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코리아> 커버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아이리스 로. 클래식한 울과 체크, 트위드 소재의 스웨터, 코트와 함께 고즈넉한 경기도 가평에서 나른한 하루를 보냈다.
아기네스 딘, 카일리 백스 등 블론드 커트 모델의 계보를 잇는 아이리스. 보이시한 헤어와 창백한 피부, 역동적인 포즈가 개성 만점인 그녀는 영락없는 밀레니얼 슈퍼모델이다.
작은 키, 살짝 올라간 눈꼬리, 자유분방한 눈썹과 주근깨··· 런웨이와 화보 모델로 맹활약 중인 그녀가 케이트 모스의 뒤를 이을 수 있을까? 아시아 문화를 특히 좋아하는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옥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했다.
넉넉한 오버사이즈 팬츠와 워커의 조합. 팬츠 밑단의 체크 패턴이 눈에 띈다.
자개장과 잘 어울리는 벨벳 소재의 섹시한 드레스. 깊은 네크라인의 슬리브리스 드레스에는 프린지 달린 머플러가 어울렸다. 펑키한 메탈 주얼리로 젊고 쿨한 영국 감성도 놓치지 않았다.
1950년대 여배우로 분한 아이리스. 렌즈에 비친 한옥 지붕의 단아한 선이 멋스럽다.
모노톤의 질 좋은 니트와 가죽 스커트는 포근하면서도 멋진 조합이다. 한국의 전통적 영감이 어울린 가을 룩.
양털을 어깨에 장식한 부드러운 니트, 버클 장식 랩 스커트. 영국인 모델과 영국적인 패션 아이템이 지극히 한국적인 배경과 만났다.
미니멀리즘은 연령과 상관없이 멋진 스타일을 연출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클래식한 롱 코트는 자유분방한 젠지 모델 아이리스 로의 세련미를 드러내기에도 그만이다.
날렵한 어깨선의 테일러드 코트만 있다면 언제든 멋진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섹시한 실크 드레스에 베이식한 캐시미어 스카프 조합으로 세련된 원숙미를 드러낸다.
영국 패션이 패션계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남들과 똑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 그들만의 개성일 것이다. 하이 앤 로우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스타일을 구사하는 패션 아이콘 아이리스가 한층 젊어진 버버리 스타일을 제안한다. 넉넉한 실크 블라우스에 캐시미어 체크 머플러, 장갑을 믹스 매치했다.
남성적인 느낌의 체크 맥시스커트. 니트와 투박한 라이딩 부츠를 함께 스타일링하니 시크한 스타일이 완성됐다.
영국이란 섬나라가 낳은 위대한 패션 유산인 트위드, 니트. 영국인 신세대 모델 아이리스가 체크, 울 소재 아이템으로 가을 주말여행에 제격인 편안하고 따뜻한 룩을 제안했다.
남성적인 영국의 컨트리 스타일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타임리스 룩이다. 파격적인 슬릿을 가미해 섹시한 체크무늬 맥시스커트가 킬트를 떠올린다. 오래된 정자에 올라 한국의 수려한 산세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자 그림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영국의 또 다른 패션 유산인 트렌치 코트, 그리고 트렌치로 유명해진 버버리 하우스. 브랜드 철학과 하우스의 노하우가 녹아든 트렌치 코트를 입고 아이리스가 툇마루에서 포즈를 취했다. 의상과 액세서리는 버버리(Burberry).
아이리스 로는 자신을 포장하는 법이 없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가평에서, ‘노 메이크업’ 상태의 그녀를 만났다.
아이리스 로(Iris Law)가 <보그 코리아>의 커버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22년 4월이었다. 깔끔한 버즈 커트에 강렬한 눈빛으로 무장한 채였다. 아빠 주드 로(Jude Law)의 시크한 눈매, 그리고 엄마 새디 프로스트(Sadie Frost)의 광대뼈를 물려받은 그녀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당돌하다’였다. 몇 개월 뒤, <보그> 웹사이트에 ‘트렌드에 꼭 민감해야 할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남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취향을 근거로 멋스러운 룩을 완성하는 아이리스 로를 보고 영감을 받아 완성한 기사였다.
