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기쁨이 안아주는, 웰컴 투 키토피아
샤이니 키가 세 번째 미니 앨범 〈Pleasure Shop〉으로 찾아왔다. 동명의 타이틀곡에서 사이보그 키는 자신만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끈다. 그곳은 슬픔도 기쁨이 안아주는 키토피아.
키는 편안해 보였다. 생애 첫 아시아 투어를 마치고, 2024년 첫 앨범 발매를 바로 눈앞에 두었는데도 어디 하나 초조하거나 피곤해 보이는 구석이 없었다. 원초적인 것에서 느끼는 기쁨과 솔직한 나를 표현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물 흐르듯 말하는 그에게서 지금 딱 좋은 자신만의 계절을 지나는 사람의 알맞은 온도가 느껴졌다.
얼마 전 첫 솔로 아시아 투어를 마쳤어요.
즐거웠어요. 사실 이제 저한테 처음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솔로로서는 처음 하는 경험이다 보니 너무 재미있었어요. 특히 어릴 때는 여유도 없었고 정신없이 공연만 하고 올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현지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잠깐이라도 그 나라의 문화를 즐기고 오려고 해요. 공연도 공연이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챙기게 되더라고요.
공연을 마치고 와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새 앨범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어요. 발매일이 9월 23일이니 인터뷰하는 날 기준으로 20여 일 남았군요. 작업은 거의 끝난 상태인가요?
거의 끝났죠. 앨범 하나 나오려면 미리 공개해야 할 게 많거든요. 콘서트에서 미리 음악 들려드리려면 믹스도 빨리 끝내야 하고, 뮤직비디오도 CG 입히려면 미리 컷 편집 다 해놔야 하고요. 그래도 아직 할 게 많아서 당일까지 죽을힘을 다해서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17년째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을 텐데요, 대체 K-팝은 왜 이렇게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완성할 수 있을까요?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는 장르라 그렇지 않나 싶어요. K-팝은 거의 모든 대중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그걸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잖아요. 그러다 보니 발표 시점에 이미 사람들이 시들하게 느끼지 않게, 조금 타이트하게 작업하는 게 법칙 아닌 법칙이 됐죠. 최대한 많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작업하면 유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도 6개월 전에 미리 만들어놓으면 좋죠. 하지만 ‘그때 가봐야 아는 것들’이 많다는 걸 이젠 알아요. 다행히 제 스타일이 일이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나름 짜임새 있게 작업하는 편이에요. 저만의 법칙이 있어요. 보통 뮤직비디오 작업을 스케줄 후반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미리 해놓는 걸 선호해요. 그래서 이번 앨범도 사진 먼저 찍고 뮤직비디오도 비교적 미리 작업해놨어요. 회의도 빨리 시작하는 편이고요. 그 부분에서만큼은 여유를 두고 작업하고 싶어요.
그럼 키의 작업 영역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작업한 파트는 무엇인가요?
피지컬 앨범이요.
반갑군요. 저도 키가 발표한 독특한 형태의 피지컬 앨범을 전부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 듣고 놀랐어요. 제가 정말 마지막까지 신경 쓰는 게 피지컬 앨범이거든요. 피지컬 앨범의 중요성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그걸 직접 사던 사람이니까 구매할 때의 기쁨을 알거든요. 응원하는 마음은 같아도 패키지가 좋은 앨범과 아쉬운 앨범 받았을 때 기분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제가 지금 시간에 쫓기는 상황도 아니니까, 나를 모르는 사람도 지나가다가 예뻐서 살 수 있는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이번 앨범 <Pleasure Shop>에 가면 그런 예쁜 것들이 잔뜩 있겠군요. 키는 앨범 패키지만큼 독특한 컨셉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잖아요. ‘Pleasure Shop’이라는 앨범 컨셉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나요?
사실 ‘Pleasure Shop’이라는 제목이 데모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제목을 바꿀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제목은 그대로 두되 거기에 나의 색깔을 넣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첫 아이디어는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이나 게임 ‘사이버펑크’ 같은 작품에서 시작했어요. 그렇게 잡고 보니까 <BAD LOVE> 때의 레트로 스페이스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면서도 조금 묘한 느낌을 더 넣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택한 게 ‘깨끗함’이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SF적이면서도 날것 느낌이 많이 담긴 것들을 만들어왔다면, 이번 앨범은 스틸과 무채색을 기반으로 했어요. 그리고 제가 그런 ‘Pleasure Shop’의 감정 없는 AI로 초대장을 보낸다면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수은 같은 것이 담긴 칵테일 잔이나 특별 패키지도 그런 맥락에서 도출한 결과예요.
음악적으로는 하우스를 뚜렷하게 지향하는 앨범이라고 들었어요.
<Pleasure Shop>은 작업 초반에 이미 장르를 정해놓고 시작했어요. 제가 다시 하우스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이전에도 트로피컬 하우스나 딥 하우스 곡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더 직접적인 하우스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샤이니가 나름 하우스 유행 최전선에 있었잖아요. ‘View’가 대표적이죠. ‘View’가 발표된 지 벌써 10년이 되기도 했고, 그 느낌을 제가 솔로로 소화해보는 것도 의미가 클 것 같았어요. 하우스로 방향을 잡고 나니 곡 찾는 것도 훨씬 수월하더라고요.
‘하우스’라는 키워드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준 곡이 있었나요?
