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의 나데주 바니가 확신하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
‘여성스럽다’는 것과 ‘창의적이다’는 것에 대해 에르메스 최초의 여성 아트 디렉터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파리의 어느 봄날, 조금 전까지 햇볕이 쨍쨍 내리쬐었지만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던 금요일, 주홍색 옷을 입고 진홍색 립스틱을 바른 나데주 바니(Nadège Vanhee)는 부드러운 구릿빛 단발을 하고 있었다. 투명한 피부, 강렬한 눈빛. 그녀는 말하지 않고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줄 안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그녀 자체인 것이다. 나데주 바니는 2014년부터 에르메스의 여성복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다.
1978년 프랑스 북부 릴(Lille)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세클랭(Seclin)에서 태어난 나데주 바니는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했다. 그곳은 그녀가 함께 일한 마르탱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와 ‘앤트워프 식스’로 불리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마리나 이(Marina Yee), 디르크 비켐베르흐스(Dirk Bikkembergs), 디르크 반 세인(Dirk Van Saene),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가 다닌 곳이기도 하다. 나데주 바니는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셀린느와 더 로우에서 일했다. 미국에서 실용주의를 경험한 후, 그녀는 좋은 취향이 곧 삶의 방식인 도시 파리로 돌아왔다.
지금의 나데주 바니는 자신이 겪은 모든 경험의 총체다. 그녀는 약 50년 만에 에르메스의 여성복을 이끄는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로서 에르메스가 지닌 ‘여성스러움’을 항상 높이 평가해왔지만, 창의성을 논할 때만큼은 오히려 성별에 따른 차이를 부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르메스는 중요한 생산 체계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라인을 담당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4명을 두고 있으며, 특히 니트와 금속 제품 등 특수한 기술이 필요한 공정은 이탈리아에서 진행한다. 나데주 바니는 이곳에서 팀워크의 중요성을 배웠고, 자유와 안정감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을 성장하게 만든 것은 아마 경청 능력과 호기심, 관용, 비판적 사고와 예민한 감수성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편견 없는 열린 마음과 넓은 시야에서 비롯되는 자질이다.
디자인에 대한 그녀의 접근 방식은 직접적이고 세심하다. 구조의 엄격함에는 날카로움이 있지만 제약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추구하는 데는 조화로움을 보여준다. 그녀의 컬렉션에서 옷은 서사의 중심이다. 신체를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여성이 자신의 정신적 공간을 확장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나데주 바니의 스타일에서 클래식은 현대적으로, 기능성은 매혹적으로 탈바꿈한다. 이는 지난 6월 6일 뉴욕에서 열린 2024 F/W 컬렉션의 두 번째 챕터를 발표했을 때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그녀는 ‘샤를 드골 공항에서 존 F. 케네디 공항까지의 왕복 비행’이라는 주제로, 물리적으로나 은유적으로 표현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패션쇼가 열리기 몇 주 전, 우리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데주 바니의 비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는 그녀 자신이 이번 컬렉션의 키워드로 선택한 ‘로카바르(Rocabar)’다. 전통, 문화, 언어의 결합을 상징하는 이 단어는 영어 ‘러그(Rug)’와 프랑스어 ‘아 바르(À Barres, 줄무늬)’가 합쳐져서 탄생했다. 로카바르는 사프란색 바탕에 빨강과 파랑 줄무늬의 말을 위한 담요로 마구 공방에서 제작되었지만, 현재는 하우스의 반복적인 모티브로 변모했다. 이전에 음악 분야에서 활동하며 ‘록 저널리스트’로도 알려졌던 나데주 바니는 에르메스에서 일하면서 세련된 감각의 펑크 정신을 폭발시키는 데 성공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나요?
패션에 대한 관심은 청소년기 정체성이 뚜렷해지면서 구체화되었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늘 좋아했지만, 예술적·조형적·수공예적인 모든 형태에 강한 매력을 느꼈어요. 옷은 내가 누구인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 자신을 이야기하게 하는 동시에 다양한 이야기, 가족, 문화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게 합니다. 1990년대 말은 레이 가와쿠보, 마르탱 마르지엘라, 준야 와타나베 같은 인물들이 대형 하우스에 반대하는 사조로 공고히 자리 잡은 시기였습니다. 그때 패션에 저를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열정과 욕망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제 생각이 충분히 성숙해지도록 1년의 시간을 보내며 신중하게 고민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소녀였나요?
