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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안 쓰던 근육을 쓰고, 시도하지 않은 리듬을 만드는 기회”

2024.10.02

김종관 “안 쓰던 근육을 쓰고, 시도하지 않은 리듬을 만드는 기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살인자들〉과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감독 6인이 참여한 장편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 이명세 감독의 주도 아래 장항준, 김종관, 노덕, 조성환, 윤유경 감독이 참여했다. 영화의 의미 찾기부터 도전적인 스타일까지 감독들의 면면이 도드라진다. 그들을 이어주는 큰 줄기는 배우 심은경이다. 심은경이란 페르소나를 향한 감독들의 해석 또한 작품을 보는 재미다. 〈보그〉에서만큼은 심은경이 감독들을 촬영한다.

(왼쪽부터) 김종관이 입은 레더 재킷은 올세인츠(AllSaints), 셔츠는 존 바바토스(John Varvatos), 선글라스는 레이밴(Ray-Ban). 장항준이 입은 수트는 루쏘소(Lussoso), 시계는 해밀턴(Hamilton). 윤유경이 입은 스트라이프 프린트 트렌치 코트, 셔츠는 모스키노(Moschino). 이명세가 입은 브라운 코트는 르메르(Lemaire), 베이지 페도라는 에릭 자비츠(Eric Javits), 선글라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노덕이 입은 재킷, 셔츠는 베르니스(Berenice), 스커트는 잉크(Eenk). 조성환이 착용한 안경은 하만옵티컬(Harman Optical), 시계는 몽블랑(Montblanc).

나만의 변신, 김종관

<변신>의 정체불명의 남자(연우진)가 등에 칼이 꽂힌 채 의문의 바에 들어선다. 곧이어 묘한 분위기의 바텐더(심은경)가 건넨 칵테일을 마시고는 괴력에 휩싸인다. <조제>(2020), <아무도 없는 곳>(2021), <달이 지는 밤>(2022) 등을 통해 감성 어린 멜로, 심리적 로드 무비, 대화의 드라마를 그려온 김종관 감독이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다.

김종관이 입은 레더 재킷은 슈프림(Supreme), 셔츠는 디젤(Diesel), 팬츠는 리바이스(Levi’s), 앵클 부츠는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심은경이 입은 블랙 비즈 장식 셔츠는 베르니스(Berenice).

어떻게 이번 작업에 합류했나.

이명세 감독님과 같이 작업한다는 게 가장 컸다. 나 또한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아왔고 창작자로서 존경한다. <페르소나-밤을 걷다>(2019) 등 그간 옴니버스 작업 경험이 있다 보니 이런 기획에 참여하는 걸 겁내지 않는 편이다.

기존에 해오던 작업과는 전혀 다른 장르물이다.

그간의 영화는 나름의 연속성을 갖고 작업해왔다. 전작에서 미처 풀지 못하거나 의문이 남는 부분은 다음 작업으로 풀어내곤 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와 비교하면 이번은 예외적이다. 전혀 해보지 않은 장르를 시도했다. <변신>이라는 제목처럼 나 자신도 변신을 해본 셈이다. 옴니버스다 보니까 큰 틀, 공통의 룰 몇 가지를 지키면서 그안에서 재밌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영화를 떠올리면서. 그래서인지 오히려 자유롭게 작업했다.

쫓기는 남자, 흡혈과 각성, 괴이한 힘이라는 <변신>의 얼개, 설정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작업할 때마다 하나라도 배워나가자는 자세가 있다. 안 쓰던 근육을 쓰고, 시도하지 않은 영화의 리듬을 만드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비슷한 모티브로 구상해놓은 게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간 함께 작업해온 배우들과 조금은 다른 패턴과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해오던 습성은 어쩔 수 없었다.(웃음) 이를테면 한정된 공간에서 두 사람이 길게 이야기 나누는 방식 같은 것이다. 나는 멜로를 만들 때도 그 안에 서스펜스가 있다. 장르물이긴 하지만 그런 면이 들어가 있다.