<보그>가 또 한 번 아이리스 로와 만났다. 약 2년 6개월 사이 그녀는 Z세대 패션 아이콘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버버리 캠페인의 얼굴이 됐고, 작은 키라는 단점을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복하며 베르사체의 런웨이에도 수차례 올랐다. 지난 9월에는 패션쇼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미국 <보그> 특집 화보에 아멜리아 그레이, 룰루 테니, 안젤리나 켄달 등과 함께 캐스팅되며 ‘지금의 패션계를 대표하는 얼굴’로 인정받기도 했다.
두 번째 만남은 파리 망사르드(Mansard) 옥상 틈이 아니라, 산 중턱에 있는 경기도 가평의 한옥에서였다. 매니저 없이 홀로 촬영장에 나타난 아이리스 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켠 뒤, 촬영 현장을 한 바퀴 빙 둘러보기 시작했다. 평소 한국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독대와 집 안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아이리스 로의 목소리는 강렬한 외모와 달리 나긋했다. 간단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는 와중에도 늘 에디터와 눈을 맞추려 노력했고, 습관적으로 건넨 칭찬에도 매번 “Thank you”라고 화답했다.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던 그녀는 타인을 존중할 줄 알고,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지난해 10월, 성수동에서 열린 버버리 로즈 팝업 이후 거의 1년 만이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한국은 계절마다 날씨가 휙휙 바뀌어, 올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든다. 한국에서는 사계절 먹는 음식은 물론 라이프스타일까지 달라진다. 바이브가 1년 내내 비슷한 파리나 로스앤젤레스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이다. 오늘처럼 후덥지근하고 흐린 한국은 또 처음이다. 차가운 국수가 먹고 싶어지는 날씨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을 방문하는 것도 추천한다. 근교로만 나와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지금 이곳 가평처럼.
아쉽게도 가평이 지금껏 가본 장소 중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제주나 차로 유명한 보성에 가보고 싶다. 항공편을 하루 미룰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는 중이다.
@iriestastebuds라는 음식 사진 게시용 인스타그램 계정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평소 맛보고 싶었던 한국 음식이 있나?
늘 먹던 음식을 먹을지, 새로운 식당에 도전해볼지 고민 중이다. 일단 촬영이 끝나자마자 파크 하얏트 호텔로 가서 빙수를 먹을 거다. 영업시간까지 이미 다 확인했다.(웃음)
<보그 코리아>와의 첫 만남은 2년 6개월 전이었다. 그 사이 무엇이 변했나?
여느 20대 초반처럼, 나 역시 지난 2년 6개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가장 결정적인 건 독립을 했다는 사실이다. 홀로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즐기다 보니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지금도 같은 친구들을 만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런던에 머물고 있다.
또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스타일리시하지 않나. 옷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타입인가, 아니면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입는 타입인가?
반반이다. 지금 나는 ‘스타일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옷장 속 아이템이 모두 완벽하게 내 취향이라, 무엇을 꺼내 입건 ‘나다운’ 스타일이 완성되는 그런 단계 말이다. 물론 기분에 맞춰 옷을 입을 때도 있다. 때로는 생기 넘치게, 때로는 공주풍으로! 최근에는 다채로운 컬러와 프린트를 조합하는 일에 매료되어 있다. 오늘 카무 바지 위에 깅엄 셔츠를 입은 것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컬러와 패턴을 섞어보는 식이다.
