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거나 나쁜 동재’,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우리 동재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 6회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 <비밀의 숲>(2017)의 서동재(이준혁)는 ‘우리 동재’로 불렸다. 권모술수와 아첨에 능한 데다 스폰까지 받는 비리 검사인데도 그랬다. 출세 욕망이 뚜렷하다 못해 투명할 정도지만, 오히려 그런 투명함이 밉지 않은 덕분이었을 것이다. (배우 이준혁의 미모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밖에 믿을 게 없었고, 결국 지방대 법대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한 후 온갖 노력 끝에 사법 고시를 패스한 남자. 그런데 세상과 검찰은 서울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더 높은 신분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권모술수와 아첨이 필수였고, 끌어줄 사람에게는 남들보다 먼저 허리를 숙이는 기민함도 필요했다. 태생이 가난한 탓에 사법 거래를 조건으로 찔러주는 돈봉투도 마다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청자들은 서동재를 이해했고 받아들였다. 동시에 서동재는 곧 우리와 같기 때문에 ‘우리 동재’였다. 우리의 대부분은 서울대 출신이 아니지만, 우리의 대부분도 출세를 욕망한다. 또 우리의 대부분은 권력을 갖고 있어도 그 권력으로 엄청난 부를 갈취할 만큼 간이 크지도 못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금쪽이를 바라보는 마음,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좋거나 나쁘거나 동재는 ‘우리 동재’일 수밖에 없었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는 서동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핀오프다. 공개 전 포스터에 적힌 카피만 보고도 끌렸다. “이런 마음이었구나. 주인공이 된다는 건!” <비밀의 숲>의 조연 캐릭터를 주연 캐릭터로 설정했다는 것뿐 아니라, 언제나 검찰의 조연으로 살았던 서동재가 주연으로 올라서려는 이야기라는 또 다른 의미가 겹쳐진 카피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또 승진에서 밀린 서동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비밀의 숲> 시즌 2에서 의정부지검에 소속되어 있던 그는 “다음에는 지방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예견대로 <좋거나 나쁜 동재>의 그는 청주지검에 있다. 스폰서 검사라는 오명은 그를 후배에게도 밀리게 만든 상황이다. 굵직한 사건을 해결해야 반전을 노릴 수 있지만, 그에게 배당되는 사건은 죄다 단순 사고다. 어느 날 단순한 교통사고인 줄 알았던 사건 하나가 고구마 줄기처럼 거대한 흑막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이 사건이 또 서동재의 뒷덜미를 붙잡는다. 이미 잊고 살았을 정도로 까마득한 스폰의 기억. 그는 자책한다. “아무 생각 없었던 건 나야. 계속 그렇게 살았으니까.” 자칫하면 출세는커녕 ‘스폰서 검사’라는 오명만 덧씌워질 위기다. <좋거나 나쁜 동재>는 그럼에도 출세 지향의 욕망을 놓지 않은 서동재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딱한 동재’다.
<비밀의 숲> 팬이라면 <좋거나 나쁜 동재>가 원작과 비슷한 플롯으로 진행된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단순한 강도 살인 사건인 줄 알았는데, 검찰의 묵은 비리가 감춰진 사건이었던 것처럼 <좋거나 나쁜 동재>의 중심 사건 또한 사소하게 시작해 지역 내 마약 카르텔까지 드러낸다. 그런데 이때 사건 해결의 주체인 서동재는 황시목(조승우)이 아니다. 황시목은 ‘정의’라는 원칙으로 수사하지만, 서동재는 욕망과 정의 사이에서 천 번을 흔들리는 인물이다. 서동재는 오로지 대검찰청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수사한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사건의 실마리를 다 찾아낸다. 드라마는 서동재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장면과 검사다운 검사로 자신을 포장하는 순간을 수시로 교차시킨다. 서동재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시청자에게 애처롭거나 ‘웃프게’ 보이는 이유다. 그래서 <좋거나 나쁜 동재>는 서동재가 혼자 있는 장면에서 더 풍부해진다. 언제 삐딱선을 탈지 모르는 위태로운 인간 서동재의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가 이 드라마를 마음 졸이며 보게 만드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황시목과는 전혀 다른 점일 것이다. <비밀의 숲> 시청자들은 황시목이 언제 어디서든 절대 흔들리지 않는 검사라는 걸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6회 마지막 장면에서 사건의 새로운 단서를 파악한 서동재는 명랑 만화 주인공처럼 펄쩍 뛰며 말했다. “간다! 대검!” 10대 소녀가 산탄총에 살해된 비극과 지역 내 마약 카르텔의 흑막까지 드러나는 상황인데도 이렇게 명랑하다니. 극과 극의 온도 차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게 곧 서동재의 본질을 보여주는 태도라고 여겼다. 희생자의 아픔보다 자신의 입신양명에 더 무게를 둔 인간이 보여주는 민낯이라고 할까. 총 10부작으로 제작된 <좋거나 나쁜 동재>가 결국 서동재를 대검찰청으로 밀어 올리며 끝낼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때도 그가 계속 더 높은 세계를 지향하는 인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동재는 역시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우리 동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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