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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에 ‘보그’ 에디터의 일주일 출근 룩을 요청했다

2024.10.17

챗GPT에 ‘보그’ 에디터의 일주일 출근 룩을 요청했다

일요일 저녁 9시, 나는 감각이나 지각 따위 없는(Non-Sentient) 존재와 한참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챗GPT에 이번 주에 입을 옷을 골라달라고 맡긴 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챗GPT는 하이 웨이스트 팬츠와 테일러드 블레이저만 입으라고 계속 고집했다. “좀 더 트렌디하게 골라줘.” 난 간신히 짜증을 억누르며 세 번째 답장을 보냈다. “물론이죠!” 챗GPT가 명랑하게 말했다. “따뜻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멋스러운 겨울 아웃핏입니다…” 그리고 ‘시크하고 에지 있는’ 가죽 레깅스, 니하이 스웨이드 부츠, ‘오버사이즈 체크 스카프’ 등 여덟 가지 포인트가 담긴 스타일 제안이 이어졌다. 이쯤 되니 챗GPT는 2006년쯤 곡 완(Gok Wan)의 영혼을 디지털로 복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곡 완은 유명한 영국 스타일리스트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하우 투 룩 굿 네이키드(How to Look Good Naked)>를 진행했다).

챗GPT와의 첫 만남은 2022년 11월, 친구들과 주말을 보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군가 새로 나온 AI 툴을 보여주었는데 철학적 질문부터 시적인 질문까지, 모든 종류의 궁금증에 대한 깊이 있는 답변을 몇 초 만에 내놓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와이드 레그 진 스타일링에 관한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했더니, 나라면 몇 시간이 걸렸을 500개 단어 분량의 명쾌한 글을, 챗GPT는 10초 만에 술술 풀어놓았다. 조용히 물러난 나는 아래층 화장실에 내려와 실존적 붕괴를 경험했다. 그날 밤, 그 화장실 안에서 내 존재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걸 느꼈다.

이런 기분에 휩싸인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창작자가 챗GPT가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의 대상이라고 조용히 수군거렸다. 결국 AI는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 있을까? 5년 후에도 내 직업은 여전히 존재할까? 챗GPT가 16시즌째 진행 중인 드래그 퀸 경연 프로그램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의 다음 게스트 심사 위원이 될까? 지난해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파업부터 미국 코미디언 사라 실버맨(Sarah Silverman)이 챗GPT를 만든 오픈AI를 저작권 침해로 고소하기로 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AI는 이미 창작 영역에서 다양한 분쟁의 중심에 있다.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에 따르면, 지난해 생성형 AI 중심의 스타트업에 대한 자본 투자가 급증해 상반기에만 141억 달러에 달했으며, 패션계 임원의 73%는 생성형 AI가 올해 패션 비즈니스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디자인과 제품 개발을 위한 크리에이티브 과정에서 AI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 28%에 불과했다. AI의 독창적 사고 능력에 의구심을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AI와 점점 더 긴밀하게 얽히면서, 인간의 역할과 기계의 역할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작가이자 문화 평론가 찰리 스콰이어(Charlie Squire)는 “패션계, 더 나아가 창작과 관련된 광범위한 분야에서 AI가 우려되는 점은 협력적이지 않고 자발성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흥미롭고 ‘새로운’ 무언가를 디자인할 수 있죠. 하지만 맥락화, 예술 고유의 소통 과정이 부족합니다. 그런 맥락이 없다면 우리의 옷은 물론이고 우리까지도 점점 더 분리되고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패션 심리학자 디온 테렐롱 박사(Dr. Dion Terrelonge)도 비슷한 우려를 표한다. “퍼스널 스타일을 개발하려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알고리즘이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취향을 탐구할 수 있을까요? 창의적인 선택을 할 때 기술에 의존하면 본연의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챗GPT 패션’은 틱톡에서 40억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잇 걸의 패션 스타일을 재현하거나 다음에 열릴 파티 룩을 구상하기 위해 챗GPT에 조언을 구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소식이 퍼스널 스타일의 종말처럼 불길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로 훈련된 온라인 툴이 개인 취향의 바탕이 되는 인간 경험의 조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우려에 찰리 스콰이어는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답했다! “수많은 컴퓨터가 모여 좋은 예술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나쁜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챗GPT를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나는 패션 전문가가 업무에 사용할 만한 지식과 기술을 광범위하게 반영하는 다양한 프롬프트를 사용해 내가 한 주간 입을 옷을 코디해달라고 요청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패션의 미래에 닥친 이 디스토피아적 비전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고려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첫 번째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월요일: 트렌드 테스트

나는 기본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챗GPT에 ‘2024년 트렌드 룩’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챗GPT는 “세련되며 대담하죠! 초현대적이고 기하학적이랍니다!”라고 외쳤다. 쇼 호스트에게서 볼 법한 현란하고 열정적인 톤으로 대답하는 걸 좋아하는 듯 보였다.