골칫덩어리였어요. 고집이 세면서도 산만했죠. 프랑스어로 표현하자면 ‘테트 드 리노트(Tête de linotte)’, 그러니까 덜렁이에 늘 딴생각에 빠져 있는 아이였어요.
이제 자신이 늘 바라던 여성이 되었나요?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실망하지 않기 위해 특정한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다만 제가 엄마라는 것도, 에르메스에서 일하는 것도 자랑스럽습니다. 크게 후회하는 건 없어요.
스스로를 야망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야망이라는 개념보다는 발전을 좋아해요. 성장, 진화, 향상이라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매진하는 것을 좋아하죠.
패션 외에 어떤 것에 열정을 느끼나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가장 열정을 쏟는 것 중 하나는 우정입니다. 인생의 이 시점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오랜 친구들과 깊은 유대감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놀라운 일이죠. 우정은 여행이자 발견이며 교류입니다. 그 밖에는 제 소우주에서 패션이 의미하는 것과 자신을 분리하기가 어려워요. 패션은 제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본능적인 표현 방식입니다.
작업실 밖에서는 어떤 사람인가요?
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작은 레이싱 카죠.
프랑스 지방에서 자랐고, 앤트워프와 런던, 뉴욕을 거쳐 지금은 파리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디자인 접근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프랑스 국경 근처 아주 멋진 곳에서 자랐어요. 알제리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고, 한 번도 ‘시골 소녀’라고 느낀 적이 없어요.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문화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찍이 깨달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어요. 필연적으로 저의 관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하나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왕립 예술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곳을 상징하는 색상 중 하나였던 검은색을 당신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이면에는 정말로 남다르게 저 자신을 구별하고 싶다는 의도, ‘다른’ 사람이 되는 나만의 방식을 정의하고 싶다는 욕망, 도전에 직면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디자인에서 블랙은 절대적이며 색상, 형태, 질감을 흡수합니다. 저는 원단을 다루고 옷의 입체성을 강조하고 각각의 색상과 연결된 감성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었어요. 색상은 옷의 볼륨에 생동감을 부여하죠. 검은색은 철학이자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저는 강인함을 느끼고 싶을 때나 시크하게 보이기 쉬운 옵션이 필요할 때 검은색 옷을 입어요.
메종 마르지엘라, 셀린느, 더 로우, 마지막으로 에르메스. 당신의 여정을 특징지은 것은 미니멀리스트 미학과 디자인에 대한 급진적인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당신의 비전은 어떻게 발전해왔나요?
각 브랜드는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서로 다른 이미지를 지녔고, 그 중심에는 의상의 본질이 있으며 이는 구성이나 해체에 대한 정확한 접근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제 경험은 미세하지만 논리적인 관계로 이어져 있습니다. 운 좋게도 브랜드, 디자이너, 무엇보다 미적 가치, 아이디어, 문화적 레퍼런스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더 확고하고 자신감 있는 비전이 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표현을 위한 공간을 남겨둘 줄도 압니다.
에르메스에서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10년간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진정으로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정확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에르메스에 왔을 때 처음으로 한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맡았지만 이미 꽤 확고한 스타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금 순진했을 순 있지만 많이 성장했고, 성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작업과 관련된 모든 측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의견을 내다 보면 때로는 지칠 수도 있지만요. 우리가 만드는 옷에서 제 생각이 많이 반영된 것이 보이지만 결코 지나칠 정도는 아니에요. 저와 다른 다양한 정체성이 반영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저와 가장 잘 맞는 어떤 미학을 창조하는 즐거움이죠.
자신이 옷을 입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옷을 입히는 것에는 어떤 친밀감이 있나요?
우리는 전혀 만지지 않고도 사람들과 감각적으로 접촉해요. 완전히 낯선 이들과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상처받기 쉬울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죠. 모든 의상은 다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된다는 것을 아니까요. 의상은 곧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식이에요.
에르메스, 더 넓게는 패션 분야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나요?
아직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미학 사전에 관능성의 정의를 새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정의가 오래 남길 바랍니다.
인생에서 지금 이 순간이 노래라면 어떤 노래일까요?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그룹의 ‘더 러브’입니다. 결국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이니까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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