‘아이리스 로 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Happy! 쿨하거나 섹시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어떤 옷을 입건, 내가 행복하면 그걸로 족하다. 어린 조카가 둘 있는데, 나를 보고 “아이리스가 또 웃긴 옷을 입었어!”라며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내게 떠오른 단어는 ‘자신감’이었다. 특유의 자기 확신은 어디서 오나? 그런 태도를 갖길 원하는 여성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무엇이든 고민하지 말 것! 어떤 옷이 멋있는지, 또 어떤 옷이 트렌디한지 깊이 생각하면 ‘진짜 나’를 잃을 뿐이다. 남들이 이상하게 여기더라도, 내가 행복해지는 일이라면 두려움 없이 시도해봐야 한다. 사회로부터 거부당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해야 할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패션 멘토’로 여기는 인물이 있는지 궁금하다.
스테이시 니시모토(Stacey Nishimoto). ‘더 코너 스토어(The Corner Store)’라는 빈티지 숍을 쭉 운영해왔고, 지금은 개인 브랜드를 론칭했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주변에는 소위 ‘쿨한 것’을 추종하는 사람들뿐이었다. 탑샵에서 쇼핑을 하고, 스키니 진을 입는 그런 친구들 말이다. 보이시한 아이템을 레이스와 매치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그녀의 스타일링을 보며 나 역시 패션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지금도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고, 스타일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또 누가 있을까.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탐색 탭에 뜨는 한국 여성들의 룩을 참고해, 빨간 스타킹에 스커트와 레인 코트를 매치해보기도 했다.
최근 푹 빠져 있는 아이템이 있나?
2년 전 선물 받은 파운드리 뮤즈(Foundry Mews)의 캔버스 슈즈. 청바지는 물론 스커트, 드레스까지 어디든 어울린다. 그리고 오늘 들고 온 버버리의 핑크 백까지!
헤어스타일이 특히 인상적이다. 독특한 헤어클립이나 헤어밴드를 활용하는가 하면, 가끔은 완벽하게 헝클어진 머리를 선보인다. 평소 헤어 스타일링은 직접 하나?
직접 머리를 손질하며 다양한 실험을 즐긴다. 샤워를 한 뒤, 막 자고 일어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막 움켜쥐거나 클립으로 고정하곤 한다. 요즘은 청록색으로 염색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어젯밤 약 2,400명이 팔로우하고 있는 당신의 스포티파이 계정을 발견했다. 에릭 클랩튼과 드뷔시, 슬로우타이, 리버틴스 등 여러 장르의 아티스트를 팔로우 중이다. 폭넓고 편견 없는 음악 취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내 스포티파이 계정을 팔로우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처음 알았다.(웃음) 직접 플레이리스트 구성하는 걸 좋아한다. 훌륭한 음악 취향을 지닌 오빠와 동생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디제이 친구, 브라질과 자메이카 출신 친구들을 만나며 온갖 음악을 접한 것도 도움이 됐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섬유 디자인을 전공하는 중이고, 최근에는 연기에 도전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정신은 어디서 비롯하는지 궁금하다.
호기심은 나의 가장 큰 특성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식, 여행지 등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했다. 부모님은 물론 주변 어른들이 그런 태도를 장려한 영향도 있다.
새로움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는 없나?
어떤 일에 도전하건 그 분야에 대한 존중과 경외는 필수다. 최근 도예와 다도 공부를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도예와 다도가 곧 자신의 삶과 같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 역시 결코 장난식으로 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2024년이 가기 전 꼭 이루고 싶은 목표 세 가지를 꼽는다면.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이 아닌 몸의 유연성을 기르고 싶어 요가나 스트레칭을 배워볼까 고민 중이다. 두 번째로는 중국에 가서 차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너무 거창한 목표보다는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전진하며 행복을 잃지 않기’로 하겠다. (VK)
- 포토그래퍼
- 강혜원
- 패션 디렉터
- 손은영
-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 허보연
- 에디터
- 안건호
- 모델
- 아이리스 로(Iris Law@IMG Models)
- 헤어
- 김정한
- 메이크업
- 최시노
- 캐스팅
- 버트 마티로시안(Bert Martirosyan)
- 프로덕션
- 박인영(Inyoung Park@Visu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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