2번 트랙 ‘Overthink’랑 4번 트랙 ‘I Know’였어요. 두 곡 사이에서 계속 방황하다가 ‘Pleasure Shop’이 등장하면서 모든 고민이 해결됐죠. 다 좋은 곡이지만 ‘Pleasure Shop’만이 가진 힘이 있었어요. 노래를 듣자마자 바로 비주얼라이징이 되더라고요. 뭘 입을지, 어떤 제스처를 할지가 바로 눈앞에 그려졌어요. 전 그런 게 빨리 풀리는 곡을 타이틀로 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제 취향만 따라가자면 ‘Overthink’지만, 타이틀곡은 그보다 훨씬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니까요.
키의 보컬은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보컬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다”고 표현한 적 있어요. 노래를 듣자마자 비주얼이 떠오르는 것처럼, 노래를 표현하는 것도 그런가요?
노래하기 전에 엄청 계산하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표현해주신 게 정말 기분 좋았어요. 저는 녹음 들어가기 전에 가사지에 밴딩, 크레셴도, 물결 전부 표시해놓고 여기는 세게, 여기는 살살 이런 것들까지 저만 알아볼 수 있게 적어놓고 연습해요. 물론 그대로 안될 때도 많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아쉬움을 보완해가면서 보컬 역량을 높이려는 편이에요. 이번 앨범에서 보컬적인 면은 3번 트랙 ‘Golden’을 추천하고 싶어요. 기존과는 다른 보컬을 들려드리고 싶어서 무척 애썼어요. 평소와는 다르게 힙합이나 R&B에서 들리는 보컬처럼 부르고 싶어서 가창에도 변화를 많이 주고 수정도 많이 했죠.
전작에서 키 보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을 추천한다면요?
‘BAD LOVE’ 어떨까요. 저에게는 도장 깨기 같은 곡이었거든요. 제 보컬을 너무 잘 아는 작곡가 아드리안 맥키넌(Adrian McKinnon)이 “키는 할 수 있다”면서 부추기는 바람에 작사와 작곡을 맡아준 켄지 누나랑 수없이 고민·수정·연습을 거쳐서 완성했어요. 당시엔 고생이었지만 그 후 제가 노래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을 준 곡이에요.
키가 운영하는 <Pleasure Shop>에서는 주로 어떤 기쁨을 만끽할 수 있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고차원적인 기쁨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원초적인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죠. 맛있는 걸 먹어서 기쁘고, 피지컬 앨범이 잘 나왔을 때 기쁘고, 공연을 할 때 기뻐요. 그런 제가 즐기고 드리는 원초적인 기쁨이 절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도 닿아서 계속 좋아해주시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그걸 계속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사실 여기서 기쁨이라는 말의 함정도 조심해야 해요. 웃는 것만 기쁨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슬플 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도 얼마나 큰 기쁨이에요. 들으면서 눈물이 나더라도 그 중심엔 기쁨이 있으니까요.
원초적인 기쁨과 기쁨의 본질에 대한 추구, 정말 좋군요. 내 안의 기쁨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기쁨에 대해 오래 고민한 것 같아요.
저도 많이 헤매고 얻은 결론이에요.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걸 하고 있는데 정작 제가 가장 원초적으로 원하는 건 하지 않고 있는 저를 발견했거든요. 중심이 본격적으로 잡힌 건 2018년 ‘KEYLAND’ 첫 공연 이후부터였어요. 덕분에 <BAD LOVE> 같은 앨범도, ‘GROKS’ 같은 공연도 나올 수 있었어요.
정말 신기한 게 저도 <BAD LOVE> 앨범부터 키라는 사람이 훨씬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사진에 샤픈이라도 먹인 것처럼 눈이 시리게 뚜렷해졌던 기억이 나요.
그동안 다른 데서 답을 찾고 있었으니까요. 내 걸 만드는 데 내 안의 걸 끄집어내지 않고 자꾸 다른 데서 찾았어요. 예전부터 레트로를 좋아했으면서 자꾸 지금 좋은 거, 사람들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거를 좇았던 거예요. 이런 걸 알기엔 아무래도 조금 어렸죠. 그렇다고 제가 레트로만 추구하진 않아요. <Pleasure Shop>도 사실 시기로 보면 미래에 가깝잖아요. 다만 그 미래를 표현하는 데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중시해요. CG 작업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서 분장하고 몸에 달아야 제 스타일이더라고요. 그걸 알게 됐어요.
뚜렷한 취향과 트렌드의 조화가 어렵진 않나요?
전 새로운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장난처럼 “요즘 친구들은 이런 걸 왜 할까” 하면서 투덜대지만 속으로는 그걸 그냥 자연스럽게 느껴요. 참고는 하되 쫓아가지 않고, 이해는 하되 애쓰지는 않는 게 지금의 저죠.
지금 딱 좋은, 키의 제철을 보내고 있군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제 바람은 이왕 이렇게 됐으니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더 높은 곳에 가도 좋겠지만 특별히 그걸 바라지도 않아요. 전 지금 제가 꿈꿔온 것보다 오히려 멀리 와 있지 않나 싶을 때도 많거든요. 욕심 없이 무언가 쫓지 말고 나대로 하다 보면 언젠가 생각보다 멀리 가 있을 것 같아요. 해온 대로, 하던 대로, 하는 대로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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