 쏟는다는 것이 비슷하다.

패션과 문화 측면에서 한국 마켓의 비전은 무엇인가?

‘홀스빗 1955’ 캠페인의 주인공 하니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리지만 예술과 에너지, 사랑을 발산하는 19세 소녀. 그녀의 스타일과 애티튜드가 이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9월 패션쇼와 곧 공개될 광고 캠페인, 11월에 있을 ‘2024 LACMA 아트+필름 갈라’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동안에도 말이다. 내 직업은 한꺼번에 여러 일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사실 나처럼 빨리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인터뷰가 끝나면 다시 일하러 가야 하나?

지금 디자인 팀이 기다리고 있다.

구찌에서 어떤 옷을 만들고 싶나?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고 싶은 감정을 느끼기 위해 입고 싶은 옷. (VK)

포토그래퍼
FEDERICO CIAMEI
에디터
김다혜, LUKE LE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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