‘해오던 습성’이라고 하면, <더 테이블>(2017)을 비롯해 제한된 공간에서 소수의 인물 사이 대화로 진행되는 드라마와 같은 것일 텐데, 창작자로서 그런 요소에 끌리는 이유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한정된 공간에서 둘만의 이야기로 풀 수 있는 게 정말 무궁무진하다. 그것에 중독된 것 같다.(웃음) 계속해봐야겠다는 의지도 있다. 하다 보니까 이런 게 재밌구나, 그 안에 어떤 한계가 있구나 싶었다. 그럼, 다음 작업 때 어떻게 풀어나가볼까 궁리하고 시도하게 된다. <변신>도 그 경향 아래 있고, 신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가제)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런 부분을 꾸준히 파고들다 보면 관객도 ‘아, 이 사람은 이걸 진지하게 하고 있구나’ 생각해주지 않겠나. 그러면 언젠가는 하나의 힘으로 보이지 않을까.

<변신>의 변신은 육체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신적 각성도 있다.

변신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흥미로웠다. 육체적, 정신적 모드 전환도 있지만, 피해자인 사람이 공격자가 되는 변화도 있다. 변신이 이 영화의 위트이기도 하다.

흡혈, 뱀파이어 설정도 있는데 평소 이 장르에 관심이 있었나.

문학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걸 보면 섹시하잖나. 좀 더 진지하게 다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재밌고 가볍게 갔다. 옴니버스라는 점에서 전체적인 균형감도 고려해야 했다. 내가 재밌어하며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관객이 보고 영화적 쾌감을 느끼고 좋아해야 한다. 그래야 영화가 살아남으니까. 물론 장르물을 평생 연구한 분들과 비교하면 부족할 수 있겠지만, 내 나름의 색깔로 장르를 만들면 조금은 다른 게 있지 않겠나.

연우진 배우와는 <아무도 없는 곳>(2021)에 이어 또다시 만났다.

흔쾌히 함께해줘 정말 고마웠다.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체력 소모가 컸을 텐데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간 우리가 만든 영화가 말로 진행되는, 말이 많은 영화였는데 이번에 보니 몸도 잘 썼다.(웃음)

심은경 배우와는 첫 호흡이다.

작업하며 되게 놀랐다. 겪어보지 못한 스타일의 배우였다. 내가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전개의 연기를 하는데 그게 정말 재밌었다. 배우가 고민을 많이 하고 영리하게 접근할 때만 가능한 독특한 연기다. 그게 연출자인 내게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고 나로서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며 오히려 내가 많이 깨달았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정말 좋은 배우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에도 함께한다.

매 작품 배우들과의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어왔는데 비결이 뭔가.

배우라는 직업인, 배우라는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하고 관심과 애정이 많다. ‘배우가 캐릭터를 맡는다’고 할 때 그게 무엇일까 궁금하고 신기하다. <더 테이블> <낮과 밤은 서로에게> 같은 영화가 상업적인 프로젝트는 아니잖나. 그럴 때일수록 배우가 참여했을 때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배우는 승부 근성이 있고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 하고 본인 연기의 영역을 넓히고자 한다. 나와 함께할 때 그런 지점에서 조금이라도 뭔가를 시도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액션 장면도 처음으로 시도한 것 아닌가.

내 인생에 언제 또 무술, 액션을 찍어보겠나.(웃음) CG도 사용해보고, 난데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 환상성 안에서 농담 같은 영화로 보이길 바랐다. 치고받는 액션 자체보다는 그 상황까지 갈 때 발생하는 서스펜스를 좋아한다. 오히려 유머나 서정은 그럴 때 생기는 것 같다. 그래야 재밌고. 가령 액션이 벌어지는데 심은경 배우가 <위대한 개츠비>(2013)의 개츠비처럼 포즈를 취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더 킬러스>를 재밌게 보는 팁이 있다면.

무겁지 않은,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많지 않은 예산으로 장르물을 만들 때 한계가 참 많은데 창작자들이 나름의 시도를 했다. 대중적으로 아주 쉽게 전달되는 영화부터 실험성이 강한 작품까지 다양하다. 관객이 각자의 기호에 맞게 영화를 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주면 좋겠다. 정지혜 영화 평론가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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