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S/S 파리 패션 위크 DAY 5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쇼들이 옷은 결국 입는 것이라는 사실을 입 모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것을 입을 때, 딱딱하고 무거운 것을 걸쳤을 때,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구조물에 갇혔을 때, 혹은 주렁주렁 달린 것이 많은 옷을 입었을 때 등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었죠. 2025 S/S 패션 위크가 9부 능선을 넘고 있는 지금, 파리 패션 위크 5일 차 룩들을 살펴보세요. 옷은 보이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입고 느끼는 것임을 눈으로 증명한 쇼들이 순식간에 눈도 몸도 마음도 부드럽고 딱딱하고 가볍게 만듭니다.
알렉산더 맥퀸(@alexandermcqueen)
션 맥기르(Seán McGirr)는 리 맥퀸의 스케치를 살펴보면서 “그의 시그니처였던 S-밴드를 해석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죠. 롤 라펠 실루엣(Rolled Lapel Silhouette)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허리 밴드 아래 1인치 정도 피부를 살짝 엿볼 수 있는데, 오리지널보다 더 달콤하고 담대한 효과를 냈습니다.
또 맥퀸의 두 번째 쇼인 1994년 F/W 컬렉션 반시(Banshee)와 어머니가 들려준 반시의 강인한 정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어둡지만 로맨틱한 무드가 컬렉션 전반에 강하게 드리웠죠. 이는 그가 라나 델 레이를 위해 디자인한 멧 갈라 드레스처럼 가시를 수놓은 긴 검은색 드레스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어둡지만 아름다웠던 알렉산더 맥퀸을 만나보세요.
에르메스(@hermes)
에르메스의 런웨이에서는 단호한 관능미가 넘쳐흘렀습니다. 나데주 바니(Nadège Vanhée)는 에르메스 2025 S/S 컬렉션을 “기분 좋은 여름과 피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과거의 스타일에는 관심이 없고, 시스루 트렌드에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방법과 에르메스 고객들이 이를 가죽 제품과 어떻게 믹스할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시어한 메시 소재 팬츠 측면에 지퍼를 달았습니다. 기분에 따라 지퍼를 올리면 맥시 스커트가 되죠. 가벼움과 견고함을 결합하면서 면처럼 얇게 재단한 가죽 재킷을 브라 톱 위에 걸치게 하거나 아노락처럼 재단해 허리에 벨트를 넣기도 했죠. 캐주얼하고도 편안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룩 자체는 포멀하면서도 시크하고, 섹시하기까지 했어요. 바니는 여기에 여름의 가벼움을 실크 트윌 스카프로 표현했습니다. 아니, 부드러운 촉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죽 숄더 셔츠 드레스와 짧은 팬츠에 스카프를 넣어 가볍고도 세련된 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햇볕에 구운 듯 따뜻한 뉴트럴 컬러에 장난기 넘치는 클로그 샌들 등 프랑스 어느 휴양지를 거니는 인간 에르메스가 눈에 선합니다. 내년 6월로 함께 가볼까요?
꼼 데 가르송(@commedesgarcons)
레이 가와쿠보는 ‘분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아드리안 조페가 백스테이지에서 “세상이 이 모양이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공기와 투명성을 혼합하면 희망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번 쇼는 더욱 희망적이었습니다.
쇼는 공기를 한껏 머금은 하얗고 딱딱한 표정의 삼부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부드러운 퀼팅으로 덮은 거대 구조물을 입은 모델, 초대형 흰색 필라멘트 원뿔을 쓰고 얼굴을 가린 모델도 있었죠. 제각기 다른 선물의 포장지처럼 보이는 룩에서는 환상성과 의외의 사랑스러움이 눈에 띄었습니다. 포장용 플라스틱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마지막 3개의 룩은 거품 욕조에 파묻힌 느긋한 한때를 떠올리게 했죠. <보그 재팬>과의 인터뷰에서 가와쿠보는 “저는 새롭다고 생각되는 것,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는 것만 만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낯설게 하기는 그녀의 특기이긴 하지만, 입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네요.
준야 와타나베(@junyawatanabe)
준야 와타나베의 쇼에서 뜻밖에 도나 서머(Donna Summer)의 1977년 곡 ‘아이 필 러브(I Feel Love)’가 흘러나왔습니다. 매혹적인 디스코 메시지가 그토록 난해하고 신비로운 디자이너의 쇼 사운드트랙이라니 놀라웠죠. 하지만 이 곡이 모듈식 모그 신디사이저(Moog Synthesizer)로 제작한 최초의 곡이라는 점을 떠올렸을 때 미래적인 분위기가 컬렉션의 메탈릭한 매력과 묘하게 조화를 이뤘습니다.
와타나베는 몇 가지 요소만 조립하고 이를 집요하게 반복해 기교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데 일가견이 있죠. 이번 시즌에는 반사판 패치, 백팩, 방음 폼, 자동차 인테리어로 보이는 소재 등 그의 표현대로 ‘현대적인 재활용 소재’로만 작업했습니다. 추상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그의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이례적으로 여성스러운 실루엣이 강조되었습니다. 오프닝 룩은 반사 은박으로 만든 인상적이고 조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버클 스트랩으로 고정한 배낭이나 납작한 고무 오토바이 등의 소재로 만든 넓은 어깨와 부풀린 허리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스팽글, 반투명 패브릭, 반사판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외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축제처럼 기이한 기쁨을 느끼게 했습니다. 와타나베는 특유의 상징적이고 명석한 두뇌로 다음과 같은 간결한 메모를 남겼습니다. “우리 일상에 비정상적인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메모를 읽고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2025 S/S PARIS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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