내가 관대했다면 챗GPT가 점프수트를 고른 것에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것이다. 2024 S/S 런웨이에서 가장 마음에 든 아이템 중 하나가 생 로랑의 올인원이었기 때문이다. ‘초현대적인 운동화’는 요즘 메탈릭 스니커즈에 대한 패션계의 덕질을 참조한 것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하학적인 스테이트먼트 액세서리’에서 점수를 잃었다. 케이트 맥키넌(Kate McKinnon)의 이상한 바비만 떠올랐다. 나는 빈티지 작업복, 아디다스 가젤, JW 앤더슨의 기하학적인(?) 범퍼 백 코디를 선택했다. 이 룩은 10점 만점에 7점을 주고 싶다.

화요일: 스타일링 테스트

챗GPT가 특정 아이템에 대한 스타일링 팁을 줄 수 있을까? 디팝(Depop)에서 최근에 산 빈티지 코듀로이 팬츠를 무대 위로 올렸다. 나는 트위드 블레이저에 모노클 안경을 매치하라는 답변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일요일 저녁 ‘그랜파코어’에 대해 물으니 “서스펜더와 빈티지 시계를 매치해 타임리스한 매력을 뽐내보세요”라는 역대급 답변을 받은 경험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신선하게도 ‘몸에 붙는 니트 스웨터 또는 버튼다운 셔츠’를 추천해서 놀랐다. JW 앤더슨 느낌이 꽤 나지 않나?

필연적으로 테일러드 블레이저와 2000년대 앵클 부츠, *패셔너블한* 스니커즈도 카메오 격으로 등장했지만, 챗GPT의 조언을 적당히 거르며 참고한 덕분에 만족스러운 룩을 연출할 수 있었다.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

수요일: 독창성 테스트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독창적인 것’과 ‘독창적이지 않은 것’의 속성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렇기에 챗GPT에 이런 주관적인 질문을 하는 것은 어쩐지 비약적이지만, 결과가 궁금했다. 문화에 대한 ‘최소 공통분모’ 접근 방식을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이 신선한 느낌이 나는, 반짝이는 그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빈티지 그래픽 티셔츠’를 추천한 데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빈티지 티셔츠는 룩에 독창성을 불어넣는 좋은 제안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디스트레스트 데님 진’과 ‘유니크한 가죽 재킷’으로 홈쇼핑의 세계로 돌아왔고, ‘대담하고 색다른 주얼리’는 1990년대 주얼리 제작 키트를 떠올렸다. 뻔하고 일반적인 답변에 마음이 식어버렸다. 10점 만점에 4점.

목요일: 아카이브 테스트

패션의 세계에서 ‘영감’이란 하나의 회전목마라 할 수 있다(돌고 돌아 제자리). 그렇기에 아카이브 레퍼런스에 대한 이해는 패션 크리에이터에게 아주 중요하다. 목요일 룩을 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1970년대 잇 걸로 챗GPT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느긋하면서도 중성적인 매력의 프랑스 싱어송라이터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답변은 어땠을까? ‘하이 웨이스트 팬츠’, ‘테일러드 블레이저'(제발 그만!), ‘*패셔너블한* 액세서리’, ‘앵클 부츠’까지… 온갖 아이템이 모두 모였다. 하지만 ‘몸에 붙는 터틀넥 스웨터’와 ‘세련된 로퍼’가 추가되었는데, 두 아이템 모두 프랑스 스타일의 매력을 더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나쁘지 않았다.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

금요일: 실용성 테스트

“밖이 추워. 제발 똑바로 하자, 챗GPT야.” 이번 주 룩을 위한 네 번째 요청을 타이핑하며, 인내심은 바닥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1월의 기적인가, 완전히 새로운 아이템으로 구성된 룩이 나왔다. 오버사이즈 스웨터! 레깅스! 니하이 부츠! 울 코트! 진정한 패션의 향연이었고, 나는 얼른 입어보고 싶어졌다.

