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서도호가 펼친 예술 지도, ‘스펙큘레이션스’展

2024.10.07

서도호가 펼친 예술 지도, ‘스펙큘레이션스’展

작가 서도호. 사진: Gautier Deblonde. © Gauter Deblonde, all rights reserved DACS 2024

현대미술가 서도호를 궁금해하는 관객은 많지만, 그에 비해 정작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만날 기회가 흔치 않았습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오는 11월 3일까지 열리는 <서도호: 스펙큘레이션스>가 반가운 이유입니다. 지난 2012년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서도호 대규모 개인전 <집 속의 집>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 특히 작가의 인장과도 같은 천 조각으로 만든 집을 기대한다면 이번 전시는 한결 색다르게 다가올 것 같은데요. 작가의 작업 세계가 ‘집 속의 집’에 머물지 않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면, 그 진화의 방향과 과정이 이번 전시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변, 추론, 사색 등으로 해석되는 제목 ‘스페큘레이션스’는 개인과 공동체, 환경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서도호 작업의 작동 방식을 함축합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집을 탄생시킨 작가의 생생한 사유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기회인 셈이죠.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 설치 모습.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 설치 모습.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서도호, ‘향수병(1/80 스케일)’, 2024, 혼합 재료, 119.5×80×80cm.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많은 관객들이 기억하는 서도호의 대표작은 자신이 실제 거주했던 집 혹은 작업실을 천으로 구현한 작업일 겁니다. 부드러운 반투명 천을 박음질해 만들어낸 그 공간을 직접 경험하면서 작가가 보냈을 시간을 짐작해보곤 했죠. 혹은 런던 한가운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 별똥별처럼 날아가 박힌 듯한 작은 한옥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스펙큘레이션스>전은 이렇듯 집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자신의 경험에서 벗어나 보다 거시적이고 보편적이며 인류적인 시선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이루는 개념, 과정, 조사 등 사유의 흐름이 드로잉, 모형, 시뮬레이션 영상 등을 통해 펼쳐지는 거죠. 즉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고민과 생각,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도 자체가 전시의 훌륭한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전시는 1층 더그라운드에서 보이듯 서도호의 다리 프로젝트에서 시작합니다. 특히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2010~2012)에서는 건축가, 생물학자, 물리학자, 이론가, 산업 디자이너 등과 함께 태평양의 조류와 바람을 버틸 수 있는 집을 짓는 계획을 세우는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대륙 사이 이동에 대한 작가의 상상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서울, 뉴욕, 런던을 등거리로 연결한 지점, 즉 북극 보퍼트해 인근 축지 고원에 위치하게 되는 이 집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여러 대안과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집이라는 대상만큼 삶과 맞닿은 사물은 없지만, 그렇기에 집은 집에 머물지 않습니다. 집에 대한 서도호의 고민은 기후 환경, 고립, 장벽, 국경 등을 포함한 사회문제에 대한 잠재적 대안과 연결되고, 관람객들은 집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서도호, ‘연결하는 집, 런던(1/125 스케일)’, 2024, 판 수지, 레진, 종이, 스테인리스 스틸, 144.6×144×144cm. 사진: 정태수. 작가, 리만머핀(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런던, 베니스) 제공. © 서도호
서도호, ‘연결하는 집, 런던(1/125 스케일)’, 2024, 판 수지, 레진, 종이, 스테인리스 스틸, 144.6×144×144cm. 사진: 정태수. 작가, 리만머핀(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런던, 베니스) 제공. © 서도호
서도호, ‘다리 프로젝트’, 2024, 애니메이션,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약 24분. 사진: 정태수. 작가, 리만머핀(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런던, 베니스), 코오롱스포츠 제공. © 서도호
서도호, ‘별똥별(1/23 스케일)’, 2024, 혼합 재료, 157.1×103.3×65.5cm. 사진: 정태수. 작가, 리만머핀(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런던, 베니스) 제공. © 서도호
서도호, ‘사천왕사를 위한 제안(1/100 스케일)’, 2024, 혼합 재료, 10.3×80×100cm. 사진: 정태수. 작가, 리만머핀(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런던, 베니스) 제공. © 서도호
서도호, ‘나의 집/들, 음(1/35 스케일)’, 2024, 폴리락타이드, 16.1×194.9×142.7cm. 사진: 정태수. 작가, 리만머핀(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런던, 베니스) 제공. © 서도호

스페이스 1에서는 서도호가 지난 20여 년간 보여준 궤적과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혹은 개념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듯 보이는 사유를 예술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영상 속 작가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그의 사유 역시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문득 이런 시도들을 모형이나 영상, 글을 통해 접하다 보니 지금이 바로 서도호 작업 세계의 가장 생생한 순간이며, 내가 이를 목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가의 실행력과 상상력, 그리고 집이라는 사물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이는 한편, 이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집으로 삼은 인류학적 성찰이 특별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집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니까요. 그런 면에서 재개발로 사라지는 공동 주택단지를 담으며 공동체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동인아파트'(2022)와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2018)로 전시를 마무리한 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서도호, ‘동인아파트’, 2022,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션, 20분 32초.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서도호,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 2018,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션, 반복 재생, 사운드, 28분 34초. 사진: 정태수. 작가, 리만머핀(뉴욕, 홍콩, 서울), 빅토리아 미로(런던, 베니스) 제공. © 서도호
정윤원(미술 애호가)
사진
아트선재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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