오버사이즈 빈티지 프라다 니트에 레깅스, 블랙 니하이 부츠, 간트(Gant)의 코쿤 울 코트를 매치했다. 추천해준 ‘스타일리시한 모자’(그래도 꽤 근접했어, 챗GPT야)는 건너뛰고, 집을 나서기 직전 코발트 블루 컬러의 스카프를 연출했다. 10점 만점에 9점.

토요일: 보그 테스트

챗GPT에 에디터인 나, 조이 몽고메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룩을 요청했다. 결과는 ‘플로럴 패턴이 들어간 선명한 옐로 컬러의 미디 드레스와 여기에 어울리는 선 햇’! 세상에나. 난 프롬프트를 ‘보그 에디터’로 바꿨다. 결과는… 꽤 놀라웠다. 펜슬 스커트, 하이힐, 큼직한 선글라스, 당당한 표정까지 <워킹 걸>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프리슬리를 섞어놓은 하나의 캐리커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커다란 하이힐을 신고 여성스러운 핸드백을 팔에 걸치고 긴 목걸이를 두른, ‘출근하는 엄마’를 따라 하는 어린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화이트 탱크 톱에 1970년대 선글라스로 생 로랑 스타일을 연출하려고 했지만, 주로 웨일스 보너 트레이닝복 차림인 회사 동료들이 갑자기 포멀하고 시크하게 바뀐 내 모습에 당황했다. 10점 만점에 5점.

일요일: 무드보드 테스트

챗GPT 스타일링 실험의 피날레를 위해, 좀 더 대담해지기로 했다. 핀터레스트 알고리즘을 뛰어넘는, 최후의 필사적 모험 말이다. 먼저 온라인 랜덤 인물 생성기를 참고했는데, 밥 호프와 저스틴 팀버레이크, 아브라함(Abraham)을 뱉어냈다. 너무 과했다. 그래서 서로 연관성이 없는 세 인물을 직접 선택했다. 2000년대의 데이비드 베컴, 영국 드라마 <이스트엔더스(EastEnders)>의 닷 코튼(Dot Cotton), 헤일리 비버가 그 주인공이다.

“이걸로 코디해줘”라며 사진 세 장을 내밀었고, 챗GPT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2000년대 데이비드 베컴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가죽 재킷으로 시작하죠. 여기에 닷 코튼의 클래식 플로럴 패턴을 입힌 실크 블라우스를 매치하고, 헤일리 비버의 모던한 감각이 느껴지는 디스트레스트 데님과 앵클 부츠로 마무리합니다.” 잭팟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여러 레퍼런스를 재미있게 뒤섞어 나온 룩이 놀랍게도 전혀 싫지 않았다. 이에 영감을 받아 몇 년 동안 입지 않던 낡은 빈티지 플로럴 셔츠를 꺼냈다. 나의 ‘2000년대 데이비드 베컴’ 가죽 재킷과 꽤 멋스럽게 잘 어울렸다. 물론 앵클 부츠와 디스트레스트 데님도 다시 등장했지만, 헤일리 비버 스타일에 대해 그 주에만 다섯 번째 기사를 쓰는 패션 저널리스트 중에 스타일링이 겹치지 않는 이가 있을까? 10점 만점에 9점!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는 지난해 11월 ‘BoF’ 인터뷰에서 “제작 과정에서 기술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죠. 하지만 기계가 100% 다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챗GPT가 인간의 독창적인 혁신을 대체할 순 없겠지만, 제대로 된 프롬프트와 레퍼런스를 활용하면 일종의 똑똑한 디지털 무드보드가 될 순 있다. AI는 재봉사가 아니라 재봉틀이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니라 나만의 옷장 어시스턴트다.

챗GPT의 생각은 어떤지 한번 물어보자. “챗GPT는 학습 데이터에서 인간의 창의성을 일부 모방할 순 있지만, 진정으로 개념을 이해하거나 인간 인지에 내재된 심오한 수준의 창의적 사고를 하진 못합니다.” 지금은 내 직업으로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당분간은 말이다.

* 이 글은 지난 1월 작성했으며, 현재 챗GPT의 버전은 3.5에서 4.0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글·사진
Joy Montgomery
출처
www.vogue.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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